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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 지도자의 리더십
고용수
I. 들어가는 말
21세기 우리 사회의 중심 화두는 리더십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도자의 리더십 문제는오늘의 한국교회 역시 중요 이슈로 이미 대두되고 있다. 특별히 오늘의 한국교회 내 교육의 중심기관인 교회학교교육지도자의 리더십의 빈곤 내지 부재 현상은 미래의 교회학교의 심각한 위기로 진단되고 있다.
예장 총회 교육자원부에서 발간한 『교육받백서』(2003)에 의하면, 최근교회학교학생 수의 감소요인 중에서 교사의 리더십의 부족이 가장 높게(48%)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성장 후기의 내일을 염려하고 준비하는 우리는 교회교육 지도자의 리더십 형성이야말로 교회학교가 21세기의 효율적인 교육기관으로 유지 ․발전하기 위한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할 것이다.
II. 리더섭(Leadership)
리더십의 정의는다양하다 “그룹이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추종자들이 기꺼이 노력하도록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행위(G. R Terry), 특정 목표를 향해나아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향력(R. Tennenbaum), 의무적으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량(F1ed Smith), 목표를 향해 협력하도록 영향을 주는 행동(0rdway Tead),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서 그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력(John Maxwell)등 이상의 다양한 정의들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리더십이란 영향력으로 요약된다. 오스왈드 샌더스는 리더십이란 영향력, 곧 한 사람이 다흔 사람들에게 영향을 마치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사람들의 삶에 감동과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리더는 사실상 리더가 아니다. 사람를을 이끌려면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성서인물 가운데 영향력을 행사한 많은 지도자들을 우리는 보게 된다. 예컨대,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서 약속의 량으로 안내하는데 주도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모세의 리더십,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들어선 후 흩어진 민심을 결집시켜 통일 왕국의 대업을 이끈 다윗의 리더십, 바벨론 포로기간 중 선민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포로의 신분으로 집권 제국의 통치를 주도했던 다니엘의 리더십, 그리고 포로기간 중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왕을 설득해서 총독으로 고국에 파송되어서 주변 국가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성벽 재건을 완성한 느헤미야의 리더십, 둥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들의 탁월한 영향력 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또한 교회학교의 역사를 통해 영향력 을 행사한 교육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보게 된다.
첫째, 영국의 주일학교 창설자로 알려진 평신도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 1735-1811)의 영향력이다. 레이크스가 주일학교를 시작한 1780년대는 18세기 중엽부터 일어난 급격한 산업혁명의 여파로 공장공업의 호황 속에 노동 인력이 크게 부족했다. 그래서 서민층 대부분의 어린 자녀들이 주간에는 학교 대신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해야만 했다. 그러나 휴일인 일요일에는 할 일이 없어 거리를 방황하고 어른들의 도박 구경이나 하고 술집 주변에서 떼 싸움을 벌이곤 했다. 이로 인해 청소년의 비행과 범죄 행위가 사회 문제로 급증했다. 그럼에도 정부산하 교육당국이나 일반 가정의 부모들은 이들을 방임하다시피 했다. 어느 일요일 친구와 같이 길을 걷다가 레이크스는 길가에서 난폭하게 놀고있는 어린이들을 목격했다. 평소에 청소년 지도에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례이크스는 친구에게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비난 섞인 큰 소리로 저 아이들의 장래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투덜거렸다. 바로 그 때 옆을 지나가던 한 젊은이가 레이크스를 향하여 당신이 할 수 있지요.(you can try it)라는 말을 던지며 지나갔다. 이 젊은이의 한마디가 레이크스의 마음을 움직였다. 레이크스는 그 젊은이의 한마디 충고를 곧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으로 받아들였다. 1780년 7월 레이크스는 자기가 사는 글러스터(Glaucester) 빈민지역의 한 저택 거실을 자비로 세를 얻고, 공립학교에서 은퇴한 부인들을 1일 1씰링으로 유급 교사를 채용해서 불우한 어린이들의 교육을 위한 일요일학교(school of Sunday)를 개설했다. 당시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초과목{읽기, 듣기, 셈하기)과 함께 성경을 일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르쳤고, 주일 예배시간에는 길 건너 교회당에 어린이들을 줄지어 참석케 했다. 역사가는 이것이 영국주일학교운동의 시작으로 기록하고 있다. 레이크스는 1780년 글러스터 지역에 세 곳이나 일요일학교를 개설해서 운영했다. 그리고 3년 후에는 자기가 경영하는 잡지, 『글러스터 저널』(Glaucester Journal)에 3년 간 실시해 온 일요일학교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일요일 학교가 전국으로 확산되어 1785년에는 전국의 일요일 학교에 등록한 학생수가 25만을 헤아렸고, 1811년에는 전국 3,000여개의 일요일학교에 약 40만, 1821년에는 73만, 1831년 125만 명, 그리고 1851년에는 200만을 돌파했다.
