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피아노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때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40분이었다.
더 이상 잠을 청할 수가 없어서 질긴 잠을 털어내면서 양치질을 한다.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아파트 구조상 어느 집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집에서인가
매일 아침 댓바람부터 12시까지, 한 시간 쉬었다가 다시 3시까지 피아노를 친다.
소리와 냄새에 기가막히도록 예민하여 불면증까지 있는 나로서는 못견딜 일이다.
하기야 완주라면 또 모를까 같은 곡을 꼭 같은 대목만 틀려가며 치는 소리를
눈 뜨자마자부터 일곱 시간 이상 듣고 있는 생 고문에 너그러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며칠 전, 베짱이세실언니네 갔더니 너무 시끄러워서 자보라도 붙일까 한다는 글이 있길래 웃었는데
내가 딱 그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해서 나도 오늘만 참고 내일도 시끄럽다면 기필코 엘리베이터에 자보를 붙이리라 독한(?)마음을 먹고
(언젠가 한 번 해본 적이 있으니 못할 것도 없다. 그 때는 누군가 일주일동안 창밖으로 오물을 버렸었다. )
신경을 딴데 쓰느라 예정에도 없는 베이킹을 시작한다.
버터는 물론 우유도 없고 밀가루와 식용유, 계란.. 모카 쉬폰을 구워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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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까지 부드럽게, 모카 쉬폰케이크 (지름 15cm 쉬폰 1호틀 1대 분량)
재료
A: 달걀 흰자 3개, 설탕 40g, 소금 1g
B: 달걀 노른자 2개, 박력분 70g, 설탕 40g, 포도씨유 50ml
커피액기스 16g(인스턴트커피 2작은술, 물 1작은술), 바닐라오일 2-3방울, 물 3큰술
(+ 베이킹파우더 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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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걀은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하여 흰자는 냉장고에,
노른자는 실온에 두었다 사용합니다.
+ 깔루아가 있다면 바닐라 오일 넣을 때 1작은술 넣어주세요.^^
저는 깔루아가 떨어져서 넣지 않았습니다.
+ 머랭을 단단하고 세밀하게 만들면
베이킹파우더 없이도 부드럽고 폭신한 쉬폰케이크를 만들 수 있어요.
전 넣지 않았지만 자신이 없으시다면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를 2g정도 체쳐서 함께 넣으세요.
'
A...
달걀 흰자를 풀어 거품이 나기 시작하면,
제시한 분량의 설탕과 소금을 3번에 나누어 넣어가며 고속으로 저어 뿔이 생길 정도로 머랭을 만든다.
만든 머랭은 냉장고에 넣어둔다.
B....
달걀 노른자에 제시한 분량의 설탕을 넣어 고운 미색이 되면
물, 포도씨유, 커피액기스, 바닐라오일(깔루아 등)의 순서로 각각 넣어 저은 다음
체친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를 넣어 가르듯이 해가며 재빨리 섞는다.
냉장고에 넣어둔 머랭의 1/2을 섞고, 나머지 머랭을 꺼지지 않도록 떠올리듯이 섞어 반죽을 완성한다.
틀에 70-80%정도 채우고 바닥에 2-3번 탕탕 내리 친 다음 젓가락을 한바퀴 돌려 구웠을 때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160도로 예열한 오븐에 35-45분간 색을 봐가며 구워 꺼내자마자 뒤집어 식힌다.
3시간정도 완전히 식힌 다음 (적어도 1시간 이상...)
스페츌라나 칼 등으로 옆면과 윗면을 분리하면 주저앉지 않고 각이 잡힌 쉬폰케이크가 나온다.
선물할 때는 칼로 윗면을 반듯하게 자르고 옆면도 정리하는 것이 좋다.
여기 슈가파우더를 솔솔 뿌려 장식하거나 생크림을 자연스럽게 바르면 금상첨화.
...라고 쓰지만 나는 마음이 급해서 20분만에 꺼내느라 쇼를...^^;;;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쉬폰 케이크, 맛만 보느라 너무 작은 조각으로 잘랐더니
부들부들 너무나 부드러워서 서지도 못한다.
누워 있든 서 있든 맛있고
이보다 좋을 수는 없도록 폭신한 쉬폰을 커피와 함께...
실크처럼 부드럽고 가벼운 감촉의 케이크라서 쉬폰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구울 때마다 매번 감탄하고 만다.
베란다에 옹기종기 모여 햇볕을 받고 있는 화분들을 바라보며 모카쉬폰에 집중하고 있으니
머리까지 울리던 피아노소리도 덜 들려 조금은 편안해하고 있는데
문득, 하교해서부터 저녁 8시쯤까지 네시간씩 리코더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중학교 음악 수행평가가 생각났다.
이웃집 시끄럽다고 부모님께 꾸중을 들으면서도
다음 날 음악 시간이 더 무서워서 입술이 퉁퉁 부을 정도로 리코더를 불던 나였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문을 꽁꽁 닫고 리코더를 불었어도 윗집 아랫집 할 것 없이 시끄러웠을텐데...
어쩌면 아침 일찍부터 피아노를 치는 이웃집의 누군가도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이해하고 싶어졌다.
내일 아침 6시 40분에 피아노소리가 들리면 나는 어쩌면 또 자다가 깨어 분노할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이기에, 계속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수고를 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다가 방해를 받은 것도 아닌데
까짓것 좀 방해받고 분노해도 가다듬고 분노해도 가다듬으면
언젠가는 화가 안 나지 않을까,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쩐지 모카쉬폰 덕분에 사랑하는 방법을 하나 더 찾은 것 같다.
행복해질 것이다.
행복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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