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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옛돌의 숨결, 옛돌의 이야기
- ‘우리옛돌박물관’을 찾아서
주경림
1. 들어가며
2번 마을버스에서 내리자 돌로 만든 솟대가 서 있는 ‘우리옛돌박물관’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니 문인석, 장군, 석탑, 석수石獸, 돌로 만든 장승인 벅수 등 돌덩이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우리나라 각지에서 모이고 일본에서 바다를 건너 귀향한 엣 돌사람과 돌짐승들의 왕국이다. 천신일, 우리옛돌문화재단 이사장이 옛 돌조각의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에 매료되어 40년 넘게 국내외에서 수집한 귀한 석조 유물들을 위한 돌들의 집, 돌들의 정원이다. 2000년 경기도 용인 세중옛돌박물관을 열었다가 2015년 북악산과 한양도성 사이에 위치한 성북동 언덕에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석조전문박물관인 ‘우리옛돌박물관’으로 재개관했다. 5,500평 대지와 건물 1,000평 규모의 공간에 석조유물 1250점, 자수작품 280여점, 근현대회화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조상의 염원과 희노애락이 담긴 유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델타변이바이러스의 확산세로 더욱 심각해진 코로나 팬데믹과 연일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 심신을 달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나무와 풀꽃들이 어우러진 정원과 한적한 전시실을 관람하며 1,000개의 돌과 돌마다 간직하고 있는 1,000개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2. 환수유물관, 동자관, 벅수관, 자수관
환수유물관에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돌아온 유물들이 모여있다. 2001년 일본에서 매입하거나 기증 받아서 찾아 온 70점 중 47점, 문인석들에서 역사적 아픔이 느껴진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무덤을 지켰던 문인석들이 관모를 쓰고 손을 가지런히 가슴 앞으로 모아 홀을 쥐고서 있다. 홀은 임금의 말씀을 붓글씨로 받아 적었던 용도인데 나중에는 의례적으로 들었다. 석물의 크기가 신분에 따라 엄격하게 제한되어 키 170cm문인석은 영의정이나 좌의정, 185cm의 문인석은 왕가에서나 세웠다. 코가 닳거나 깨진 문인석이 많은데 아들을 낳으라고 시어마니들이 문인석의 코를 갈아 며느리 국에 타기도 했다고 한다. 벽면에 걸린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 <SNMIA-095H>가 새벽안개에 휩싸인 경주 경애왕릉 숲으로 데려다준다. 꿈틀거리는 소나무의 생명력이 느껴지고 신비한 안개를 헤치며 들려오는 청량한 솔바람 소리에 눈과 귀를 씻는다. 2층으로 올라가면 키 190cm 넘는 갑옷을 입고 칼을 찬 늠름한 돌사람이 우뚝 서있다. 문인석과 함께 무덤을 지켰던 장군석이다. 칼자루와 양어깨에 새겨진 도깨비 얼굴이 재미있는데 도깨비의 불가사의한 힘을 빌려서라도 큰 힘을 발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2층 전시실에는 자그마하고 귀여운 동자석들이 모여있는데 천진난만한 표정에 눈동자가 똘망똘망하다. 동자는 신선 곁에서 시중을 드는 역할(도교), 부처님이나 보살을 모시며(불교), 무속신앙에서는 무덤 주인의 심부름을 한다. 무덤의 수호신, 마을의 지킴이 등으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머리를 땋아내렸거나 쌍상투를 틀고 천의를 입고 지물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엄숙한 묘역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사진의 동자석은 손에는 꽃을 들어 무덤 주인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발아래에는 길상의 상징인 양을 새기고 있다. 무덤 주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술이나 떡을 든 동자도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문인석과 혼합되며 동자석 고유의 특징이 사라진다. 벽면에는 빙 둘러 추사 김정희의 서간문, 수운 유덕장의 묵죽도, 심산 노수현, 청전 이상범, 의재 허백련, 각각의 사계산수도가 걸려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동자관을 나오면 벅수관으로 이어진다. 벅수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장승을 부르는 순우리말이다. 