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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전시기간 : 2024년12월19일~2025년03월30일
관람시간 : 평일(화~금) 오전 10시~오후 8시
토 · 일 · 공휴일 하절기(3–10월), 오전 10시–오후 7시
동절기(11–2월), 오전 10시~오후 6시
《서울 문화의 밤》 운영매주 금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
입장시간 : 관람 종료 1시간 전까지 입장
휴관일 : 1월1일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개관)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2층 전시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3층 전시실
관람료 : 무료
도슨트안내 : 매일 오후 1시
전시장르 : 기획
후원 및 협찬
후원: 에르메스 코리아,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협찬: 올레드 삼성전자, 삼화페인트공업(주), (주)엣나인필름, INA
전시문의 ; 박가희 02-2124-8942
관람문의 : 안내 데스크 02-2124-8868
전시 안내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그는 그에게 배웠다. 배웠다. 그에 의해 가르침을
전시의 경험은 다양합니다. 저는 종종 이를 울고 있는 타인의 모습을 봤을 때의 경험에 비유하곤 합니다. 타인이 웃는 모습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우는 모습은 그렇지 않기에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타인이 우는 모습을 목격할 때, 그의 삶이 나의 삶과는 다르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전시 역시 일상 혹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다르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합니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타인(창작자)의 생각과 시선으로 만들어진 세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에 나의 몸과 생각의 축을 들여놓음으로써 새로운 감각과 사유를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각자의 세계를 조망하고, 조정하고, 다시 세울 수도 있습니다. 전시는 우리의 사고와 앎에 관여하는 주요한 매체이고, 그 경험은 저마다 다릅니다. 이론가이자 큐레이터인 이릿 로고프는 이러한 속성을 빗대어 전시를 “앎의 사건”이 일어나는 장이라 말했습니다.
동시대 한국 작가를 조명하는 연례전의 일환으로 기획된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그러한 ‘앎의 사건’이 일어나고, 확산되고, 실천되는 현장의 목격자이자 생산자로 관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전시의 중심에는 2017년부터 작가가 천착해 온 다중 연구 연작 〈표해록〉이 있습니다. 〈표해록〉은 20세기 초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이들의 서사를 경계, 전통, 기록, 소유와 유통 등 여러 논제들로 확장합니다. 작가는 많은 초기 이민자들의 삶이 근대와 식민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미국의 일반적인 역사 서술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에 작가는 기존 서술의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쫓으며 경계 안팎의 서사를 엮어 앎을 둘러싼 문제를 다방면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지식의 체계가 개인의 사고와 시선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탐구합니다.
이때 ‘하와이’는 구체적인 지리적 장소이자 개념이 됩니다. 대규모 농장 산업이 성행한 19세기 중반부터 많은 해외 노동자들이 하와이로 유입되었고, 자본의 흐름과 이민법의 변화에 따라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이 차례차례 이곳으로 이주했습니다. 1902년 대한제국의 여권을 들고 인천항을 출발하여 1903년 하와이에 도착한 120여 명의 한인들이 공식적으로 기록된 첫 이주민이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많은 한국인이 하와이를 거쳐 미국 본토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하와이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쟁을 피해 온 난민, 1898년 미국에 강제로 합병되어 땅(‘āina)을 잃은 하와이인 등 여러 표류하는 삶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와이는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떠도는 다양한 삶과 문화가 혼재하는 구체적인 장소인 동시에,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여기에 작용하는 힘들의 역학을 살펴볼 수 있는 개념적인 장소가 됩니다. 즉, 하와이는 하나의 은유로서, 기존의 지식 체계를 의심하는 일, 다른 체계의 앎을 교차시키는 일, 새로운 앎의 구조를 세우는 일을 수행해 보기 위해 선택된 장소입니다. 전시는 지식이 형성되고 보급되는 방식과 역사로 기록된 것들 밖에 머물렀던 흔적들을 함께 펼쳐 보이며, 하와이를 통해 이를 복합적으로 사고하기를 제안합니다.
