지난 주말 '써니'라는 국내영화를 봤다. 그 나이의 겁모르고 팔팔한 질풍노도의 여고 '7공주파'의 이야기이다. 함께 몰려다니며 자신들만의 성(城)에서 세상을 향한 자신들의 존재 외침을 반항과 일탈로 지껄이다 졸업과 동시에 각자의 길에서 삶의 현실에 서서히 적응해가는 스토리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혼자서 낄낄대고 한숨짓고 코끝이 찡해지다가 마지막에 7공주중의 1명을 먼저 떠나 보내는
장례식장에서 나머지 6명의 공주가 그들의 현실에 대항하듯 발랄한 그 시절의 보니엠의 '써니'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에선 나도 몰래 눈앞이 흐릿해져 옴이 느껴졌다. 그녀들은 환하게 웃으면서 춤을 추고 있었지만 그 웃음뒤에 감춰진 아픔과 슬픔이 하염없이 눈물샘을 자극하였다. 형태는 다르더라도 같은 종류의 동일한 무게의 미련과 회한을 나도 그 아줌마들과 똑같이 감추고 있었던듯 하기때문에...
지천명에 들기전 불혹의 말년 언젠가부터 나는 채울수 없는 목마름병에 긴긴날을 휘청대곤했다. 내 스스로 엮어넣은 고독이란 회색빛 무게눌림에 휘둘리면서 서서히 지쳐갔고 메마른 갈증의 울렁임은 심장의 고동소리 마져도 옅은 신음소리로 힘겹게 하였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거부 못할 운명으로 받아 들여야 했기에 한 동안 우울의 늪에서 헐떡대고 있었다.
- 자연의 축복 -
작년 동기회에서 성인이와 옷을 바꿔 입고 오는 행복한 해프닝이 있기 전까지는 사랑이나 그리움이란 단어가 다소 생소하고 낯설었다. 적어도 아버지, 남편이라는 가슴죄는 관념의 조각들은 이성이라는 차갑고 육중한 쇠갑옷이 되어 그날 그날 숨을 헐떡이게 하였다. 어느날 공자님 말씀대로 '지천명'에 이르러 하늘의 뜻에 길들어지려 함은,
내 안에서 오랜시간 숨 죽이던 감정의 호숫가에 잔잔한 동심원을 일게 하였다. 나이 50넘어 다시 만난 친구들과 밤 늦도록 참이슬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여명의 새벽공기에 쓰린 속을 달래는 횟수가 많아 질수록 나의 주절거림과 글쓰기에는 믹스커피 설탕과 프림이 녹아나듯 사랑과 그리움이란 단어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하얀이슬이 내린다는 백로와 추석을 넘긴 지난 일요일(9.18)의 가을하늘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마스카니'를 연상시킬 정도로 맑고 투명해 똑바로 쳐다 볼수가 없었다. 고개를 약간 틀어 올려본 하늘은 너무도 눈이 시려 정수리 끝으로만 바라보았고 어느 화가도 만들어 내지 못할 푸르른 하늘색과 가을향기를 머리속으로 꾹꾹 눌러담았다. 이 아름다운 자연의 축복을 조금이라도 더 담기 위해 예정 보다 집을 일찍 나섰다.
- 서막이 오르다, 좌로부터 영선, 문제경 서영호 선배, 윤구, 두현, 성인, 주노, 기성, 명화 -
오늘은 사랑스런 내 친구 두현이가 예비할배가 되는 날이다. 시간의 예외없는 부지런함은 이미 우리를 할배의 문턱까지 데려다 놓았고 기꺼이 자연에 순응하려는 인식은 우리 친구들을 금촌의 아담한 웨딩홀로 모이게 하였다. 반가운 친구들의 손을 다시 잡아 본다는 기쁜 설레임은 얼마 안있어 할배가 된다는 우리들 서름을 그리도 쉽게 가라 앉혔다.
