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성산읍 고성리 1550번지(고성리 경노당)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사건 현장
1949년 1월 9일 성산포에 주둔하는 서청특별중대원들이 고성리를 덮쳤다. 이들 주민은 1월 13일 터진목에서 학살되었다. 그 분들이 집결되었고 고문당했던 장소이다.
고성리 주민 홍성기(1929년생)씨의 2004년 증언이다.
“1월 9일께 서청들이 모든 리민을 리사무소에 집결시켰어. 한 칠팔십명이 리사무소에 왔지. 서북청년들이 김기삼이란 사람을 눅져가지고(눕혀서) 취조를 ᄒᆞ는디, ᄑᆞᆯ(팔) 양쪽 눌르고 발 눌르고 바른 말을 ᄒᆞ라고 하면서 막 취조를 ᄒᆞ는 거라. 딱 ᄒᆞᆫ 번 보니까 다시 볼 생각도 엇고(없고) 바래볼 수도 엇어서(없었어). 큰 주전자에 물을 질어가지고 그것을 코더레 담는단 말이여. 코더레 담으니까 그것이 얼마나 …. ᄑᆞᆯ 허고 발 누루떠부난(눌러 버리니까) 바른 말 ᄒᆞᆯ 것은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그것뿐이거든. 그리고 좀 있으니까 ‘이 새끼 바른 말 안 ᄒᆞ민 쏘아 죽인다.’ ᄒᆞ는 소리가 나는 차에 ‘팡’ 소리가 났어.”
당시 젊은 청년들은 죄가 없어도 그들에게 밉보이면 목숨이 위태롭던 시절이었다. 그 때 김기삼이란 청년이 서청의 수색을 피해 달아나다 붙잡힌 것이다. 그러자 모든 청년들을 공회당에 모이라고 한 서청은 그를 고문하다 총격을 가했다. 홍씨는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김씨를 신양리에 있는 정의원에 후송하고 와 보니 많은 청년들이 성산포 감태공장 창고로 끌려간 후였다고 한다. 이렇게 끌려간 청년들(홍성두, 옹양순, 정성오 등) 27명이 1월 13일 성산리 터진목에서 참혹하게 학살당했다.
향사가 있던 자리에는 단층건물이 들어서 고성리 경노당으로 쓰이고 있다가 최근 2층 건물로 리모델링되었다. 예전에는 토벌기념으로 경찰 충남부대가 식수했다는 향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2020년 『제주4·3유적지Ⅱ-서귀포시편』)
《작성 22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