올을 풀어내다(parfiler*)
전시는 작가가 생각하는 방식을 살펴보는 일에서 출발했습니다. 김성환 작가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1896년부터 1907년에 관한 레슨(이하 ‘레슨’)”(2018–)을 찾을 수 있는데, 이곳에서 지난 몇 년간 작가가 〈표해록〉을 작업하며 수집한 연구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자료들은 프로젝트 초반에 작가가 수행한 여정과 하와이에서의 삶에 기반합니다. 작가는 직접 차를 몰아 미국 서부를 이동하며 초기 한인 이주민들이 정착했던 곳들에 방문했습니다. 과거의 흔적들을 보고, 듣고, 수집하고, 이들의 삶을 더듬어 보기도 했습니다. 2020년에는 하와이로 기반을 옮겨 연구 대상 안에 작가 자신 스스로를 이동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인 작가의 생각과 경험은 열한 개의 세분화된 레슨으로 분류되어 홈페이지에 옮겨졌습니다. 레슨은 작가가 수집하고 촬영한 이미지와 텍스트, 작가가 읽은 책의 구절과 영화의 부분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언뜻 평범한 리서치의 결과물처럼 보이나, 이들은 수집한 정보를 모아놓은 것이라기보다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상에 접근하는 방법을 다룹니다. 엉켜있는 대상에서 올을 풀어 문제를 이끌어내고 그 문제에 관해 계속 생각하며 제 스스로 배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레슨 2 〈살아남은 순간들〉은 18세기 이래 일본에서 시대를 거듭해 재생산되는 이야기 〈주신구라〉의 한 장면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보여줍니다. 이와 함께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변화를 거듭해 온 광화문의 모습을 담은 기록물, 영화 속 불타는 장면 등을 한데 엮어 역사 속에서 무엇이 살아남았고 무엇이 사라졌는지 보여줍니다. 이 대상들을 보며, 남겨진 것들의 공통성 속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레슨〉은 〈표해록〉을 만들기 위해 수집한 배경지식이나 정보의 저장소가 아니라, 〈표해록〉을 통해 작가가 구체적으로 현실의 무엇을 조명하고 문제화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그의 앎의 체계와 대상을 보는 관점을 살펴보는 단서가 됩니다.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하와이로 삶의 기반을 옮겨 목격하고 알아간 작가의 경험이 관객 여러분의 ‘앎의 사건’으로 전이되기를 바랍니다. 이는 직접 몸을 움직여 경험하지 않으면 감각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전시는 전시된 정보와 몸이 맺는 관계를 강조하며, 다양한 감각을 통해 ‘앎’을 형성하도록 전시장 안에 펼쳐낸 활성화된 〈레슨〉과도 같습니다. 작가가 그랬듯 다방향으로 펼쳐진 앎의 축을 따라 복잡하게 뒤엉킨 시공의 직물을 한올 한올 풀어내듯 주제에 접근합니다.
전시는 하와이를 다시 보는 일에서 시작합니다. 제도와 앎의 문제를 다루는 〈표해록〉에 하와이가 왜 주요한 배경이 되었는지 살펴봅니다. 이때, 은유로서의 번역을 비롯해 인용, 발췌, 병치, 모사, 변형, 재구성 등 편집의 기술은 작가의 주요한 실천적 방법인 동시에 앎의 형성과 확산을 다루는 이 전시를 관통하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먼저 전시의 제목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를 환기해 봅니다. 설명이 없으면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제목은 의도적으로 매개어 없이 하와이어와 한국어 표음만을 병치함으로써, 즉각적으로 접속되지 않는 해석의 지연을 일으키고, 되려 중층적인 의미가 생성될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을 마련합니다. 작가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은유를 통해 양자 간의 비슷한 점을 강조하는 방법도 있다. 두 개의 문화를 상호-비유를 통해 병치하는 것이 발굴이나 번역보다 깊은 이해를 도울 수 있다. 한 문화가 다른 문화의 은유인 동시에 근원일 수도 있고, 그 逆 또한 같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상을 사고하는 방법이며, 전시는 특정한 역사에 대한 탐구가 아닌 이를 통해 대상(역사)을 보는 방법을 다루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크게 세 개의 방을 따라 전시는 펼쳐집니다. 근대와 식민의 역사를 드러내는 이주 서사에서 시작하여, 그 대상(역사)이 다뤄진 방식과 이를 둘러싼 앎의 형성과 소유, 그리고 유통에 대한 문제들이 방을 따라 구체화됩니다.
