偶吟(우음)―宋翰弼(송한필)
花開昨日雨(화개작일우)
花落今朝風(화락금조풍)
어제는 내리는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은 아침 바람에 그 꽃이 지네.
可憐一春事(가련일춘사)
往來風雨中(왕래풍우중)
가여워라 이 봄의 일들
바람과 비속에서 가고 또 오누나.
송한필의 아버지 송사련이 안당(安瑭)의 서매(庶妹)인 송감정(宋甘丁)의 아들이었으므로 법의 규정대로
얼손(孽孫)에 해당되어 신분상의 제약을 크게 받다가 아버지대부터 양민 노릇을 하였다.
그의 형 송익필은 이이(李珥)를 시종 옹호하였는데, 소장사류들은 이이가 동서분쟁에 중립적 태도를
취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신진사류를 옹호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송익필을 심의겸(沈義謙)의 당(黨)으로 지칭하고, 이이에 대한 함원(含怨)을 동인(東人)들이
송익필에게 전가하여 1589년(선조 22)에 일족을 노예로 환천(還賤)시켰다.
그리하여 일족이 유리분산되는 비극을 당하였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 길이 없지만,
그는 형 송익필과 함께 선조 때의 성리학자·문장가로 이름이 있었다. 이이는 성리(性理)의 학을
토론할 만한 사람은 익필형제뿐이라고 하였다.
박인로(朴仁老)·김지백(金知白)·최대겸(崔大謙)·박신립(朴信立)·조호인(曺好仁)·박준민(朴俊民)·
김상문(金尙文) 등과 교유하였다. 시 32수와 잡저가 형인 송익필의
『구봉집(龜峯集)』에 부록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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