1785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일요일학교 운동은 교회 안에 정착하면서 헌신적인 자원 교사들에 의해 주일학교운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동부로부터 서부로 향하는 개척시대에 미국의 초기 주일학교는 복음전도와 교회 개척의 방편으로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국민의 지적, 도덕적 교양을 진흥시켜 주일학교의 규모는 작지만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거대한 작은 학교 (the Big Little School)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주일학교운동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한 자원 교육지도자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음을 보게 된다. 예컨대, 일리노이주 원체스터의 한 시골 마을에 스티븐 팩슨(Steven Paxon)이란 평신도의 이야기가 있다. 어릴 때 소아마비로 지체장애인이 된 그는 어른이 되어 실직자가 되어 술주정뱅이 노릇하고 있던 중 어린 딸의 간곡한 권유에 못 이겨 주일학교에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세례 받고 나중에는 지역 주일학교연합회로부터 주일학교순회전도자로 임명받아 주일학교를 세우는 일에 헌신했다. 그는 일평생 말을 타고 다니면서 동네마다 주일학교를 세웠는데, 그가 세운 주일학교 수가 모두 1314개에, 주일학생 수가 83,000명이라는 엄청난 영향력을 후세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한국 교회의 주일학교 역사에 영향을 미친 한 분의 교회지도자가 있다. 주일학생 32000재적에 평균 주일학교 출석 10,000명이라는 대기록으로 1981년도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주일학교로 알려졌던 부산서부교회 주일학교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토록 규모가 제일 큰 주일학교로 발전하기에는 당시 그 교회를 담임하신 백영희 목사님의 리더십 때문이었다. 그 교회 주일학교를 방문했을 때 백목사님이 끼친 영향력은 주일학교 교사에게 그대로 지속되고 있었다. 주일 새벽 동네 주민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면서 자기 반 어린이들을 깨우는 교사들의 땀, 직장 퇴근 후 피곤함을 잊은 채 잃어버린 어린 양(영혼)을 찾아 갈급한 심정으로 심방에 나서는 교사들의 뜨거운 사랑, 자기 반 어린이 이름 하나하나를 불러 가면서 마치 겟세마네의 예수님처럼 하늘을 향한 교사들의 끊임없는 기도,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본문으로 삼고 한 주간 내내 씹고 되씹어 침을 발라 어린이들에게 먹이는 하나님의 말씀 등, 교시들의 열정어린 헌신에서 우리는 교회학교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교육지도자의영향력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Ⅲ. 교회의 리더십
교회 리더십의 본질은 교회가 지닌 몸 의 특성(유기체구조) 때문에 세속적인 기관(조직체)의 리더십 개념과 분명히 구별된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12:7}는 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예수그리스도께 속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홀로 그리스도인이 아닌 공동체적 존재이다. 따라서 교회의 리더십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의 본질적인 구조와 기능 때문에 특이하다.