혼주 두현이는 다시 장가를 가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연신 싱글벙글했으나 첫 아이를 시집보내는 애비의 심란함 마져는 지울수 없는듯 평상시의 호탕팔팔한 그의 웃음소리 보다 약간 가벼운 떨림으로 다가왔다. 애비마음 알 길 없는 아직 철모르는 신부 나영이는 웨딩촬영 하느라 하하호호 그림같은 포즈로 웃고 있으나 곧 이어 두현의 손을 잡고 신부 입장할때 쯤이면 영롱한 눈물로 아빠에게 못다한 애정을 대신할 것이다.
- 두현의 보석, 나영의 행복을 아빠친구들은 꼬~옥 기원하마!! -
저렇게 예쁜 딸을 키우느라 두현과 나영엄마는수 많은 밤들을 뜬눈으로 지새웠을 것이고 하염없는 시간들에 자신들을 한 없이 낮추며 오늘의 이 순간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아니 만들어 왔을 것이다. 나는 사위를 보려면 한 참 있어야 하지만 같은 애비의 입장으로나마 두현과 나영엄마의 그러한 노고와 인내가 무척이도 존경스러웠고 한 고비 부모의 역할을 넘기는 두현부부가 부럽기도 하였다.
장고졸업후 처음 보는 이주노를 어렵지 않게 알아봐 서로 쉽게 손을 잡을 수 있음이 더할수 없는 기쁨이었고 한 여름을 넘기고 다시 본 윤구의 중후한 반백이 그렇게 멋져 보일수가 없었다. 이어서 성인이, 명화, 영선이, 명종이부부, 멀리 원주에서 달려와 준 명성이부부등 선한 얼굴들과의 재회가 방금 전 보았던 가을하늘의 싱그러움, 그 이상으로 나를 들뜨게 하였다.
엊그제 동기카페에서 처음 인사한 호영이의 넉넉한 미소, 얼마전 희석이 모친상에서 만난 인연으로 더욱 가까와진 영준이, 오늘 모인 친구들의 뒤풀이를 위해 맑은 땀 아낌없는 준수,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부러운 멋있는 꽃중년 진제, 무대복차림의 야광 땡땡이 넥타이가 한층 돗보였던 종필이, 장고시절 한 인물 했기에 세월의 흐름에 더욱 원숙함이 돋보이는 석우, 자주는 못해도 볼 때마다 친근감이 더해지는 승우, 지난4월 술에 떡이된 상태에서 이름만 간직했어도 마음편히 다가섰던 최민, 꽁지머리와 도사님 수염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기혁이, 고요한 움직임을 즐기는듯 한 기성이, 그 외 양승철, 한재성, 김호석, 안상용 등...
- 기혁이의 넉넉한 연륜 -
- 종필, 세월의 흐름에 더욱 원숙함이 돋보이는 석우, 영준 -
- 세월의 흐름이 아름답다 -
- 석우, 불굴의 한의사 호영, 준수 -
앞으로 내가 살아 가면서 기대고 의지하고픈 언덕들이고 얼굴들이다. 여지껏 서로 다른 길에서 긴 세월을 버텨 오고 신음했어도 이들에게서 나와 똑같은 아버지의 고독이, 나와 다름없는 한숨과 시름이, 나와 동일한 사랑과 그리움의 깊이가, 나와 유사한 살아갈 날에 대한 기대가, 나와 비슷한 아련한 추억의 한 자락이란 공통분모로 묶여져 있기에 33년이란 긴 시간을 돌았어도 결국은 지금의 이 시점으로 통분되어 이렇게 다시 함께 설수 있음에 정신줄마져 흔들리는듯 흐믓웠다.
