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7(수) 조선일보에 의하면
“차를 수출하던 중국은 애꿋게도 영국과의 전쟁에 휘말렸어요. 영국은 식민지 인도에서 마약의 일종인 아편을 재배해 몰래 중국에 팔았어요. 아편을 수출해 번 돈으로 차를 수입하다 생긴 무역적자를 메우려고 한 거죠. 이 때문에 중국에는 아편 중독문제가 심각해졌어요. 중국 정부는 항구에 정박해 있던 영국 배에서 아편을 몰수하며 단속에 나섰어요. 영국은 이에 반발하며 군함을 보내 전쟁을 일으켰죠. 1840년 아편전쟁입니다. 중국을 향한 서양의 침략이 본격화 된 것으로 평가받는 사건이죠.”라는 글을 실었다.
차를 tea라고 하는데, 이 말은 찻 잎을 뜨거운 물에 ‘태아’ 즉 ‘태워’ 마신다는 우리말이다. ‘茶’라는 말도 우리나라에서 ‘차’ 또는 ‘다’로 읽히어지고 있지만 원래는 ‘타’라고 읽었었다. 茶를 물에 ‘탄다’는 의미이다.
tea나 茶는 다 같은 우리말이다. (고) 조선 이래 고구려, 백제가 지금의 중국 땅에서 나라를 이어 왔다는 증거이다. 이런 우리 말들이 칭나라까지 이어져 왔었다. 물론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만...
茶文化는 중국의 것이 아니다. 우리 (고) 조선 때부터의 고유 문화이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서서, 아는 체 하니까, 우리 역사를 망쳐놓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수, 당나라 이전에 있었다고 하는 중국과 관계되는 나라들은 모두 지어낸 이야기들이고, 실존했던 나라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 때까지 중국말이라는 것도 없었다. 중국말이 있었다면 tea나 茶같은 말이 생겨날 수가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공자의 글을 한문장으로 알고 해석하는 것은 현대차를 타고 노나라로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칭나라의 고초는 사실상, 우리나라 말을 사용하던 우리나라 백성들의 고초였었다.
어디 이뿐이랴!
이어지는 조선일보 기사에서
“몽골군은 소고기나 양고기를 말린 육포인 ‘보르츠’를 전투식량 삼아 말 안장 밑에 넣어 다녔어요. 군인들의 식량을 넣어다니는 보급부대가 따로 없어 기동력을 더욱 높힐 수 있었죠. 몽골군은 식량보급 걱정을 덜고는 말을 바꿔 타며 하루에 무려 70km 이상을 이동했대요.
‘보르츠’를 만들려면 겨울에 짐승을 잡아 살코기를 바르고 줄에 매달아 바싹 말린 후, 이를 망치나 돌멩이로 두드려 가루로 만들었대요. 이 가루를 소의 위나 오줌보에 넣어 보관했는데, 소나 양의 위나 오줌보 하나에는 소 한마리 분의 ‘보르츠’가 들어 갔대요.”라고 했다.
그런데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는 ‘보르츠’라는 말은 알고, 이 말이 (고) 조선 글자로 ‘博尔茨(박이지)’ 즉 ‘바이지⤑ 빠이지’ㅅ 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소나 양의 살코기를 바싹 말린 후, 이것을 빠아서 가루로 만들어 가지고 다녔거든요. 이 ‘博尔茨’를 중국말이 생긴 후, 중국말 발음으로 바꾼 것이 [ Bó'ěrcí ]인데 이것을 영미인들이 ‘Boltz 보르츠’라고 잘못 사용했다고 판단된다. 중국이 내세우는 뜻으로 해석해 봐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몽골 군이 사용했던 음식 중에는 steak도 있는데, 이 말은, 기름이 많은 부위의 흐드레 고기를 말 안장 밑에 넣어 다니면, 이것이 덩어리가 지게 되는데, 이것을 구어서 썰어먹었다고 한다. steak는 고기가 말 안장 밑에서 ‘스체어구’라는 말이다. 이처럼 칭나라는 물론 몽골도 고구려의 일원이었으므로 그 백성들이 우리말을 사용한 것은 당연한일이다. 거듭 거듭 밝히지만 요, 금, 원, 칭나라 등은 고구려의 후신들이고, 송, 밍나라는 백제의 후신이었다. 중국의 역사는 사실상 우리나라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 말은 발틱해 연안의 함부르크인들이, 킵차크 칸국 등, 몽골병사들과 상인들에게서 들은 말인데,, 이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널리 퍼졌다고 한다.
