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주차장은 전시관ㄱㅖ로 차가 들어가지 못한다.
조총무님은 트럭을 끌고 가고 우리 보훈관광은 7시 반을 지나 출발한다.
문흥동으로 나와 고서에서 남면을 지난다. 오랜만에 뵌 고산자님과의 대화는 자주 끊긴다.
작년 이맘 때 해찬솔 번개산행에 참여한 후로 1년 동안 이 산악회에 많이 왔다.
이제 사람들이 많이 익숙해 지기도 했다. 익숙한 것을 항상 처음처럼 새롭게 하라는
말은 어디에서 읽었는지 기억에 없다.
차 안에서 동양 회장이 무돌길 개발에 관여하신(?) 고산자님께 말씀을 권하시는데 사양하신다.
인안분교 앞에서 차는 무등산쪽으로 오른다.
고흥에서 살 때 전남교육연수원을 갈때 꼬불꼬불한 길을 갈 때 지나던 곳이다.
무성마을인가 정자와 고목이 있는 길 가에 우릴 내려준다.
도리포가 차에서 소주 한병을 갖다준다.
그러고 보니 난 전화기를 챙기지 않았다.
전화기 하나 안 챙겼는데 사진도 못 찍고 연락도 끊긴다.
차라리 잘 됐다. 사진 찍는다 헛짓거리 안하고 걷고 눈으로 보는데만 집중하는 것도 좋겠다.
9주년 창립기념 프랑을 앞에 두고 기념 사진을 찍고 아스팔트를 걷기 시작한다.
나무 없는 도로를 걸으면 뜨거울 것이 염려되는데 다행이도 구름이 많고 바람도 조금 있다.
그 힘센 무더위도 벌써 지난 일이 되었다.
길은 오른쪽으로 굽어져 논밭 사이를 지난다.
무돌길 나무판 안내가 갈림길마다 보인다.
다시 마을로 내려가다 논 사이를 지난다. 난 도리포 구름나그네님과 선두다.
뒤돌아보니 일행이 길게 줄지어 오고 있다. 먼 모후산 삼각 봉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
병이다.
여수님과 회장님이 천천히 가라고 하신다. 난 얼른 도착하면 술 마실 일 외에 혼자라도 안양산에
얼른 다녀 올 욕심으로 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30분쯤 걸었을까, 민가를 지나 건너편 솔밭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리를 건넌다.
뒷쪽에서 한잔 하고 가자는 말에 모두 멈춘다. 레이서 대장이 막걸리를 주신다.
고산자님과 처음 뵌 분이 술 이야기를 나누신다. 듣다보니 막걸리 학교 정구에게
배우고 온 종필이 친구 영석이 이야기다. 여수님이 가져 오신 술도 마신다.
못 참고 도리포의 전화기를 빼앗아 사진을 몇 번 찍는다.
동양 회장님이 날 찍어 주신다.
다시 챙기고 나니 많은 이들이 앞서 가며 긴 행렬을 이룬다.
마을 뒷길을 따라 어느 수도원이라고 써진 옛대문만 남은(문패엔 김양현) 동네 앞에 멈춘다.
시무지기 폭포가는 길이라고 검은 안내판이 서 있다.
청죽우님과 도리포가 시무지기 갔다올까 제안을 한다.
몇 명은 그냥 가자는데 결국 셋이서 시멘트길을 오른다.
시멘트 오르막에서의 두 사람의 걸음은 빠르다. 부지런히 쫒아가도 좁히지 못한다.
다행이 숲으로 접어들자 길은 오히려 완만하다. 금방 물소리도 들린다.
난 광주에서의 많은 비를 뉴스에서만 보았는데 비가 많이 오긴 한 모양이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한 사람이 산책 차림으로 내려오더니 이어 몇 사람이 함께 내려온다.
가족인가 보다. 이제 계곡을 왼쪽으로 두고 물소리를 들으며 완만한 등로를 오른다.
금방 물소리가 커지니 폭포에 이른 모양이다.
꼬막재에서 내려와 보기만 하고 다시 올랐던 길이다.
한 남녀가 사진을 찍고 떠나고 한 사나이는 건너편에서 간식을 먹고 있다.
난 물 가까이로 가 머리를 들이밀고 나온다.
도리포가 사진을 찍는데 나와 내가 찍어준다고 빼앗는다.
다시 물 아래로 가 아에 작은 물길 속에 선다.
차가운 물방울이 무겁게 머릴 때린다. 금방 신발 속으로 물이 찬다.
폭포에 들려면 최소한 신발은 벗어야겠다.
