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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특별한 지중해 여행! 영화 같은 여정에 초대합니다
2024년 10월 유재원 교수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 12일>
올 가을, 특별한 지중해 여행에 초대합니다.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를 일주하고 이탈리아 남부까지 돌아보는 12일간의 영화 같은 여정입니다. 이 시대의 뛰어난 문명답사 안내자이며 그리스학과 유럽문명사의 최고 권위자인 유재원 교수(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인솔하는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8차]로 준비합니다.
유 교수는 최고의 그리스 전문가이자 유럽문명사가입니다. 더하여 이 시대가 낳은 뛰어난 여행 안내자이자 길 위의 에듀테이너입니다.
유 교수와의 여행에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명강의는 동서고금을 통달한 깊이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재미로도 정평이 나 있으며, 여행이 단지 관광으로 끝나지 않고 새롭고도 깊은 인문학을 만나는 설렘을 선사합니다.
▲지중해의 섬 시칠리아는 신화와 역사, 마피아의 전설이 얽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낭만의 섬이다. 시칠리아 포시타노에서Ⓒ유재원
2024년 10월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8차]는 지중해 한가운데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로 떠납니다. 10월 22(화)-11월 2(토)일, 12일 일정입니다. 이번 문명답사를 준비하는 유 교수로부터 답사지 설명을 들어봅니다.
[시칠리아 : 신화와 역사, 마피아의 전설이 얽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낭만의 섬]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는 마피아 대부의 섬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팔레르모의 오페라 하우스의 계단은 영화 <대부> 3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을 찍은 곳이다.
전설은 기원전 1100년쯤에 남부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켈족이 메시나 해협을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 섬의 그리스어 명칭 시켈리아는 시켈족의 땅이란 뜻이다. 이 섬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기원전 8세기 말부터다.
그리스인들 이전에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100년과 기원전 800년 사이 정착했을 것이다. 기원전 550년에서 450년 사이의 시기에 섬의 서쪽은 카르타고의 식민지가, 동쪽은 그리스 식민지가 세워져 대립했지만 차차 그리스가 세력을 넓혀 나갔다. 시칠리아 섬의 주요 도시인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등은 모두 그리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곳들이다.
특히 시라쿠사는 기원전 415년부터 412년 사이에 아테네 함대가 포위했다가 대패한 곳이고, 고대 최고의 공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가 지렛대와 오목거울로 로마군을 괴롭혔던 곳이다. 아직도 시칠리아 섬에는 그리스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고 시골에서는 그리스 방언이 사용되고 있다.
기원전 241년 제1차 페니키아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섬을 로마에 넘기고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201년에는 섬 전체가 로마령이 되었다. 로마 제국이 망한 뒤 시칠리아는 말타와 마찬가지로 비잔티온 제국에 편입되었고, 827년에는 튀니스의 아랍인이 들어와 팔레르모를 수도로 삼은 것을 시작으로 75년 동안의 전쟁을 통해 902년에 드디어 시칠리아 섬 전체를 정복했다.
그러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으로 이슬람 왕조는 오래 가지 못하고 1072년에 노르만인들에게 팔레르모를 점령당한 뒤, 패배를 거듭하여 1091년에는 완전히 멸망했다. 노르만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1249년 마지막 이슬람교도들이 추방당한 뒤 섬은 완전히 그리스도교화되었다. 그 후 시칠리아는 독일의 호엔슈타우펜 왕가(1191~1268년), 프랑스의 키페 왕조(1268~1302년), 스페인의 아라곤 왕조(1302~1713년), 사모이아-합스부르크-부르봉왕조(1713~1861년) 등, 여러 유럽 왕조가 번갈아 다스리다가 1861년 갓 독립한 이탈리아에 편입된다.
▲시칠리아 섬의 주요 도시인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등은 모두 그리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곳들이다. 시칠리아 셀리눈테에서Ⓒ유재원
시칠리아는 북쪽에 에트나 화산이 굳건하게 버티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 주어 겨울에도 따듯한 날씨가 계속된다. 섬 곳곳에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유적은 보존 상태가 좋아 그리스 본토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그리젠토의 신전 계곡은 특히 유명하다. 그 이외에도 세게스타와 실리눈테, 시라쿠사에도 그리스 신전과 극장을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또 카타니아는 로시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인 체팔리아 마을과 그랑 블루와 우디 알렌의 영화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촬영지인 타오르미나도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시칠리아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으로, 에트나 화산은 아테나 여신이 거인 엥겔라도스를 눌러 놓은 산이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 있는 곳이다. 또 지하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곳인가 하면, 물의 요정이 아레투사가 강의 신 이나코스를 피해 펠로폰네소스에서 도망쳐 온 곳이며, 섬의 북서쪽 끝에 있는 메시나 해협은 오디세우스가 괴물 카립디스에게 부하 여섯 명을 잃은 곳이고,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이 섬의 주인인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어 죽임을 당한 곳이다.
<아그리젠토>
아그리젠토의 옛 이름은 아크라가스로, 기원전 582년에 이웃 도시 겔라에서 온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다. 기원전 6세기에 전성기를 누려 자유 시민의 수가 10만에서 2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시기에 철학자 엠피스토클레스가 활동했다. 기원전 406년에 카르타고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곧 복구됐고, 포에니 전쟁 때에는 로마와 카르타고에 의해 번갈아 약탈당했다.
아그리젠토는 헤라 신전(기원전 5세기), 콘코르디아 신전(기원전 6세기), 헤라클레스 신전(기원전 6세기), 제우스 신전(기원전 480년) 등의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 줄지어 남아 있는 신전의 계곡으로 유명하다.