교회는 신자 개개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각양 은사를 공유한 카리스마공동체이다. 각양 은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다는 사실은 곧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 모두가 몸을 섬길 잠재적 리더십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따서 교회의 리더십과 관련해서 교회가 행할 우선 과제는 신자들 각 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각양 은사를 자각케 하고, 그 은사를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사역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도전과 자극을 주는 교육환경 조성자로서의 책임을 잘 수행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교회의 지도자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을 닮는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고전11:1) 예수 그리스도를 모텔로 삼고 그분의 리더십을 철저히 연구해서 본받는 삶이 곧 교회리더십 형성의 지름길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시 대중들에게 감동을 준 지혜와 능력(영향력)을 구비한 탁월한 교육자였음을 복음서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마7:28-29, 13:51). 산상보훈에서, 그리고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에 감동을 받은 청중들이 예수님에 대해 그들의 서기관과 같지 않다.(매:29)고 반응할 정도로 당시 직업적인 종교 교사와는 차별성을 두었다. 공생애 사역의 마지막 만찬상에 둘러앉은 자리에서 예수님은 선생 의 진정한 리더십을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혹은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3315)
예수께서 교육자로서 존경받음은 그의 가르침에 있어서 말이나 기교보다는 삶 자체의 실천과 모범적 솔선수범에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육자상을 선한 목자 와 동일시하시면서 선한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요 10:30)이라고 자신의 사역이 지닌 교육적인 요소를 분명히 드러내셨다. 그는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시면서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무리들(마 9:36)을 보시고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 당시에 목자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직업적이고 맹목적인 종교 지도자는 많았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은 오히려 종교 (율법)라는 또 다른 무거운 멍에를 더 지워줄 뿐이었다.
당시 양들은 그들의 목자들이 걸어준 율법의 멍에, 종교의식과 교권이라는 굴레에 매여 있을 뿐이었고, 상처받고 기진한 상태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고통의 실존 현장에는 돌보아 줄 진정한 목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양들의 상태를 아셨고, 그래서 각각 그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을 불러내어 안전한 목장으로 인도하셨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아는 고로 그를 따랐던 것이다. 길을 가시다가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그를 필요로 하는 양(삭개오)의 이름을 친히 부르시면서 그의 욕구와 관심사를 들으시면서 그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녹19:1-10)
한번은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렀을 때 쇠사슬에 묶인 채로 공동묘지에 버려진 귀신들린 한 청년의 아우성을 예수님께서 들으셨다. 분명히 살아 숨쉬는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동네 사람들은 그를 미친 차로, 별 볼일 없는 자로 단정하고 격리시켜 죽음의 자리(묘지)에 내어 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젊은이의 아우성을 들으시고는 2천 마리의 돼지 떼를 회생시키기까지 하면서 한 인간의 인격성을 회복하셨다.(딛153-13)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성이 악령에 짓밟힌 비참성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치는 예수님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개인의 존재 가치를 온 천하에 비교하여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워 주시면서 생명 살리기, 생명 지키기, 생명 키우기에 앞장서는 교육자로서의 리더십을 친히 보여주셨다. 그는 울안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건강하고 안전한 양들보다 한 마리의 길 잃은 문제 투성이 양을 더 소중히 여기시는 교육자이셨다.(녹15:47)
인간의 연약성을 누구보다 잘 아셨다. 인간의 눈물을 보셨고, 죄악의 올무에 걸려 고통당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성을 아셨기에 예수께서는 그들의 친구가 되고자 친히 연약한 자의 모습으로 인간들을 찾아오셨고, 마지막에는 잃어버린 최후의 한 생명까지 찾아 구원과 온전한 샬롬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십자가의 쓴 잔을 몸소 받으신 것이다. 나아가 그의 부활하심을 통해 시한부 인생에게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삶의 자리까지 안내자가 될 것을 약속하셨다.