Room 1에서 하와이는 드류 브로데릭이 기획한 전시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를 발췌, 재구성한 파트와 〈몸 컴플렉스〉(2024)로 구체화됩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는 다수의 인물들과 이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언뜻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미지와 글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하와이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하와이를 중심으로 종과 횡으로 다른 지역, 시간, 문화, 역사적 사건, 인물 등을 엮어, 복합적이고 다양한 관점이 중첩된 공간 하와이를 드러냅니다. 작가에 의해 새롭게 조명된 장소이자 개념으로서의 하와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얼핏 무관해 보이는 국경(혹은 체계) 밖에서 일어난 사건과 삶이 실상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천천히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속한 앎의 경계를 넘어 복잡한 관계 속에서 현상과 대상을 사고하기를 제안합니다.
Room 2는 앎이 생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작품을 통해 ‘몸과 정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작가는 이곳에 상주하면서 전시장에 완결되지 않은 채로 놓인 영상의 파편과 소리, 자료 등 다양한 요소들을 변주하며 작품을 만들어 갈 예정입니다. 이곳은 전시장이자 작가의 편집실 혹은 스튜디오가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서 드러냅니다. 이와 같은 변화하는 전시의 문법은 앎의 축을 지속적으로 이동시키며 관객들이 새로운 ‘앎의 사건’을 목격하기를 제안합니다. 동시에 작가는 이 공간에 들어선 관객들의 움직임과 반응을 관찰하며 대화를 나누듯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관객들은 완성된 장면의 감상자에서, 한 개인(작가)의 사유가 앎(작품)으로 형성되는 과정의 목격자인 동시에 창작 과정에 개입하는 생산자가 됩니다. 앎을 생성하고 확산하는 매체로서 전시의 속성과 그 과정이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Room 2는 전시의 구조적 실험을 통해 유동하는 앎의 속성을 은유하고, 역사라는 지식이 형성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합니다. 몸과 정보의 관계를 극대화하는 전시의 문법은 앎의 축을 이동했을 때(몸을 움직였을 때) 비로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앎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Room 3에서는 2007년 제작한 영상 작품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을 방화와 광화문에 관한 이미지, 영화의 장면 등을 추가하여 새롭게 재구성한 설치 작품으로 선보입니다. 전시장을 아우르는 설치 작품은 크게 1937년, 2007년, 2024년을 기준으로 사라진 것과 남겨진 것들을 보여줍니다. 기록된 것과 시차 속 변화한 현실을 끊임없이 오가도록 설계된 전시장은 시간(역사)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변형과 소멸을 전시와 영화와 같은 매체들이 지닌 기록과 왜곡의 양면성을 통해 말합니다. 과거에 완결된 작품을 지금으로 가져와 활성화하는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모사와 변형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식에 지속적으로 질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작가에게 ‘작품’은 대상에 관한 고정된 사유의 결과가 아닌, 변화하는 대상에 다가서는 시선이자 사유의 방법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합니다.
