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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A 백남준 기념관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전시기간 : 상시
전시장소 : SeMA 백남준기념관 1층 전시실
관람시간 : 평일(화–금) 오전 10시–오후 7시, 토 · 일 · 공휴일 오전 10시–오후 7시
입장시간 :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휴관일 : 1월1일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개관)
관람료 : 무료
도슨트 안내
* 주민 도슨트 전시 해설 프로그램
- 평일(화-금): 사전예약제 운영(10인 이상 예약 가능/ 문의: 02-2124-5242, 5277)
- 토·일요일: 15:00, 일 1회 운영(24/3/30~)
* 구글 플레이 또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도슨팅" 앱을 다운 받으시면 무료 전시 해설 서비스를 상시 이용 가능합니다.
전시부문 : 복합설치
전시장르 : 상설
참여작가 : 김상돈, 레벨나인, 김경호, 송면근
작품수 : 9점
주최 및 후원 :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문의 : 유은순 02-2124-5268
전시 안내
백남준기념관의 상설전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는 1984년, 삼십여 년 만에 모국을 방문한 백남준의 기억과 상상의 여정을 따라가는 전시입니다. 전시의 서사는 기념관의 고정 프로그램인 <백남준 이야기>, <백남준 버츄얼뮤지엄>, <백남준의 방>, <백남준에의 경의>에 맞춰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984년을 출발점으로 백남준의 생애를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은 채 비순차적으로 전개됩니다.
1부는 백남준의 주요 기억을 주제화하고 관련된 사유를 자료와 조형물로 엮은 열 편의 노트입니다. 이들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공식적 기록물이나 논리적인 학술연구가 아니라 백남준의 말, 글, 작업, 지인들의 회고담 사이를 엮어가며 행간을 읽어내고 백남준의 생각을 따라가 보는 창의적, 수행적 노트입니다. 1부에서 이어지는 2부는 백남준의 플럭서스 시절을 중심으로 구성된 멀티스크린패널 스테이션입니다. 본 전시의 일환인 대기 화면을 벗어나면 자유롭게 백남준의 생애와 관련 자료를 탐색할 수 있는 인터랙션 화면이 펼쳐집니다. 3부는 백남준 생애의 시작과 끝을 연동하는 복합설치전입니다. 4부는 기념관 입구부터 중정과 실내 곳곳에 숨은그림찾기처럼 포진된 조형물들로, 백남준의 단상, 혹은 철학을 조형적으로 풀어낸 디오라마의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백남준의 주된 표현 매체였던 빛, 세모·네모·원의 기초 형상, 주사선, 색동, 픽셀 등을 모티프로 공간을 안내하는 표징이 됩니다.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및 작가, 기획자가 함께한 협력 전시로서, 백남준기념관의 개관전인 동시에 그 각각의 프로그램인 <백남준 이야기>, <백남준 버츄얼뮤지엄>, <백남준의 방>, 그리고 <백남준에의 경의>를 개시하는 첫 번째 기록이 될 것입니다.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작품 설명
문―문―문
백남준기념관의 철제 대문을 중심으로 앞뒤에 빛의 문과 영상의 문을 설치하여 3중의 문을 연출했다.
빛의 문은 조명 박스로, 영상의 문은 사각의 아치 모양으로 부착된 9개의 모니터로 제작됐다.
영상의 문에는 5대양 6대주를 연결한 세계 최초의 위성예술축제였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의 장면, 34년 만에 귀국하여 창신동을 찾아오는 백남준의 모습, 그리고 오늘의 동대문, 창신동, 숭인동 풍경이 등장한다.
문―문―문은 마치 타임머신을 통과하듯 시공간을 넘나든 백남준의 예술세계와 오십 대에 자신의 어린 시절 집터를 되짚어 왔던 백남준의 기억여행, 그리고 백남준의 세계에 들어서는 우리 여정의 시작을 상징한다.