교회의 으뜸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진정 인간을 위해 목숨까지 회생하신 선한 목자요, 사랑으로 진리를 가르치신 말씀의 화신이요, 탁월한 교육자이셨다. 우리는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하나님의 교육을 몸소 실천하신 예수님의 교육방법에, 그리고 기도하는 영성을 지닌 교육자로서 그가 보여주신 리더십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진 윌크스(C. Gene Wilkers)는 그가 쓴『예수님의 리더십』에서 예수님의 리더십을 다음의 7가지 원리로 나누어 셀명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시길 원하셨다. 자신을 낮추라.
둘째, 예수님은 지위롤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다. 먼저 따르는 사람이 되라.
셋째, 예수님은 종이 되는 것은 큰 자가 되는 길임을 가르치셨다. 섬김의 위대함을 발견하라.
넷째,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으셨기 때문에 다를 사람들을 섬길 수 있었다. 위험(모험)을 감수하라.
다섯째,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섬기기 위해 상석(head-table)을 떠나셨다. 수건을 집어들라.
여섯째, 예수님은 리더로 부른 사림들과 책임과 권위를 나누셨다. 책임과 권위를 나누라.
일곱째, 예수님은 세계를 향한 비전을 수행해 나갈 팀을 조직하셨다. 팀 사역을 실천하라.
주틸라(Craig Jutila)는 예수님의 리더십에 기초해서 새들백 교회 어린이 사역을 성공적으혹 이끄는 리더십의 길을 네 단어의 첫 글자를 따서 Path(길)로 표현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네 단어로 표현되는 리더십의 길은 열정(Passion, 골 3:23), 즐거운 마음 자세(Attitude, 빌 4:4), 협동심(Teamwork, 전 4:9-12), 존경(Honor, 롬 12:30) 등이다.
영성지도자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을 따라 산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라는 물음을 제기하면서 영적 성장의 세 가지 전환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즉, 첫째 우리의 깊은 내면을 향한 발돋움, 둘째 다른 인간 동료들을 향한 발돋움, 셋째 하나님을 향한 발돋움 등이다. 나우웬의 세 가지 영적 생활의 전환 운동에 힌트를 얻어 필자는 교회의 리더십의 기본 요소를 다음의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해서 정리해본다. 첫째, 자기 자신을 이끌어가는 자기 관리의 리더십(Self leadeeship), 둘째, 인간관계의 리더십(Shared leadership과 Servant leadership), 셋째, 하나님을 향한 리더십(Visionary leadership) 등이다.
1. 자기 관리의 리더십(Se|f leadership)
누가복음 기자는 육체로 오신 예수님께서 신체적으로, 지적으로, 사회적으로 영적으로 균형 있게 건강한 성장을 보임으로써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모범을 보이셨다고 기록하고 있다.(녹2:52)
사도 바울은 교회 리더들의 자질과 관련해서 자기 관리의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교회의 지도자가 될 자격에 대해 책망할 것이 없으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할찌니라.(담전 3:2-5)고 기록하고 있다.
지도자의 영향력 있는 리더십의 첫째 요건은 자기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 육체의 건강은 물론이고 지성과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영적 건강이 요구된다. 우리는 성경말씀 속에서 자기 관리에 소홀히 함으로 비롯된 순간적 실패로 리더십의 약점을 보인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면, 아브라함의 경우 두려움 이라는 자기 감정 관리의 실수(창 12:10-20), 모세가 분노의 자기 감정을 관리 못한 실수(민 20:10-12), 엘리야의 일시적 감정 붕괴로 인한 믿음의 흔들림(왕상 19:1-14), 삼손의 정욕으로 인한 실패의 사건(삿 16장)이라든가 베드로의 실수(마 26:51-52) 등 지도자들의 자기 관리 실패로 어려움을 당한 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요셉, 다니엘, 에스더, 느헤미야, 바울 등의 자기 관리 리더십의 성공적인 업적의 열매들도 또한 찾아 볼 수 있다.
인류역사에 공적으로 훌륭한 리더들의 실패원인들을 조사해보면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 그 리더의 개인적인 자기 관리의 실패로 귀착됨을 보게 된다.