목격은 지식 교환의 한 방식이다
지난 여름 하와이에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일부지만 〈표해록〉에 등장하는 장소에 방문하고, 작업과 관련된 이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몸을 이동하여 실재를 마주하는 경험은 기록으로서 혹은 작가의 작업으로서 마주했던 대상들을 스스로의 경험과 포개어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줬습니다. 잘못 접어든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희’라는 이름의 건물이 세워진 곳이 바로 초기 한인 이민자들이 주로 거주했던 지역이었음을 뒤늦게 알았을 때, 방금 지나친 길이 필리아모오의 연작 속에 등장하는 개발지역임을 알았을 때, 작가를 통해 알게 된 시공과 서사들이 밀려 들어와 다른 풍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과 인물들, 그들의 삶을 더듬어볼 수 있었던 이 여정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본 것들이 제 것으로 살아나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무엇보다 전환적인 계기가 된 것은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5의 일환으로 마련된 안티 마누의 기조 강연이었습니다. 하와이의 중요한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안티 마누는 트리엔날레의 주제인 ‘알로하 노’를 자신의 경험을 빌려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했습니다. 알로하를 모든 가치의 근원이라 주장하며 지식의 탈식민적 전환을 말하는 그는 서구 철학이나 과학에서 세계는 인간이 관장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세계는 제 스스로 조직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목격이란 더욱 높은 빈도의 지식 교환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문장이 제게 준 가장 큰 깨달음은 목격이라는 행위를 사고하는 방식입니다. 제게 목격은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수동적인 경험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목격은 그 자체로 지식을 교환하는 행위가 됩니다. 나아가 목격은 한 개인의 경험에서 끝나지 않고 타인과 공유되는 능동적인 경험이며, 하나하나가 모여 공동의 앎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줬습니다.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역시 이와 같은 능동적인 ‘목격’의 경험을 통해 앎의 논제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작가의 질문과 여정에서 출발한 이 전시는 몇 차례의 변형과 편집을 통해 여러분 앞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 교환과 변화를 거듭할 예정입니다. 석화하지 않고 부유하기를 거듭하는 지대 위에서 작가의 여정과 시선을 따라 기획자에게로, 그리고 또 여러분에게로 목격의 연쇄가 이어지기를, 그 속에서 우리의 앎에 작용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이에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성찰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레슨〉의 ‘의도(intent)’ 페이지에 등장하는 롤랑 바르트의 『중립』의 구절에서 가져왔습니다.
관람포인트
전시 기간 동안 전시의 구성이 조금씩 변화할 예정으로, 다회차 관람을 제안드립니다.
> 특히 <표해록>의 첫 번째 비디오 작품 <머리는 머리의 부분>과 두 번째 비디오 작품 <By Mary Jo Freshley 프레실리에 의(依)해>는 특정 기간(2025년 2월 5일부터 3월 9일까지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후 2시, 3시)에만 상영합니다.
> Room 2에 설치된 비디오 작품 <무제>(2024)는 전시 기간 중 진행되는 워크숍, 리허설, 움직임 등을 통해 완성됩니다.]
[김성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
전시 개요
김성환 작가의 개인전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는 동시대 한국 작가를 조명하는 서울시립미술관 연례전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2017년부터 작가가 천착해 온 다중 연구 연작 〈표해록〉을 중심에 두고 관객 여러분들을 앎의 사건의 목격자이자 생산자로 초대합니다.
