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의 결투
원제 : Ride the High Country
1962년 미국영화
감독 : 샘 페킨파
출연 : 랜돌프 스코트, 조엘 맥크리어, 마리에트 하틀리
론 스타, 에드가 부캐넌, R. G 암스트롱
워렌 오츠
샘 페킨파 감독은 60년대에 등장한 감독 치고는 보기 드물게 초기에 계속 서부극만 만들던 인물입니다. 60년대는 서부극이 퇴조하던 시기였는데 그 시기에 오히려 서부극으로 초기 경력을 쌓았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그의 두 번째 영화 '하오의 결투'는 꽤 호평받은 서부극이었고, 이로 인하여 그는 찰톤 헤스톤 같은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여 '던디 소령' 같은 대작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오의 결투'는 두 노익장 배우가 공동 주연을 하는 영화입니다. 원래는 게리 쿠퍼와 존 웨인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이야기였고, 거의 두 배우의 출연이 성사될 뻔 했는데 아쉽게도 게리 쿠퍼가 1961년에 죽는 바람에 무산되었습니다. 게리 쿠퍼가 2년만 더 살았더라도 존 웨인과의 역사적인 공연이 이루어졌을 뻔 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두 배우가 함께 공연하기 위해서는 겪어야 할 난관이 많았을 것입니다 역대 최고 인기 배우인 게리 쿠퍼와 당시 최고의 흥행배우였던 존 웨인 이라면 서로 주인공 경쟁에서 물러서기 어려웠을 것이니까요. 게리 쿠퍼는 클라크 게이블과 함께 유성영화 1세대 헐리웃 배우의 상징이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기획된 60년대초에는 게리 쿠퍼는 이미 하향세였고, 존 웨인은 매년 머니 메이킹 스타 상위권에 랭크되는 절정기였습니다. 첫 번째 타이틀 네임을 누가 양보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죠. 만약 공연이 이루어졌다면 딱 역할이 보입니다 두 사람을 대신해서 출연한 랜돌프 스코트와 조엘 맥크리어의 이미지에서 각각 게리 쿠퍼와 존 웨인의 이미지가 보이니까요. 특히 조엘 맥크리어가 연기한 캐릭터 자체는 그야말로 존 웨인을 염두에 두고 만든 역할이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반면 랜돌프 스코트는 외모가 다소 게리 쿠퍼를 닮았는데 준 악역(애매한 역할이죠. 결국 선역이기도 하고)이라서 게리 쿠퍼 같은 헐리웃의 상징하는 배우가 맡기에 애매한 부분도 있고.
조엘 맥크리어
금 수송작전 논의.
하지만 서로의 생각과 목적은 다르다.
랜돌프 스코트(왼쪽)와 조엘 맥크리어
두 노익장 배우가 공동 주연이다.
아무튼 두 거물 배우의 공연 대신에 그래도 나름 유명했던 랜돌프 스코트와 조엘 맥크리어가 공연했습니다. 랜돌프 스코트는 30년대에서 50년대에 주로 서부극에서 맹활약했던 배우로 우리나라에 개봉되었던 10여편이 넘는 영화들 대부분이 서부극이었습니다. '하이눈' '셰인' '역마차' 같은 메이저 서부극과는 달리 약간은 마이너급의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서부극의 정의로운 주인공 역할 전문이랄 수 있지요. 조엘 맥크리어는 30-40년대에 많이 활약한 주연급 배우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해외 특파원' 이나 '서부의 왕자(버팔로 빌)' 등 여러 작품들에 출연했습니다. '하오의 결투'가 발표된 1962년에는 두 배우 모두 전성기를 지나서 은퇴할 시점이 된 시기였습니다.
보기 드물게 두 명의 황혼기 총잡이가 주인공인 작품인지요. 이런 비슷한 설정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있었는데, 그 영화처럼 '하오의 결투'도 두 황혼기 총잡이 외에 20세 정도 된 어린 총잡이가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저드(조엘 맥크리어)는 보안관 출신의 나이든 총잡이로 금광의 금을 은행으로 옮기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함께 동행할 옛 친구 길 웨스트럼(랜돌프 스코트)를 만납니다. 둘은 과거에 산전수전 다 겪었던 오랜 친구, 길은 스티브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동행하면서 길의 추천으로 헥 이라는 젊은이를 함께 동행시킵니다. 사실은 길과 헥은 금광의 금을 가로챌 계획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엘사라는 딸을 키우는 홀애비가 사는 집에서 하루밤을 묵는데, 아버지의 속박에 견디다 못한 엘사는 몰래 빠져나와서 세 사람에게 합류합니다. 엘사는 세 사람이 찾아가는 광산촌에 있는 빌리 해몬드라는 남자와 사귀고 있었고, 그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험난한 여정에 젊은 여자가 끼어든 것을 길과 스티브는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피가 끓는 젊은이인 헥은 엘사의 동행을 반가워합니다. 광산촌에 도착한 그들을 금을 받아서 떠나면 되는데 공교롭게도 엘사가 빌리의 거칠고 추악한 실체를 알고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거기에 헥이 끼어드는 바람에 길과 스티브도 결국 엘사를 구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엘사를 되찾으려고 뒤쫒아오는 해몬드 가의 형제들, 그리고 옛 친구인 길의 배신 등 스티브는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엘사 라는 여인에게 빠져드는 헥
헥은 금 수송이라는 목적보다 엘사에게 더 관심을 갖는데...
