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최선의 선택이다
창세기 33:16~20,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찬송가 312장(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야곱이 그의 외갓집 밧단아람에서 20년 동안 지내면서 외삼촌 라반의 양을 치고 그 딸들과 결혼하여 자식을 얻은 후에 때가 되매 꿈에 나타나신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내용이 나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고생을 많이 하는 중에 꿈에서 이르시기를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창세기 31:13)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외삼촌 몰래 자기 아내들과 자식들과 종들과 가축들을 끌고 도망쳐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오다가 형 에서의 살해 위협을 직면하여 얍복강변에서 밤새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형과 극적인 화해를 이루고 살게 됩니다. 그렇게 형과 화해 직후에 형과 그의 사백 명의 종들을 먼저 고향으로 올려 보낸 후에는 야곱도 자기 식구와 종들과 양떼를 이끌고 아버지가 계신 브엘세바 혹은 헤브론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특별히 20년 전에 형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일로 형이 분노할 때 외갓집으로 도망칠 때에 벧엘을 지날 때에 밤중에 돌 베개를 하고 잠을 잘 때 자기에게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께 서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평안하게 돌아오게 하시면 그가 벧엘에 와서 그 베개로 삼았던 돌을 성전으로 삼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노라고 서원한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 전에 그를 밧단아람에서 불러내어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자기를 벧엘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시면서 그의 서원한 것을 환기시킨 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얍복강변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형 에서와 화해를 주셔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진 마당이라면 곧장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서원대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그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고 경배를 드리고 난 후에 고향 땅 브엘세바로 가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뵈러 가야 했습니다. 더욱이 그 때에 그의 아버지 이삭이나 어머니 리브가는 매우 고령이어서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때였으니 곧장 벧엘을 들러서 남녁 부모님 계신 곳으로 서둘러 갔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곧장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길을 가다가 숙곳에 머물러서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한 우릿간을 짓고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도 그는 더 서북쪽에 있는 세겜 땅으로 들어가서 아예 밭까지 돈을 주고 사서 오래 머물러 지내면서 살 작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장기적인 거주를 할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벧엘에 와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다는 그의 서원을 이행하는 것을 까맣게 잊은 듯 지내고 만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약속을 잊어버리고 서원을 이행하기를 뒷전으로 넘기고 자기 판단과 계획을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 때까지도 아직 자기 형 에서와의 관계가 거리껴지고 무슨 일이 생길까봐 겁이 나서 고향 쪽으로 내려가기를 겁을 내면서 미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야곱이 일찍이 서원한 바 벧엘에 올라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는 부르심에 불순종한 일은 그에게 화가 임하였고 여러 가지 손해가 찾아오는 일이 되었습니다. 세겜에서 한참을 지내는 동안에 야곱의 딸 디나가 성장하여 소녀 티를 벗고 시집가도 될 정도가 되었을 때에 세겜 성읍에 마실을 나가서 세겜의 여자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가 세겜 성읍의 젊은 추장 세겜에게 이끌려서 추행을 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 아들들이 분노하여 그 성읍 남자들을 속여 할례를 하게 하고 고통을 겪는 삼일째 쳐들어가서 그 성읍의 남자들을 다 살육하고 그 남은 아들들까지 합세하여 그 성읍을 약탈하여 여자와 어린아이와 가축들을 다 끌어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인근 사람들이 이 일로 분노하여 야곱 가족 전체를 겨냥하고 전쟁을 일으키면 야곱 가족은 꼼짝없이 이방 땅에서 몰살을 당할 절박한 위기를 만났습니다. 