아버지이고 남편이기에 악물었던 이빨에 붉은 멍이 맺혀도 깍두기 씹다 고추가루 낀거라고 둘러 대야했고 여고동창회 같다온 아내의 명품 넋두리에 돌아앉아 진한 막소주로 지친 어깨를 쓰다듬었을 것이며 2달분 자식놈 고액과외에 몇 년간 짱 박아둔 적금을 깨고는 하염없는 허탈감을 줄담배 연기로 채워 넣었을것이다. 허옇게 타들어간 속을 내비추지는 않더라도 같은 아픔과 피곤함을 품고 있음이 서로의 눈빛으로 알수 있었고 동시에 아주 오래된 친구가 건네주는 푸근한 이슬잔으로 서로의 연민을 보다 듬었다.
- 남자는 적어도 50이 넘어야 제 멋이 나오는듯 하다 -
- 남자나이 50이 넘으면 이래서 좋다 -
머리위로 돌을 던지면 쨍그렁 소리를 낼것만 같은 투명하고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서 머리는 이미 서리가 내렸거나 약간은 벗겨졌고 세월의 연륜이 더해진 뱃살의 삐죽임이 자연스러운 지천명을 넘긴 맑고 착한 얼굴들의 웃음과 재잘됨은 여지것 살아오며 찌들었던 우리들 영혼을 17살 풋풋하고 팔팔했던 장고 그 시절로 완전 리셋을 시켰다. 맑고 순수해진 영혼을 다시 찾은 우리는 가는 시간이 아쉽고 서러워 맥주 뚜껑을 기다릴 틈도 없이 손에 잡히는데로 라이타로, 수깔로, 오프너로 부지런히 벗겨내렸다.
'펑'하는 카스광고의 소리를 그대로 빼닮으며 병으로 병을 따는 영준이의 병마개 벗기는 솜씨는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저글링하는 노랑 라면머리에 빨강코 아저씨 처럼 보기엔 쉬워 보여도 막상 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일시 귀국한 찬희를 돌아가기 전 다시 볼 수 있음도 다행이라 생각 들었다.
- 기성아, 이 웃음 오래토록 간직하시게 -
- 명성이는 뭘 봤을까? -
- 영준이, 찬희 그리고 나 / 찬희야 앞으로 그리울거다. 잘지내시게 -
- 착하고 아름다운 얼굴들 -
- 감동먹은 가을하늘 -
아버지의 투병과 다시 찾아올 향수병에 돌아서는 길이 가볍진 않겠지만 동기카페라는 인연의 끈으로 타국생활의 지침과 외로움을 그나마 위안이 받을거라 생각하며 친구들 하나 하나와 작별의 손을 오랫동안 잡았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간 찬희는 아마도 LA에서 한국에서의 지난 열흘을 그리워 할 것이다. 다시 한번 찬희의 건강과 건투를 친구들과 함께 기원하며 밝은미소로 다시 찾을 찬희를 고대해 본다.
맑은 가을향기에 취한 탓일까? 한 참을 마신것 같은데도 고삐리때 '근의 공식(2에이 분에 마이너스 비 플러스 마이너스 루트 비제곱 마이너스 4에이씨)'을 아직도 정확히 외울수 있음이 '아직도 육군 정량을 채우기에는 발 밑에 던겨진 뚜껑들이 좀더 쌓여야 할 듯싶다.'고 중얼거릴때 빨강구두, 검은쫄띠에 목걸이로 상큼한 멋을 낸 두현이가 들어섬이 그렇게도 반가왔다. 큰 아이 혼사 치루고 마음 심란 할텐데도 유붕자원방래한 친구들 맞이하려는 배려의 고마움이 잠시 전 찬희와의 작별로 약간 울적해진 심사를 바쁘게 돌아 앉혔다.
- 하늘보다 인물이 빛난다 -
- 윤구와 진제는 언제봐도 멋있다 -
- 누가 더 미남일까? -
- 참! 잘들 생겼다 -
- 오성인 명창의 신들린 듯한 소리울림 -
두현이의 출현과 함께 성인이의 소리 한자락이 잔치분위기의 흥을 돋괐다. 가을향에 일취하고, 친구들의 정 많은 미소에 미취하고, 빨강뚜껑의 이슬병에 소취하고, 징하고도 힘찬 성인의 소리에 대취하여 달을 따러 호수에 발을 담그는 이태백처럼 우리의 염원과 희망을 건지러 나와 친구들도 공활하고 높디푸른 가을하늘 뭉게구름에 몸을 던졌다. 하늘의 품에 안긴 우리는 무한정의 자유를 들이 마셨고 짙은 시름의 한숨을 내뱉었다.
