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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차 2022년 임인년 음력 정월 열아흐레.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산악회원들은 태백산 산신령을 비롯한 천지신명께 고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 먼저 살다 가신 조상님들, 순국선열, 호국영령, 민주투사, 노동열사,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무주고혼들께도 아룁니다.(중략)"
백두대간의 정기가 뭉쳐 있다는 태백산 능선에 제물을 차려 놓고 경건하게 절을 올립니다. 제가 회장을 맡고 나서 처음 치르는 산신제입니다. 지난 17년여 동안 천지신명의 보살핌과 영명하신 남인복 회장님의 탁월한 지도력 덕분에 비교적 무탈하게 산행을 이어왔는데, 미욱한 제가 회장을 맡아 앞으로는 걱정이 태산이니 부디 잘 보살펴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습니다.
2월 19일(음력 1월 19일) 시산제 산행에 동참한 회원은 모두 8명입니다. 피플러버 고문, 희망과용기 회장, 산바람, 아톰, 달라무, 알자지라 대장, 뜬구름 총무 7명이 먼저 피닉스산악회에 신청해 좌석을 배정받았습니다. 멍게는 뒤늦게 신청해 대기 순번을 받았으나 다행히 취소자가 생겨 같은 버스로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성별 인원은 딱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구성입니다. 피플러버 고문과 알자지라 대장과 뜬구름 총무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희망과용기 회장은 사당역, 아톰은 양재역, 산바람과 달라무는 복정역에서 각각 탑승했습니다.
버스 좌석이 모두 채워지자 진행 요원들이 생수 떡(백설기), 지도 등을 나눠줍니다. 새벽에 방아간에서 찾아왔는지 손에 받아든 떡이 핫팩처럼 따뜻합니다. 옆에 앉은 뜬구름이 비닐 포장을 벗겨 떡을 먹습니다. 제가 "버스에서 음식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라고 하자 뜬구름은 "먹으라고 준 거 아닙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저도 하도 먹음직해 보여 한 입 베어뭅니다. 이를 목격한 이경란 피닉스산악회 대표가 큰소리로 제지합니다. "차내에서 음식물 드시면 절대 안돼요. 나중에 휴게소에서 떡 드실 시간 드릴 거예요." 다른 등산객들이 일제히 우리를 째려보는 듯합니다.
버스가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든 뒤 여러 개의 터널을 지나 치악휴게소에 정차합니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남은 떡을 입에 욱여넣습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많이 식어버려 처음 입에 넣었을 때보다는 맛이 덜합니다.
등산객들이 모두 차에 오르자 이경란 대표가 오늘 코스를 설명합니다. 태백산 팀은 저희뿐이고, 나머지는 함백산과 운탄고도가 목표입니다. 태백산 팀을 먼저 내려준 뒤 함백산과 운탄고도로 향한답니다. 올 때는 함백산과 운탄고도 팀을 먼저 싣고 태백산 팀을 태우러 온답니다. 따라서 태백산 팀은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을 거라고 합니다. 저는 알 대장에게 문수봉 쪽이 한적하고 경치도 좋으니 문수봉을 거쳐 내려오자고 제안합니다. 이에 따라 화방재보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짧은 유일사 입구를 산행 들머리로 삼기로 합니다. 문수봉을 찍고 당골광장으로 내려오려면 천제단에서 막바로 내려오는 것보다 한 시간 정도 더 걸린다고 합니다. 유일사 입구는 화방재에서 오르는 것보다 30분이 짧습니다. 시산제를 지낸다고 해도 시간은 충분해 보입니다.