〈표해록〉은 20세기 초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이들의 서사를 경계, 전통, 기록, 소유와 유통 등 여러 논제들로 확장하며 제도와 앎의 관계를 다루는 프로젝트입니다. 작가는 많은 초기 이민자들의 삶이 근대와 식민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미국의 일반적인 역사 서술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에 작가는 기존 서술의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을 쫓으며 경계 안팎의 서사를 엮어 다방면으로 앎을 둘러싼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지식의 체계가 개인의 사고와 시선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탐구합니다. 이때 ‘하와이’는 구체적인 지리적 장소이자 개념이 됩니다. 대규모 농장 산업이 성행한 19세기 중반부터 많은 해외 노동자들이 하와이로 유입되었고, 자본의 흐름과 이민법의 변화에 따라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이 차례차례 이곳으로 이주했습니다. 1902년 대한제국의 여권을 들고 인천항을 출발하여 1903년 하와이에 도착한 120여 명의 한인들이 공식적으로 기록된 첫 이주민이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많은 한국인이 하와이를 거쳐 미국 본토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하와이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쟁을 피해 온 난민, 1898년 미국에 강제로 합병되어 땅(‘āina)을 잃은 하와이인 등 여러 표류하는 삶들이 존재했습니다. 하와이는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떠도는 다양한 삶과 문화가 혼재하는 구체적인 장소인 동시에, 과거는 물론 현재까지도 여기에 작용하는 힘들의 역학을 살펴볼 수 있는 개념적인 장소가 됩니다. 즉, 하와이는 하나의 은유로서, 기존의 지식 체계를 의심하는 일, 다른 체계의 앎을 교차시키는 일, 새로운 앎의 구조를 세우는 일을 수행해보기 위해 선택된 장소입니다. 전시는 역사라는 지식이 형성되고 보급되는 방식과 역사로 기록된 것들 밖에 머물렀던 흔적들을 함께 펼쳐 보이며, 하와이를 통해 이를 복합적으로 사고하기를 제안합니다.
크게 세 개의 방을 따라 전시는 펼쳐집니다. 근대와 식민의 역사를 드러내는 이주 서사에서 시작하여, 그 대상(역사)이 다뤄진 방식과 이를 둘러싼 앎의 형성과 소유, 그리고 유통에 대한 문제들이 방을 따라 구체화될 예정입니다.]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
다음은 김성환 작가가 참여한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 《태평양의 세기—모아나누이아케아를 지키며 이어가다》의 일환으로 협력 큐레이터 드류 브로데릭이 기획한 전시의 일부를 가져와 이번 전시의 맥락에 맞게 새로운 자료 및 작품과 함께 재구성한 것입니다.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는 관광 산업과 개발의 이름으로 오랜 시간 소외된 채 희생을 치른 하와이 공동체의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자 기획되었습니다. 특히 하와이주립미술관에서 개최된 드류 브로데릭이 기획한 전시는 ‘지상낙원’이라는 이미지 뒤에 감춰진 하와이가 처한 복잡한 현실을 드러내며 하와이의 진정한 모습과 그것이 품은 역사, 문화, 정치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하와이의 예술과 문화가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담겼습니다. 하와이의 정체성을 재조명하고자 시작된 하와이 트리엔날레는 기존 전시와 제도에서 배제되었던 하와이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중심에 둠으로써 도외시되고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이번 전시 《Ua a‘o ‘ia ‘o ia e ia 우아 아오 이아 오 이아 에 이아》에는 엘레파이오 출판사, 웨인 카우무알리이 웨스트레이크, 필리아모오, 아이 포하쿠 출판사가 소개됩니다. 이들은 모두 1970년대에 왕성했던 하와이 주권 운동과 궤를 함께 하며, 하와이의 문화와 전통을 보존하고 이를 다음 세대로 잇는데 헌신해 온 사람들로, 김성환 작가가 드류 브로데릭의 시선과 몸을 통해 목격한 하와이입니다. 여기서 작가는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등 이들의 관계와 다루는 매체에 주목합니다.