킵차크 칸국에는 이런 비화가 숨어있다.
징기스칸이 아직 힘이 없을 때, 이웃 족장이 쳐들어 와서, 징기스 칸 동네를 부수고 징기스 칸의 마누라를 뺏어갔다. 후에 힘이 생겨 마누라를 찾아 왔지만, 그땐 이미 적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이 아이가 장남이므로 이 아이를 钦察(흐차⤑ 흩어) 킵차크 칸국으로 보내어버렸다. 장남은 멀리 있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구실을 달아서...그리고 귀여워 하던 4째 아들을 가까이 두었다. 이 ‘钦察’을 지금의 중국말 발음으로, 원래는 [ qīnchá ]이나, 몽골이 이 곳에 오기 전, 이전 이 지역을 지배하던 중세 튀르크계 민족인 킵차크인들이 살게 된 이후 이 지역을 킵차크 초원이라고 불렀으므로 몽골인들이 세운 왕국 역시 Kipchak 또는 Qipchaq 칸국이라고 부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몽골’이 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몽골’이란,
‘먼 골’이다. 이것이 ‘멍 골’이 되었다가, ‘멍 골’을 도저히 한자로 표기할 수 없으니까, ‘蒙古’라고, 쓰게 되었다. 어느 모로 보나, 몽골은 우리 곳이고, 우리의 역사이다.
몽골에는 꼭 알아두어야 할 四汗國이 있다.
이른바 Qipchaq(钦察) 汗國, 察合台 汗國(차카타이 한국), 窩闊台 汗國(오고타이 한국), Ilkhanate(일 한국)인데, ‘钦察 汗國’이라는 말은 , 맏아들은 꼴보기 싫으니, 멀리 ‘흐차⤑ 흩어(서, 가 차지) 하구’라는 말이다.
‘察合台 汗國’는 부하들을 ‘찻대(가 차지)하구’라는 말이다. 그리고 ‘窩闊台 汗國’은, 부하들에게 이리 ‘와 (해)뻣대(가 차지) 하구’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일 汗國’은, 헌종(몽케 夢哥; 툴루이의 장남)의 동생, 旭烈兀(훌라구)이, ‘일 한국(Il 汗國)을 세웠으나 특별히 ‘Ilkhanate’라고 한다. 이 말은 ‘일카 나때’ 다시 말하면 ‘일으켜 (세워)놨대’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학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아무데나, 이를테면 ‘Qipchaq khanate’라고 글을 쓰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汗國’은, 결코 국가를 의미하는 글이 아니다. 나라라는 뜻이 되면, 징기스칸과 동격이 되므로, 징기스칸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말의 의미를 모르고, 아무데나, 이를테면 ‘몽고 우루스, 오고타이 우루스’ 등으로 글을 쓰는데, 원래의 ‘우루스’라는 말은, 乌鲁斯(오로사⤑ 오르시어)를 중국말 발음으로 기록한 것이므로, 우리말을 알고 사용해야 한다.
앞에서 툴루이(拖雷)의 장남, 夢哥는, 너도 장남인데, 외지로 가라, 하니까, 못 가겠다고 하여, ‘몽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네이브가 “몽케라는 뜻은 중세몽골어로 영구(永久), 영원함(永遠)이라는 뜻이다.”라고 한 것은 엉터리다.
원나라가 우리말을 사용했던 증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