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0일부터 17일까지 중국 동북 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지역에 있는 고구려 유적답사와 백두산 등반을 다녀왔는데 돌아와서 기행문을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이제서야 레포트를 올리네요.
기다리신 분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올리겠다고 제가 다짐한 것이기에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올립니다.
쓰다보니 내용이 길어졌습니다. 읽기전에 미리 알고계시는 것이 좋으실 듯 합니다. ^^;
다녀온뒤 바로 쓴게 아니고 다니면서도 열심히 설명 듣기보다는 딴짓하기 바빠서 밑에 쓴 내용중 틀린 부분이 분명 있을겁니다.
그것도 많이...
네.. 인정합니다. 아주 많이... ㅡㅡ;;
그러니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조용히 멜 찔러주세요.. 후사합니다.
멜로 안하고 밑에 리플 단다고 뭐라카겠습니까만... ^^;;
그럼 부족하지만 시작합니다.
시~이~작~~
* 고구려 유적답사 및 백두산 등반 기행문
드디어 기대하던 8월 10일이 되었다. 고구려 유적 답사 및 백두산 등반을 위한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날씨는 아침부터 좋았다. 오전 8시에 대련에서 심양으로 떠나는 기차를 타고 심양으로 출발하였다. 대련과 심양은 기차로 약 4시간이 소요된다. 서울서 대구 정도의 거리인 듯 하다. 하지만 땅이 넓은 중국에서는 대련-심양의 거리는 마작을 두다가 잠시 다녀오는 거리라고 한다. 확실히 대륙적 기질이 있는 사람들의 통이 넓은 사고방식이다. 대련에서 심양을 가는동안 좌우로 보이는 풍경은 무척 넓은 평야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넓은 땅에 빼곡히 심어져 있는 옥수수들이다. 옥수수는 정부에서 가축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전부 매입한단다. 그래서인지 옥수수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심양에 도착하여 호텔에 들어가 체크인하고 오후 일정인 산업 시찰에 들어갔다. 심양에 있는 농심 관계자분과 간단한 간담회를 통해 농심의 중국사업 성공관련 부분을 듣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심양 개발특구에 있는 삼보컴퓨터에 가서는 삼보컴퓨터의 규모와 중국 현지에서의 사업방향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8월 11일 둘째날은 본격적으로 고구려 유적 답사에 나섰다. 고구려 연구회가 점심때 심양공항에 도착하는 관계로 심양공항에 들러 고구려 연구회와 합류하여 12시 10분에 공항에서 출발하게 되었다.
첫 목표는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인 환인이다. 오후 4시경 오녀산성 근처에 도착하여 혼강에서 배를 타고 오녀성 주변을 돌면서 오녀산성의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내일은 오녀산성에 올라갈 계획이다. 오후 늦게부터 날씨가 흐려져서 비가 많이 왔다. 내일도 비가 많이 오면 오녀산성에 못 올라갈 수도 있다.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혼강은 지금은 댐을 막아서 수위가 상당히 올라가 있는 상태였고 중국의 큰 강들이 규모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강의 개념을 훨씬 넘는데 혼강은 규모가 큰 강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넓은 강이라 할만 했다. 물론 댐을 막아서 그런 부분도 있을 것이다. 강에서 바라보는 오녀산성은 정말 천혜의 입지조건으로 전시에 수비하고 전투하기에 무척 유리한 위치에 있다. 내가 적군의 장수라면 정말 공략하기 난해한 성임을 인정할 것이다.
(사진1 : 혼강에서 바라본 오녀산성의 모습, 산 위에 길게 보이는 바위는 좌우 길이가 1km가 넘는다.)