마크 하마사키와 카풀라니 랜드그라프로 구성된 필리아모오는 1989년 결성된 이래 30년 넘게 하와이의 역사, 문화, 환경 변화를 기록해 왔습니다. 이들의 인연은 카풀라니 랜드그라프가 마크 하마사키의 수업을 듣게 된 것을 계기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동료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들의 대표적인 사진 연작이자 공동 작업인 〈에 루쿠 왈레 에: 폐허 위의 폐허〉(1997~)는 아이 포하쿠 출판사를 통해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아이 포하쿠 출판사는 드류 브로데릭의 어머니이자 1970년대 설립되어 하와이 커뮤니티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푸우호누아 소사이어티의 대표 마일레 마이어와 바바라 포프가 하와이 왕국의 불법 전복 100주년을 기억하며 1993년 설립한 출판사입니다. 출판사의 이름인 ‘아이 포하쿠(ʻAi Pōhaku)’는 ‘돌을 먹다’라는 뜻으로, 하와이인들이 겪은 고난을 상징하는 동시에 하와이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려는 의지가 담긴 표현입니다. 아이 포하쿠 출판사는 이와 같은 저항 정신을 살려 하와이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둔 사진, 예술, 인문 분야의 책들을 출간하여 언중에 보급해왔습니다. 마크 하마사키가 1976년 그의 동생이자 시인인 리처드 하마사키와 설립한 엘레파이오 출판사는 1970년대 하와이인의 권리와 자치권 회복을 요구하는 시위와 연대의 중심에서 하와이의 예술가, 작가, 시인, 사진가, 일러스트레이터, 음악가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했습니다. 시인 웨인 카우무알리이 웨스트레이크는 엘레파이오 출판사에서 출간한 「해초와 건축」(1983)의 저자이자 공동편집자로 활동했으며, 하와이와 오세아니아 지역의 예술가와 작가들을 연결하며 문화 주권 운동의 흐름을 기록했습니다. 한편, 웨인 카우무알리이 웨스트레이크의 활동은 엘레파이오 출판사의 출판 작업을 통해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쿨레아나(kuleana)는 강제 점령으로 삭제된 하와이의 문화와 역사를 회복하여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쿨레아나는 하와이어로 ‘책임’을 뜻한다. 드류 브로데릭은 이들의 쿨레아나로 하와이 문화를 배우며 자란 다음 세대에 속합니다. 우정과 혈연에서 출발한 이들의 연대는 사진과 출판이라는 매체를 통해 확산되며 인종, 세대, 국경을 넘어 지금의 하와이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예술의 창작을 넘어 하와이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기록이며, 전시와 출판은 하와이를 전하고 새롭게 배우는 중요한 플랫폼이 됩니다. 작가는 이들의 활동 속에서 구한말 식민의 역사와 그 역사가 보급되었던 구조적 양태를 떠올립니다.]
[웨인 카우무알리이 웨스트레이크, 〈훌리〉
웨인 카우무알리이 웨스트레이크는 하와이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 번역가입니다. 그는 하와이인의 정체성과 전통 문화, 언어를 탐구하는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인 시를 남겼습니다. 전시된 세 편의 시 중 하나인 「훌리」는 ‘돌린다’, ‘되돌린다’, ‘전환하다’라는 뜻을 지닌 하와이어를 뒤집고 반전하여 그 의미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구체시입니다. 하와이 문화의 재정립과 정치·사회적 억압에 저항했던 하와이인들의 정신을 은유합니다. 토란의 줄기 부분을 가리키는 ‘훌리’는 잎을 잘라낸 후 줄기 밑의 알줄기 ‘코름’을 다시 심는 과정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와이 토착 문화에서 토란은 선주민의 문화적 정체성에 깊이 연관된 신성한 작물로 단순한 농작물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실제로 1970년대 미국에 맞서 자치권을 요구했던 하와이인들의 저항 구호로 사용되었으며, 문화 회복과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을 상징합니다. 김성환 작가는 훌리를 ‘전복’, ‘민중’, ‘향토’, ‘개벽’으로 번역하여 전시장에 제시했습니다. 한국인과 하와이인은 모두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억압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또한, 구한말 조선의 정치, 경제는 하와이라는 장소와 긴밀한 관련이 있지만 일반적인 역사 서술에서 이는 함께 다뤄진 바 없습니다. 두 지역의 역사적 경험이 매개어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번역’될 때, 문화적 경험과 인식의 차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이해가 ‘지연’됩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지연을 야기하는 ‘번역’을 통해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진 역사와 문화를 교차시키고, 이때 발생하는 긴장감을 통해 상황을 다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합니다.]
