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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올리는 음식
두부는 옛날 중국 한나라 시절에 회남왕 유안이라는 사람이 발명했다고 전해지는데
중국과 교류가 활발했던 삼국시대 말에서 통일신라 때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생각되고 있어요.
정말 오래 되었죠?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1,500년 쯤 되었네요.
이 시기의 두부는 일반 백성들은 쉽게 접할 수 없었어요.
출처 : EBS <역사채널e> 귀한 음식
절에서 부처님께 올릴 때 쓰던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이죠.
일반 백성들이 두부를 접하는 것은 어쩌다가 왕이 하사할 때나 가능한 일이었어요.
특히 나라의 종교가 불교였던 고려 때는 절에서 자주 두부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두부 만드는 기술은 절을 중심으로 이어졌어요. 왕실에서는 제사에 쓸 두부를 만드는 전담 사찰을 지정하기도 했대요. 이런 절을 조포사라고 불렀답니다.
고려의 뒤를 이어 조선 시대 때도 왕실에서 조포사를 지정하는 관습은 이어졌어요. 조포사의 뛰어난 두부 만드는 기술은 점차 민간에도 퍼져 나가 두부의 고향인 중국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다고 해요.
조선의 사대부들 사이에는 두부를 선물로 주고 받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답니다.
특히 사대부들은 두부를 다섯 가지 아름다운 덕이 있는 음식이라고 칭송하기도 했어요.
맛이 부드럽고 좋음이 첫 번째 덕이요,
은은한 향이 두 번째 덕,
색과 광택이 아름다운 것이 세 번째 덕이고,
모양이 반듯함이 네 번째 덕,
먹기에 간편함이 다섯 번째 덕이다.
두부의 특징을 정말 잘 표현했죠?
그런데 사대부들은 이렇게나 좋아하는 두부를 마음껏 쉽게 먹을 수가 없었어요.
두부를 만드는 방법이 꽤나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마구 만들어 먹을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사대부들이 아예 두부를 잘 만드는 절을 찾아가 두부 먹는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두부를 꼬치에 꿰고 닭고기를 삶은 물에 끓여 친한 벗들과 (조포사에) 모여서 먹는 모임이 있는데 이를 '연포회'라 한다.
- 정약용, 『이언각비 』
하지만 두부를 먹기 위해서 사대부들이 절로 모여들자 절의 승려들은 열심히 마음을 수양하고 불교를 공부해야 하는 시간에도 사대부들을 위해 두부를 만들고 이들의 수발을 들어야 했어요.
절에서 금지하는 고기를 끓여 두부를 먹었던 탓에 밤새 절이 북적북적했고
사대부들이 신이 나 두부를 두고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으니 시끌시끌했겠죠?
게다가 사대부들이 승려들에게 자신과 함께 온 모든 사람들의 먹을 것까지 대령하라고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승려들의 고생은 더욱 커졌어요.
경남 양산의 통도사라는 절에서는 승려들이 '중 노릇 못하겠다'며 절을 떠나는 사태가 발생한 적도 있대요.
두부때문에 이렇게까지 스님들이 고생을 했다니요... 생각도 못 했어요.
이렇게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이 귀하게 먹었던 두부는 언제 어떻게 신분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과 가까운 음식이 되었던 걸까요?
사실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두부는 꽤 비싸게 팔리는 음식이라 일반 백성들의 좋은 돈벌이 수단이었다고 해요.
1970년대 이후 가내수공업으로 두부를 좀 더 빠르게,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구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 것이죠.
우리가 두부를 지금처럼 쉽게 접하게 된 것이 4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니, 놀랍지 않나요?
이렇듯 기원전 2세기, 약 2,200년 전에 태어난 두부에게는 파란만장한 역사가 담겨 있답니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먹을 수 있던 고급 음식.
조선 사대부들에게 다섯 가지 미덕을 갖춘 음식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음식.
어디서나 손쉽게 다양함을 즐길 수 있는 음식이죠.
자료 출처: <EBS >에서 자료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