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2023년 8월 19일 연중 제19주간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복음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9,13-15
13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 사이에 그런 중재를 잘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수송아지로 우상을 만들 때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려고 하였을 때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께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려다가 광야에서 모두 벌하신다면 다른 신들이 하느님을 우습게 여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이야기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럴 때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와 메추라기는 질린다고 불평했을 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불뱀’을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을 벌하셨습니다. 그때도 모세는 하느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해 주기를 청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뱀’을 만들어 높이 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모세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사이에서 ‘밀당’을 잘하였습니다.
지나치면 안 되겠지만 ‘만남’에도 적당한 밀당은 필요하다고 합니다. 전화 빨리 받기, 문자 바로 보내기는 필요하지만 가끔 여유를 가지고 전화하거나 문자 보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만날 때 마다 비용을 혼자서 지불하는 것도 좋겠지만 가끔은 상대방이 비용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혼자서 비용을 모두 계산하면 처음에는 고마워 하지만 나중에는 당연하게 여길 수 있다고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상대가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만남은 일방통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남은 쌍방통행일 때 더욱 깊어진다고 합니다. 100%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만남은 없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적당한 ‘밀당’은 서로를 이해하는데 필요하다고 합니다. 성격이 급한 저는 그런 ‘밀당’에는 소질이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과 밀당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호수아와 그 가족은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느님만을 섬길 것인지 다른 이방의 신을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 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여호수아와 같이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만을 섬기겠다고 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 증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인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은 너희가 너희 하느님을 부정하지 못하게 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세상의 일에는 밀당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성직자와 수도자,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에도 선을 넘지 않는다면 적당한 밀당은 사목에 도움이 됩니다. 매일 똑같은 날씨보다는 4계절이 있는 것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매일 맑은 날 보다는 때로 흐린 날, 비오는 날도 있으면 인생이 따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에는 밀당은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제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물도, 배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는 부자청년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자청년은 슬퍼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가진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밀당이 아니고 선택입니다. 그 선택에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런 결단은 순수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출처 : 미주가톨릭평화신문→ ( 오늘의 복음 묵상)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