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의 역사 3】
바니치는 사람들이 많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 특허국 맞은 편 빌딩 꼭대기에서 낙하한다는,예전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위험한 실험을 계획했다.
1914년 6월 3일 군대 장교와 특허국 관리들을 포함한 군중이 모여들었고,
바니치는 15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 지붕 가장자리에 균형을 잡고 선 다음 뛰어내렸다.
그의 낙하 실험은 완벽했다.
바니치는 군중 앞에서 낙하산을 능숙하게 조종하며 안전하게 착지했다.
바니치의 공개 실험은 성공으로 끝났고 사람들은 흥분했다.
바니치는 특허를 신청했고(1914년 8월 25일),군대에서는 즉각 관심을 보였다.
당시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무렵이라,고장난 비행기에서 조종사를 안전하게 탈출시킬 수 있는 도구는 우선 순위가 높았다.
그러자 바니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특허를 미국 항공 진흥 협회에 기증했고,
막 만들어진 미국 육군 통신대는 조종사에게 실용적이도록 이 디자인을 개선했다.
낙하산은 곧 공군 장교의 필수품이 되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많은 기업가와 발명가들은 돈을 벌려고 애썼지만 바니치는 자신의 공헌에 대해 사람들의 인정이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의 발명품이 항공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전쟁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헌 중 하나였는데도 말이다.
전쟁이 끝나고 바니치는 지금의 슬로바키아 지역인 고향으로 돌아가 1941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같은 해 2차 세계대전에서는 최초로 낙하산 부대가 만들어졌다.
낙하산은 침투 불가능 지역에 보병들을 정확하게 투입시키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1970년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공항에 낙하산을 완성시킨 사람 바니치의 기념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