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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느 사실은 예수는 분명 기원 29년에서 33년까지 사신 분이고, 그가 예언한 기원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은 성취되었다는 것과, 예수는 분명 노아의 때와 같은 세계적인 멸망을 예루살레 멸망에 견주어 언급하셨다는 점입니다. - 제레미 |
제레미님이 예수의 생애와 관련해서 이런 주장을 하신 것은 아마도 워치타워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드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 통-2 제390-391면 예수 그리스도 ***
출생 시기, 봉사 기간 예수는 기원전 2년 에다님월(9-10월)에 출생하였을 것이며, 기원 29년 같은 시기에 침례를 받고, 기원 33년 봄인 니산월(3-4월) 14일 금요일 오후 3시경에 죽으셨다. 이 연대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 "서른살쯤"에 침례를 받으셨다는 말을 문자적으로 받아드리는 워치타워는 예수의 탄생 연도를 기원전 2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상 성경의 묘사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예수의 탄생 연도에 대해 알려주는 성경의 묘사는 크게 두가지 입니다.
(누가 2:1-2) ...그런데 그 무렵,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포고령을 내려 등록하게 하였다. 2 (이 첫 번째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이었을 때 한 것이었다.)
(마태 2:1) ...예수께서 헤롯 왕 시대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후에, 보라! 동쪽으로부터 점성술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첫번째, 누가 2:1,2은 예수의 탄생에 대해 결정적인 증거를 알려줍니다.
아우구스투스의 호구조사 포고령과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의 통치 기간입입니다.
아우구스투스(재임:기원전 27년~기원 14년)는 기원 20년에 호구조사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14년에 한 번씩 실시했다고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기원 6년과 기원전 8년 호구조사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퀴리니우스는 시리아 총독으로 기원 6년에 임명되었습니다.
결국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는 기원 6년에 태어난 것입니다.
표.1 시리아 총독(기원전 23년~기원 9년)
연도 | 총독 |
기원전 23-13년 | M. Agrippa |
기원전 10년 | M. Titius |
기원전 9-6년 | S. Sentius Saturninus |
기원전 6-4년 | Quintilius (or Quinctilius) Varus |
기원전 1년-기원 4년 | Gaius Caesar |
기원 4-5년 | Volusius Saturninus |
기원 6-9년 | Sulpicius Quirinius - 인구조사를 실시했다는 그 퀴리니우스(구레뇨) |
두번째 마태 2:1은 예수가 헤롯 왕 시대에 태어났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나 헤롯대왕은 기원전 4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탄생 연도는 마태에 따르면, 기원전 4년이 되고,
누가에 따르면, 기원 6년이 됩니다.
예수의 탄생 연도는 성경에 따르면 10년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따라서 예수의 탄생 연도는 기원전 4년~기원 6년까지 다양한 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워치타워는 너무나도 일방적으로 기원전 2년을 예수의 탄생 연도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2년설은 하나의 가설일 뿐 절대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의 기록과 너무나도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도를 기준으로 예수의 예언을 짜맞추고 그것을 2천년 이후에 일에 적용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지나친 비약입니다.
우리는 워치타워에 한 번 속았던 사람들입니다.
다시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한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증명되지 않은 가설을 근거로 한 추론은 오류에 불과하다."
다음은 위에 글을 이해하는 도움을 될 내용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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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톨릭 백과사전 중에서.
‘기원후’의 의미로 사용되는 AD는 예수님 탄생 이후를 뜻한다. AD는 ‘Anno Domini’의 약자로 ‘주님의 해’라는 뜻이다. 이렇듯 AD는 서력기원(서기)의 출발점이다. 6세기 중엽,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1세는 로마의 주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에게 교회달력을 만들 것을 요청했다. 매년 바뀌는 부활절 날짜를 간단히 계산하기 위해서였다.
디오니시우스는 이미 사용되고 있던 ‘로마 달력’을 모델로 ‘교회 달력’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로마력 754년을 AD 1년으로 삼았다. 다시 말해 로마력 754년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가 사용했던 AD 원문은 ‘Anno Domini nostri jesu christi’였다. 직역하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해’다.
이후 로마력이 쇠퇴하고 교회력이 보편달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AD 원년은 예수님 탄생연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다 헤로데 대왕 사망연도가 로마력 750년(기원전 4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마태오복음 2장에는 헤로데 생존 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되자 754년을 탄생연도로 잡은 디오니시우스의 계산은 착오였음이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시작한 AD는 그대로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탄생연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기원전 4년 이전인 것은 분명하다. 이 해에 헤로데 대왕이 죽었기 때문이다. 루카복음에도 예수님 탄생에 대한 정보가 있다.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호적등록을 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첫 번째 호적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 실시되었다(루카 2,1-2).