▲시칠리아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의 콘코르디아 신전. 고대 그리스 신전 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는 신전이다. 후대에 만들었다는, 앞에 누워 있는 이카로스 동상이 눈길을 끈다.Ⓒ넷홀딩스
<셀리눈테>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셀리눈테(셀리누스)는 기원전 6~5세기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웃 도시 세게스타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기원전 409년에 카르타고의 공격을 받고 초토화되는 불행을 맞았다. 그후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포에니 전쟁 때인 기원전 250년쯤에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다른 도시로 피난 가면서 버려져 폐허가 되고 만다. 오늘날 이곳에는 헤라 신전과 바닷가의 아름다운 아크로폴리스의 포세이돈 신전의 폐허가 남아 있다.
<에리체>
1934년까지 산 쥴리아노로 불렸던 에리체는 시칠리아 섬 북동쪽 트라파니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마을로서, 성벽과 보루로 둘러싸인 채 60여 개의 교회와 사원 및 옛 중세 건물들로 가득하다. 그 사이에 기하학 무늬의 포석 도로가 깔린 미로 같은 골목들이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높은 곳에 있기에 서쪽으로는 트라파니 일대가, 동북쪽으로는 몬테 코파노만 일대가 펼쳐져 있어 하늘의 성이라 불리는 곳이다. 최근 들어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해져서 한국 젊은이들이 가고픈 최고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시칠리아에는 유난히 높은 산 위에 위치한 도시가 많다. 그 많은 도시 중 최고의 뷰를 보여주는 도시를 뽑으라면 에리체다. 에리체 몬델로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아름다운 시칠리아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넷홀딩스
<세게스타>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이 도시는 트로이아가 멸망한 뒤 시칠리아로 이주한 트로이아의 후예이자 시칠리아의 세 원주민 가운데 하나인 엘리미아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세게스타는 위에서 말했듯 기원전 5801년부터 계속 남쪽의 셀리눈테와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기원전 409년에 카르타고의 도움으로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후 제1차 포에니 전쟁 때는 로마 쪽에 붙어 번영을 누렸으나 기원후 2세기에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기원전 420년쯤에 건설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난 도리아식 신전이 거의 온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으며 아크로폴리스에는 원형 극장과 주택들의 폐허가 남아 있다.
▲팔레르모 팔라티나 대성당은 비잔틴,아라비아,노르만 양식이 결합된 건축물로 황금색 기조의 모자이크가 화려하다.Ⓒ넷홀딩스
<팔레르모>
티레니아해의 항구 도시 팔레르모는 기원전 734년에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도시로서 시칠리아주의 수도이며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다. 그리스어로 팔레르모는 ‘모든 항구’라는 뜻으로 천연의 항구인 이곳 지형에 매우 알맞은 이름이다. 기원전 2세기에 이피로스의 피로스 왕에 의해 그리스 식민지로 바뀌었고,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비잔티온 제국에 귀속됐다가 9세기 아랍 제국에 넘어간 뒤 번창하기 시작했고, 12세기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된 후 그 수도로 더욱 발전하여 유럽의 중요 문화 중심지로 발전했다.
시내 곳곳에 중세 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특히 아랍 풍의 건물과 노르만 왕조 때의 궁전, 비잔티온 시대의 모자이크 성화가 유명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념비적 건물과 예술품들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콰트로 칸티 광장, 프레토리아 광장과 분수대, 누오바 문, 벨리니 광장, 노르만 왕궁과 궁전 안 대성당의 비잔티온 황금 모자이크 성화, 팔레르모 대성당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올 가을, 특별한 지중해 여행! 영화 같은 여정에 초대합니다
2024년 10월 유재원 교수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 12일>
올 가을, 특별한 지중해 여행에 초대합니다.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를 일주하고 이탈리아 남부까지 돌아보는 12일간의 영화 같은 여정입니다. 이 시대의 뛰어난 문명답사 안내자이며 그리스학과 유럽문명사의 최고 권위자인 유재원 교수(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인솔하는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8차]로 준비합니다.
유 교수는 최고의 그리스 전문가이자 유럽문명사가입니다. 더하여 이 시대가 낳은 뛰어난 여행 안내자이자 길 위의 에듀테이너입니다.
유 교수와의 여행에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명강의는 동서고금을 통달한 깊이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재미로도 정평이 나 있으며, 여행이 단지 관광으로 끝나지 않고 새롭고도 깊은 인문학을 만나는 설렘을 선사합니다.
▲지중해의 섬 시칠리아는 신화와 역사, 마피아의 전설이 얽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낭만의 섬이다. 시칠리아 포시타노에서Ⓒ유재원
2024년 10월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8차]는 지중해 한가운데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로 떠납니다. 10월 22(화)-11월 2(토)일, 12일 일정입니다. 이번 문명답사를 준비하는 유 교수로부터 답사지 설명을 들어봅니다.
[시칠리아 : 신화와 역사, 마피아의 전설이 얽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낭만의 섬]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는 마피아 대부의 섬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팔레르모의 오페라 하우스의 계단은 영화 <대부> 3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을 찍은 곳이다.
전설은 기원전 1100년쯤에 남부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켈족이 메시나 해협을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 섬의 그리스어 명칭 시켈리아는 시켈족의 땅이란 뜻이다. 이 섬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기원전 8세기 말부터다.
그리스인들 이전에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100년과 기원전 800년 사이 정착했을 것이다. 기원전 550년에서 450년 사이의 시기에 섬의 서쪽은 카르타고의 식민지가, 동쪽은 그리스 식민지가 세워져 대립했지만 차차 그리스가 세력을 넓혀 나갔다. 시칠리아 섬의 주요 도시인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등은 모두 그리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곳들이다.
특히 시라쿠사는 기원전 415년부터 412년 사이에 아테네 함대가 포위했다가 대패한 곳이고, 고대 최고의 공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가 지렛대와 오목거울로 로마군을 괴롭혔던 곳이다. 아직도 시칠리아 섬에는 그리스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고 시골에서는 그리스 방언이 사용되고 있다.