[필리아모오
필리아모오는 사진작가 마크 하마사키와 카풀라니 랜드그라프가 1989년 하와이에서 결성한 작가 그룹으로, 지난 30여 년 동안 하와이의 역사, 문화, 환경 변화를 기록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필리아모오의 사진 연작 〈에 루쿠 왈레 에: 폐허 위의 폐허〉(1997~) 중 김성환 작가가 고른 두 점의 사진과 이에 관한 각주를 발췌하여 병치한 작품 두 점, 동명의 출판물 16권, 해당 출판물 속 사진을 작가가 촬영한 이미지 두 점을 전시합니다. 〈에 루쿠 왈레 에: 폐허 위의 폐허〉 연작은 오아후 섬에서 진행된 H-3 고속도로 건설 현장을 담은 기록 사진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H-3 고속도로는 오아후 섬의 푸울로아(Puʻuloa, 진주만)와 카네오헤 해병대 기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군사) 교통로로서, 1960년대에 계획되어 1997년에 개통됐습니다. 건설 과정에서 하와이의 중요한 문화 유적지와 자연 환경이 훼손되자 하와이인들의 강한 반발이 일어났음에도 1986년 미국 의회가 환경 법규를 면제하는 특별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끝내 도로는 완공됐습니다. 필리아모오는 1989년 3월부터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된 1992년 11월까지 휴일마다 현장을 찾아 현실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이들의 사진은 자연과 유산이 파괴되는 모습뿐만 아니라 개발이 피식민자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줍니다.
또한, 김성환 작가는 이들의 작품이 전시된 방식에도 주목합니다. 이 연작이 하와이 트리엔날레 2022에서 보여졌을 당시 기획자인 드류 브로데릭은 사진과 함께 아이 포하쿠 출판사에서 출간한 동명의 책 16권을 함께 설치했습니다. 전시된 책은 기록 사진이 아닌 H-3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된 노트와 사건 경위를 담은 연표를 보여주며 사진 속 현실을 생생히 전합니다. 이처럼 사진 뿐만 아니라 이를 출판의 형태로 담은 책, 또 이를 전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당시의 기록이며 이를 보급하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김성환, 〈몸 컴플렉스〉
크기가 다른 인물상이 저마다 다른 곳을 보며 군상을 이루듯 서 있습니다. 벽면에 설치된 자료와 작품을 따라 몸을 움직이면 시야가 변하면서 인물들의 면면이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다섯 구의 설치물로 이뤄진 〈몸 컴플렉스〉(2024)는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하와이를 터전 삼은, 역사의 조연이었던 인물들로 재구성한 하와이의 풍경이자 지도입니다. 1900년대 초 도산 안창호(1878-1938)를 따라 하와이로 이주 한 후 남편이 떠난 뒤에도 미국에 홀로 남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그의 아내이자 독립운동가 이혜련(1884-1969)과 큰 아들 안필립(1905-1978), 1950년 하와이로 건너가 조선의 전통춤을 가르쳤던 배한라(1922-1994)와 그의 제자 메리 조 프레실리(1934-), 목사이자 독립운동가 현순의 둘째 아들이자 한국계 미국인 조각가 현폴(1913-2002), 1970년대 하와이 군도 전역을 누비며 하와이의 문화, 언어, 역사 등을 기록하고 보존한 나 마카 오 카 아이나의 조안 랜더(1947-)와 푸히파우(1937-2016), 그리고 세대를 이어 그들의 자료를 보존하고 보급해 온 산시아 미알라 시바 내쉬(1997-). 세대와 젠더, 국적과 인종이 다른 이들을 이어주는 존재는 하와이입니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들의 삶과 그들이 터전 삼은 세계가 교차하도록 설계된 이 공간에서 하와이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관점이 중첩된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이를 일컬어 작가는 “두 개 이상의 언어가 들어와 만들어질 수 있는 번역의 공간”이라 말합니다. 번역은 체계가 다른 사유와 문화를 오가는 행위이며, 그 과정에서 제3의 새로운 의미와 관계가 만들어집니다. 하와이어로 ‘노 헤아 마이 오에(No hea mai ‘oe)?’는 ‘어디에서 왔나요?’ 혹은 ‘어디에 속했나요?’라는 뜻으로, 여럿이 모인 모임에서 처음 주고받는 일상적인 표현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혹은 서로 다른 곳에 속한 이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환기하는 이 표현처럼 〈몸 컴플렉스〉는 자신이 속한 앎(인종적, 민족적, 젠더적)의 경계를 넘어 대상과 현상을 접하게 합니다.]