엘사는 빌리라는 남자와 얼떨결에 결혼식을 올리지만...
결국 엘사의 일에 함께 말려드는 세 사람
서로 오랜 친구였던 두 베테랑과 아직 어린 애송이 청년, 세 사람이 동행하는 여정을 담고 있지만 각자 목적이 다른 세 사람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금광에서 금을 무사히 은행으로 수송하는게 목적인 스티브, 그 금을 가로채서 빼돌리려는 길, 그리고 길과 함께 금을 빼돌릴 생각으로 합류한 것이지만 엘사라는 여자에게 빠져든 헥, 가뜩이나 세 사람이 합심해서 수행해야 하는 위험한 운반임무인데 이렇게 각각 다른 목적을 갖고 위험한 여정을 하게 됩니다.
당시 신예였던 샘 페킨파 감독은 훨씬 나이가 많은 두 베테랑 배우 두명을 캐스팅해서 아주 무난하고 흥미로운 서부극을 만들었습니다. 일종의 '노장은 아직 살아있다'라는 내용을 담은 서부극인데, 게리 쿠퍼, 존 웨인 같은 탑 오브 탑 스타를 캐스팅하진 못했지만 그들보다 낮은 레벨일망정 서부극에 많은 경험이 있는 노련한 두 배우를 적절히 경쟁시키고 비중을 안배하여 수작 서부극을 완성하였습니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위험한 여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팽팽한 긴장감과 쫓는자, 쫓기는자의 관계, 그리고 배신 등 재미있고 긴장섞인 내용들을 잘 버무리고 있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보여지는 뚜벅 뚜벅 서로 마주보고 걸으면서 결투를 하는 독특한 방식은 서서 총을 뽑는 속사대결('건힐의 결투'나 '셰인'에서와 같은), 말을 타고 달려오면서 총을 쏘는 대결방식('진정한 용기'에서 보여준 방식), 몇 명이서 건물 등 지형을 이용해서 결투하는 방식('O.K, 목장의 결투' '황야의 7인' 등) 등과는 또 다른 색다른 사생결단 결투 방식이었습니다.
스티브 저드는 엘사의 일에 말려들었고
친구까지 배신하는 복잡한 문제로
금 수송에 많은 차질을 빚는다.
최후의 결투에 임하는 두 황혼기 총잡이
이 '하오의 결투'의 호평 때문에 찰톤 헤스톤 같은 일급 스타를 캐스팅해서 '던디 소령'을 3년뒤에 차기작으로 연출할 수 있었고, 이후 윌리암 홀렌 등 베테랑 스타들을 대거 기용하여 '와일드 번치'까지 완성하면서 샘 페킨파 감독은 '폭력의 미학'이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개성있는 감독이 되었고, 70년대 들어서 서부극 위주에서 탈피하여 '스트로 독' '가르시아' 등의 영화를 통해서 독특한 폭력적 영상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하오의 결투' 스토리는 80년대에 찰톤 헤스톤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함께 공연하는 리메이크 작으로 기획되기도 했지만 무산되었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남자들의 우정 사이에서의 과연 무엇이 더 우선인가 라는 기로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는 영화인데, 샘 페킨파 특유의 거친 분위기와 남성적인 체취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63년애 개봉되었고, '하오의 결투'는 국내 개봉제목입니다. 80년대 두 번 정도 TV방영후 미출시되어 나름 희귀한 영화였는데, 최근 네이버 영화에서 고화질로 굿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기 드물게 네이버 영화에서 희귀 고전영화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ps1 : 랜돌프 스코트의 은퇴작인데 그는 64세에 은퇴한 셈입니다. 1987년까지 생존했는데 꽤 빨리 은퇴한 것입니다. 조엘 맥크리어도 은퇴작은 아니지만 이 영화 이후로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두 배우의 이렇게 끝물이 된 영화이지만 여주인공 마리에트 하틀리의 데뷔작이고, 샘 페킨파 감독 두번째 연출작이며 국내 첫 개봉작입니다.
ps2 : 이 영화에서 상당히 비중없이 나오는 워렌 오츠가 나중에 샘 페킨파 감독의 '가르시아'에서 주인공입니다
[출처] 하오의 결투(Ride the High Country 62년) 황혼기의 두 총잡이|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