기원전 241년 제1차 페니키아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섬을 로마에 넘기고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201년에는 섬 전체가 로마령이 되었다. 로마 제국이 망한 뒤 시칠리아는 말타와 마찬가지로 비잔티온 제국에 편입되었고, 827년에는 튀니스의 아랍인이 들어와 팔레르모를 수도로 삼은 것을 시작으로 75년 동안의 전쟁을 통해 902년에 드디어 시칠리아 섬 전체를 정복했다.
그러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으로 이슬람 왕조는 오래 가지 못하고 1072년에 노르만인들에게 팔레르모를 점령당한 뒤, 패배를 거듭하여 1091년에는 완전히 멸망했다. 노르만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1249년 마지막 이슬람교도들이 추방당한 뒤 섬은 완전히 그리스도교화되었다. 그 후 시칠리아는 독일의 호엔슈타우펜 왕가(1191~1268년), 프랑스의 키페 왕조(1268~1302년), 스페인의 아라곤 왕조(1302~1713년), 사모이아-합스부르크-부르봉왕조(1713~1861년) 등, 여러 유럽 왕조가 번갈아 다스리다가 1861년 갓 독립한 이탈리아에 편입된다.
▲시칠리아 섬의 주요 도시인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등은 모두 그리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곳들이다. 시칠리아 셀리눈테에서Ⓒ유재원
시칠리아는 북쪽에 에트나 화산이 굳건하게 버티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 주어 겨울에도 따듯한 날씨가 계속된다. 섬 곳곳에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유적은 보존 상태가 좋아 그리스 본토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그리젠토의 신전 계곡은 특히 유명하다. 그 이외에도 세게스타와 실리눈테, 시라쿠사에도 그리스 신전과 극장을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또 카타니아는 로시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인 체팔리아 마을과 그랑 블루와 우디 알렌의 영화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촬영지인 타오르미나도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시칠리아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으로, 에트나 화산은 아테나 여신이 거인 엥겔라도스를 눌러 놓은 산이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 있는 곳이다. 또 지하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곳인가 하면, 물의 요정이 아레투사가 강의 신 이나코스를 피해 펠로폰네소스에서 도망쳐 온 곳이며, 섬의 북서쪽 끝에 있는 메시나 해협은 오디세우스가 괴물 카립디스에게 부하 여섯 명을 잃은 곳이고,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이 섬의 주인인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어 죽임을 당한 곳이다.
<아그리젠토>
아그리젠토의 옛 이름은 아크라가스로, 기원전 582년에 이웃 도시 겔라에서 온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다. 기원전 6세기에 전성기를 누려 자유 시민의 수가 10만에서 2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시기에 철학자 엠피스토클레스가 활동했다. 기원전 406년에 카르타고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곧 복구됐고, 포에니 전쟁 때에는 로마와 카르타고에 의해 번갈아 약탈당했다.
아그리젠토는 헤라 신전(기원전 5세기), 콘코르디아 신전(기원전 6세기), 헤라클레스 신전(기원전 6세기), 제우스 신전(기원전 480년) 등의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 줄지어 남아 있는 신전의 계곡으로 유명하다.
▲시칠리아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의 콘코르디아 신전. 고대 그리스 신전 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는 신전이다. 후대에 만들었다는, 앞에 누워 있는 이카로스 동상이 눈길을 끈다.Ⓒ넷홀딩스
<셀리눈테>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셀리눈테(셀리누스)는 기원전 6~5세기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웃 도시 세게스타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기원전 409년에 카르타고의 공격을 받고 초토화되는 불행을 맞았다. 그후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포에니 전쟁 때인 기원전 250년쯤에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다른 도시로 피난 가면서 버려져 폐허가 되고 만다. 오늘날 이곳에는 헤라 신전과 바닷가의 아름다운 아크로폴리스의 포세이돈 신전의 폐허가 남아 있다.
<에리체>
1934년까지 산 쥴리아노로 불렸던 에리체는 시칠리아 섬 북동쪽 트라파니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마을로서, 성벽과 보루로 둘러싸인 채 60여 개의 교회와 사원 및 옛 중세 건물들로 가득하다. 그 사이에 기하학 무늬의 포석 도로가 깔린 미로 같은 골목들이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높은 곳에 있기에 서쪽으로는 트라파니 일대가, 동북쪽으로는 몬테 코파노만 일대가 펼쳐져 있어 하늘의 성이라 불리는 곳이다. 최근 들어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해져서 한국 젊은이들이 가고픈 최고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시칠리아에는 유난히 높은 산 위에 위치한 도시가 많다. 그 많은 도시 중 최고의 뷰를 보여주는 도시를 뽑으라면 에리체다. 에리체 몬델로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아름다운 시칠리아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넷홀딩스
<세게스타>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이 도시는 트로이아가 멸망한 뒤 시칠리아로 이주한 트로이아의 후예이자 시칠리아의 세 원주민 가운데 하나인 엘리미아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세게스타는 위에서 말했듯 기원전 5801년부터 계속 남쪽의 셀리눈테와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기원전 409년에 카르타고의 도움으로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후 제1차 포에니 전쟁 때는 로마 쪽에 붙어 번영을 누렸으나 기원후 2세기에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기원전 420년쯤에 건설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난 도리아식 신전이 거의 온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으며 아크로폴리스에는 원형 극장과 주택들의 폐허가 남아 있다.
▲팔레르모 팔라티나 대성당은 비잔틴,아라비아,노르만 양식이 결합된 건축물로 황금색 기조의 모자이크가 화려하다.Ⓒ넷홀딩스
<팔레르모>
티레니아해의 항구 도시 팔레르모는 기원전 734년에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도시로서 시칠리아주의 수도이며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다. 그리스어로 팔레르모는 ‘모든 항구’라는 뜻으로 천연의 항구인 이곳 지형에 매우 알맞은 이름이다. 기원전 2세기에 이피로스의 피로스 왕에 의해 그리스 식민지로 바뀌었고,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비잔티온 제국에 귀속됐다가 9세기 아랍 제국에 넘어간 뒤 번창하기 시작했고, 12세기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된 후 그 수도로 더욱 발전하여 유럽의 중요 문화 중심지로 발전했다.