수―월
대야에 담긴 물에 햇빛이 반사되어 마루 천장에 물 그림자가 맺히는 현상을 관찰했던 백남준의 어린 시절 추억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어린 백남준이 품었던 무한한 호기심과 창안에 경의를 바치는 수―월은 놋대야 아래 거울, 유리, 조명을 설치하여 과학과 예술, 공학의 영원한 원천인 빛과 상의 세계를 환기시킨다.
웨이브
소통과 연결의 매개였던 백남준의 빛의 세계에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다.
백남준은 만물의 인연을 만들어 주는 매개물인 빛―길을 모티브로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1003대의 TV로 영상을 쌓아올린 거대한 빛의 탑인 다다익선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웨이브는 다다익선의 형태를 취하되 TV 대신 3천여 개의 투명 아크릴 조각을 사용하여 별도 전원장치 없이 주변 환경을 투과하며 비춘다.
피아노 테이블
피아노는 어린 시절 백남준에게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준 악기였다. 그러나 관습과 권위에 도전한 이십 대의 백남준에게 오랜 문화적 전통의 상징인 피아노는 유희와 풍자, 해체, 재구성의 대상이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백남준은 멋진 곡조를 연주하다가도 피아노를 밀쳐 넘어뜨리거나 망치로 때리고 그 속에 이물질을 채워 넣거나 형태를 개조하기도 했다.
그는 창조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파괴를 서슴지 않는 개척자였다. 백남준기념관은 2016년 그의 탄생일을 기념해 거행된 발대식에서 창조와 파괴, 탄생과 죽음을 하나로 보았던 백남준의 뜻을 기려 피아노를 부수는 축하 퍼포먼스를 가졌다. 피아노 테이블은 당시 부서진 피아노의 잔해를 재생한 작품으로서, 지역의 주민협의체가 운영하는 백남준 카페에 설치됐다. 백남준의 유치원 친구 이경희 여사가 헌정한 책이 놓여있다.
TV 경―자화상
백남준은 여러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백남준의 자화상은 자신의 얼굴을 그린 초상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며 남을 비추는 장치다.
1989년 작 자화상은 빈 TV 수상기 상자 안에 TV 모형 선글라스를 씌운 인간의 마스크와 불상, 지구본, 피아노 미니어처, 꽃 등이 들어있다. 이는 구체적인 백남준의 생애 자화상이자 현대 문화의 초상이다.
백남준기념관에는 기존의 속을 비워내고 다른 것들로 채워진 TV 수상기가 벽을 관통하도록 설치되어 전시실과 카페 사이를 변형시켜 볼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테크노 부처
백남준의 세계는 선 불교 철학, 노자, 장자, 샤머니즘 등 동양의 고전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대 기계문명을 인간화했다고 일컬어지는 백남준의 업적은 통신과학기술을 부정하기보다, 그것에서 감(感) 하고 통(通) 하는 인간의 능력을 강화시킨 것이었다.
테크노 부처는 백남준의 역작이었던 에 경의를 표한 작품이다.
자신의 모습이 실시간으로 상영되는 TV 화면을 바라보는 돌부처가 의 원형이라면, 테크노 부처는 카메라에 다각렌즈필터를 삽입하여 부처의 상이 여러 개로 분산되어 보이도록 했다.
백남준이 정보의 인풋과 아웃풋 회로를 순환 형태로 개방했다면, 테크노 부처는 인풋된 정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산되는 디지털 시대의 문화형태를 참조한다.
백남준의 거의 모든 것 - 백남준 버츄얼뮤지엄
백남준의 거의 모든 것 - 백남준 버츄얼뮤지엄은 백남준의 연혁, 전시 경력, 작품, 어록 등 백남준의 예술과 생애에 관한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는 버츄얼뮤지엄이다.
관객이 아날로그 TV 수상기 앞에 앉아 TV 채널 다이얼로 메뉴를 선택하며 백남준에 대한 데이터 세계를 유영할 수 있다. 버츄얼뮤지엄에는 782건의 자료 정보와 425장의 이미지 데이터가 수록되어 있다.
세계인이었던 백남준의 행보에는 128개의 도시 이름이 등장한다.
