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가장 우수한 글자이지, 말은 아니다 漢字語 등 많은 외래어를 품어야 國語가 풍성해진다 趙南俊 전 월간조선 이사
10월9일, 한글 創製(창제) 579년을 맞았다. 글은 말이 아니라는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글<文字>과 말<言語>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말이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다. ‘말’은 아니다. ‘버스’, ‘택시’는 어디 말일까. 본적은 英語(영어)지만 현주소는 한국어다. 이를 外來語(외래어)라고 한다. 英語는 잉글란드(England) 섬의 언어라서 English라고 하지만, 사실은 잉글란드 원주민어인 켈트어, 웨일즈어에 北歐(북구) 바이킹어,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스어 등 많은 외래어가 섞인 말이다. 특히 우리 말 속 한자말처럼 라틴어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예컨대 사람이라는 뜻의 man은 영어, person은 라틴어다. 현재 man은 동물로서의 인간, person은 가면을 쓴(인격을 갖춘) 인간이라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영어는 이렇게 많은 나라의 영향을 받으면서 단어가 많아졌고 말은 풍성해졌다. 우리말도 마찬가지다. 우리민족은 수천 년 간에 걸쳐 몽골 서북방에서, 만주, 중국 북부, 동부, 한반도로 서서히 이동하면서 많은 외래어가 생겼다. 특히 일부 漢字(한자)는 스스로 만들었고, 많은 漢字를 중국에서 받아들이면서 오늘의 한국어는 세계 최고의 표음문자와 세계 최고의 표의문자를 동시에 사용하는 축복받은 언어가 되었다. 한자말은 상상 이상으로 우리 말 속에 많이 녹아 있다. 말의 근원은 다르지만, 중국인과 한국인이 隣居(인거)한 시간이 길다보니 그렇게 됐을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 중국인도 東夷族(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인정하는 商(상, 殷은이라고도 함)나라(司馬遷•사마천이 史記에서 ‘殷曰夷 周曰華•은왈이 주왈화’라 했다)는 漢字의 뿌리가 되는 갑골문자를 만들었다. 중국의 학자 林語堂(1895~1976)은 그래서 1950년대 安浩相(1902~1999) 초대 문교부장관을 만났을 때, “漢字는 동이족이 만든 글자”라고 공언한 것이다. 商(殷이라고도 함)은 수도를 亳(박), 왕을 亳王(시조 湯•탕부터 7대 太戊•태무까지)이라고 했다. 亳은 해의 상징인 밝다에서 나온 말이다(신라 시조 赫居世 왕의 姓, 朴도 마찬가지). 우리 발음을 그대로 漢字로 표기했다. 우리 민족을 倍達族(배달족)이라고 하는데 이는 박달나무 檀(단)의 박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倍達을 白達(백달)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모두 박달을 音借(음차)한 것이다. 중국 수도 北京 인근에 지금도 高麗村(고려촌)과 함께 白達村이 존재한다. 한자를 알수록 우리말과 한자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일이 많이 생긴다. (어린)아기, 아름다운, 아바지(아버지의 고어), 아마니(어머니의 고어), 아들의 고어 아달(=좋은 달, 달은 딸의 고어), 아씨에 쓰이는 ‘아’는 優雅(우아)하다고 할 때의 雅와 마찬가지로 좋다, 아름답다는 뜻으로 쓰인다. 아기는 한자로 阿只(아지)로 표기됐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호적이 처음 생길 때 사람이름으로 많이 쓰였다. 송아지, 강아지, 망아지, 돗아기(도새기•제주 방언)의 유래다. 그렇다면 ‘아지’는 순수한 우리말인가, 한자말인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쓰고 있는 한자말도 부지기수다. 그 가운데 학문적 개념어가 아닌, 일상어의 예를 보자. ▲匙箸(시저)=수저▲奇特(기특)한 ▲姑捨(고사)하고 ▲(소문이)孜孜(자자)하다 ▲及其也(급기야) ▲若干(약간) ▲間或(간혹) ▲(물결이)潺潺(잔잔)하다 ▲(소리가)錚錚(쟁쟁)하다 ▲錚→징 ▲到底(도저)히 ▲大關節(대관절) ▲飜然(번연)히→뻔히 ▲滋味(자미)→재미 ▲慫慂(종용)→조용 ▲慇懃(은근)히 ▲擧皆(거개)가 ▲하나式→하나씩 ▲乃終(내종)에→나중에 ▲丁寧(정녕)코 ▲姑(고)히 ▲防築(방축)→방죽 ▲魁然(괴연)히→괜히 ▲着着(착착) ▲依例(의례)히 ▲酌定(작정) ▲於此於彼(어차어피)→어차피 ▲怪異的(괴이적)다→괴이쩍다 ▲高作(고작) ▲語案(어안)이 벙벙하다 ▲語塞(어색)하다 ▲語義(어의)없다→어이없다 ▲假量(가량) ▲大段(대단)한 ▲喧(훤)하다 ▲其樣(기양)→그냥 ▲歇價(헐가)→헐값 ▲孤單(고단)한 ▲兜舞(도무)지 ▲麥浪(맥랑)한→맹랑한 ▲假借(가차)없다 ▲每優(매우) ▲某條(모조)록→모쪼록 ▲詹下(첨하)→처마 ▲俄而(아이)오→아이고 ▲期於(기어)이 ▲牙羽聲(아우성) ▲凋殘(조잔)한→쪼잔한 ▲返(반)하다 ▲雜同散異(잡동산이)→잡동사니 ▲怪甚(괴심)하다→괘씸하다 ▲擦(찰)하다→(정신)차리다 ▲盲追(맹추) ▲果日(과일)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짠지, 싱건지의 ▲漬(지)도 있다. 漬物이라는 단어는 80~90년 전까지 ‘김장감’이라는 뜻으로 신문에 등장한다. 지금도 일본이 쓰는 쯔께모노가 바로 漬物의 일본식 발음이다. 더욱이 최근세에 들어와 日本의 영향아래 살면서 漢字로 표기되는 수십만 개의 근대 개념어가 우리 생활에 깊이 정착됐다. 漢字가 없어도 일상생활 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문서를 이해할 수 없고, 하루도 학문을 계속할 수 없다. 우리가 漢字를 반드시 알아야 하고 써야 하는 이유다. 訓民正音은 어리석은 백성이 쉽게 배우도록하기 위한 比重(비중)보다, 당시 여러 가지로 발음되던 漢字의 바른 음을 정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는 해석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