사람의 얼굴을 한 벅수를 마을 입구에 세워두면 전염병의 역신이나 잡귀들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 복을 가져다주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여겨 소원을 정성스레 빌기도 했다. 정형화된 형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마을 사람들 공동 요구에 따라 만들어져 민초들의 삶에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석조물이다. 희노애락이 그대로 드러나는 천진하고 해학적인 표정이 일품이다. 길상의 의미로 ‘마馬’가 새겨진 벅수, 피리를 부는 벅수는 만파식적의 영향으로 피리 소리에 파도가 잠잠해지듯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는 믿음에서 해안가에서 많이 발견된다. 칼은 수호, 학과 거북이는 장수를 상징한다. 배 부분에 아기를 새겨 다산을 빌었고 집을 새겨 마을의 번창과 좋은 집을 기원했다, 20대 30대의 내 집 갖기가 꿈인 현재로서는 기와집, 초가집 보다는 아파트를 그려넣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자수관 입구에 베갯모에 수놓은 자수베개가 쌓여 벽면을 장식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베갯모에 십장생, 모란, 연꽃, 다산을 상징하는 포도, 딸기 등을 수놓아 나쁜 기운을 막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좋은 꿈꾸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여성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수놓기는 실용과 예술을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규방 문화였다. 강원도 자수 보자기, 아기자기한 골무, 기러기와 기러기 보자기, 조각보자기, 버선본주머니, 귀주머니, 두루주머니, 수저주머니 등 280여점이 전시 중이다. 석조 유물과 자수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지만 수복강녕과 길상적인 측면에서는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준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색색의 자투리 천을 이어서 만든 조각보자기는 필자의 눈에는 몬드리안의 구성을 뛰어넘는 예술품으로 보였다. 어머니의 재봉틀 돌리는 소리 속에 크기와 모양, 색상이 다른 천 조각을 이어 붙여 이불보도 되고 밥상 덮개도 만들어졌다. 박물관 홈페이지에 “자수는 엄격한 유교문화 속에서 여인들의 미적 감흥과 꿈을 표현하는 유일한 세계이자, 자신의 마음을 섬세하게 자유롭게 표현한 예술이다”라고 규방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3. 기획전시관, 무병장수의 길
<추상, 구상, 사이>라는 기획전시관 특별전 입구에 다음과 같은 전시를 소개하는 글이 걸려있었다.
“돌조각이 될 만한 돌도 처음엔 ‘돌’이다.
한 장씩 다듬어진 돌은 ‘추상’에서 ‘구상’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돌조각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는 ‘심상’이 된다.
수천 년 사람의 마음을 담은 돌조각은 비바람에 다시 ‘구상’에서 ‘추상’으로
그리고 ‘돌’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림 속에 한 획 한 획 내밀하게 숨겨져 있는
‘추상’과 ‘구상’사이에서 ‘심상’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권옥연, 김환기, 남관, 김창렬, 오치균, 윤명로, 이대원, 이숙자, 유영국, 이응노, 이우환, 이왈종,---등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 작가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필자는 마음 속 이미지들이 맑은 청색으로 화폭 속에서 어우러지는 남관의 <푸른 공간>에서 수많은 도깨비들을 보았다.
뿔 세 개 달린 도깨비
왕관을 쓰고 잔뜩 으스대는 놈
머리에서 안테나를 뽑아 하늘과 교신하는 놈
고령 알터 암각화에서 만난 적 있는
옛 가야국의 방패형 얼굴도 보인다
모두 바다에서 달려왔는지
청색바닷물이 뚝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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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바다에도 물거품 도깨비들이
생겼다 이지러지고 또 생겼다 스러지고.
- 「남관의 도깨비나라」 일부
필자의 마음속에서 생겼다 이지러지고 또 생겼다 스러지는 물거품 같은 도깨비 형상들을 윤명로의 <얼레짓>으로 허공 하늘에 풀어놓을 수 있었다. 윤명로는 “창공을 하나의 캔버스로 본다면 연을 날리며 다양한 변화를 본다. 그림도 자기감정을 감고 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얼레짓’ 연작을 그리게 되었다.”고 작품 동기를 말해주고 있다.