백남준의 거의 모든 것 - 백남준 버츄얼뮤지엄의 초기 화면에는 급진적인 국제 전위예술운동이었던 플럭서스의 개념 지도를 배경으로, 플럭서스 주요 작가로서 백남준이 벌였던 퍼포먼스의 모습과 현장의 소리가 흐른다.
백남준의 거의 모든 것 - 백남준 버츄얼뮤지엄은 향후 백남준기념관에 축적되는 백남준 관련 이야기와 정보를 업로드할 수 있는 열린 데이터베이스 미디어로 설계됐다.
백남준의 책상
백남준은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생각했다.
그의 부름에 평소 백남준을 잘 알던 지인들이 왕생(往生), 즉 삶으로 돌아갔다.는 조사를 바친 이유다.
백남준의 책상은 백남준의 태내기 자서전과 유치원 친구 이경희 여사의 회고록 일부를 미디어 극장처럼 연출한 설치물이다.
독서와 글쓰기, 추억여행은 백남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활동이었다.
종이로 된 공책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라디오와 TV, 프로젝터가 작동한다.
배경에 흐르는 음악은 백남준이 자신의 필름 전자 달 Electronic Moon #2(1966-72)에 사용한 클로드 드뷔시의 달빛 Clair de Lune이다.
백남준 아카이브를 찾아서
2006년 타계한 백남준의 작업실에는 평소 그가 모았던 사슴뿔, 장난감, 구제 기계, 불상 등 많은 유품이 남겨졌다. 그것들은 백남준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이 되었다.
작가의 상상과 영감이 묻어나는 아카이브를 실제로 만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백남준기념관은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며 그의 유품과 유사한 물건을 구제 시장에서 수집하고, 모친의 재봉틀과 고장난 TV 등 백남준의 생애에 주요한 기억 소품을 추가로 제작하여 백남준 아카이브를 찾아서를 구성했다.
백남준 아카이브를 찾아서는 백남준 아카이브의 단순한 복제물을 넘어 백남준을 기억하는 이들의 기억 소품이 모이는 제2의 아카이브가 되기를 희망한다.
디지털 액자에 전시된 드로잉은 백남준이 남긴 1998년의 드로잉 가운데 많은 수를 차지한 금강산 드로잉의 일부다.
백남준 이야기 -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백남준 이야기 -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는 1984년 백남준의 한국 방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의 예술 세계와 어린 시절 무의식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백남준이 읽었던 책, 들었던 음악, 학창시절의 흔적, 그가 남긴 드로잉과 메모, 지인의 회고 등을 토대로 그의 예술 세계의 원천을 탐구한다.
백남준기념관
소재지 : 서울 종로구 종로53길 12-1 번지
백남준기념관은 세계적인 현대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공간입니다.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성장기를 보낸 집터에 조성된 이곳은 1960년에 지어진 단층 한옥의 원형을 보전하여 유년 시절 백남준의 세계를 그려보게 합니다. 인근 지역주민들이 운영하는 '백남준 카페'는 방문객들에게 쉼터를 제공합니다.
백남준
출생 : 1932.07.20. 서울특별시
사망 : 2006.01.29.
가족 : 배우자 구보타 시게코
학력 : 도쿄대학 미술사학 학사
수상 : 2006년 미국 타임지 선정 아시아의 영웅, 2000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경력 : 1999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석좌교수
활동 : 전시, 영화, 도서, 예술작품, 관련활동
예술사를 뒤흔든 백남준의 결정적 순간
1. 존 케이지와의 만남
백남준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1932년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개인 교습을 통해 피아노와 작곡을 배웠으며, 일본 도쿄대학 미학미술사학과에서 아놀드 쉔베르크로 논문을 쓴 후 좀 더 공부하기 위해 1956년 뮌헨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새로운 음악을 모색하던 백남준에게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1958년 8월 독일의 다름슈타트에서 열리는 하계 강좌에서 작곡가 존 케이지를 만난 것이다.