마침내 태백산 입구에 이르렀습니다. 이경란 대표가 태백산 팀 내리라고 외칩니다. 화방재입니다. "저희는 유일사 입구로 가려고 하는데요"라고 했는데도 여기서 내려야 한다고 종용합니다. 우리를 인솔할 피닉스산악회의 대장까지 9명이 내리니 버스는 오던 길을 되돌아 가버립니다. 여기서 유일사는 도로 따라 5분 정도 더 가야 한다고 합니다. 우왕좌왕 설왕설래 갑론을박이 시작됐습니다. 알 대장과 아톰 등은 유일사 입구까지 걸어가서 올라가자고 주장하고, 인솔대장은 걸어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거나 여기서 막바로 시작하는 거나 별 차이가 없으니 그냥 화방재에서 출발하자고 제안합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는 게 낫다는 아톰의 말발이 먹혀 도로 따라 걸어갑니다. 저는 유일사 입구에서는 여러 번 올라가봤으나 백두대간 길인 화방재에서는 한 번도 올라간 적이 없어 내심 그리로 가보고 싶었는데, 대세에 밀려 입을 다물었습니다.
100m쯤 내려갔을까. 뒤에 있던 멍게가 다급하게 외칩니다. "2km나 걸어가야 한대요. 5분 걸리는 게 걸어서가 아니라 자동차인 모양이에요." 모두 안색이 변합니다 인솔대장이 "유일사 입구까지 걸어갔다가 올라가나 화방재에서 가나 마찬가진데"라는 말을 되뇌면서도 "어차피 이만큼 왔으니 그냥 갑시다"라고 합니다. 걱정과 달리 금방 유일사 입구가 보입니다. 그래도 버스가 괘씸합니다. 유일사 입구까지 태워줘도 되는데, 더 가기 싫어서 화방재에서 내려준 모양입니다. 알 대장은 "한 버스에 3개 팀을 태우니까 이런 일이 생기지"라며 투덜댑니다. 저는 "인원이 많이 몰리는 좋은사람들이나 반더룽 산악회를 따라 가면 그런 일이 없지 않을까"라고 말합니다.
유일사 입구는 정상까지 거리도 짧고 주차장도 있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습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등산객도 있고 젊은 여인도 눈에 많이 띕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넓은 도로를 따라 터벅터벅 걷습니다. 화방재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유일사 삼거리에 이르자 길이 좁아지며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됩니다. 태백산의 상징과도 같은 주목이 군데군데 나타나고 좌우의 시야가 탁 트입니다. 왼편으로 함백산과 국가대표 선수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운탄고도도 어렴풋이 보이는 듯합니다. 태백산 이름답게 능선에 눈은 많이 쌓여 있으나 기대했던 눈꽃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하늘이 맑고 날씨가 포근해 다행입니다.
한참을 줄서서 기다린 뒤 해발 1567m 장군봉 정상석 앞에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산악회 플래카드도 펼쳐놓습니다. 마침내 천제단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는 태백시가 한자로 새겨놓은 '太白山' 대형 비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군봉보다 7m 낮은데도 여기를 정상이라고 잘못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증샷을 찍으려는 줄도 훨씬 깁니다. 얼마간 기다렸다가 "시간도 없으니 그냥 옆에서 찍고 가자"는 산바람 제안에 따라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이제 문수봉으로 향합니다. 인솔대장이 "문수봉에 가면 산신제 지낼 만한 장소가 없다. 조금만 가면 마침맞은 장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에 따라 가보니 신령스럽게 생긴 나무가 서 있고 돌로 쌓은 제단도 있는, 정말 그럴 듯한 장소입니다. 깔개를 펴고 플래카드를 걸고 제수를 진설합니다. 인솔대장이 "배낭은 안 놓으세요? 등산 갈 때 사고 없으라고 가방을 놓아야지요"라고 합니다. 그 말을 따라 각자 메고 온 배낭을 제단 위에 늘어놓습니다.
제가 제주가 돼 첫잔을 올리고 축문도 즉석으로 읊었습니다. 무사고를 기원하고 자연보호 실천을 다짐하는 내용입니다. 제관들이 지루해하고 추워하는 것 같아 서둘러 끝맺습니다. "비록 보잘것없으나 정성껏 마련했으니 기꺼이 흠향하시고 부디 안전산행할 수 있도록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상향"
아톰이 가져온 비닐 셸터를 펴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음복을 합니다. 돼지족발, 오징어포, 사과, 카스텔라, 컵라면, 삶은 달걀, 빵, 과자, 막걸리, 소주 등 술과 안주가 푸짐합니다. 여기에다가 알 대장이 가져온 발렌타인 21년산 양주가 영롱한 빛과 신비로운 향기를 뿜어냅니다. 태백산 산신령이 "나한테는 먹걸리만 주고 지들은 귀한 양주를 마신다"고 괘씸해하며 호통을 치는 듯합니다. 평소 안 드시던 것 드셨다가 혹시 탈 나실까 봐 그런 거니 부디 해량해주시기 바랍니다.