우리옛돌박물관 건물은 1층부터 옥상까지 경사길로 만들어진 특별한 통로가 있다. ‘무병장수의 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통로 양쪽 벽에 제주 동자를 비롯한 여러 석물을 전시해 놓았다. 관람객은 오르막길을 걸으며 관람할 수 있다. 동물 형태의 석조물, 석수石獸도 보이는데 양은 악귀를 없애주며 호랑이는 능묘를 수호하고 말은 죽은 자를 저승 세계로 데려다 주는 운송자의 역할이다. 2층 테라스로 나오니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 무늬둥글레의 동그란 잎이 피어나는 정원에 새끼를 밴, 혹은 젖먹이는 석양石羊이 서 있다. 5년 전에 보았을 때는 주위에 석호, 석마, 석사자가 두려워 출산예정일이 훨씬 지났는데도 새끼를 낳지 못하는 새끼를 밴 어미 석양으로 보였다. 그런데 웬걸, 오늘 와 보니 새끼를 품안에 안고 젖을 먹이는 어미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미젖을 실컷 먹었는지 어린 양의 등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우리옛돌박물관에서 석양의 무리를 만났다
그 중, 한 마리는
뱃속에 새끼 양이 들어있어 불룩했다
꼬부라진 귀며, 눈과 코가 다 생기고
네 다리에도 힘이 붙어 보인다
꼭 어미를 닮았는데----
과연 출산 예정일은 언제일까
어미의 뱃속에서 어린 양이 잘 나오도록
석수장이의 손놀림을 흉내내어
돌 뱃속에 아기길을 만들어주고 싶다
어미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어미의 등어리에 검버섯이 꺼멓게 돋아났다
출산 예정일이 지났어도 한참 지났다
주위에는 석호, 석마, 석사자 등이
앞발을 세우고 공격자세로 앉아있다
오라, 험한 세상에
어린 것을 내보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 「석양石羊에게 1」
출산 예정일을 훌쩍 넘겼는데도
어미 양의 뱃속에는 새끼가 들어있었다
석호, 석마, 석사자가 버티고 있어
어린 것을 어찌 내보내랴 싶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꼬부라진 귀며 눈과 코,
어미를 꼭 닮은 새끼가 품에 안겨있다
어미젖을 실컷 먹었는지
어린 양의 등에서 김이 모락모락,
배내향이 비릿하다
석호, 석마, 석사자도 배내향에 취해
어린 양을 태워주려고 등을 내보인다.
- 「석양石羊에게 2」
‘무병장수의 길’을 따라 꼭대기 층까지 올라와 3층과 이어진 야외 전시장으로 나오면 ‘돌의 정원’ 별천지가 펼쳐진다.
4. 돌의 정원
다양한 주제로 꾸며진 갖가지 돌조각들의 야외전시관이다. 실내보다 훨씬 더 많은 석조 유물들이 나무와 야생화 꽃들 속에 어우러져있다. 돌사람, 돌짐승들이 푸른 하늘 밝은 햇살 아래 풀밭에서 바람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실내에 있을 때 보다 훨씬 생기 있어 보인다. 언덕 빼기에서 무뚝뚝한 남정네가 필자를 내려다본다. 민간에서 제작된 불상, 민불民佛인데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계단을 올라 민불에게 다가가니 박물관에서 가장 높은 장소로 ‘오감만족’의 공간이다. 돌조각들을 손으로 만져볼 수 있게 조성된 공간으로 전망이 탁 트여 산의 능선 따라 이어지는 성곽길과 남산 정원에 우뚝 솟은 N서울타워부터 멀리 잠실월드 타워까지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다 내려다보인다.
언덕길을 내려오며 ‘제주도 푸른 밤’이라 이름 붙여진 정원에서는 제주정낭, 돌하르방 등 제주도의 독특한 석조물을 감상할 수 있다. 팽나무 아래 벅수와 동자석들이 모여 있는데 육지의 동자석과는 다른 모습이다. 연꽃을 들고 있거나 제기차기를 하는 등, 현무암이나 석회암으로 만들어져 투박해 보인다. 정낭은 대문 대신 돌기둥에 걸쳐놓는 길고 굵직한 나무를 말한다. 멀리 갔을 때는 정낭 3개를 가로로 모두 걸쳐놓고, 2개가 걸쳐진 것은 저녁때쯤 돌아온다는 뜻이다. 금방 돌아올 때는 1개만 걸치고 집에 사람이 있을 때는 한 개도 걸치지 않는다.