존 케이지(1912-1992)는 미국의 현대음악가로 작곡 외에도 판화 제작, 드로잉, 글쓰기, 버섯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현대 예술에 많은 영향을 미친 중요한 예술가이다. 작곡가였던 존 케이지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곡은 [4분 33초]라는 곡으로 4분 33초 동안 연주자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것이다. 연주자가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이 환경의 소리를 발견하게 한 이 곡은 동양의 공(空) 사상을 예술로 풀어낸 것으로 당시 예술계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존 케이지는 절대적인 침묵이란 없다는 깨달음과 환경의 소리(소음)가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내 삶은 1958년 8월 저녁 다름슈타트에서 시작되었어. 존 케이지를 만나기 전 해인 1957년이 내게는 기원전(B.C) 1년이 되지.”
- 백남준
존 케이지의 공연을 접하기 전까지 백남준은 미국인이 동양의 전통을 가지고 무얼 하겠나 싶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그의 공연이 끝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존 케이지를 통해 동양의 선불교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깨달음을 얻었고 백남준은 존 케이지를 평생의 스승으로 여겼다
백남준은 존 케이지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존 케이지에의 경의](1959),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라버린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습곡](1960) 등의 작품으로 화답하였다. 전자음악에 머물러 있던 백남준은 환경의 소리를 보여주고자 소리 콜라주를 시도하거나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음악이라는 영역을 해체하고자 했다. 그는 “아놀드 쉔베르크가 무조성을, 존 케이지가 무작곡을 했다면 자신은 무음악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가 플럭서스 예술가들과 함께 한 [심플](1960), [머리를 위한 선](1961) 등의 파격적인 퍼포먼스는 귀로 들리는 음악뿐 아니라 눈으로 보이고 몸으로 느껴지는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였는데, 이것을 그는 액션 뮤직이라고 칭했다. 백남준의 이러한 행동은 그를 금방 유명하게 만들어주었고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존 케이지에게서 얻은 깨달음은 이미 스승을 넘어 전혀 새로운 예술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이 때까지 100회 이상의 공연을 했었는데 조금 파괴적이었던 공연만 사람들이 말하고 다니죠. 그것은 대중들은 폭력을 사랑한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존 케이지도 그 중 한명이구요.
- 백남준
2. TV를 반격하라-백남준의 음악상자, 실험TV
플럭서스 친구들과 액션 뮤직 공연을 하면서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던 백남준은 당시 독일 가정에 보급되던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전자 매체에 주목하였다. 백남준은 자신의 첫 번째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독일 파르나스 갤러리, 1963)에서 장치된 피아노와 함께 13대의 텔레비전을 전시함으로써 전자 미디어에 대한 자신의 예술적 사유를 보여주었다. 그는 피아노에 다양한 장치를 가함으로써 기존 음악 질서에 도전하고 음악의 영역을 해체하였으며, 물리적 조작을 거친 13대의 실험 텔레비전을 전시함으로써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받는 수동적 매체가 아닌, 텔레비전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백남준의 [총체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전동 모터가 돌아가고 헤어 드라이기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오며, 어떤 건반은 누름과 동시에 실내의 전원이 모두 꺼지도록 장치하였다. 그의 피아노는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과 촉각 등 총체적 감각을 요구하는 그런 피아노였다.
전시장에는 모두 4대의 피아노가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나 멀쩡한 피아노 한 대를 부수어 버린 사람이 있었는데 훗날 독일의 국민 작가가 된 요셉 보이스이다.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는 서로 약속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았던 것인데, 두 사람은 평생을 예술적 동료로서 서로를 지지하며 교류하였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죠.
- 요셉 보이스
그런데 정작 백남준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고장난 것처럼 바닥을 뒹굴고 있던 13대의 텔레비전이었다. 그는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조작해서 전혀 새로운 기능을 가진-기능이 없는-예술 작품을 만들었던 것인데, 그것이 바로 실험 TV이다. 백남준의 실험 TV 들은 이후 뉴욕에서의 전시 ‘백남준: 전자 TV, 칼라 TV 실험, 3개의 로봇, 2개의 선 박스와 1개의 선 캔’(뉴욕 뉴스쿨.1965)에 대거 등장하였는데, 화면에 자석을 가져다 대면 아름다운 도형으로 바뀌는 [자석 TV], 구리선에 전기를 통하게 해서 화면을 일그러뜨리는 [닉슨 TV], 관람객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음향의 증폭을 보여주는 [참여 TV] 등 모두가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실험 TV들이었다.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실험 TV가 항상 재미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갤러리 입구에 걸어놓은 소머리만 기억했다지...
