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사학-군인 연금도 보험료 더 내는 개혁 추진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해 동반인상
정부, 연금 체계 전반 손보기로
국민연금 재정추계 이달말 발표
당초 계획보다 2개월 앞당겨
정부가 국민연금을 비롯해 기초연금과 공무원·사학·군인 등 직역연금까지 연계한 ‘노후소득 보장 체계’ 전반 개혁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직역연금의 보험료율 인상도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런 개혁 논의의 근간이 될 국민연금 제5차 재정 추계 결과를 예정보다 두 달 앞당겨 이달 말 발표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9일 대통령 신년 업무보고에서 국민연금 개혁 방향을 포함한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공무원 군인 사학연금 등 ‘직역연금’까지도 이번 정부 내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을 포함한 노후소득보장제도 전반의 구조개혁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직역연금들은 국민연금에 비해 ‘많이 내지만 더 많이 받는’ 구조여서 재정 적자가 더 심하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두고 국민연금만 ‘더 내고, 적게 받는’ 개혁을 추진한다면 국민적 동의를 얻기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에서도 직역연금 가입자들이 지금보다 보험료를 ‘더 많이’ 내는 방향으로 개혁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금특위가 1월 연금개혁안 초안을 발표하기로 한 데 맞춰 제5차 재정추계 시기도 이달로 앞당긴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정부는 5년 주기로 국민연금 기금 전망을 산출해야 한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복지부 산하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2056년으로 잠정 추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정부에서 수행한 4차 재정 추계(2057년 전망)보다도 고갈 시점이 1년 앞당겨진다는 것이다. 합계출산율이 0.79명에 불과한(지난해 7∼9월 기준) 최근 ‘초저출산’ 추세까지 감안하면 고갈 시점이 이보다 더 이르게 추계될 가능성도 있다. 국회 연금특위는 이 재정추계 초안을 바탕으로 3개월 동안 국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연금개혁 ‘국회안’을 완성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국회안을 토대로 “연내, 늦어도 내년 초에는 (연금개혁안을) 완성해 달라”고 지시했다.
“공무원-군인연금 개혁 안하면, 1인당 年1754만원 세금 충당”
직역연금 보험료도 인상 추진
공무원-군인연금 등 적자 더 많아
국민연금만 손보면 반발 불보듯
OECD “韓공적연금 기준 통일을”
정부와 국회가 국민연금과 함께 직역연금 개혁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두 연금의 형평성을 맞추지 않고는 개혁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해 ‘공적연금개혁 논의 현황과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추계한 공무원 및 군인연금 수급자 1인당 국가보전금 액수는 연간 726만 원이다. 예산정책처는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2070년에는 1인당 국가보전금이 연간 1754만 원까지 늘 것으로 내다봤다. 퇴직 공무원 1명에게 연금을 주기 위해 매년 1700만 원이 넘는 세금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 2배 내고 4배 받는 공무원연금
공무원과 사학연금은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에 비해 ‘많이 내고, 많이 받는’ 구조다. 두 직역연금 가입자는 매달 수입의 18%를 가입자(공무원)와 국가가 반반씩 부담해 연금보험료로 적립하는데, 이는 국민연금 가입자(보험료율 9%)의 2배다.
문제는 ‘더 내는 돈’에 비해 ‘더 받는 돈’의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2021년 기준 공무원연금 가입자가 매달 받는 연금은 평균 242만 원. 국민연금 수급자의 평균 수령액(월 58만 원)의 4배가 넘는다. 공무원연금 가입자들의 평균 납입기간이 국민연금 가입자보다 길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격차가 너무 크다.
이 때문에 공무원연금 기금은 2002년 사실상 고갈됐다. 현재는 매년 걷는 보험료로 퇴직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한편 모자란 돈은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추산에 따르면 올해에만 세금 4조70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군인연금 기금은 이보다 더 빠른 1973년 고갈됐고, 올해 국고 약 3조 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 특위 “국민-직역연금 보험료 동반 인상 검토”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자문위) 내에선 국민연금만 손질할 게 아니라 주요 직역연금의 보험료를 함께 인상해야 한다는 시각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민간 자문위원은 “적자가 더 심한 직역연금은 두고 국민연금 보험료율만 올려선 국민 동의를 얻기 어렵다”며 “국민연금 상승 폭만큼 공무원연금 보험료를 올리는 방안이 나왔다”고 전했다.
또 자문위는 3일 연금특위 전체회의에서 “공무원연금 제4차 개편 내용을 군인연금에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현행 14%인 군인연금 보험료율을 공무원연금과 같은 수준인 18%까지 올리자는 제안이다.
각 직역연금의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 수준을 넘어 공적연금 전체를 하나의 틀 아래 통합시키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9월 내놓은 ‘한국 연금제도 검토보고서’에서 “공적연금 제도 간 기준을 일원화해 직역 간 불평등을 해소하고 행정비용을 절감할 것”을 권고했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역연금 수급자는 전체 노인 인구의 5%에 불과한데, 이들에게 투입되는 돈은 국민연금 수급자 전체에 투입되는 돈과 유사한 국내총생산(GDP)의 1.3% 수준”이라며 구조개혁을 통해 이런 불공정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적연금 통합이 필요하지만 자칫 직역연금들이 갖고 있는 재정 적자 부담까지 국민연금이 떠안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복지부 “노후소득 구조 개혁, 상당 시간 필요”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기와 직역연금의 적자 규모를 볼 때 지금 같은 연금 제도는 지속될 수 없다. 이처럼 노후소득 보장체계의 전반적인 개혁이 시급한 상황인데도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9일 업무보고 사후브리핑에서 “공무원연금 등을 포함한 구조개혁은 여러 가지 제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10월 제출하는 개혁안에는 복지부 소관인 국민연금 모수개혁안만 담되, 각 직역연금을 담당하는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쳐 구조개혁도 공론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공무원 군인 교수 등 직역단체의 반발이 예상되자 정부가 직역연금의 개혁 속도를 조절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지운 기자, 김소영 기자, 조유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