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모임에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다 보면, 문득 우리 사회의 경조사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장례와 애도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고인을 진심으로 추모하고, 남겨진 유가족에게 마음 깊은 위로를 전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서구 사회의 장례를 보면, 우리처럼 많은 사람에게 부고를 알리고 수많은 조문객을 맞이하기보다는 고인을 진정으로 기억하는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이 모여 조용하고 엄숙하게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깊은 친분이나 교류가 없었던 관계에서조차 관행과 체면에 이끌려 부고를 알립니다.
결혼식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녀의 결혼을 앞두고 평소 교류가 거의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청첩장을 보내는 경우가 있고, 초대를 받은 사람은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라기보다 관계의 부담이나 체면 때문에 축의금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묻고 싶습니다.
축의금을 보내고도 정작 마음속에는 축하의 마음이 없었던 사람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요?
물론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한 번쯤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물어볼 만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애도나 축하의 마음이 전제되지 않은 채 의무감과 관성, 또는 체면 때문에 이루어지는 경조사라면 그것을 과연 참된 축하와 추모라고 할 수 있을까요.
특히 사회적으로 많은 경험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러한 허례허식에서 먼저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자녀의 결혼을 이용해 마치 퇴직금에 버금가는 목돈을 마련하려는 듯한 모습도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자녀의 결혼은 부모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모습을 한번 상상해 봅니다.
‘조문객을 초청하지 않는 장례식장.’
가족과 가까운 몇 사람만 모여 조용히 고인을 보내드리고, 장례가 끝난 뒤에야 주변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조의금 청구서처럼 느껴질 만한 부고라면 굳이 알리지 않는 것.’
그리고 결혼식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의무감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자리를 채우는 하객이 아니라, 정말 축하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결혼식.
그런 결혼식장이라면 화려하지 않아도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답겠습니까.
경조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확인하는 자리여야지, 서로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도 경조사를 둘러싼 오랜 관행과 체면의 굴레에서 조금씩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조용히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사후에 소식을 알리는 사람들,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부고를 전하는 사람들,
자녀의 결혼을 알리면서도 축의금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들로 채워지는 결혼식.
이런 소박하고 진중한 모습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새로운 모범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경험과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먼저 허례허식을 내려놓고 진정성 있는 경조사 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우리 사회도 불필요한 부담과 체면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경조사는 결국 돈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일이어야 합니다.
부고에는 애도의 마음이, 결혼 소식에는 축복의 마음이 담겨 있을 때 비로소 경조사의 본래 의미가 살아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맺어가는 관계 속에서도 형식과 관성보다는 마음과 진정성이 중심이 되는 건강한 경조사 문화가 자리 잡기를 조용히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