- 백남준
3. 인간화된 기술
백남준은 독일에서의 개인전 이후 좀 더 텔레비전을 비롯한 전자 매체에 집중하고 싶었고 196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기술자 슈아 아베를 만난다. 그리고 백남준은 슈아 아베와 함께 [로봇 K-456]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로봇 K-456]은 팔을 흔들며 걸을 수 있고 마른 콩을 배설하는 로봇으로 20채널의 라디오로 조정되며 10채널의 데이터 기록기를 갖춘 로봇이었다. 스피커로 만들어진 입, 종이 모자, 소형 선풍기 배꼽으로 구성된 이 로봇은 생긴 것처럼 험악한 괴물이 아니라 아주 연약하고 사람의 돌봄이 필요한 인간화된 로봇이었다. 백남준은 “나의 로봇은 고용 창출 효과가 뛰어나다 몇 걸음 옮길 때마다 고장나기 때문에 수시로 4-5명의 엔지니어가 달라붙어 고쳐야 한다. 요즘 같은 시절 나의 로봇은 매우 유용하다”라고 하면서 당시 만연해있던 기술 만능 주의를 경고하고 기계 역시 유한한 인간의 발명품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1982년 휘트니 미술관 전시에서 교통사고로 [로봇 k-456]이 사망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실현시켰다.
나의 로봇을 움직이려면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많은 실업자들을 구제할 수 있어
- 백남준
1965년 백남준은 뉴욕의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슈아 아베, 로봇 K-456과 함께 뉴욕 땅을 밞았는데 이 때 공항에 백남준을 마중 나온 사람이 샤롯 무어먼이다. 그녀는 당시 뉴욕의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을 이끌던 실험적인 첼리스트였다. 백남준은 샤롯 무어먼을 위해 투명한 합성수지로 만든 [TV 브라]를 만들어 선물했고 샤롯은 이 [TV 브라]를 착용하고 첼로를 연주하였다. 그녀는 생상의 곡을 연주하다가는 갑자기 물이 가득 찬 드럼통에 들어갔다가 나와 다시 연주를 계속하거나 백남준의 몸을 첼로 삼아 연주하기도 하는 등 전통적인 음악 연주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연주를 보여주었다. 음악과 미디어, 인간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연주되는 이러한 공연은 백남준의 아이디어에 의한 것으로 사이버네틱스에 대한 백남준의 해석이 담겨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전 세계를 누비며 파격적인 공연을 하였다. 백남준은 그녀를 위해 [TV 첼로]도 만들어 주었고, 백남준 자신이 첼로가 되어 공연에 등장하기도 했다. 간혹, 백남준은 TV 모니터를 바라보며 스스로 참선하는 부처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백남준과 샤롯의 공연은 백남준이 주창한 인간화된 기술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중요한 퍼포먼스로 칭송되고 있다.
4. 예술가, 미래를 사유하다
백남준은 예술가는 미래를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로커펠로 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글 [종이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1968)에서 기술의 발전으로 등장한 뉴미디어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적고 있다. 또한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1974)이라는 연구 논문에서는 ‘전자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라는 지금의 인터넷을 의미하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미국 사회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자고속도를 건설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이것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며 진보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생각해낸 전자 고속도로(인터넷)은 약 30년 후 미국 대통령이 된 빌 클린턴의 연설문에서 언급되었으며 오늘날, 인터넷은 전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체가 되어있다.