루카는 이 기간 중에 예수님께서 탄생했다고 기록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기원전 27년 황제가 되었다. 그는 매 14년마다 인구조사를 했는데 AD20년 실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AD 6년과 BC 8년에도 인구조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퀴리니우스는 AD 6년부터 시리아 총독으로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탄생은 기원후 6년이 된다. 루카복음 작가의 정보가 정확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복음작가는 탄생연도 보다는 ‘태어나신 장소’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한편 ‘기원전’을 의미하는 용어는 영어의 BC(Before christ)로 ‘그리스도 이전’이란 의미다. 이 용어는 17세기 영국 과학자들 사이에서 사용되다가 정식용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12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일 가톨릭마산 14면]
[2] 위키백과 예수 중에서
'기원후'의 의미로 사용하는 'A.D.(Anno Domini)'는 예수의 출생 이후의 시대를 의미한다. B.C.와 A.D.의 구분은 6세기경의 신학자 디오뉘시우스 엑시구우스(Dionysius Exiguus)가 부활절의 날짜를 계산하면서 사용한 것이 후에 그레고리력과 율리우스력에 반영된 것이다. 이 때에 계산된 예수 탄생 연대의 기준이 오늘날까지 쓰인다. 하지만, 예수가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예수는 갈릴리라는 시골의 민중이었으므로 예수의 출생에 관한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드물다. 오늘날에는 복음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예수의 출생일과 태어난 장소를 미루어 짐작하고 있으며, 대체로 역사상의 예수는 기원전 약 2년 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마태복음서(2장 1~16절)에는 예수가 태어난 해에 하늘에 '동방의 별'이 나타나고 헤로데 왕이 2세 미만의 갓난 사내아이들을 살해하도록 명을 내려 그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하는 내용이, 누가복음서(2장 1~2절)에는 아우구스투스가 호적을 명하여 요셉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을 찾는 내용이 실려있다.
누가 복음서에 언급된 인구조사는 기원전 2년 경에 이루어졌다는 견해와 기원후 6년에 이루어졌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에 따라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인구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시리아 지방의 총독이 퀴리니우스(퀴리뇨, Quirinius)였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다.(누가 2장 1~7절) 퀴리니우스는 서기 6년에서 서기 9년까지 총독으로 있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1764년에 로마에서 발견된 비문에 기원전의 퀴리니우스 총독을 언급한 것을 근거로 이미 기원전 2년 경부터 총독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견해도 있다.[1][2] 따라서 예수는 기원전 2년 경에 출생한 것으로 대체적으로 받아들여 진다.
'동방의 별'은 이후 '베들레헴의 별'로 알려졌다.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를 800년 주기로 목성과 토성이 분점에 대해 같은 위치에 놓이는 현상과 연관된 것으로 주장하였고, 이로부터 그 시기를 기원전 7년으로 추측하였다.[3]
한편, 복음서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책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교회의 기록이므로 당연히 복음서의 내용들이 정확히 일치하는 연대를 찾기는 어려우며, 예수의 탄생설화를 상징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설화에 나오는 유아학살과 이집트 피난전승은 유대 기독교인인 마태와 마태교회 신자들이 예수가 자신들에게 익숙한 인물인 모세와 같은 권위를 가진 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썼다고 보는 성서학자도 극소수 존재한다.(모세유형론)[4]
[3] 예수의 탄생에 관한 질문
마태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헤롯대왕이 죽기 직전(BC 4년이전)에 탄생한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서에 따 르면 그때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의 총독 재임시절(AD 6~7년)이라고 기록 (누가복음 2장 2절) 되어 있습니다.
첫댓글 파수대든 통찰이든 이 부분은 정말 황급히 얼렁뚱땅 얼버무리곤 하죠..
얼버무리는 사람도 문제지만..얼버무린다고...넘어가는 대상이라고 책임이 없는건 아니겠죠..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3:1 티베리우스 통치 제15년, 3:23의 "서른 살쯤"의 언급이 빠졌군요. 이 부분에 관한 설명도 부탁드립니다.
"서른 살쯤"이라는 표현을 워치타워처럼 30살로 받아드리시는지,
아니면 25~35살까지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받아드리시는지 알고 싶네요.
위글에서의 블루님 질문에 다시 강조하여 지근미래의 말세론 증명에 의문 드렸습니다만..답변이 없으셔 다시 이 댓글타래서 여쭙니다.
그 부분은 어디까지나 제레미님만의... [육감]인걸로 이해하면 되는거 맞죠?
탈 증인들 상당수는
반사회성의 종말충으로 살아가는일에서 확실하게 탈출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다시 그런 환상과 허구의 진리론으로 돌아간다는건 있을수없습니다.
배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누가3:1~3절에 보면 "티베리우스 15년에 요한이 전파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티베리우스는 언제 황제가 되었습니까? 티베리우스는 기원 14년 9월15일에 황제가 됩니다. 그러니까 티베리우스 15년은 기원28년 후반부터 기원29년 8~9월까지 입니다. 그때 요한이나 예수는 30세가 되었습니다. 율법시대에는 30세가 되어야 성전에서 일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4:1~3) 따라서 역으로 계산하면 예수는 기원전 2년 에다님월 (8~9월)에 출생하였습니다.
지혜님은 참 순간순간 여호와의 증인 연대기를 떠올리게 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