8월 12일 셋째날은 오녀산성을 등반하게 되었다. 8시 15분경 귀빈루빈관을 출발하여 9시 15분경 오녀산성 아래쪽에 도착하였다. 오녀산성의 높이는 820미터인데 올라가는 방법이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입구부터 시작되는 돌 계단이다. 직선으로 되어있는 이 돌계단은 정상까지 이어져있는데 계단의 높이가 약간씩 불규칙하고 계속되는 계단으로 인해 쉽게 피로가 오고 경사도가 약간 가파르다는 단점이 있지만 직선로이기 때문에 올라가는 속도는 빠를 수 있다. 또한가지 방법은 계단을 가로질러 좌우로 지그재그 형태로 난 산길이다. 흙을 밟으며 올라가는 이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관절에 큰 무리를 안주는 편안한 길이다. 다만 전체적으로 걷는 길이는 더 많기에 올라가는 속도는 늦을 수 있다. 두가지 길 중에서 일단은 단순하게 직선으로 나있는 길을 선택했다. 올라가면서 약간의 후회는 있었지만 일단 선택한 길이고 (중간에 옆길로 빠지면 편안한 길이 있지만 그래도 처음 선택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연세가 많은 분들도 꿋꿋히 올라가시기에 나도 열심히 올라갔다. 오녀산성은 홀승골성 또는 홀본성이라고도 불린다. 2000년의 세월을 벼텨온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동쪽벽은 그나마 잘 보존이 되어 있었다. 일부 최근 손을 본 부분이 있지만 동쪽성벽의 튼튼한 모습은 역시 고구려인들의 속쌓기와 겉쌓기를 통해 견고하게 맡물려 있는 그들의 기술을 엿볼수가 있었다.
그리고 서문은 어긋문의 형태를 띄고 동문 역시 들어오는 적들을 독안에 가둬두고 무찌를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어 그당시의 전략적인 완성도를 가늠할 수도 있었다. 오녀산성에서 본 병영터에는 그당시에도 쪽구들을 사용하여 온돌시스템을 이용한 흔적을 볼 수가 있었다. 참으로 똑똑하고 창조적인 민족이다.
오녀산성에서 한참을 둘러보고 오전에 올라갔던 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더 어려운 곳이었다. 바위 사이로 난 길이었는데 경사가 무척 가파르고 일부는 철계단으로 되어있는데 철 계단 역시 경사도가 무척 급해서 내려갈 때 두손으로 단단히 잡고가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한 길이었다.
점심식사 후 2시경 빈관을 출발하여 통화를 거처 집안으로 출발하였다. 집안에 가는 도중에 있는 관마장 산성은 집안으로 통하는 고구려의 마지막 성이다. 주변의 산들이 성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이기에 중간에 세군데만 막아서 방어할 수 있는 경제적인 성인 것이다. 조금 더 가면 고대 채석장이 있다. 고대 채석장은 고구려인들이 돌을 다루는 마법사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양질의 돌들을 캐내던 곳이었다. 위쪽으로 올라가서 채석장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사진2 : 오녀산성 동쪽 성벽의 모습, 이끼가 있는 부분은 고구려 시대의 것이다.)
(사진3 : 압록강변에서 본 북한의 모습, 사진의 날짜가 잘못되어 있다. 8월 13일 아침에 찍은 사진이다.)
8월 13일 넷째날은 8시 30분경 집안시내에 있는 박물관에 들러서 주변에서 발굴한 고구려 유적들에 대한 전반적인 형태들을 볼 수가 있었다. 박물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깔끔하게 잘 정돈된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다만 전시물 중에 상당수가 모조품이고 실제는 발굴주체인 길림대학이나 다른 곳에 보관중이라고 한다. 박물관에서는 고구려 토기의 형태와 왕릉의 내부에 있는 벽화들의 모습, 고구려의 초기-중기-후기의 무덤의 형태변화 등을 볼 수가 있었고 광개토태왕비의 탁본을 볼 수가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서 五盔墳(오회분:다섯무덤) 중 5호 무덤을 보고 장수왕능을 보러 갔다. 7층 높이로 1100개의 돌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장수왕능은 고구려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솜씨를 잘 보여주는 결과물 중의 하나이다.
돌 하나에 몇톤씩이나 되는 것들을 쌓은 것도 대단한데 무게를 못이겨 밀려나가지 않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쓴 것을 보면서 단순한 왕릉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사진4 : 장수왕능 앞에서 찍은 사진)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 있는 광개토태왕비와 광개토태왕능을 보고 오후에는 환도산성으로 출발했다.
