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의 음식 알레르지
사람들은 흔히 부부를 두고 성격이 정반대라고 말한다. 요철처럼 서로 맞지 않는 것 같아도 결국 서로를 채워 주기에 천생연분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나도 그렇다.
요즘 나는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려고 애쓴다. 에세이인지, 수필인지, 아니면 그저 마음속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는 것인지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하루 한 편을 쓰겠다는 다짐이 때로는 즐거움이 되지만, 어떤 날은 강박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글이 술술 써지는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초등학교 저학년 일기처럼 앞뒤가 맞지 않고 산만하기만 하다. 그런 날이면 내가 쓴 글을 내가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어떤 문장은 살리고, 어떤 문장은 과감히 덜어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어제 올린 「백도라지를 닮은 할머니」를 읽은 친구에게서 댓글이 달리더니, 잠시 전 전화가 걸려 왔다. 한참 동안 글 이야기와 살아온 세월 이야기를 나누었다.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몇 마디만 들어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통화를 마치며 내가 말했다.
"오늘은 술 한잔 안 할 거야?"
친구는 그럴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럼 조금 있다가 우리 전화로 한잔하자."
말을 하고도 혼자 웃었다. '전화로 한잔하자.' 참 재미있는 신조어가 아닌가.
전화를 끊고 나니 출출했다. 거의 3주 가까이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오늘은 소주 한잔이 생각났다.
마침 아내가 음식에 쓰라며 사다 놓은 빨간 딱지 소주 한 병이 떠올랐다. 노브랜드에서 할인한다며 사 온 돼지 목살도 냉장고에서 이틀째 기다리고 있었다.
고기를 굽고, 양파와 감자를 썰고, 마늘을 다지고, 고춧가루와 올리브오일, 참기름을 준비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거의 다 완성하고 나서야 감칠맛을 더해 줄 멸치를 넣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또 깜빡했구나.'
나이를 먹으니 이런 일이 잦다. 스스로를 'forgetful man'이라며 웃고 넘겼다.
열무김치 국물을 조금 넣고 간장을 맞추니 제법 그럴듯한 요리가 되었다. 감자도 익고, 양파도 익고, 고기도 먹음직스럽게 구워졌다. 참기름 한 방울이 마지막 향을 더했다.
사진까지 찍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 요리를 아내와 함께 먹을 수는 없다.
아내는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다. 조금만 잘못 먹어도 손발에 반점이 생기고 가려움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그래서 아내가 운동을 나간 사이, 집 안을 환기시키며 조심조심 혼자 요리를 했다.
혼자 즐기는 소주 한잔이 어쩐지 남몰래 즐기는 작은 일탈 같았다. 그러나 그 일탈의 바탕에는 아내를 위한 배려가 있었다.
막내가 일본 여행에서 사다 준 산토리 위스키도 있었지만, 오늘은 빨간 딱지 소주가 더 잘 어울렸다. 커피잔에 소주를 따라 천천히 마시며, 새벽에 댓글을 달고 저녁에는 직접 전화를 걸어 내 글을 격려해 준 친구를 떠올렸다.
좋은 사람과의 인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새삼 감사했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오늘 아침, 아내에게 큰소리를 낸 일을 먼저 사과해야겠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부부가 오래 함께 살아가는 사랑의 방식일 것이다.
오늘도 하루 한 편의 글을 남긴다.
비록 투박한 글일지라도, 이 글 속에는 친구를 향한 고마움과 아내를 향한 사랑, 그리고 평범한 저녁 한 끼가 선물처럼 느껴지는 노년의 행복이 담겨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