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시험 세번이나 떨어진 ‘권오걸’ 한양 가는길에 미친 점쟁이 만나… 외수염 잉어 살려주면 합격 한다며 “자네 색시는 저 아이야”하고 주모 등에 업힌 아이를 가리키는데,,,
예천 용궁땅에서 거지꼴을 한 미친 점쟁이가 오늘도 킬킬거리며 저잣거리를 돌다가 허름한 국밥 집에 들어갔다.
미친 점쟁이는 혼자 국밥을 먹던 말끔한 젊은이 앞에 서더니 “세번이나 떨어지고 또 끌끌” 하고 중얼거렸다.
얼굴이 박박 얽은 주모가 아기를 업은 채 “나가! 재수 없게” 하며 부지깽이로 내쫓으려 는 걸 젊은이가 막아섰다.
“이분 밥값은 내가 낼테니 밥을 주시오.”
젊은이는 점쟁이에게 술 한잔을 따르며 물었다.
“제가 과거에서 세번이나 떨어진 걸 어찌 알았수?” 점쟁이가 킬킬거리며 말을 받았다.
“이마에 쓰여 있어.” 젊은이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만지며 속으로 내뱉었다.
‘안동에 사는 나를 한번도 본 적이 없을 텐데!’ 젊은이는 더 바짝 다가앉아 물었다.
“도사님, 그럼 이번에는…?” 점쟁이가 답했다.
“외수염 잉어를 제 집으로 돌려보내줘.” 점쟁이는 술 한잔을 들이 켜더니 또 다시 킬킬거리며 말했다.
“자네 색시는 저 아이야.” 그러면서 주모 등에 업힌 꾀죄죄한 아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외수염 잉어….” 젊은이 권오걸은 국밥집을 나와 문경새재를 넘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다 하룻밤을 묵고 가려고 남한강 나루터 주막집에 들어가 평상에 털썩 앉았다.
이때 손님 중 하나가 “오늘 저녁은 뭐여?” 하고 묻자 주모가 “잉어매운탕 이구먼요” 하는게 아닌가.
권오걸은 후다닥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도마 위의 잉어를 내려치려는 주모 남편 손목을 가까스로 붙잡고는, 한쪽 수염이 떨어져나간 채 아직도 벌름벌름 숨을 쉬는 커다란 잉어를 다짜고짜 얼싸안고 내달려 남한강에 던져버렸다.
주막집으로 돌아온 권오걸은 술을 사서 손님들을 달래고 잉어 값을 두둑이 줘 주모를 다독였다.
한양으로 올라간 권오걸은 마침내 알성급제를 했다.
어사화를 휘날리며 고향으로 내려오던 권오걸은 걸음을 멈췄다.
미친 점쟁이의 마지막 점괘가 떠올랐다. ‘그 꾀죄죄한 여식이 나의 배필이 된다고? 그 천한 주모가 나의 장모가 된다고?’
어둠살이 내리는 예천 땅 용궁의 국밥집. 가마솥의 국은 설설 끓고 주모는 마당에서 파를 다듬고 아기는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놀고 있었다.
어두 컴컴한 부엌 뒷문으로 시커먼 남정네가 들어와 아기를 가마 솥에 던져넣고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뒤로한 채 사라졌다.
15년이 흘렀다. 상주 부사로 부임한 권오걸은 토호 들이 마련한 연회에 참석했다.
권 부사를 시중들 기생은 이름이 부용이라 했다.
권 부사는 부용을 보자 마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가” 중얼거리고, 부용도 권 부사 옆에 앉자 온몸이 불덩이가 되었다.
이방이 권 부사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부용이는 아직 머리를 올리지 않았습지요.”
주연이 파한 후 권 부사와 부용은 금침을 깔아놓은 뒷방으로 갔다.
그런데 부용이 갑자기 “나으리, 소첩은 나으리 품에 안길 수가 없습니다” 하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게 아닌가.
권 부사도 한숨을 내뿜으며 말을 받았다. “밤새 술잔이나 나누자 꾸나.”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권 부사가 먼저 신세 타령을 했다.
“내 나이 열아홉에 알성급제 해 안동이 떠들썩하게 장가를 갔는데 첫날밤에 새신부가 급살을 맞더니 일년 반 만에 새장가를 가자마자 또 첫날밤에….” 권 부사는 방구들이 꺼질듯 한숨을 토하더니 부용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사연이 있느냐?” “젖가슴 아래로 심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어쩌다?” “소첩의 고향은 예천 용궁입니다.
어머님이 국밥집을 했는데 소첩이 세살 때 어떤 남자가….”
권 부사는 촛불을 끄고 부용을 안았다. “오늘 밤 나와 몸을 섞어도 너는 절대 죽지 않는다.” “나으리 품에 안기면 죽어도 좋습니다.”
권 부사는 부용의 옷고름을 풀었다. 폭풍이 몰아 쳤다.
부용은 죽지 않았다. 부용은 권 부사의 정실이 되어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