전자고속도로라는 나의 아이디어를 빌 클린턴이 1992년 자신의 대선 공약에서 사용했지. 그는 나의 아이디어를 훔쳤어. (Bill Clinton stole my idea)
- 백남준
백남준은 미래를 사유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의 기획자로서 당대의 커뮤니케이션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는 슈아 아베와 함께 영상을 조작할 수 있는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제작하였는데 이 기계는 마치 디제잉을 하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방송 영상 이미지를 스캔하고 합성하여 색을 입힐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백남준은 이 기계를 가지고 보스턴의 방송국인 WGBH에서 4시간 동안 생방송을 진행하였고 그 작품이 바로 [비디오 꼬뮨](1971)이다. [비디오 꼬뮨]은 4시간 동안 비틀스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조작된 영상 이미지와 일본의 상업광고가 콜라주 형식으로 편집된 것이다.
콜라주 기법이 유화물감을 대신하듯이 언젠가는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때가 올 것이야.
- 백남준
1960년대의 백남준은 실험 TV에서 물리적 조작을 가해 텔레비전이 수신하는 이미지를 바꾸었다. 이제는 백-아베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미국 전역에 자신이 조작한 방송 이미지를 전파시켰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의 내부 회로를 조작하여 관람객의 참여를 끌어들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방송용 비디오 작업을 통해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고자 했으며 비로소 백남준의 참여 TV가 전 세계를 향해 순항을 시작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5.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
백남준은 1984년 위성을 이용해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생방송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 연출한다. 이 ‘일생일대의 전 지구적 만남’을 위해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가 친구들을 총동원하였는데 그는 뉴욕과 파리의 스튜디오를 연결하여 전 세계 사람들에게 존 케이지, 샤롯 무어먼, 요셉 보이스의 연주와 머스 커닝엄의 춤을 보여주고 이 위대한 예술가들의 만남을 목도하게 한다. 이들의 연주 장면은 백남준의 조작을 거친 화려한 비디오 이미지로 변주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미 존재하던 것들을 전파에 담아 새로운 인연으로 맺어줌으로써 전 지구를 무대로 한 복합적 심포니의 지휘자가 되었다. 백남준에게는 이러한 위성 프로젝트가 국가 간 존재하는 시차와 다양한 상식, 선입견, 문화적 차이 등을 뛰어넘어 지구의 반대편을 연결하는 쌍방향 교신이었 정보의 균등을 제공함으로써, 평화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퍼포먼스였다.
백남준은 베트남 전쟁이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인의 오해와 정보의 결핍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재즈가 흑인과 백인을 이어주었고 록 음악이 젊은 층과 기성세대를 이어주었듯이 비언어적 소통으로서 음악과 춤이 주는 풍요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이 담긴 [글로벌 그루브](1973)가 전 세계의 케이블 방송 채널을 연결하는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서막이었다면,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이어 제작된 [바이바이 키플링], [손에 손잡고]등 위성 프로젝트는 그 상상의 공동체를 전 세계 거실의 텔레비전에 실어 보낸 놀라운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1993년 백남준은 전세계 미술인들의 큰 잔치인 베니스비엔날레의 독일관 작가로 초청되었다. 통일 후에 처음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의 독일관에 극동의 한국 출신 작가이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백남준과, 극서(미국)에 살고 있는 독일 출신의 작가 한스 하케가 함께 선정되어 전시를 연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결합이라는 독일관의 조합은 비엔날레 기간 내내 회자되었고, 백남준이 출품한 [일렉트로닉 슈퍼 하이웨이 : 울란바토르에서 베니스까지]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전시장 주변의 정원에 마르코 폴로, 칭기즈칸, 훈족의 왕인 아틸라, 요셉 보이스의 생명을 구한 크리미안 타타르인, 한국의 시조인 단군의 로봇을 만들어 설치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동양과 서양을 매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백남준은 인터뷰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쟁을 피하며 진보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정복과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기획자로서 예술가와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이야기하였다. 백남준이 평생에 걸쳐 자신의 삶과 예술로 보여주었던 바로 그 가능성처럼.
발행일 : 2012. 07. 16.
글 구정화 학예연구원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고 쌈지스페이스 큐레이터를 거쳐 2004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 재직하며 「열개의 이웃」,「새로운 주문자」,「아트링크」,「내일을 여는 책방」 등의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2011년부터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원으로 일하며 일찍이 백남준 선생이 실천하신 매개로써의 예술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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