이 일은 야곱이 그토록 고생하여 일궈낸 그의 가족과 전 재산을 다 잃어버리는 절대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야곱의 마음속은 디나 일로 그 마음이 극히 수치스러웠었다가 이제는 자기 아들들의 흉포한 모습에 반대로 경악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온 가족과 전 재산이 다 멸절을 당할 위기 때문에 공포와 절망에 휩싸이는 심리적 극한 상황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그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창세기 35:1)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자 야곱은 비로소 자기의 삶에 일어난 이 무서운 위기가 바로 자기의 불순종 때문에 일어났음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오라는, 서원을 갚으라는 부르심을 주셨으나 자기가 그 말씀에 지금까지 불순종한 결과로 이렇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가족들을 전부 불러모은 다음에 집안 식구들에게 있는 이방 신상이나 세속적인 장신구들을 다 내놓으라고 하여 그것들을 세겜의 상수리나무 아래 파묻고 벧엘로 떠났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 인근 사람들 모두에게 커다란 두려움을 가져다 주므로 그들이 감히 나서서 야곱 가족의 행렬을 추격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서원을 지키려고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야곱을 도와주신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이후에도 그의 아내 라헬이 난산 끝에 죽고 그 큰 아들 르우벤이 라헬의 여종 빌하, 곧 아버지의 첩을 범하고 그 후에 라헬의 아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왕따를 당하고 저 애굽에 종으로 팔리는 일도 생겨서 야곱은 마음고생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과관게와 시간상 순서를 따져보면, 라헬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이 일이 세겜에서의 죽음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세겜 있는 동안 라헬은 임신중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데 세겜에서 벧엘로 두려움 속에서 이동하고 또 벧엘에서 남쪽 베들레헴으로 여행을 급하게 하다가 그만 이런 저런 정신적 스트레스와 몸의 연약함 때문에 아이를 출산할 때 견디지 못하고 베냐민을 낳다가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라헬만 살아 있었더라면 그 이후에 야곱의 삶에 큰 고통을 주는 빌하의 사건이나 요셉의 사건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야곱이 형 에서와 얍복강에서 화해 직후에 곧장 순종해서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어머니 아버지 계신 브엘세바로 곧장 올라갔다고 한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면 그 때에 라헬은 아기를 잉태하지도 않았고 나이가 한참 젊었고 야곱도 보고 싶었던 그리운 어머니 리브가도 살아 생전에 볼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나중에 벧엘에서 어머니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야곱이 장례를 치른 것을 보면 이미 그 어머니 리브가가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드보라는 리브가가 죽자 이 소식을 알려주려고 세겜에 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짐작하건대 만약 야곱이 벧엘로 곧장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고 고향으로 갔었다면 어머니 리브가도 뵐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 순종하지 아니한 까닭에 야곱은 그리운 어머니의 생전 얼굴을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흘러간 역사를 다시 뜯어고칠 수는 없지만 “만약에 이랬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장차의 일들을 처리할 때에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침을 얻는 것이 지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야곱의 생애에서 바로 오늘 읽은 이 지점에서 그가 숙곳에 머물지 않고 세겜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지 않고 곧장 벧엘로 올라가서 경배하였다고 한다면 그의 삶은 분명 슬픔과 고통과 수치가 덜했을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교훈을 되새겨야 하겠다 다짐하게 됩니다.
순종을 미루지도 말고 즉각 순종하도록 합시다. 적당하게 순종하지 말고 온전히 순종하도록 합시다. 물론 순종이 쉽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순종을 이루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얼마니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면서 자기를 쳐서 복종하여 아버지 뜻에 순종하셨습니까? 그래서 순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를 쳐서 복종하게 하는 끈질긴 기도의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하였던 이 말을 우리는 늘 기억합시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과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으니”(사무엘상 15:22~23)
그러므로 우리가 최선의 선택은 바로 순종의 길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서, 우리 모두 기록된 말씀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대하여 이유와 변명을 달지 말고 순종하기를 힘씁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권위 질서인 부모님의 권위, 세상 권세의 권위, 주님의 몸된 교회의 영적 질서의 권위 등 우리가 순종해야 할 대상에 대하여 늘 순종하기를 힘을 다합시다. 우리 모두 우리의 순종이 범사에 즉각적이고 온전하게, 즐거움으로, 이루어지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불순종 때문에 닥쳐오는 인생의 여러 재난과 슬픔을 피하고 우리가 순종하는 자에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복과 은혜와 도우심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