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금 모기 한 마리를 처치했다. 인간의 침소를 허락 없이 들어왔을 뿐 아니라 언감생심 내 식구들의 피를 넘보기까지 한 죄이다. 가뜩이나 더위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는데 느닷없이 웽~ 하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공습경보가 울렸는데 잠이 올 리가 있겠는가. 후다닥 일어나서 불을 켜고 방문을 닫았다. 퇴로는 이미 차단되었으니 제 마우리 날썐돌이라 하여도 내 손아귀를 벗어날 수는 없다. 적을 섬멸하지 않고는 전투를 끝내지 않을 작정이니까.
눈을 희번덕거리고 사방을 노려보며 탐색전을 펼친다. 커튼 언저리에 숨어 있는 그놈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어 신문지를 몰아 쥐고 강타를 날려 본다. 일은 간단히 끝이 났다. 이런 때의 나는 누구보다 비정하다. 두 손바닥을 맞부딪치는 일만으로도 생명 하나를 거뜬히 해치운다.
다리 하나가 결딴난 채 방바닥에 뻗어 있는 운 나쁜 자객刺客을 들여다본다. 혈흔을 남기지 않은 걸 보면 이승에 와서 식사다운 식사도 못 해 본, 불행한 목숨이었던가 보다. 창조든 진화든, 순서로 보면 곤충이 인간보다 우선하므로 필시 내 생명보다 오래 이어져 왔음이 분명한 한 오라기의 생명 줄이 내 손에서 끊어진 것이다.
나는 벌레를 무서워한다. 온갖 종류의 벌레에 대하여 생애적인 혐오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고결한 문명인간이라는 뜻이다. 이제까지 내가 꾼 악몽 중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고물고물한 벌레들이 까맣게 기어올라 내 살을 서서히 갉아먹는 꿈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가까스로 꿈에서 놓여났었다. 송충이며 거머리, 구더기 같은 흉물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모기나 각다귀, 하루살이 같은 날곤충은 그들보다는 만만해 보인다. 징그러운 생각도 훨씬 덜하다. 약자에게만 강해지는 비열함이 내게 있었던가. 그것들이 눈에 띄기만 하면 무차별 살육을 감행하고 만다. 공격 의사가 있건 없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지불식간 무조건 반사적이다. 정당방위 차원이라 할 수도 없다. 그까짓 물컷들에게 하룻밤 실컷 적선한대도 생명에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놈들만 보면 생명의 거룩함을 잊어버린다. 영화 '마이크로 코스모스'를 보고 난 후의 감동도 경이로움도 다 잊고서, 무조건 잡아 없어야만 속이 후련해지는 것이다.
오늘날 지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종류가 가장 다양하고 진화에 성공한 종種이 곤충이라 한다. 이 백만 종이 넘는 그것들은 공룡들이 한꺼번에 멸종을 당한 때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제 종족을 번식시켰다. 언젠가는 창궐하는 곤충 떼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나는 갖고 있다. 탁월한 지능으로 영장靈長의 위치에 오른 인간이라는 종족을 제까짓 미물 주제에 감히 대적하다니, 내 안에는 그런 원초적인 적개심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의 드넓은 초원에서는 사자와 얼룩말이 함께 살아간다. 저만치 물러앉아 먼 곳을 보는 사자들, 그 앞에서 얼룩말 무리가 풀을 뜯고 있다. 여차하면 잡아먹힐 천적과 함께 사는 얼룩말이 신경성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공격하지 않고 있을 때의 사자의 시선에 적의가 없다는 것도 묘한 일이다.
애당초 육고기를 먹고 살게 되어 있는 사자의 식성을 나무랄 수는 없다. 평화스런 초원을 뒤흔드는 느닷없는 공격성도 그들 탓은 아니다. 무슨 유감이나 악의가 있는 것도, 불구대천의 원수 지간이어서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살기 위해서 사냥을 한다. 배고프지 않으면 생명을 축내거나 겁주지 않는다. 생존에 관계가 없는 사사로운 취미로는 무의미한 살생을 하지 않음으로써 함께 사는 생명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어떠한가. 인간은 자기보다 힘센 동물들은 희귀 동물로 만들어 모조리 우리 안에 가두어 두거나, 영역 밖으로 추방해 버렸다. 맹수들이 더는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은 바이러스나 병균 같은 미시적 생명체이다. 인간의 시력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물리적인 위협을 덜 받게 된 미물들이 맹수보다 무서운 인간의 적이 되었다.
사람들은 귀찮고 신경 쓰이는 것들과 더불어 살기보다는 그것들을 퇴치하고 정복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지구는 오직 인간만의 특구라고 누가 설정을 해 준 것도 아니건만,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거나 사람의 울타리에 초대되지 않은 다른 생명체에겐 끊임없이 모질게 굴어 온 게 인간이다. 내 정원에 돋아난 잡풀 한 포기, 내 곳간에 들어온 생쥐 한 마리도 너그러이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용 가치가 있는 생명체에겐 악착같이 달라붙어 빼앗고 정복한다. 말 못하는 짐승을 길들여 부리고, 낚시와 사냥으로 귀중한 목숨을 희롱하는가 하면, 살아 있는 곰의 쓸개에 대롱을 꽂고, 고로쇠나무의 흰 피를 빼앗는다. 무자비하고 몰인정한 횡포이다. 그것뿐인가. 애써 모아둔 꿀벌의 양식을 탈취하고, 펄펄 뛰는 생선도 난도질하여 먹어 치운다. 어제까지 집을 지켜주던 늙은 견공이 오늘 아침엔 보신재로 둔갑하기도 한다. 다른 생명체들의 관점에서 볼 때 도무지 함께 살기 힘든, 고약한 족속이 인간일 것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모기가 가늘게 날개를 움직인다. 잠깐 뇌진탕으로 기절해 있었던 모양이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고, 어떻게든 살아나 네놈의 살갗에 침을 놓고야 말겠다고, 기사회생을 하려고 한다. 어떻게 할까. 지고한 인간의 자비심으로 모른 척 눈 감고 내버려 둘까.
나는 기어이 확인사살을 한다. 자비고 생명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이 먼저 나간 것이다. 그놈들과 내 영역 안에서 화해하고 함께 지낼 아량이 나에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누구든 저를 해코지하려는 녀석에겐 피 한 방울도 나눌 여지가 없는 천하게 야박하고 모지락스러운 존재가 인간 아니던가. 한 점 양심의 가책도 없이, 손바닥에 묻은 한 생명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유유히 욕실로 향하는 나는 만물의 영장인가. 아니면 만물의 천적인가.
(최민자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