찰스 스펄전은 영적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주는 고전에서 다음과 같이 서두를 시작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잘 정돈해야 합니다. ....나의 서재를 채우거나 모임을 조직하거나 특별한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해도나자신 가꾸기를 소홀히 한다면 헛된 일입니다....복음의 선구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인격에 있어서 영적으로 고장이 나는 것은 자신에게나 그의 사역에나 매우 심각한 재앙입니다....다른 모든 면에서 유용한 사람이 작은 자기 결함으로 인해 심한 장애물이 되고, 심지어 전혀 쓸모없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리더십에 있어 첫 번째 중요한 요소는 신체적으로, 지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자기를 이끄는 자기 관리의 리더십 형성은 매우 중요하다.
2 인간관계의 리더십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리더십은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공동체성이 지닌 본질(koinonia)과 기능(diakonia) 측면에서 볼 때, 나눔과 섬김의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1) 나눔의 리더십(Shared leadership)
교회의 지도력은 정부와 기업체와 같은 조직형태와 본질상 엄격히 구별된다. 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웅답의 공동체로,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공적 기관과 다른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형성된 자원 집단(voluntary association)이다.
이같이 교회의 회원됨(membership)의 자발성은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의 리더십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자발성에 기초한 교회의 리더십은 속한 사람들의 필요(needs)가 첫째이고 사역 안에서의 성과는 둘째이다. 반면 세상기관(기업체)의 리더십은 업적달성이 첫째이고 구성원들의 필요는 둘째이다. 즉 전자(교회)의 지도력의 초점은 사람이 우선인 반면, 후자는 과업달성이 목적이다. 자발성에 기초한 교회의 리더십의 유형은 수평적 관계로서 여기서는 공유(sharing)와 상부상조가 강조되고 역할(role)보다는 관계(relation)에 역점을 두는 공유형 모델(shared leadership)이라면, 세상기관의 리더십의 유형은 상하의 수직관계 속에서 지도자(특정 전문인)의 권위와 통제를 중시하는 명령형 모델이다. 교회의 리더십은 결과보다 과정(process)에 더 중요시한다면 세상기관의 리더십은 과정보다 결과(product)를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발적 모임의 단체인 교회의 리더십의 독특성은 모든 구성원들이 지닌 각양 은사를 함께 나누는 민주적 리더십의 형태를 취하게 됨이 보다 성경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 성경의 예를 든다면 광야 이스라엘공동체 속에서 지도자 모세가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그의 지도력을 분담케 한 일(출 18:13-26), 초기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세워 구제, 봉사의 사역을 담당케 한 일(행 6:2-4)등 이다.
2) 섬김의 지도성(Sewant |eadership)
마태복음 20장에서 예수님은 교회의 리더십이 지닌 또 다흔 특징적 요소를 가르치고 있다.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두 형제가 세속적인 지도자의 신분과 권력을 갈망하여 저들의 모친으로 하여금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의 화, 우 권좌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분명히 세속적 관점에서 최고의 지도자가 되길 꿈꾸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의 응답은 내 잔을 너희가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히는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내 아버지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마20:23)였다. 이 말씀은 교회의 모든 지도력의 원천은 세상적 권위로 주어질 수 없고 오직 신적 권위에 속한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 문제로 인해 다른 제자들의 마음이 상했다. 드디어 그들 간의 내적 갈등이 밖으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목격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도자의 기본 정신을 소개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민족들을 통치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도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20:2547) 여기에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지도자직이 세속적인 지도자의 정신과는 근본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세상 지도자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해서 행사(명령)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력의 정신은 교회에서는 부적합함을 지적했고, 놀랍게도 지도자상을 종(servant)으로 묘사했다. 교회의 지도자는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혹은 가운데에서 섬기는 자로 그리고 주관자가 아니라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은 주인 앞에서 자기가 주장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회생도 감수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종의 리더십은 섬김의 사역(눅 22:36)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회는 섬겨야 할 몸이지 다스리는 기관이 아니다. 교회의 다스림(치리)이란 어디까지나 종으로 섬기는 일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는 무작정 교인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발을 씻어 주는 섬김과 봉사를 통해 교회 전체가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섬김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추진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속한 모든 지체들이 서로 의존하고 서로 돌보는 종된 지도자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종된 교회의 리더십은 밀어 붙이기 보다 이끌어주는 지도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명령과 권위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섬김을 통해 감동과 감화로 인도한다. 다른 사람을 조종하거나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의욕을 불러 일으켜 섬기게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종으로서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보는 비전을 가지고 다른 사림들과 이 비전을 함께 나누며 그래서 모두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계획하고 함께 실천하며 헌신하도록 섬기는 자이다.