시내 곳곳에 중세 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특히 아랍 풍의 건물과 노르만 왕조 때의 궁전, 비잔티온 시대의 모자이크 성화가 유명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념비적 건물과 예술품들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콰트로 칸티 광장, 프레토리아 광장과 분수대, 누오바 문, 벨리니 광장, 노르만 왕궁과 궁전 안 대성당의 비잔티온 황금 모자이크 성화, 팔레르모 대성당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올 가을, 특별한 지중해 여행! 영화 같은 여정에 초대합니다
2024년 10월 유재원 교수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 12일>
올 가을, 특별한 지중해 여행에 초대합니다.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를 일주하고 이탈리아 남부까지 돌아보는 12일간의 영화 같은 여정입니다. 이 시대의 뛰어난 문명답사 안내자이며 그리스학과 유럽문명사의 최고 권위자인 유재원 교수(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인솔하는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8차]로 준비합니다.
유 교수는 최고의 그리스 전문가이자 유럽문명사가입니다. 더하여 이 시대가 낳은 뛰어난 여행 안내자이자 길 위의 에듀테이너입니다.
유 교수와의 여행에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명강의는 동서고금을 통달한 깊이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재미로도 정평이 나 있으며, 여행이 단지 관광으로 끝나지 않고 새롭고도 깊은 인문학을 만나는 설렘을 선사합니다.
▲지중해의 섬 시칠리아는 신화와 역사, 마피아의 전설이 얽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낭만의 섬이다. 시칠리아 포시타노에서Ⓒ유재원
2024년 10월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8차]는 지중해 한가운데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로 떠납니다. 10월 22(화)-11월 2(토)일, 12일 일정입니다. 이번 문명답사를 준비하는 유 교수로부터 답사지 설명을 들어봅니다.
[시칠리아 : 신화와 역사, 마피아의 전설이 얽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낭만의 섬]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는 마피아 대부의 섬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팔레르모의 오페라 하우스의 계단은 영화 <대부> 3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을 찍은 곳이다.
전설은 기원전 1100년쯤에 남부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켈족이 메시나 해협을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 섬의 그리스어 명칭 시켈리아는 시켈족의 땅이란 뜻이다. 이 섬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기원전 8세기 말부터다.
그리스인들 이전에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100년과 기원전 800년 사이 정착했을 것이다. 기원전 550년에서 450년 사이의 시기에 섬의 서쪽은 카르타고의 식민지가, 동쪽은 그리스 식민지가 세워져 대립했지만 차차 그리스가 세력을 넓혀 나갔다. 시칠리아 섬의 주요 도시인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등은 모두 그리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곳들이다.
특히 시라쿠사는 기원전 415년부터 412년 사이에 아테네 함대가 포위했다가 대패한 곳이고, 고대 최고의 공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가 지렛대와 오목거울로 로마군을 괴롭혔던 곳이다. 아직도 시칠리아 섬에는 그리스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고 시골에서는 그리스 방언이 사용되고 있다.
기원전 241년 제1차 페니키아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섬을 로마에 넘기고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201년에는 섬 전체가 로마령이 되었다. 로마 제국이 망한 뒤 시칠리아는 말타와 마찬가지로 비잔티온 제국에 편입되었고, 827년에는 튀니스의 아랍인이 들어와 팔레르모를 수도로 삼은 것을 시작으로 75년 동안의 전쟁을 통해 902년에 드디어 시칠리아 섬 전체를 정복했다.
그러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으로 이슬람 왕조는 오래 가지 못하고 1072년에 노르만인들에게 팔레르모를 점령당한 뒤, 패배를 거듭하여 1091년에는 완전히 멸망했다. 노르만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1249년 마지막 이슬람교도들이 추방당한 뒤 섬은 완전히 그리스도교화되었다. 그 후 시칠리아는 독일의 호엔슈타우펜 왕가(1191~1268년), 프랑스의 키페 왕조(1268~1302년), 스페인의 아라곤 왕조(1302~1713년), 사모이아-합스부르크-부르봉왕조(1713~1861년) 등, 여러 유럽 왕조가 번갈아 다스리다가 1861년 갓 독립한 이탈리아에 편입된다.
▲시칠리아 섬의 주요 도시인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등은 모두 그리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곳들이다. 시칠리아 셀리눈테에서Ⓒ유재원
시칠리아는 북쪽에 에트나 화산이 굳건하게 버티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 주어 겨울에도 따듯한 날씨가 계속된다. 섬 곳곳에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유적은 보존 상태가 좋아 그리스 본토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그리젠토의 신전 계곡은 특히 유명하다. 그 이외에도 세게스타와 실리눈테, 시라쿠사에도 그리스 신전과 극장을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또 카타니아는 로시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인 체팔리아 마을과 그랑 블루와 우디 알렌의 영화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촬영지인 타오르미나도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시칠리아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으로, 에트나 화산은 아테나 여신이 거인 엥겔라도스를 눌러 놓은 산이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 있는 곳이다. 또 지하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곳인가 하면, 물의 요정이 아레투사가 강의 신 이나코스를 피해 펠로폰네소스에서 도망쳐 온 곳이며, 섬의 북서쪽 끝에 있는 메시나 해협은 오디세우스가 괴물 카립디스에게 부하 여섯 명을 잃은 곳이고,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이 섬의 주인인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어 죽임을 당한 곳이다.
