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의 뻐꾸기 소리조차 팍팍하게 들리는 5월에
삶이 팍팍하면 뒷동산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도 팍팍하게 들리는 법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 날 , 어버이 날 챙겨야 합니다. 시부모 처부모,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면 그 어른들도 챙겨야 합니다. 물가가 올라 돈 가치가 없으니 용돈 5만 원을 드리려니 손이 부끄럽습니다. 아들 며느리가 손녀까지 다리고 먼 길을 찾아와서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조모 용돈 봉투를 드립니다. 꼬마 조카들 옻도 사 가지고 왔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며느리가 준 봉투를 열어 보았습니다. 아이고 손도 크지 신접 살림에 무슨 돈이 있다고 이렇게나 하는 마음이 들어 가슴이 짠해 집니다. 내가 신접 살림할 때 그 시절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새벽에 근처 현금 인출기에 가서 아이들이 돌린 돈봉투 금액을 어림 잡아, 승용차 기름 값까지 계산해서 전부 채워 넣었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점심 식사를 내가 외식하자며 식당을 잡고, "앞으로도 영원히 아버지 선물은 현찰로 다오"하고 부탁하고는 내가 채워 넣은 돈봉투를 며느리에게 건냈습니다. '마음을 받고 마음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돈 걱정이 앞서면 부모를 찾아 보고 싶어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사람이니 빈봉투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대구문협 회장 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가 봅니다. 문협살림살이에도 돈이 엄청 많이 듭니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예산이라고 해봐야 책 만드는 돈 뿐입니다. 무슨 돈으로 협회를 움직일지 대책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개인 출판 기념회를 협회에서 대신 단체로 해주니 좋다고들 합니다. 협회 회원들 회비로 개인 출판기념회 하면 안되는 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회장 주머니 돈 털어서 해 달라는 것이지요. 나라에서 공짜 퍼주기 하면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 우리는 다 압니다. 밥 한 공기에 물타서 갱죽 만들어 배를 채우는 것이지요. 모두들 공짜 좋아하니 글을 쓰고 싶어도 쓸 가치 자체를 느끼지 못합니다. 수익자 부담 원칙이 만고 불변의 진리입니다. 추석이 가까워 오면 산소 벌초를 해야 합니다. 나는 집안의 장손이라 벌초 할 산소가 세군데나 됩니다. 힘이 부쳐서 남에게 맡기려니 옛날에는 50만원 주고 했는데 이제는 올라서 80만원 달라고 합니다. 남에게 맡기면 "처삼촌 무덤 벌초하듯"이 대충 시부적이 합니다. 한번 시켜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요즘은 4일 나누어서 하루 두시간씩 사나흘 간 혼자서 합니다. 매일 조금씩 하면 아직은 힘에 부치지 않고 혼자서 해 낼 수 있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산소 잡풀을 깍으면 조상님께서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돈을 절약해서 추석날 손주들이 오면 용돈을 줍니다. 손주들이 엄청 좋아 합니다.
복은 검소에서 옵니다. 근면검소한 삶의 자세가 사라져 버린 오늘날 이런 소리도 소 귀에 경읽기 입니다.
첫댓글 .
제가 예전에도 선물이냐 현금이냐 하는 걸 두고 뭐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것도 나름대로 사연은 있습니다.
물품으로 드려야 할 때와 현금으로 드려야 할 때가 따로 있는 만큼
이것도 분별은 해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른이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그 선물을 사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섭섭합니다. 제 선물이 시원찮다고 이러시나요?"
이렇게 되면, 본의 아니게 무안을 주게 되니, 이것도 곤란합니다.
거의 20년은 지난 과거사인데,
대전의 어느 수필가의 사례입니다.
새로 맞은 막내 며느리가
'백화점으로 가서 옷을 한 벌 사 드릴까요?'
하는데,
시어머니인 아무개 선생은 굳이 받고 싶지가 않았던 거죠.
이제 금방 살림을 차린 처지를 뻔히 알고
며느리가 좋기도 하고,
그렇다고 이러쿵저러쿵 설명하자니,
이것도 마땅찮고...
이리하여 아무개 선생의 참신한 말씀은 이랬다뎌라.
" 애야, 애야!
남들은 이런저런 옷으로 치장을 해야 겨우 멋이 있지만,
나는 옷을 벗으면 벗을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는 여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