3 하나님을 향한 리더십(Visionary leadership)
하나님을 향한 교회의 리더십 형성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비전이다.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비전을 전혀 보지 못하고 맹목적인 사역만을 수행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비전을 보지만 자기 것으로 추구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비전을 보고 자기 것으로 추구하면서 성취감을 맛보는 지도자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란 비전을 보고 자기 것으로 성취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비전을 보게 하고 성취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성경의 지도자상은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자요, 비전에 사로잡힌 자요, 비전에 이끌림을 받고 있는 자이다. 그 비전은 개인의 비전으로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가 속한 공동체와 사역을 위해 그가 본 하나님의 비전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면서 구성원들의 가슴과 마음 속에 저들 자신의 비전으로 뿌리내리게 하고, 그것이 저들 자신의 비전으로 자라가게 한다.
교회의 지도자는 마땅히 하나님을 향한 비전을 보아야 한다. 모세는 가시떨기나무의 꺼지지 않는 불을 보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하나님의 비전 안으로 불러들였고 그것이 모세 자신의 비전이 되게 하셨다(출3:6-10).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출애굽의 비전은 이때로부터 모세의 비전이 되었다. 우리는 또한 출애굽의 역사 속에서 모세를 통해 보여준 하나님의 가나안 비전을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도 보여 주심을 확인하게 된다(민 13:17-1430). 여호수아와 갈렙은 함께 동행했던 다른 10 정탐꾼이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가능한 비전을 그들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보게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것이라(민14:8)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비전은 결국 가나안의 꿈을 이루게 했고, 이스라엘 민족 내일의 새 역사를 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 지도자의 리더십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비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 비전을 현실화하는 교량이다. 이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동일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비전을 향한 철저한 헌신이 요구된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을 다시 생각해본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서 그가 가진 비전은 첫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게 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의 나라 가 그분이 간직한 꿈이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의 구현을 위한 예수님의 중심사역은 제자를 육성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셋째 비전은 십자가 지심을 통해서 지상에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쓰실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다. 예수님의 비전은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의 사역 속에서 지상에서 온전히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전을 쫓아 푯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의 비전을 초대교회지도자 사도 바울은 그의 교회론에 관련된 서신에서 제시했다.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사람’을 온전히 세우는 일(그리스도께 속한 인간 형성과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역자 육성)이요, 공동체의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었다(엡 4:32).
이 목표 달성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교육지도자의 할 일은 교회에 속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철저히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일 것이다(골 1:28-29).
구성원들을 움직여서 참여하도록 끌어내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비전의 힘이다. 비전은 구성원들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준다. 따라서 하나님의 비전은 교회리더십의 핵심요소이다.