온몸에 물을 적시고 나와 소주병을 꺼낸다. 청죽우는 조금만 마시고 도리포가 얼려 온
작은 소주병 두개에 내가 가져 온 소주를 거의 마신다.
등산 컵에 두 잔을 마시니 취기가 벌써 오른다. 폭포를 보고 다시 젖은 몸으로 내려온다.
올랐던 길을 다리건너 도원마을 쪽이다. 올랐던 길보다 등로는 정비가 덜 되어있다.
도원마을 탐방안내소를 지나니 11시 반을 넘는다. 일행은 거의 휴양림에 도착한 모양이다.
저수지 아래 돼지축사로 들어갔다 다시 나와 저수지 둑을 걷는다.
저수지를 보며 휴양림으로 오르는 길을 힘들게 올라간다.
둘의 걸음은 늦춰질 줄 모른다. 난 죽자사자 따라간다.
나무 사이 계곡에서 여럿의 소리가 들린다. 철망이 막혀 할 수 없이 입구까지 올라가 다시
내려간다. 모두 음식을 먹고 있다.
고산자님과 동백신사님이 부르시는데 난 새상으로 앉겠다고 무대 앞
도리포와 청죽우가 있는 테이블로 간다. 여수님과 동양회장이 여러번 술을 주신다.
도리포도 준다. 난 어느 순간 에 많이 취했다. 더 마시면 작년 처음 만남 때처럼
인사불성이 될까 두렵다. 버스 안에 신발 가방과 샌달이 걱정되어 운행이사께 부탁을 한다.
신이사는 책임 못진다고 불편해 한다. 내 옆에 있는 누구에게 말을 했는지 난 배낭을 매고 스틱을 다시 편다.
예전에 몇 번 이쪽에서 안양산을 올랐을 거다. 그런데 그 땐 입구에서 왼쪽으로 바로 접어든 듯한데
거기까지 올라가기가 싫어 바로 산길 같은 곳으로 들어선다.
어느 순간 길이 끊겼다. 왼쪽으로 길을 잡고 잡목숲을 헤친다.
길은 나오지 않는다. 술 추한 몸은 겁이 없는지 산딸기나무를 잡기도 한다.
반팔 팔뚝과 윗팔이 긁힌다.어느 낙엽 사이를 뛰어 내리는데 몸이 비틀리며 스틱이 부러진다.
그 동안 오랫동안 날 도와주던 스틱 하난 생명이 다했다.
남은 스틱을 접어 세개를 한 손에 쥐고 풀을 헤친다.
얼마나 헤맸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큰 참나무들이 보이더니 돌을 차근차근 쌓은 등산로가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숲이 벗어나 풀밭이 나오니 정상이 멀지 않았을거다.
하얀 구름에 덮여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물을 한모금 마시며 길에 앉았다가 정상을 포기하고 내려온다.
겁쟁이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는데 아스팔트가 나타난다. 고개 위다. 휴양림으로 내려가 빨간 버스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총무님이 타고 온 트럭도 없다. 산을 오를 때 얼마간은 소리가 들렸었는데.
신발집이나 의자 앞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넣어둔 간식 등이 부끄럽다.
도로 옆의 게시판엔 버스 시간표도 보이지 않는다.
수만리 3구 입구까지 걸어보자. 건너편 큰재까지는 자신이 없다. 아스팔트는 걸어도 걸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길 왼편으로 걷기길에 수입품 가마니로 깔아두어 조금은 편하다.
수없이 지나는 차를 향해 손을 들어볼까 고민한다. 고급 승용차보다는 차라리 트럭을 향해 손을 들어볼까?
시무지기에서의 물벼락은 다 말랐지만 난 술에 찌들고 땀에 절어 다른 차의 시트를 오염시킬 수는 없다.
얼마나 걸었는지 구비지며 국동으로 내려가는 삼거리 앞이다. 정류장 의자에 털썩 주저 앉는다.
물을 마시며 마을에서 내려오는 개울에 가 얼굴을 씻고 온다. 217-1 노란 화순교통 버스 한대가 이서쪽으로 간다.
차는 수없이 오간다. 저쪽에서 나이 든 남녀가 걸어온다.
차 시각을 물으니 5시 10분 차라고 한다. 20분 가까이 더 기다려야 한다.
5시 8분에 아까 지났던 버스가 온다. 반갑다. 광주로 가는 차다.
학동삼거리에서 내려 45번을 탄다. 술은 아직도 덜 깼는데 집에는 얌전히 들어간다.
바보는 고기반찬을 해 두었다. 조성에서 가져 온 술을 더 마신다.
(사진은 내가 찍은 것도 있지만 도리포가 보내준 것과 카페의 다른 분이 찍은 것을 저장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