<아그리젠토>
아그리젠토의 옛 이름은 아크라가스로, 기원전 582년에 이웃 도시 겔라에서 온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다. 기원전 6세기에 전성기를 누려 자유 시민의 수가 10만에서 2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시기에 철학자 엠피스토클레스가 활동했다. 기원전 406년에 카르타고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곧 복구됐고, 포에니 전쟁 때에는 로마와 카르타고에 의해 번갈아 약탈당했다.
아그리젠토는 헤라 신전(기원전 5세기), 콘코르디아 신전(기원전 6세기), 헤라클레스 신전(기원전 6세기), 제우스 신전(기원전 480년) 등의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 줄지어 남아 있는 신전의 계곡으로 유명하다.
▲시칠리아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의 콘코르디아 신전. 고대 그리스 신전 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는 신전이다. 후대에 만들었다는, 앞에 누워 있는 이카로스 동상이 눈길을 끈다.Ⓒ넷홀딩스
<셀리눈테>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셀리눈테(셀리누스)는 기원전 6~5세기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웃 도시 세게스타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기원전 409년에 카르타고의 공격을 받고 초토화되는 불행을 맞았다. 그후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포에니 전쟁 때인 기원전 250년쯤에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다른 도시로 피난 가면서 버려져 폐허가 되고 만다. 오늘날 이곳에는 헤라 신전과 바닷가의 아름다운 아크로폴리스의 포세이돈 신전의 폐허가 남아 있다.
<에리체>
1934년까지 산 쥴리아노로 불렸던 에리체는 시칠리아 섬 북동쪽 트라파니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마을로서, 성벽과 보루로 둘러싸인 채 60여 개의 교회와 사원 및 옛 중세 건물들로 가득하다. 그 사이에 기하학 무늬의 포석 도로가 깔린 미로 같은 골목들이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높은 곳에 있기에 서쪽으로는 트라파니 일대가, 동북쪽으로는 몬테 코파노만 일대가 펼쳐져 있어 하늘의 성이라 불리는 곳이다. 최근 들어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해져서 한국 젊은이들이 가고픈 최고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시칠리아에는 유난히 높은 산 위에 위치한 도시가 많다. 그 많은 도시 중 최고의 뷰를 보여주는 도시를 뽑으라면 에리체다. 에리체 몬델로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아름다운 시칠리아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넷홀딩스
<세게스타>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이 도시는 트로이아가 멸망한 뒤 시칠리아로 이주한 트로이아의 후예이자 시칠리아의 세 원주민 가운데 하나인 엘리미아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세게스타는 위에서 말했듯 기원전 5801년부터 계속 남쪽의 셀리눈테와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기원전 409년에 카르타고의 도움으로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후 제1차 포에니 전쟁 때는 로마 쪽에 붙어 번영을 누렸으나 기원후 2세기에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기원전 420년쯤에 건설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난 도리아식 신전이 거의 온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으며 아크로폴리스에는 원형 극장과 주택들의 폐허가 남아 있다.
▲팔레르모 팔라티나 대성당은 비잔틴,아라비아,노르만 양식이 결합된 건축물로 황금색 기조의 모자이크가 화려하다.Ⓒ넷홀딩스
<팔레르모>
티레니아해의 항구 도시 팔레르모는 기원전 734년에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도시로서 시칠리아주의 수도이며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다. 그리스어로 팔레르모는 ‘모든 항구’라는 뜻으로 천연의 항구인 이곳 지형에 매우 알맞은 이름이다. 기원전 2세기에 이피로스의 피로스 왕에 의해 그리스 식민지로 바뀌었고,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비잔티온 제국에 귀속됐다가 9세기 아랍 제국에 넘어간 뒤 번창하기 시작했고, 12세기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된 후 그 수도로 더욱 발전하여 유럽의 중요 문화 중심지로 발전했다.
시내 곳곳에 중세 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특히 아랍 풍의 건물과 노르만 왕조 때의 궁전, 비잔티온 시대의 모자이크 성화가 유명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념비적 건물과 예술품들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콰트로 칸티 광장, 프레토리아 광장과 분수대, 누오바 문, 벨리니 광장, 노르만 왕궁과 궁전 안 대성당의 비잔티온 황금 모자이크 성화, 팔레르모 대성당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올 가을, 특별한 지중해 여행! 영화 같은 여정에 초대합니다
2024년 10월 유재원 교수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 12일>
올 가을, 특별한 지중해 여행에 초대합니다.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를 일주하고 이탈리아 남부까지 돌아보는 12일간의 영화 같은 여정입니다. 이 시대의 뛰어난 문명답사 안내자이며 그리스학과 유럽문명사의 최고 권위자인 유재원 교수(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인솔하는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8차]로 준비합니다.
유 교수는 최고의 그리스 전문가이자 유럽문명사가입니다. 더하여 이 시대가 낳은 뛰어난 여행 안내자이자 길 위의 에듀테이너입니다.
유 교수와의 여행에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명강의는 동서고금을 통달한 깊이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재미로도 정평이 나 있으며, 여행이 단지 관광으로 끝나지 않고 새롭고도 깊은 인문학을 만나는 설렘을 선사합니다.
▲지중해의 섬 시칠리아는 신화와 역사, 마피아의 전설이 얽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낭만의 섬이다. 시칠리아 포시타노에서Ⓒ유재원
2024년 10월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8차]는 지중해 한가운데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로 떠납니다. 10월 22(화)-11월 2(토)일, 12일 일정입니다. 이번 문명답사를 준비하는 유 교수로부터 답사지 설명을 들어봅니다.
[시칠리아 : 신화와 역사, 마피아의 전설이 얽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낭만의 섬]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는 마피아 대부의 섬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팔레르모의 오페라 하우스의 계단은 영화 <대부> 3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을 찍은 곳이다.
