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비가 데려온 기억
38도를 훌쩍 넘어서는 폭염의 26.8.5. 오후 4시, 무릎에 주사를 맞으러 길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가장자리를 따라 버즘나무와 느티나무, 은행나무, 메타세쿼이아와 마로니에나무가 만든 짙은 그늘길에 들어서자 귀가 먹먹할 만큼 우렁찬 매미 소리가 숲을 가득 메웠다. 올해는 매미가 벗어 놓고 간 허물이 계단 옆이며 풀섶마다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반팔 티셔츠를 입은 팔뚝 위로 차가운 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졌다. '이 무더위에 매미가 오줌을 싸나?' 하는 순간, 네댓 방울이 연달아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눈부신 햇살 사이로 아주 옅은 비구름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큰 나무들이 대부분의 빗방울을 막아 주었지만, 그늘이 비어 있는 길바닥은 어느새 검게 젖어 갔다.
정형외과까지는 아직 300m 남짓.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가뭄 끝에 내리는 선물 같지는 않았지만, 옷이 흠뻑 젖을 정도는 아니어서 발걸음을 조금 재촉했다.
700m 남짓한 길을 걷는 내내 머릿속을 맴돈 단어는 '여우비'였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실제로 여우가 흔했다. 밤길을 혼자 걸을 때면 어디선가 여우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해 등골이 서늘했고, 여우가 사람을 홀린다는 이야기도 아이들에게는 진짜 공포였다.
그 시절은 백신도 의료 혜택도 부족했다. 홍역이 돌면 어린 생명들이 속절없이 스러졌고, 가난과 미신은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형님은 홍역으로 세상을 떠난 아기의 시신을 여우가 물고 갔던 광경을 전해주셨다. 반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 여우비를 맞으며 그 비참했던 어린 시절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 기억들이 남아 있어서인지, '여우비'라는 말만 들어도 어린 시절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이 함께 떠오른다.
자료를 찾아보니, 여우비에 관한 설화가 가장 풍부한 곳은 일본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햇빛이 비치는 날 내리는 비를 '여우의 시집가는 날(狐の嫁入り)'이라 부르며, 여우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리는 날이라고 믿었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었다.
현실에서 '여우비'라는 말을 입에 올려본 지도 어느덧 30년은 훌쩍 넘은 것 같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늦은 오후, 우리 동네 '동화숲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우비는 잠시 잊고 지냈던 유년의 풍경과, 가난했지만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는 그 시절의 기억을 조용히 불러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