느긋하게 술잔을 주고받으며 음복례를 치르고 있는데 산바람이 재촉합니다. "여기서 문수봉 거쳐 당골광장 가려면 두 시간 반이 걸린다는데, 그러면 식당에서 밥 먹을 시간이 없어요. 한 시간 전에는 내려가야 느긋하게 뒤풀이를 하죠. 서둘러야 해요." 피플러버 회장은 생각이 다릅니다. "난 식당에서 밥 안 먹어도 돼." 아톰은 또다른 얘기를 합니다. "식당 영업시간이 10시까지로 늘어났으니 양재동에서 뒤풀이하죠." 복정역에서 내릴 작정인 산바람은 당골광장 식당에서 술 마실 시간이 부족한 게 못내 안타까운 모양입니다. 산행을 시작할 때도 그러고, 음복할 때도 그러고, 신임 회장의 영도력이 부족하니 틈만 나면 갑론을박이 펼쳐지네요. 쩝.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배낭을 꾸려 다시 산행을 시작합니다. 풍광이 빼어나고 사람도 없어서 모두 만족합니다. 저를 빼고는 대부분 태백산 문수봉이 처음인 모양입니다. 잘생긴 주목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속이 텅빈 고목 안에 몸을 집어넣어 사진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멀리 천제단과 망경사를 배경으로도 셔터를 누릅니다. 저는 비닐주머니를 엉덩이에 깔고 눈썰매를 타봅니다. 예전에는 눈썰매 타는 맛에 태백산에 왔는데 요즘은 위험하다며 못 타게 합니다. 문수봉 구간은 사람이 적어 괜찮지만 탈 만한 장소는 별로 없습니다.
한동안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가 문수봉을 앞에 두고 오르막길이 시작됩니다. 배를 채운 뒤 다시 오르려니 몸이 무겁습니다. 마침내 문수봉입니다. 저는 이곳이 세 번째입니다. 장군봉이나 천제단보다 경치는 더 빼어납니다. 지난달 소백산 비로봉을 거쳐 국망봉에 올랐을 때 태백산 문수봉 가는 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그 생각을 재확인합니다. 이름도 태백과 소백이 유사하니 닮은 구석이 많은 건 당연하겠죠.
인증 사진을 찍고 하산합니다. 인적은 적은데도 길은 비교적 잘 나 있습니다. 오후 4시가 되자 이경란 대표가 인솔대장에게 전화를 걸어옵니다. 함백산과 운탄고도 팀이 당골광장 식당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버섯전골과 두부전골 4인분씩을 미리 주문합니다. 이윽고 당골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이경란 대표가 왜 이제사 도착했느냐며 잔소리를 합니다. 오후 5시 버스 출발 시간이 30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한잔씩 하고 서둘러 식사를 마친 뒤 버스에 오릅니다.
양재동 뒤풀이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펼쳐집니다. 산바람은 "양재역에 내리면 거꾸로 다시 와야 한다. 인원 제한이 6명까지니까 달라무와 나는 복정역에서 내리겠다"고 고집합니다. 산바람도 이제는 술 욕심이 많이 줄어든 모양입니다. 나머지 6명이 양재역에 내려 주꾸미 식당을 찾아갑니다. 산주꾸미가 싱싱합니다. 피플러버 고문께서 열흘 뒤 석 달간의 경주살이가 시작된다면서 통 크게 쏘셨습니다. "선배! 잘 먹었습니다." 아톰이 제게 넌지시 한마디 건넵니다. "형! 자신을 너무 낮추지 마세요. 미욱하디니요. 형이 미욱하면 우리는,..." 아무도 그 말을 안 해주면 모두 진짜 제가 미욱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했을지도 모릅니다. "아톰! 고맙다."