전설은 기원전 1100년쯤에 남부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켈족이 메시나 해협을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 섬의 그리스어 명칭 시켈리아는 시켈족의 땅이란 뜻이다. 이 섬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기원전 8세기 말부터다.
그리스인들 이전에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100년과 기원전 800년 사이 정착했을 것이다. 기원전 550년에서 450년 사이의 시기에 섬의 서쪽은 카르타고의 식민지가, 동쪽은 그리스 식민지가 세워져 대립했지만 차차 그리스가 세력을 넓혀 나갔다. 시칠리아 섬의 주요 도시인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등은 모두 그리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곳들이다.
특히 시라쿠사는 기원전 415년부터 412년 사이에 아테네 함대가 포위했다가 대패한 곳이고, 고대 최고의 공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가 지렛대와 오목거울로 로마군을 괴롭혔던 곳이다. 아직도 시칠리아 섬에는 그리스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고 시골에서는 그리스 방언이 사용되고 있다.
기원전 241년 제1차 페니키아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섬을 로마에 넘기고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201년에는 섬 전체가 로마령이 되었다. 로마 제국이 망한 뒤 시칠리아는 말타와 마찬가지로 비잔티온 제국에 편입되었고, 827년에는 튀니스의 아랍인이 들어와 팔레르모를 수도로 삼은 것을 시작으로 75년 동안의 전쟁을 통해 902년에 드디어 시칠리아 섬 전체를 정복했다.
그러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으로 이슬람 왕조는 오래 가지 못하고 1072년에 노르만인들에게 팔레르모를 점령당한 뒤, 패배를 거듭하여 1091년에는 완전히 멸망했다. 노르만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1249년 마지막 이슬람교도들이 추방당한 뒤 섬은 완전히 그리스도교화되었다. 그 후 시칠리아는 독일의 호엔슈타우펜 왕가(1191~1268년), 프랑스의 키페 왕조(1268~1302년), 스페인의 아라곤 왕조(1302~1713년), 사모이아-합스부르크-부르봉왕조(1713~1861년) 등, 여러 유럽 왕조가 번갈아 다스리다가 1861년 갓 독립한 이탈리아에 편입된다.
▲시칠리아 섬의 주요 도시인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등은 모두 그리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곳들이다. 시칠리아 셀리눈테에서Ⓒ유재원
시칠리아는 북쪽에 에트나 화산이 굳건하게 버티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 주어 겨울에도 따듯한 날씨가 계속된다. 섬 곳곳에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유적은 보존 상태가 좋아 그리스 본토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그리젠토의 신전 계곡은 특히 유명하다. 그 이외에도 세게스타와 실리눈테, 시라쿠사에도 그리스 신전과 극장을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또 카타니아는 로시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인 체팔리아 마을과 그랑 블루와 우디 알렌의 영화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촬영지인 타오르미나도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시칠리아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으로, 에트나 화산은 아테나 여신이 거인 엥겔라도스를 눌러 놓은 산이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 있는 곳이다. 또 지하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곳인가 하면, 물의 요정이 아레투사가 강의 신 이나코스를 피해 펠로폰네소스에서 도망쳐 온 곳이며, 섬의 북서쪽 끝에 있는 메시나 해협은 오디세우스가 괴물 카립디스에게 부하 여섯 명을 잃은 곳이고,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이 섬의 주인인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어 죽임을 당한 곳이다.
<아그리젠토>
아그리젠토의 옛 이름은 아크라가스로, 기원전 582년에 이웃 도시 겔라에서 온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다. 기원전 6세기에 전성기를 누려 자유 시민의 수가 10만에서 2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시기에 철학자 엠피스토클레스가 활동했다. 기원전 406년에 카르타고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곧 복구됐고, 포에니 전쟁 때에는 로마와 카르타고에 의해 번갈아 약탈당했다.
아그리젠토는 헤라 신전(기원전 5세기), 콘코르디아 신전(기원전 6세기), 헤라클레스 신전(기원전 6세기), 제우스 신전(기원전 480년) 등의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 줄지어 남아 있는 신전의 계곡으로 유명하다.
▲시칠리아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의 콘코르디아 신전. 고대 그리스 신전 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는 신전이다. 후대에 만들었다는, 앞에 누워 있는 이카로스 동상이 눈길을 끈다.Ⓒ넷홀딩스
<셀리눈테>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셀리눈테(셀리누스)는 기원전 6~5세기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웃 도시 세게스타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기원전 409년에 카르타고의 공격을 받고 초토화되는 불행을 맞았다. 그후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포에니 전쟁 때인 기원전 250년쯤에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다른 도시로 피난 가면서 버려져 폐허가 되고 만다. 오늘날 이곳에는 헤라 신전과 바닷가의 아름다운 아크로폴리스의 포세이돈 신전의 폐허가 남아 있다.
<에리체>
1934년까지 산 쥴리아노로 불렸던 에리체는 시칠리아 섬 북동쪽 트라파니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마을로서, 성벽과 보루로 둘러싸인 채 60여 개의 교회와 사원 및 옛 중세 건물들로 가득하다. 그 사이에 기하학 무늬의 포석 도로가 깔린 미로 같은 골목들이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높은 곳에 있기에 서쪽으로는 트라파니 일대가, 동북쪽으로는 몬테 코파노만 일대가 펼쳐져 있어 하늘의 성이라 불리는 곳이다. 최근 들어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해져서 한국 젊은이들이 가고픈 최고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시칠리아에는 유난히 높은 산 위에 위치한 도시가 많다. 그 많은 도시 중 최고의 뷰를 보여주는 도시를 뽑으라면 에리체다. 에리체 몬델로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아름다운 시칠리아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넷홀딩스
<세게스타>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이 도시는 트로이아가 멸망한 뒤 시칠리아로 이주한 트로이아의 후예이자 시칠리아의 세 원주민 가운데 하나인 엘리미아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세게스타는 위에서 말했듯 기원전 5801년부터 계속 남쪽의 셀리눈테와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기원전 409년에 카르타고의 도움으로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후 제1차 포에니 전쟁 때는 로마 쪽에 붙어 번영을 누렸으나 기원후 2세기에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기원전 420년쯤에 건설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난 도리아식 신전이 거의 온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으며 아크로폴리스에는 원형 극장과 주택들의 폐허가 남아 있다.