짚으로 지붕과 벽면을 가린 화장실이 보여 궁금했는데 통일신라시대 최상위 계층이 사용했던 수세식 화장실 화강암 판석을 전시하기 위한 설치물이었다. 쪼그리고 앉는 판석 아래로 물을 흘려 배수로와 연결해서 오물을 떠내려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니 놀라웠다. 비탈길을 내려오며 밤에 불을 피워 주변을 밝힌 관솔대,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는 마애지장보살입상을 지나 전시된 석조물 중에서 가장 키가 큰 미륵불 앞에 섰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입적 후 인간의 햇수로 56억 년이 지나 이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님을 형상화한 것이다. 신장상들이 미륵불 주위를 호위하고 있다.
꽃을 들고 웃는 부처상, 염화미소를 지나자 가파른 계곡을 오르는 ‘승승장구의 길’이다. 중국 황하 용문龍門이라는 협곡에서 잉어들이 센 물결을 거슬러 뛰어올라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등용문 전설처럼 이 길은 합격으로 통한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입신출세의 관문인 이 길에서 승승기운을 받고 내려오니 부도밭이 있었다. 어마나, 아기부처님도 보인다. 바탕 바위에서 부조 형식으로 조각한 ‘탄생불’이다. 아기 부처님을 만나 이곳저곳 걸어다닌 피로가 싹 풀렸다. 오른손은 위로 들고 왼손은 아래로 내리고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가장 높네. 삼계의 모든 고통, 내가 마땅히 편안히 하리().” 라는 말씀이 들리는 듯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 양쪽에 문인석이 늘어서있는 ‘문인의 길’을 내려왔다. 문인을 거느린 왕이 되어 매발톱꽃, 앵초, 산마늘, 족두리풀꽃 등이 피어있는 꽃길을 천천히 걸었다.
‘문인의 길’을 다 내려오니 커다란 쇳덩이 하나가 놓여있다. 표지판에는 <무제, 정현> 이라고 적혀있다. 포항제철소에서 옮겨온 파쇄공이 정현작가의 손을 거쳐 현대조각 작품으로 탄생했다. 15톤의 네모난 쇳덩어리가 25m 높이로 들어올려졌다 떨어지며 7년간 쇠를 깨던 일로 상처투성이가 된 파쇄공이다. 우리옛돌박물관의 유일한 현대조각 작품이다.
파쇄공은 쇠를 부수는 쇳덩어리,
포항제철소 야적장에서 크레인으로
25m 높이까지 들어 올려졌다 내리치면서
쇠찌꺼기들을 용광로에 넣기 좋게 부셨다
떨어질 때마다 닳아 몸무게는 절반으로 줄고
긁히고 패이고 덩어리 채 뜯겨나갔다
퇴직한 파쇄공은
정현 조각가의 <무제> 작품이 되었다
파쇄공의 움푹 패인 곳과
긁히고 패인 흠집을 대하니
나의 상처쯤이야 위로 받을 만 일도 아닌 듯,
그동안 나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부수어놓았을까
상처투성이 파쇄공 이력이
쇠멍이 되어 내 속을 멍멍하게 울린다.
- 「파쇄공 거울」
그 쇳덩이 옆에 바윗덩이에 선각으로 새겨진 불상이 누워있다. 석가모니가 열반할 때의 모습을 새긴 와불臥佛이다. 오랜 시간 고난의 흔적이 묻어있는 파쇄공도 필자의 눈에는 와불로 보였다.
옛돌에 담긴 옛사람들의 염원을 헤아리며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박물관 관람을 마쳤다. 수복강녕壽福康寧의 바람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현재진행형이기에 ‘우리옛돌박물관’은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공간이다. 한겨울 눈이 내릴 때 다시 이곳을 찾아 돌사람 돌짐승과 함께 눈사람이 되어 눈밭을 거닐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