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가철이다.
어느덧 일곱 번째 달도 끝자락에 이르렀다. 달력 한 장이 또 넘어가려 한다. 세월은 늘 이렇게 말없이 흘러가지만, 휴가철만 되면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1966년, 첫 월급을 받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30달러 남짓이었다. 먹고사는 일이 삶의 전부였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잠드는 날이 드물었다. 여름휴가라는 것도 3~4일이면 넉넉한 편이었다. 그마저 직장에 급한 일이 생기면 미련 없이 반납해야 했다. 직장은 생계를 지켜 주는 마지막 보루였기에 누구도 불평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1980년 무렵의 여름은 더욱 선명하다. 휴가를 떠나면서도 회사에 연락이 닿는 전화번호를 남겨야 했고, 비상 연락이 오면 세 시간 안에 복귀할 수 있는 거리에서만 쉬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휴가가 아니라 잠시 회사를 벗어나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 시절에는 그것마저 감사하게 여겼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삶의 현실이던 시대였다.
그 무렵 들려오던 프랑스와 독일의 휴가 이야기는 마치 꿈나라 세상 이야기 같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 달 가까이 휴가를 떠나고, 독일 사람들도 열흘 남짓 여유를 누린다니, 부러움은 곧 가난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휴식의 길이만큼 삶의 여유도 다르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오곤 했다.
지금은 온 나라가 휴가철이다. 방학을 맞은 학교 운동장은 적막하고, 아파트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학교 주차장에 승용차 두 대다. 모두 어디론가 떠난 모양이다.
학교와 길거리를 바라보다 문득 딸들과 손주들이 떠오른다. 휴가철인데도 전화 한 통 없다. 세월이 사람을 멀어지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좋은 아버지, 좋은 외할아버지가 되지 못한 탓인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를 원망하랴!'
내 탓이려니!'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 나이의 무게인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다시 1980년대 후반 칠포리 바닷가로 나를 데려간다. 며칠째 비가 내렸고, 바닷물은 차가웠다. 발밑에는 조개가 지천이었고, 우리는 신이 나서 조개국을 끓였다. 그러나 해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모래가 씹혔고, 결국 국물만 떠먹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두 딸에게 근사한 음식 한 끼 제대로 사주지 못했던 아버지의 미안함은 지금도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빈 지갑은 부끄러웠지만, 작은 웃음만큼은 잃지 않았던 가족의 시간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휴가는 풍요롭지 않았어도 따뜻했다. 행복은 넉넉한 주머니보다 함께 웃어 주는 사람 곁에 머무는 것임을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 청송약수터에서 맛본 파란색 국물에 잠긴 닭백숙 한 마리를 나눠 먹던, 그 꿀맛은 지금도 추억되어 혀끝에 맴돌고 있다.
이제 나는 여든의 나이다. 먼 길을 떠나는 휴가는 멀어졌고 하루 한 시간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일도 더 어려워졌다. 이틀, 사흘을 거르기도 한다. 몸을 아끼는 것인지, 게을러진 것인지, 아니면 세월 앞에 조금씩 속도를 늦추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예전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면, 이제는 걸음을 늦추며 지나온 길을 자주 돌아보게 된다.
오늘도 고속도로는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길게 이어질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부모의 설렘,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의 반가움이 자동차마다 가득 실려 있을 것이다.
부디 모두 무사히 다녀오기를 기도한다. 여행의 끝에서 사진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서로를 아끼던 마음이기를, 값비싼 음식보다 함께 나눈 웃음이기를, 먼 훗날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사랑이기를 바란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간다. 젊은 날에는 휴가를 기다리며 살았고, 오늘의 나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결국 인생이란 앞으로 걸어갈 때는 알지 못했던 소중함을, 뒤돌아볼 때 비로소 깨닫는 긴 여행인지도 모른다.
휴가철이다.
떠나는 모든 발걸음 위에 안전이 함께하고, 돌아오는 모든 얼굴에는 행복한 추억 하나씩이 고요히 내려앉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