(사진5 : 광개토태왕비 앞에서 찍은 사진, 바로 앞에서 보면 실제 크기가 무척 크다.)
환도산성은 현재 발굴중이어서 아쉽게도 직접 돌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근처에서 바라보며 대략적인 설명을 들을 뿐이었는데 근처에서는 사진도 찍지 못하게하여 아쉽게도 사진을 못찍은 몇 안되는 곳이다.
환도산성 근처에는 산성하고분군이 여기저기 모여있는데 과거에 수백기가 존재하다가 지금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저녁때는 집안 시내에 있는 국내성에 도착하였다. 이곳역시 아쉽게도 성벽은 거의 훼손되어 있는 상태로 높이는 10여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지금은 집안 시내 중심가에 편입되어 예전의 흔적만 어느정도 알 수 있는 정도밖에는 안되었다. 앞으로는 이 국내성터가 아예 없어질지도 모르기에 더욱 안타깝다.
(사진6 : 국내성 성터 앞에서 찍은 사진, 성벽이 많이 훼손되어 지금은 흔적을 볼 수 있는 정도이다.)
집안에서 국내성을 보고 바로 통화로 출발하였다. 드디어 백두산을 향해 떠나기 위해 기차를 타러 가는 것이다.
저녁 7시 20분경 통화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밤 9시에 통화에서 이도백하로 떠나는 기차를 타게되었다.
3층짜리 침대가 있는 기차인데 운이 나쁘게 3층에 올라가게되면 몸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은게 흠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8월 14일 다섯째날이 밝았다. 약 8시간의 여행끝에 새벽 4시 50분경 백두산 밑 첫마을인 이도백하에 도착했다. 이도백하역의 날씨는 조금 쌀쌀한 느낌도 있었지만 날이 밝으면서 햇볕도 나고 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장백산(백두산) 산림지대를 통과하면서 주위를 보니 숲이 무척 울창하다. 잎은 푸르고 나뭇가지는 힘차게 뻗어있다. 원래 일정은 숙소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오전 식사 후에 백두산 등반을 시도하기로 했는데 새벽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바로 백두산 등반을 시도하기로 했다. 최근 20여일간 해가 나온날이 3일이란다. 현지인들 및 백두산 등반경험이 많은 우리 인솔자의 판단으로 일정을 바꿔 바로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사진7 : 백두산 천지 올라가는 도중에 차안에서 찍은 사진)
백두산 공원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6시 05분... 짚차에 6명씩 타고 백두산으로 출발했다.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다. 걸어서는 2-3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백두산 천지를 오가는 짚차 운전사들은 길을 다 외고 있는 듯 속력을 내어 정상으로 향했다. 약 20여분 차타고 가니 천지 바로 밑에 도착했다. 정말 눈앞에 백두산 정상이 있는 것이다. 걸어서는 150-200미터 정도만 올라가면 된다. 빨리 올라가고 싶은 욕심에 카메라를 들고 뛰었다. 하지만 곧 후회하게 되었다. 고산지대이면서 눈앞의 경사가 생각보다 가파른 것이었다. 중간쯤 가서는 헥헥 거리면서 한발 한발 떼는 것이 힘들었다. 200미터 걸어가는게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드디어 정상에 올라섰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 힘들었던 것을 깨끗하게 씻어주고도 남았다. 그정도의 힘든 것도 없이 이런 풍경을 보겠다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누구는 20번을 와서도 맑은날 천지를 한번도 못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처음 와서 이런 맑은날의 천지를 보게되다니... 정말 운이 좋다.
백두산 천지는 맑은날 올라간 사람들보다는 구름낀 흐린날 올라간 사람들이 목이 쉬어 내려온단다. 맑은 날은 그냥 혼자 감탄만 하지만 흐린날 올라간 사람들은 구름사이로 천지가 보일때마다 고함을 지르기 때문에 목이 쉬어 내려온다고 한다.
