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첫날 만우절이 다가오면 아련한 추억 한 자락이 미소를 짓게 한다. 오늘날 만우절은 주변 사람들에게 가벼운 장난이나 농담으로 웃을 수 있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간혹 일부 사람들이 불이 났다느니, 사람이 다쳤다느니, 하는 거짓말로 119 대원들을 당황하게 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서양에서는 만우절 장난에 속아 넘어간 사람을 '4월 바보' 또는 '푸아송 다브릴(poisson d'avrill)'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4월의 물고기'라는 뜻으로 고등어가 4월에 많이 잡혀 만우절에 속는 사람을 '4월의 물고기'라는 설도 있다. 어쩌면 지난 시절 나 역시 4월의 바보는 아니었을까.
젊은 날, 나는 책을 좋아하여 도서관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그와의 첫 만남도 그곳이었다. 서로 마주치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좋은 도서를 추천하고, 토론까지 하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는 말수가 적고 부끄러움도 많은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주말이면 가끔씩 영화를 보고 다방에서 커피도 마셨다. 성당못은 우리의 아지트였다. 만나는 벤치 하나를 정해 놓고 서로의 이름 마지막 자를 새기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 몰래 김밥을 말았다. 갖가지 과일로 하트를 새기며 정성껏 도시락을 꾸몄다. 그는 하트를 보고도 무덤덤하게 맛있다는 말뿐 유머도 멋도 없는 남자였다. 새벽잠을 설치며 몰래 만들어 온 도시락을 확 뺏고 싶었다.
만우절이 다가왔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언제부턴가 그 사람을 마음에 둔 나는 손목도 제대로 한 번 잡지 않는 그가 섭섭하기 시작했다. 만우절을 핑계 삼아 멀리 이민을 가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잠시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나의 눈길을 피하며 아무 말이 없었다.
뒤돌아서려는데 그 사람이 나의 팔을 낚아챘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가끔씩 편지는 하실거죠?"
실망이 컸다.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속내를 들킬까 봐 오늘이 만우절이라고 말 한마디 못하고 줄행랑을 쳤다. 우리가 놀던 성당못 벤치를 찾았다. 물속으로 애꿎은 돌멩이만 자꾸 던졌다.
투덜투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스름 가로등 불빛 아래 꽃을 든 그 남자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만우절이지만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면 어떻게 해요?"
가슴이 지조 없이 또 콩닥거렸다. 그것도 잠시, 설레이던 마음이 비참하게 무너졌다.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그가 부인이 있다고 말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더 애틋하다고 했던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궁금하다. 그는 정말 결혼을 했을까. 아니면 내가 마음에 없어 거짓말을 한 것일까. 해마다 만우절이면 문득문득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꼭 물어 보고 싶은데.
(박미정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