▲팔레르모 팔라티나 대성당은 비잔틴,아라비아,노르만 양식이 결합된 건축물로 황금색 기조의 모자이크가 화려하다.Ⓒ넷홀딩스
<팔레르모>
티레니아해의 항구 도시 팔레르모는 기원전 734년에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도시로서 시칠리아주의 수도이며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다. 그리스어로 팔레르모는 ‘모든 항구’라는 뜻으로 천연의 항구인 이곳 지형에 매우 알맞은 이름이다. 기원전 2세기에 이피로스의 피로스 왕에 의해 그리스 식민지로 바뀌었고,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비잔티온 제국에 귀속됐다가 9세기 아랍 제국에 넘어간 뒤 번창하기 시작했고, 12세기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된 후 그 수도로 더욱 발전하여 유럽의 중요 문화 중심지로 발전했다.
시내 곳곳에 중세 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특히 아랍 풍의 건물과 노르만 왕조 때의 궁전, 비잔티온 시대의 모자이크 성화가 유명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념비적 건물과 예술품들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콰트로 칸티 광장, 프레토리아 광장과 분수대, 누오바 문, 벨리니 광장, 노르만 왕궁과 궁전 안 대성당의 비잔티온 황금 모자이크 성화, 팔레르모 대성당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올 가을, 특별한 지중해 여행! 영화 같은 여정에 초대합니다
2024년 10월 유재원 교수의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 12일>
올 가을, 특별한 지중해 여행에 초대합니다.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를 일주하고 이탈리아 남부까지 돌아보는 12일간의 영화 같은 여정입니다. 이 시대의 뛰어난 문명답사 안내자이며 그리스학과 유럽문명사의 최고 권위자인 유재원 교수(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인솔하는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8차]로 준비합니다.
유 교수는 최고의 그리스 전문가이자 유럽문명사가입니다. 더하여 이 시대가 낳은 뛰어난 여행 안내자이자 길 위의 에듀테이너입니다.
유 교수와의 여행에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명강의는 동서고금을 통달한 깊이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재미로도 정평이 나 있으며, 여행이 단지 관광으로 끝나지 않고 새롭고도 깊은 인문학을 만나는 설렘을 선사합니다.
▲지중해의 섬 시칠리아는 신화와 역사, 마피아의 전설이 얽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낭만의 섬이다. 시칠리아 포시타노에서Ⓒ유재원
2024년 10월 [유재원 교수의 문명답사 제18차]는 지중해 한가운데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남부로 떠납니다. 10월 22(화)-11월 2(토)일, 12일 일정입니다. 이번 문명답사를 준비하는 유 교수로부터 답사지 설명을 들어봅니다.
[시칠리아 : 신화와 역사, 마피아의 전설이 얽히고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낭만의 섬]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는 마피아 대부의 섬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팔레르모의 오페라 하우스의 계단은 영화 <대부> 3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을 찍은 곳이다.
전설은 기원전 1100년쯤에 남부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켈족이 메시나 해협을 건너와 나라를 세웠다고 전한다. 이 섬의 그리스어 명칭 시켈리아는 시켈족의 땅이란 뜻이다. 이 섬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기원전 8세기 말부터다.
그리스인들 이전에 이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페니키아인들은 기원전 1100년과 기원전 800년 사이 정착했을 것이다. 기원전 550년에서 450년 사이의 시기에 섬의 서쪽은 카르타고의 식민지가, 동쪽은 그리스 식민지가 세워져 대립했지만 차차 그리스가 세력을 넓혀 나갔다. 시칠리아 섬의 주요 도시인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등은 모두 그리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곳들이다.
특히 시라쿠사는 기원전 415년부터 412년 사이에 아테네 함대가 포위했다가 대패한 곳이고, 고대 최고의 공학자이자 과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가 지렛대와 오목거울로 로마군을 괴롭혔던 곳이다. 아직도 시칠리아 섬에는 그리스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고 시골에서는 그리스 방언이 사용되고 있다.
기원전 241년 제1차 페니키아 전쟁에서 카르타고가 섬을 로마에 넘기고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201년에는 섬 전체가 로마령이 되었다. 로마 제국이 망한 뒤 시칠리아는 말타와 마찬가지로 비잔티온 제국에 편입되었고, 827년에는 튀니스의 아랍인이 들어와 팔레르모를 수도로 삼은 것을 시작으로 75년 동안의 전쟁을 통해 902년에 드디어 시칠리아 섬 전체를 정복했다.
그러나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으로 이슬람 왕조는 오래 가지 못하고 1072년에 노르만인들에게 팔레르모를 점령당한 뒤, 패배를 거듭하여 1091년에는 완전히 멸망했다. 노르만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 1249년 마지막 이슬람교도들이 추방당한 뒤 섬은 완전히 그리스도교화되었다. 그 후 시칠리아는 독일의 호엔슈타우펜 왕가(1191~1268년), 프랑스의 키페 왕조(1268~1302년), 스페인의 아라곤 왕조(1302~1713년), 사모이아-합스부르크-부르봉왕조(1713~1861년) 등, 여러 유럽 왕조가 번갈아 다스리다가 1861년 갓 독립한 이탈리아에 편입된다.