어쨌든 쉽게 보기 힘든 맑은날의 천지는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20mm 광각 렌즈로는 전체를 잡을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슬라이드 필름으로 난사를 했다. 어짜피 쉽게 오기 힘든 곳이므로 여러장 중에서라도 하나는 건져야하지 않겠는가...
(사진8 : 백두산 천지 앞에서 찍은 사진, 긴팔이 더워보인다구요?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는 손이 시러웠다.)
혼자 갔으면 오전 내내라도 있고 싶은 곳이지만 함께 간 사람들의 일정도 있어서 40여분정도 있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는 내내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또 올 날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았다.
오후에는 장백폭포와 지하삼림, 소천지를 보았다. 장백폭포는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찍은 것이 전부라 사실 큰 감동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비가 많이 와서 폭포의 물이 많아서 배경으로 보이는 폭포가 그래도 볼만했다는 것이다. 장백폭포 가는 길 양쪽에는 온천과 폭포의 차가운 물이 같이 흐른다. 한쪽은 발을 담그면 뜨거워서 어쩔줄을 모르고 장백폭포의 물은 너무 차가와서 발을 오래동안 담그지 못한다. 두 곳을 왔다갔다 하면 중간의 느낌이 오려나...
온천물에 삶아먹는 계란도 맛이 있지만 사실은 어느정도 삶아서 온천물에 넣는단다. 그래도 계란은 맛이 있으므로 한번쯤 사먹는 것도 좋으리라.. 비싸지도 않다.
오후 일정중 가장 좋았던 것이 지하삼림이었다. 삼림의 형태가 원시림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곳인데 이끼가 두꺼운 곳은 걸어다닐때 푹신푹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 들 정도이고 나무들도 곧고 높이 뻗어 있어서 숲속에 들어가면 정말 외국에 온 것 같다. (음.. 중국은 외국이었지... ㅡㅡ;)
(사진9 : 지하삼림 가는 도중 찍은 사진)
지하삼림 중에서 가장 멋있는 곳이 약 20-30미터 높이의 절벽 밑으로 펼쳐진 지하삼림 숲속이다. (그래서 지하삼림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지만..) 나무의 높이도 보통 10미터에서 20미터 정도까지 큰 나무들도 있는 듯 하다. 땅 아래 그런 울창한 숲이 눈앞에 광활하게 펼쳐지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이곳에 가려고 숲속을 30분 이상 걸어갔는데 그 노력이 전혀 아깝지가 않은 곳이다. 물론 가는 중간중간에도 발길을 잡는 아름다운 풍경과 신비로운 곳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이곳만 오후 내내 돌아다녔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을 것 같은 곳이었다. 지하삼림에 주로 많이 있는 수종은 자작나무, 전나무, 낙엽송, 마가목 등이다.
(사진10 : 지하삼림 앞에서 찍은 사진, 잘 안보이겠지만 반대쪽 절벽 윗부분을 잘 보면 희끗한 것이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간 소천지는 길가에서 200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있는데 기대했던 것 보다는 그리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숲 속에 있는 큰 호수인데 나름대로의 멋이 있는 곳이었다.
15일 여섯 번째 날이 밝았다. 아침 6시 30분에 백두산 온천별장을 떠나 용정으로 향했다. 이도백하를 뒤로하고 떠나는 마음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참고로 이도백하는 장백산에서 내려오는 물 중 장백폭포 쪽으로 흐른 물이 두 번째 지류라 하여 이도백하라고 한다. 첫 번째 지류를 두도백하(첫번째라 일도백하라고 하지 않는다.), 두 번째를 이도백하, 세 번째는 삼도백하, 네 번째 사도백하까지 있다. 이도백하는 일제때 조선사람들이 많이 와서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도백하의 경치를 ‘비산비하 청풍명월’이라고 한다.
장백산맥 중 하나인 시루봉을 넘어 발해산성이 있는 서고성에 도착했다. 발해의 5경인 동경, 서경, 남경, 북경, 중경 중에서 남경이었던 곳으로 추측되는 곳인데 이곳도 성벽이 그리 잘 남아있지는 않았다. 논 가운데 대략적인 흔적이 보일 뿐인데 논이 있고 쌀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은 근처에 조선족이 있다는 얘기란다. 동북 3성 쪽에서 쌀농사를 짓는 곳은 거의 조선족이 사는 곳이라고 하니까... 서고성 역시 주변사진을 찍고 대략 설명을 듣는 정도로 답사를 마쳐야 했다.
