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꽃에 취하다
땅거미 진 산 여울의 저 에움길 바탕색
개천의 징검돌 후빈 천렵 그 허기가
창유리 반사 풍경에 한 상 밥으로 솟았네
가야지 이제 가야지 길어지는 햇살 안고
구부정 야윈 걸음 구만리 가신 아버지께
차리리 꽃이라도 밥, 한 세대가 이울었네
뼈마디에 신경통이 저며 도는 나이 되어
닫힌 문 모두 열고 이팝꽃에 취하느니
포만의 느꺼운 생이 하늘 아래 당당하네
그 사람
한밤중
드센 바람에
현관문이
덜컹대자
노곤한
잠 속에
누군가
들어서는 듯
이윽고
일어나 보니
텅 빈 거실
달빛 한 줄
지심도
오란 듯 훌쩍 와서 깊은 숲을 올려보며
오로지 마음이란 지심을 새깁니다
뒤틀린 몸부림 끝에 길을 여는 동백 숲
직립으로 사는 결기 청죽을 바라서면
후박은 잎을 늘여 한기를 녹입니다
저 아랜 통통배 하나 바람 태운 요람이고
갈매기 휘어 날자 까마귀 뒤를 이어
한마음 갈래지랴 두 손 모아 잡습니다
돌아갈 뱃길 저만치 묵묵부답 낮달 뜨고
산성마을 아지매
밀주 단속 그 무렵 맨발로 뛰던 산길 끝
불콰한 남정네의 헛발질에 등불 켜고
소쩍새 불침번 세워 누룩을 빚은 날들
낙동강이 내달려온 남쪽 먼 수평선이
오라를 내던지며 버거운 삶 짊어지워도
내일이 오늘이었기 억척 부린 아지매들
염소는 일등이고 오리는 최곤기라
구름 한 사발 막걸리에 파래지는 용담 보소
무릎이 풀린 자리에 온기 뭉근 피어난다
- 시집 『장미 주소로 오세요』 교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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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영 시조집 『장미 주소로 오세요』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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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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