지금 이 나이의 타는듯한 갈증과 채워지지 않는 갈망들을 이 하늘에 품기는 한 참이나 모자란듯 우리는 기숙씨의 민속주점, 연숙씨의 단란노래방을 고삐리때의 무대뽀 돌격정신으로 몰려다니며 서로의 빈 자리를 달래주었고 위안하였다. 육군정량을 한 참 넘긴 참이슬 공급과잉으로 혈중알콜농도가 이미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치를 넘어섰어도 '대리운전'이라는 슬픈아픔의 당의정으로 간장을 점점 더 혹사 시켰다. 하늘이 검어 질수록 깊어지는 간뎅이 신음소리가 애처러웠으나 우리들 바삐 부딫치는 이슬잔의 소리에 잠겨버렸다.
- 덴티스트 두현이, 아티스트 기혁이 -
- 뭔 시츄에이션!!, 꽃을든 남자들 -
- 어버이 날 인가? / 그래도 아직 꽃 꽃을 나이는 아니잖아 -
- 언제나 변함없는 준수의 사진포즈 -
- 아티스트 기혁이의 퍼포먼스 -
- 징하게도 달려왔다 -
- 오성인 명창의 롸커로의 변신에 황망해진 명화 -
- 모든 시름 잊고서... -
정윤구의 정성과 삶이 녹아든 얼큰한 고향국수로 뻣뻣해진 간뎅이를 달래며문득 윤구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여지껏 웃고 까불며 깔깔댈 때 윤구는 뜨거운 주방에서 땀 뻘뻘흘려가며 그의 사랑과 애정을 이빠이 담아 친구들을 위해 환한 미소를 곁들여 따끈한 국수를 건네주었다. '윤구도 함께 즐겼어야 했는데' 하는 미안함에 식탁위에 다소곶 놓여진 국수에 '윤구야, 고마워 잘 먹을께!!'하고 말을 걸었다. 낯12시부터 밤9시까지의 장장 9시간 거침없이 달려온 심장과 간장의 활동시계는 헐떡대며 앵꼬의 붉은등을 깜박이고 있었다.
오늘 하루 날려버린 갈증과 갈망의 조각들이 장막이 되어 다시 서서히 페이드아웃되고 있었다. 성스런 의식을 치루듯 우리는 다시 둥그렇게 둘러서서 '갈고리촌충, 민촌충, 회충, 요충, 대장충'의 주문을 외며 마음속 아직 남아있는 작은 조각의 번뇌를 내려놓고 오늘 하루 자리했던 마법의 동굴에서 서서히 빠져나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표하며 각 자 처음의 출발지로 향하였다. 어두운 가을밤으로 돌아서며 나는 속으로 '친구들아 사랑한다.'하고 중얼댔다.
- 윤구의 마음과 정성 -
- 오명창, 예비할배 두현, 내고향 잔치국수 정윤구 사장 / 윤구야 정말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고.. -
- 다시 또 무슨 음모가? -
- 마지막 번뇌를 내려놓다 -
- 마침내 마법의 동굴을 빠져나오다 -
'사랑은 나를 비우고 너를 채우려 할때 샘물처럼 고여든다.'는 외수형님의 넋두리가 아직도 나를 사랑타령 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비우려 할것이다. 내 맘속에 들어온 샘물은 다시 사랑의 반대말이 없고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는 푸른 숲과 낙원을 만들것이다. 그 곳으로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기에 그것이 이 나이의 행복이라 여겨지기에 나는 부지런히 비우기에 열중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