Ⅳ. 교회교육지도자의 리더십
교육은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교육사역을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교회의 교육기관으로 교회학교가 있다. 교회학교의 교육사역을 위해 담임목사, 교육목사, 교육전도사, 부장, 부감, 교사 등 교육지도자들이 있다. 이들 교육지도자들의 리더십 계발과 지원 은 교회의 조직 체계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유지되어야 할 하부조직이다. 교회교육지도자들의 리더십은 앞장에서 살핀 교회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리더십의 필수요소들인 1. 자기관리의 리더십, 2. 인간관계의 리더십, 3. 하나님을 향한 리더십(비전)이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지도자는 사람들을 이끌도록 하나님께 부름 받은 자요,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이끄는 자요, 리더십을 위해 기능적 능력을 발휘하는 자라는 조지 바나의 정의에서 볼 때, 교회교육의 지도자는 소명(비전)과 성품(사량)과 능력(전문성)의 세 가지 요소가 리더십의 필수 요건이 된다.
헨리 나우웬은 사역(ministry)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섬김으로 설명하면서 사역자를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란 명쾌한 정의를 내렸다. 나우웬에 의하면, 교육지도자가 (1)예수님의 치유하심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hea1ing reminder), (2)예수님의 세워주심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sustaining reminder), (3)예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guiding reminder)으로 그의 리더십이 평가받을 수 있다면 그는 교육자로 존경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존경받는 교육자로 세움을 입기 위해 교육자가 날마다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살기를 나우웬은 권한다.
교회의 신앙교육은 교육신학적 측면에서 볼 때 교사만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교육과 선교란 엄격히 말해서 모두 하나님(성령)께 속한 활동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육활동에 인간의 참여가 배제되지 않고 책임 있는 응답을 필요로 한다(골1:29). 따라서 교회 교육의 성격은 기독교복음을 이해하도록 풀어주고 복음의 의미를 촉진시킴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과정을 돕는다. 따라서 교육지도자는 하나님(성령)이 인간을 교육하는 원초적 교사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성령의 교육하심이 전제된다. 즉 진리의 교사이신 성령께서 가르침의 활동 속에 교육의 효율성이 드러나도록 인격적으로 임재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사질의 인식이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은 일반 교육의 학습이론과 구별되는 독자적 기초이론을 갖는다. 이 기초이론이 지닌 독특한 영역이란 계시에 기초한 영적 차원을 의미한다. 교회학교 교육지도자는 직책의 기능 수행에 있어서 두 가지 차원, 즉 영적 차원과 전문성의 차원 을 인정하고, 이 둘 중 어느 한 편에 편중됨이 없이 상호 균형 있게 지도력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영적 차원의 리더십 형성이 크게 요구된다.
교회학교에서 가르칠 내용은 하나님이다. 학생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친다는 말은 엄격히 따져서 모순된 말이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인격적 실체인 하나님이 국어나 산수를 가르치듯 가르쳐질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교육에 있어서 하나님을 가르친다는 말은 단순한 종교적 교리나 성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하나님에 관해서 가르치는 지식 전달 그 이상의 일이다. 신(神)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 형성은 인간의 합리적 지식의 눈(知眼)이 아니고 신앙의 눈(靈眼)이 열려야 가능한데, 이를 가능케 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인위적 가르침의 기교에 의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의 드러내심(자기 계시)의 행위(성령의 역사)의 결과에서 비롯된다(눅 24:30-32). 따라서 성서의 하나님은 인간의 체계적인 논리 혹은 실증적인 관찰의 결과나 도덕적인 행위의 결과에서 알려지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인격 속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찾으시는 사랑 이 우선적으로 경험되어져야 한다. 따서 교회의 신앙교육에 있어서 진리의 전달은 교재 내용의 단순한 가르침에 우선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경험한 사람들 간의 상호소통(communication between)을 통한 관계의 언어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수육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해석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의 언어로서는 부족하고, 구체적으로 경험되고 믿음으로 고백되어진 사랑의 언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교육지도자의 경우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경험과 영적 교체(기도)라는 영성 훈련의 뒷받침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영성과 관련해서 바른 관계의 형성과 유지가 지속적으로 요구된다. 하나님은 교육지도자를 관계들(하나님, 인간, 자연 생태, 역사와의 관계) 안으로 부르신다. 교육지도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교사와 학습자들과의 관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적인 자아와의 바른 관계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부르셨나? ,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예수님을 기억나게 하는 존재의 모습인가?, 나는 어떤 교육관을 필요로 하는가? 등의 질문에 올바르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바론 영성의 회복이 교회교육지도자의 리더십의 열쇠요 지름길임을 암시해준다.