오전 10시 50분경 용정에 있는 대성중학교에 도착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유명한 윤동주 시인이 다니던 학교인데 비교적 기념관이 잘 만들어져 있다. 조선족 안내원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잘 정리된 자료들을 볼 수가 있다. 다만 아래층은 기념품 상점으로 꾸며져있는데 대성중학교와는 별 관련없는 단순 기념품 상점이라는게 좀 아쉬웠다.
(사진11 : 용정 대성중학교 앞에서, 뒤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면 잘 꾸며진 자료 전시장이 있다.)
연길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도문으로 출발하였다. 도문은 한국 발음으로는 두만이다. 그래서 도문에 있는 강을 중국에서는 도문강이라 하고 한국에서는 두만강이라 한다. 연길에서 도문까지는 약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고속도로가 왕복 4차선으로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다. 고속도로인데 제한시속은 80Km/h 이다. 생각보다는 고속이 아니다.
도문강은 북한과 국경을 나누는 강이므로 국경지대라는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갔는데 기대와는 달리 긴장감보다는 너무 상업적으로 꾸며져있는 모습에 놀랐다. 상업적 성향이 무척 강하고 인심이 좋지 않았는데 도문강 이라고 적혀있는 비석 앞에서 사진 찍는것도 돈을 받는다. 모든게 상업적이며 조금은 관광객들에게 야박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같은 국경지역인 압록강 근처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왠지 씁쓸하다. 압록강에서도 배를 타봤고 이곳 도문강에 와서도 배를 탔는데 압록강은 친절했던 반면 이곳은 무척 서두르고 안내원도 불친절했다.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가까이 북한쪽에 접근해서 볼 수 있었기에 참아야했다. 북한쪽의 산은 나무가 많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연료의 부족으로 나무를 때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 부분을 밭으로 개간하여 사용하니 이래저래 활용은 잘 하는듯하다. 다만 여름철 비가 많이오면 조금 위험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진12 : 도문강 공원 앞에서 찍은 사진, 뒤에 사람들이 내려다 보고 있는 곳이 도문강이다. 한국말로는 두만강)
도문에서의 관광이 끝나고 도문역으로 출발했다. 이제 다시 처음 출발지인 심양으로 돌아가기 위함이다. 오후 4시에 도문역을 출발하는 침대기차에 몸을 실었다. 약 14시간 정도를 기차에서 보내야 한다. 이제는 침대칸도 적응되어 밤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재미에 시간가는줄 모르게 되었다.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어찌보면 참 지루하고 힘든 시간인데 나름대로 이런저런 재미를 찾으면 그 지루하던 시간이 즐거워진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재미 덕분에 14시간은 금방 갔다. 물론 14시간동안 떠든건 아니다. 내가 그정도로 튼튼하지도 않고 누구도 밤새도록 함께 떠들어줄 정도로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6일 일곱 번째 날이 밝았다. 눈을 떠보니 심양역에 가까이 왔단다. 새벽 6시 30분에 심양역에 도착하여 바로 예약해둔 호텔로 향했다. 얼마만의 5성급 호텔인가... 호텔에 들어가니 눈물이 날정도로 반갑다. 하루 일정을 포기하고 씻고 잠자고 싶다. 하지만 고구려 성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백암성이 남아있지 않은가... 비록 피곤했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아침 식사후 7시 30분에 백암성으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약 3시간 정도만 가면 도착한다니 가볍게 다녀올만 하다. 심양에서 백암성이 있는 등탑현으로 가기위해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이쪽 고속도로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고속도로에 자전거도 다니고 삼륜차도 다닌다. 길 옆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차가 중앙선을 넘어서 지나가고 톨게이트에서는 길 모르는 운전자가 톨게이트 요금징수원을 붙잡고 한참을 무언가를 물어보는 풍경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누구하나 불평하거나 욕하지 않고 그냥 별일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중국의 대륙적 기질로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머리가 복잡하다.