첫댓글 꼼꼼하고 세세하네요, 역쉬 재밌습니다^^ 회장님이 직접 산행기 쓰시니 간지 나네요~~
잘 봤습니다. 뒤쪽에 오자가 몇 군데 보이네요. 물론 그수고와 정성을 훼손한 것은 아닌데.
오늘 오후에 글을 써놓고 스스로 교열을 보다가 아내가 플센에 거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네. 서울신문이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한 음악회에 초대를 받았거든.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채 일단 글을 올려놓고 서둘러 내려가느라 나도 오타가 있을 거라 짐작했네. 다시 읽고 몇 군데 바로잡았는데, 또 있을지 모르겠네.
빈틈이 없는데도 시원합니다 태백산행의 기억보다 회장님의 산행기가 더 선명합니다^^
아니, 이 시간에
저도 어제 시간이 없어 간단히 댓글을 적어 오늘 보완합니다. 첫째 들머리로 혼란을 겪은 것은 산행대장의 잘못입니다. 피닉스 이경란 대표에게 유일사에서 내린다고 통보를 하거나 상의를 했어야 합니다. 둘째 버스는 우리가 내린 화방재에서 좌회전해 함백산 쪽으로 향했습니다. 다른 두 산을 가는 산행객들과 버스 기사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지 않나, 이 대표의 심경을 헤아릴 따름입니다. 셋째 지난 1월 계방산을 출발 직전에 취소하면서 이 대표에게 2월 태백산 산행 때 반드시 피닉스를 이용하겠다고 약속한 데 따라 다른 산악회 버스를 이용할 여지가 없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넷째 문수봉을 우회하는 코스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훨씬 호젓했고 주목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두어번 이곳을 다녀온 회장님이 좋은 선택을 했습니다.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대본없이 즉흥으로 읊으신 축문인데도 내용이 충실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미욱' 빼고요.ㅎ
인솔대장이 동영상을 열심히 찍긴 했는데 저장하지 않은 바람에 다 날려 버린게 무척 아쉽습니다.
역시 밥벌이하는 글빨이라 다르네~~ 뭣보다 짧은 시간에 막대한 분량을 힘들이지 않고 쓴 듯. ㅎㅎㅎ 잘 읽었고, 회장의 즉시 축문 작성 능력을 보면 산악회의 앞날도 순조로울껴. 갑론을박이 많은 건 더욱 자유로운 분위기로 이끌어가는 좋은 징조로 생각하길... 잘 읽었어....
올 한 해는 전임 회장님이 남긴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는 유훈 통치 기간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혹시 못 나오시더라도 틈틈이 미욱한 신임 회장을 깨우쳐주시기 바랍니다.
산행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산행 축문을 즉흥으로 하고 난후에도, 기억에 남아서 산행기에 적어 올린 걸 보면 역시 대단하십니다.
산행 축문을 생생하게 다시 들어보려고 동영상을 부탁했었는데, 이게 신의 한수가 아니고 최악의 수가 되어버려 몸둘바를 모르는 바입니다. 3월 한탄강에서 뵙겠습니다
현장에서 읊었던 거랑 글에 쓴 거량 조금 다를 수도 있어. 동영상이 날아가버렸다니 확인할 사람도 없어 그냥 내키는 대로 썼다네. ㅋㅋ. 내일 한탄강 2차 답사 다녀올 건데, 알대장과 상의해 일찌감치 공지할게. 한탄강은 오르락내리락이 심하지 않고 중도 포기해도 빠질 곳이 많으니 저질체력의 소유자도 참여할 수 있지. 총리 예측에 따르면 코로나 오미크론이 정점을 막 지난 시점이니 모처럼 많은 회원이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네.
회장님의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역쒸!!! 눈꽃 핀 태백산 길 함께 걷고 싶었는데... 제 아쉬움을 보상 받은 산행기였습니다. 3월에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꼬맹이는 태백산 길을 걷지 못한 아쉬움을 산행기로 보상받았다지만, 우리는 꼬맹이와 함께 못한 아쉬움을 어찌 보상받을 수 있을까. 보상하라! 보상하라! 보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