▲시칠리아 섬의 주요 도시인 팔레르모, 아그리젠토, 시라쿠사, 카타니아, 타오르미나 등은 모두 그리스의 식민지로 역사가 시작된 곳들이다. 시칠리아 셀리눈테에서Ⓒ유재원
시칠리아는 북쪽에 에트나 화산이 굳건하게 버티고 차가운 북풍을 막아 주어 겨울에도 따듯한 날씨가 계속된다. 섬 곳곳에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유적은 보존 상태가 좋아 그리스 본토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아그리젠토의 신전 계곡은 특히 유명하다. 그 이외에도 세게스타와 실리눈테, 시라쿠사에도 그리스 신전과 극장을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또 카타니아는 로시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인 체팔리아 마을과 그랑 블루와 우디 알렌의 영화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촬영지인 타오르미나도 빼 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시칠리아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곳으로, 에트나 화산은 아테나 여신이 거인 엥겔라도스를 눌러 놓은 산이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 있는 곳이다. 또 지하의 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곳인가 하면, 물의 요정이 아레투사가 강의 신 이나코스를 피해 펠로폰네소스에서 도망쳐 온 곳이며, 섬의 북서쪽 끝에 있는 메시나 해협은 오디세우스가 괴물 카립디스에게 부하 여섯 명을 잃은 곳이고,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이 섬의 주인인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어 죽임을 당한 곳이다.
<아그리젠토>
아그리젠토의 옛 이름은 아크라가스로, 기원전 582년에 이웃 도시 겔라에서 온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다. 기원전 6세기에 전성기를 누려 자유 시민의 수가 10만에서 20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시기에 철학자 엠피스토클레스가 활동했다. 기원전 406년에 카르타고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곧 복구됐고, 포에니 전쟁 때에는 로마와 카르타고에 의해 번갈아 약탈당했다.
아그리젠토는 헤라 신전(기원전 5세기), 콘코르디아 신전(기원전 6세기), 헤라클레스 신전(기원전 6세기), 제우스 신전(기원전 480년) 등의 고대 그리스의 신전이 줄지어 남아 있는 신전의 계곡으로 유명하다.
▲시칠리아 아그리젠토 신전의 계곡의 콘코르디아 신전. 고대 그리스 신전 가운데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는 신전이다. 후대에 만들었다는, 앞에 누워 있는 이카로스 동상이 눈길을 끈다.Ⓒ넷홀딩스
<셀리눈테>
기원전 7세기에 세워진 셀리눈테(셀리누스)는 기원전 6~5세기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이웃 도시 세게스타와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기원전 409년에 카르타고의 공격을 받고 초토화되는 불행을 맞았다. 그후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다가 기원전 포에니 전쟁 때인 기원전 250년쯤에 주민들이 전쟁을 피해 다른 도시로 피난 가면서 버려져 폐허가 되고 만다. 오늘날 이곳에는 헤라 신전과 바닷가의 아름다운 아크로폴리스의 포세이돈 신전의 폐허가 남아 있다.
<에리체>
1934년까지 산 쥴리아노로 불렸던 에리체는 시칠리아 섬 북동쪽 트라파니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마을로서, 성벽과 보루로 둘러싸인 채 60여 개의 교회와 사원 및 옛 중세 건물들로 가득하다. 그 사이에 기하학 무늬의 포석 도로가 깔린 미로 같은 골목들이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높은 곳에 있기에 서쪽으로는 트라파니 일대가, 동북쪽으로는 몬테 코파노만 일대가 펼쳐져 있어 하늘의 성이라 불리는 곳이다. 최근 들어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해져서 한국 젊은이들이 가고픈 최고의 장소로 꼽히고 있다.
▲시칠리아에는 유난히 높은 산 위에 위치한 도시가 많다. 그 많은 도시 중 최고의 뷰를 보여주는 도시를 뽑으라면 에리체다. 에리체 몬델로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아름다운 시칠리아의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넷홀딩스
<세게스타>
투키디데스에 의하면 이 도시는 트로이아가 멸망한 뒤 시칠리아로 이주한 트로이아의 후예이자 시칠리아의 세 원주민 가운데 하나인 엘리미아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세게스타는 위에서 말했듯 기원전 5801년부터 계속 남쪽의 셀리눈테와 전쟁을 벌이다가 결국 기원전 409년에 카르타고의 도움으로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후 제1차 포에니 전쟁 때는 로마 쪽에 붙어 번영을 누렸으나 기원후 2세기에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기원전 420년쯤에 건설되다가 미완성으로 끝난 도리아식 신전이 거의 온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으며 아크로폴리스에는 원형 극장과 주택들의 폐허가 남아 있다.
▲팔레르모 팔라티나 대성당은 비잔틴,아라비아,노르만 양식이 결합된 건축물로 황금색 기조의 모자이크가 화려하다.Ⓒ넷홀딩스
<팔레르모>
티레니아해의 항구 도시 팔레르모는 기원전 734년에 페니키아인들이 세운 도시로서 시칠리아주의 수도이며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다. 그리스어로 팔레르모는 ‘모든 항구’라는 뜻으로 천연의 항구인 이곳 지형에 매우 알맞은 이름이다. 기원전 2세기에 이피로스의 피로스 왕에 의해 그리스 식민지로 바뀌었고, 제1차 포에니 전쟁 이후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그 후 비잔티온 제국에 귀속됐다가 9세기 아랍 제국에 넘어간 뒤 번창하기 시작했고, 12세기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된 후 그 수도로 더욱 발전하여 유럽의 중요 문화 중심지로 발전했다.
시내 곳곳에 중세 시대에 번영을 누렸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특히 아랍 풍의 건물과 노르만 왕조 때의 궁전, 비잔티온 시대의 모자이크 성화가 유명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답게 시내 곳곳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념비적 건물과 예술품들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콰트로 칸티 광장, 프레토리아 광장과 분수대, 누오바 문, 벨리니 광장, 노르만 왕궁과 궁전 안 대성당의 비잔티온 황금 모자이크 성화, 팔레르모 대성당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