백암성이 고구려 성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백암성은 우리에게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3시간이면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서 물어물어 가는길을 다시 잡았는데 애석하게도 공사중인 길이었다. 큰 버스가 돌아 나오기도 힘든 길이어서 그곳에서 한참을 고생한 끝에 다시 갔던길을 되돌아 나왔다. 그런데 또 이곳에서 한가지 재미있는 풍경을 보게되었는데 동네 길을 막고 주민들이 돈을 받는 것이었다! 차를 정지시키기 위해 긴 막대기에 그럴듯하게 색칠을 하고 몇몇 사람들이 앉아서 돈을 받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운전기사도 별로 대단한 것 아니라는 듯이 그냥 통행료를 지불한다. 재미있는 나라이다. 참고로 큰차는 5원이고 작은차는 2원이란다. 물론 인민폐로....
오후 1시를 훨씬 넘은 시간에 힘들게 백암성이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날이 무덥고 햇볕이 강해서 1시간이 넘는 등반과정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성을 보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올라갔다. 백암성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 성의 아름다운 특징은 치(雉)에 있다. 성벽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치’는 성벽에 접근한 적군을 3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있는 부분인데 이 치성 아랫부분은 10여미터가 넘는 치성을 받치기위해 2-3미터의 굽도리 기단을 계단식으로 올라가며 들여쌓기를 했다. 그런데 모서리 부분은 곡선으로 처리했는데 그 아름다움과 돌을 다루는 솜씨는 가히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13 : 백암성 굽도리 기단의 모서리 부분, 둥그렇게 다듬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하나는 성벽의 모든 돌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큰돌과 돌이 만나는 부분에 층이지면 모서리 부분을 깎아서 다듬은 그랭이 공법이다. 요철이라고 하기엔 모서리부분이라 적합하지 않겠지만 수평을 유지하면서 마주보는 두 돌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모습은 직접 보고 느끼지 않고서는 표현하기 어렵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올라가다보니 오후 3시 25분이 되서야 백암성 정상에 도착하였다. 백암성 정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백암성은 산위에 세워진 성인데 밖에 외성이 있고 안쪽에 내성이 있으며 산 정상에 최후까지 버티기 위한 아성이 있다. 네모로 튼튼하게 쌓은 망대가 있는데 그 주위를 둘러싸는 성이 아성이다. 아성에는 장수가 주둔했으며 최후까지 버티는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이 부분이 점령당하면 아성이 무너졌다고 하는 것이다.
백암성을 다 돌아보고 천천히 내려와서 다시 숙소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은 헤메지 않았다.
(사진14 : 백암성 동북쪽 벽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에 튀어나온 부분이 치성이다.)
17일 드디어 마지막날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아침식사 후 8시 30분에 심양에 있는 고궁을 둘러봤다. 심양 고궁은 청나라 누루하치때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베이징에 수도를 옮기기전에 황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약 6만평의 대지위에 만들어졌는데 보존상태는 좋은 편이지만 조금은 낡았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자세히는 둘러볼 수 없었지만 심양에 갔다면 들러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고궁을 나와서는 비즈니스 실무과정 연수중인 사람들끼리 아모레 심양 공장을 둘러봤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중에서 농심과 함께 현지화에 성공한 기업으로 꼽히는 태평양의 중국 이름이 아모레 이다.
아모레의 중국 사장님을 만나서 좋은 설명과 자세한 공장 견학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사진15 : 심양 고궁 안에서 같이간 비즈니스 팀원들 중 일부와 함께 찍은 사진.)
이상으로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기행문을 적어봤습니다.
혹시 비슷한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번 여행동안 찍은 사진들이 많이 있는데 제가 모뎀을 사용하느라 다 많이 못올리고 사진도 용량을 작게 했습니다.
혹시 사진중에서 크게 보고 싶으신 것 있으시면 리플 달아주세요. (혹시라도 있을까봐.. ^^;;)
그러면 추가로 큰 사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