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미아오이 투의 시에 대한 단평
김세영(시인, 문학평론가)
대만 타이난의 시인 미아오이 투의 시를 소개하고, 그 시평을 쓰게 되어 기쁩니다. 대만어 시집 『연』(2016), 단편소설집 『검은 유령』(2019) 등으로 10여회 수상했으며, 그녀의 시들이 1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 소개된 바 있는 국제적인 중견 시인이다. 『대만의 형상』 이란 시집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만의 국민 시인 리쿠이셴에 이어 『상징학 연구소』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대만 시인이다. 미아오이 투 시인은 나태주 시인의 작품을 좋아하며, 김지하 시인의 반항 정신을 존경한다고 한다
소개되는 5편의 시 중,「길」과「귀걸이」 2편은 여성시인의 섬세한 이미지 서정시이며. 「그들은 시라야의 딸들이다」, 동굴」, 「조용한 일상의 모퉁이 가게」등 3편은 슬픈 비극적 역사 사회적 주제의 시이다.
회상은 바닥을 알 수 없는 바다입니다./ 1초를 회상하면 꽃은 살풋 취하고,/
1분을 회상하면 꽃은 침묵하며 / 한 순간을 회상하면 꽃은 시듭니다./
어느 날을 회상하면 꽃은 불타고, /어느 날 밤을 회상하면 꽃이 재가 됩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거리를 둘 때,/ 1마일은 아름다움으로 표시되고,/
백 마일은 외로움을 의미합니다. /천 마일은 부서진 마음으로 포장되고 /
만 마일이 쌓이면 뜻하지 않게 한 편의 시가 됩니다.//
당신이 떠난 길 / 당신의 발걸음 하나하나 시를 읊습니다.//
-시「길」 전문
사랑의 마음을 시간적, 공간적 이미지로 새롭고 참신하게 그리고 있으며, 여성시인의 나긋한 심성이 잘 느껴지는 시이다.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라고 은유로 표현하고 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우라노스의 정액이 바닷물과 섞여 생겨난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를 회상하게 한다.
사랑을 회상하는 최적의 시간은 얼마가 좋을까? 살풋 취하게 하는 1초가 최적일까? 너무 짧아도 길어도 안 되어 가늠하기 난감하다. 어느 날을 회상하면 꽃불이 되고, 어느 밤을 회상하면 다 타버린 재가 된다니 더욱 난감하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공간적 거리는 얼마가 최적일까요? 1마일이 아름답게 보일까요? 만 마일이 되면 외로움이 쌓이고 부서진 마음이 쌓여서 한 편의 시가 될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하지만 내 귀의 피어싱은 오래 전에 봉인되었죠
그러니 아름다운 귀걸이를 사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겠어요
연인의 속삭임이 그리운 걸까요? //
그렇게 달콤한 속삭임도 떠나고,/ 소리의 여운만 남아 있어요//
내 연인은 초점을 맞추는 법을 알고 있을까요?
속삭임이 들리지 않는 곳에 귀걸이를 걸어두려 해요
- 시 「귀걸이」부분
귀의 피어싱이 오래 전에 봉인되었는데도 시인은 귀걸이를 몇 개 싼다. 연인의 속삭임이 그리운 걸까요? 하고 자문한다. 사랑이나 아름다움의 절정은 순간 집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그녀의 연인이 초점을 맞추는 법을 알고 있을지 반신반의한다. 그래서 속삭임이 들리지 않는 곳에 귀걸이를 걸어두려고 한다. 사랑의 심리를 잘 묘사한 서정시이다.
산호나무 아래 / 조상의 영혼을 만날 때에도
그들은 서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증조할머니는 시라야 말만 합니다,//
그녀는 인적 드문 외로운 숲속에서 죽었습니다 /달리는 사슴들도 없이요
그녀의 무덤은 이미 크고 화려한 건물이 되었습니다 //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린 시라야의 딸
광장에서 식민의 주민들이 춤을 추고 있습니다 / 의식 없이 술을 마시면서요
-시 「그들은 시라야의 딸들이다」 부분
약 6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원주민들의 선조라고 볼 수 있는 말레이-인도네시아 계통의 사람들이 타이완 본섬에 살아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부족 집단을 이루며 살았으며, 말레이 폴리네시아어 족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원주민은 가오산족(고산족)과 핑푸족 (평지족) 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이 시에 나오는 시라야(西拉雅族, Siraya)는 핑푸족에 속한다고 한다.
조상의 영혼과 소톨핳 수 없는 오늘날 시라야 족의 슬픈 현실을 시로 표현했다. 문명의 콘크리트 더미에 묻혀버린 증조할머니의 부족 노래들을 그녀의 딸들은 알지못한다. 광장에서 의식없이 술을 마시며 식민의 주민으로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시인은 회한에 잠긴다.
나의 둔하고 희미한 아랫부분에서,/나를 슬프게 하는 고통스런 침입이 퍼졌습니다./
내가 증오한 것은 / 열세 살의 나를 보호해줄 나라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칙칙하고 어두운 구멍은 /끝없는 운명으로 이어져 나갔습니다 //.
-시 「동굴」 부분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 심지어 네덜란드 여성들까지 위안부로 끌려갔다.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통치했던 대만에서 최소 2000명의 위안부들이 끌려갔다고 한다. 2023년 5월 23일자 신문에 대만의 마지막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가 92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다. 세계대전 전후 현대사에서 참으로 비극적이고 비인도주의적인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시에서는 불과 열세 살의 어린 소녀의 잔혹하고 혐오스러웠던 이야기를 일인칭 화법으로 리얼하게 증언하고 있어 더욱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가 70년 전에 왔다면 일본인이 되었겠죠
그가 이백 년 더 일찍 왔다면 스페인 사람이 되었겠죠
이 부조리한 세상엔 슬프거나 기쁜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모퉁이 가게 밖 하늘을 보니 /우울한 푸른색을 지나칠 수 없군요
- 시 「조용한 일상의 모퉁이 가게」 부분
지구촌은 어느 나라에서나 이제는 다국적 시대임을 칠레의 모퉁이 가게에서도 느낄 수 있는 오늘날의 현실이다. 세월은 시인을 일본인이 되게 할 수 도 있고, 가게 주인을 스페인인이 되게 할 수 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슬프거나 기쁜 이야기로 뒤범벅이 되어, 하늘이 우울한 푸른색으로 보이게 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상징학연구소> 2024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