둘째로, 교육 전문가로서의 리더십 형성이다.
우선 전문성과 관련된 기초지식을 중심으로 교육지도자를 위한 교육과정을 마련해서 관련 자료(책)들을 제공하고 통신 강좌 혹은 강습회를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개교회가 적극적으후 지원해 주어야 한다.
예컨대, 가르치는 학생을 일i}야 하고(교육의 심리적 기초 지식), 학생이 몸담고 생활하는 가정, 사회의 분위기 파악(교육의 사회학적 기초 지식), 가르칠 내용에 대한 올바른 이해(교육의 신학적 기초지식), 성경 내용에 대한 전문지식, 교회의 전통과 예전, 그리고 가르침의 기본 원리(교수학습 과정 이론)와 지도방법과 관련된 지식(상담학, 공과지도방법, 평가) 등에 전문성을 개발하는 훈련의 기회를 제공해서, 개교회가 지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교회학교 교사의 대부분이 기독교적 학습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기술과 능력의 뒷받침이 크게 미흡한 비전문인 교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현 한국교회의 실태에 비추어볼 때, 교사들의 전문성 개발은 21세기 영성 훈련 못지 않게 시급한 교회교육의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요약해서 교회교육의 지도자가 교육전문가로서 감당해야 할 리더십에 대해 다음 여덟 가지 역할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교육지도자는 교회가 바른 교육관을 갖도록 도전해야 한다.
둘째, 교육지도자는 교회 내 교육위원회에 대해 확고한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셋째, 교육지도자는 혁신적인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담임목사의 사역을 지원해야 한다.
넷째, 교육지도자는 교회의 모든 사역 프로그램들의 교육적 구심점을 갖도록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다섯째, 교육지도자는 교회교육프로그램의 교육적 흐름을 통합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여섯째, 교육지도자는 교회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나 사역을 소개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일곱째, 교육지도자는 평신도 지도자들을 계속해서 훈련시켜야한다.
여덟째, 교육지도자는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한 영성을 계발야한다.
V. 맺는 말
교회교육의 리더십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적 모범을 보일 때 교육자본연의 존경스런 권위를 지니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모범을 보일 수 있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바울 사도의 대답은 곧 개혁교회의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중심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상현 박사는 그의 연구논문 한경직 목사의 인격과 삶에서 한국교회사에 크게 영향력을 끼친 한 목사의 인격과 삶의 특징을 사랑(예수사랑, 나라사랑), 투명성, 겸손, 회개의 자세 등 네 가지로 요약하면서 이 같은 그의 인격형성은 그분이 의지적으로 노력한 결과라기보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의 감격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바른 영성이 곧 존경받는 교육자의 인격의 근간이 됨을 암시해준다.
교회에서 진리를 가르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한순간에 우리 심령에 겸손을 가르치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또한 믿음의 신비와 하나님에 대해 수십 년 알아낸 것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시는 분도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는 일이야말로 인격의 온전함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존경받는 교육자로 남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으로 우리의 존재 자체를 바로 세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매일의 연습은 주님의 임재 기운데 사는 일이다. 우리의 욕망과 생각과 행동들을 주님의 임재 가운데초점 맞추고 살아갈 때,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님을 기억하게 해줄 것이다. 이것은 바로 기도하는 영적 삶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성육화된 말씀 (Incarnated Word)이다. 기독교진리는 말이나 기교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삶 자체의 실천과 모범을 보여줄 때 전달된다. 수육(受肉)의 복음이 회중 속에 복음의 수육으로 인격화되는 그리스도의 몸 의 활성화를 위해 교회교육 지도자에게는 사랑(영성)과 진리(전문지식과 기술)의 조화로운, 균형 있는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