[하와이 이민자 김순건이 발급받은 여권 외 자료들
1903년 대한제국 수민원에서 발행한 여권과 당시 이민 기록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수민원은 이민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1902년 11월 설치된 대한제국의 기관으로, 그해 12월 인천 제물포항에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난 121명의 사람들을 한국 최초의 이민자로 기록합니다. 1902년부터 1905년까지 총 7,300여 명의 노동자가 기독교의 주재로 하와이로 이주했습니다. 이는 1882년 중국인 노동자의 미국 이민을 제한하는 ‘중국인배척법’으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이주한 일본인 노동자들이 조합을 결성함에 따른 연쇄적인 결과였습니다. 한편, 1910년 한일합병 이후 대한제국은 독립 국가로서 지위를 상실하였고, 한국인이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본 정부에서 여권을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인이지만 일본 여권을 가진 이들이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혹은 무국적자, 즉 난민을 주장하며 여권 없이 혹은 위조 문서를 통해 미국에 입국했습니다. 제시된 자료는 한인 이주의 역사가 당시 국제 자본의 흐름과 노동시장, 미국 이민법의 변화, 종교적 영향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함께, 기록된 사실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암시합니다.]
[김성환, 〈활성화된 사진 틀〉
〈활성화된 사진 틀〉은 다섯 점으로 구성된 사진 연작으로, 김성환 작가의 다중 연구 연작 〈표해록〉의 일부입니다. 그 중 설치된 두 점의 사진은 조지 헬름과 테릴리 케코올라니, 두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는 ‘표적도’로 알려진 하와이 제도에 위치한 카호올라베 섬을 비춥니다. 1941년 푸울로아(Pu‘uloa, 진주만) 공격 후 미국 해군의 포격 연습장이나 군사 훈련장이 된 태평양에서 가장 포격을 많이 당한 곳이기도 합니다. 조지 헬름과 테릴리 케코올라니는 하와이의 땅 카호올라베 섬을 포격으로부터 지키고자 고군분투한 이들입니다. 작가는 1970년대 하와이의 ‘신해불이’ 운동을 기록한 에드 그리비의 사진과 하와이 독립운동가 하우나니-케이 트라스크의 글을 병치하여 두 인물의 삶과 하와이의 현실을 전합니다. 한편 카호올라베 섬은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 가상 포격 훈련장으로 사용된 곳이기도 합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 한반도의 역사와 포개지며, 국토(한국)의 바깥(하와이)에서 일어난 사건과 운동이 실상 우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김성환, 〈Poor Kōlea counts na pō mahina〉
사람과 새의 형상이 중첩된 이미지들로 이뤄진 드로잉 콜라주 작품입니다. 드로잉 속 형상은 검은가슴물떼새에서 왔다. 하와이에서 검은가슴물떼새는 코레아(Kōlea)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 새는 알래스카에서 여름을 보내고 하와이로 날아와 겨울 동안 머뭅니다. 코레아라는 말은 하와이어로 ‘가져가고 떠나는 자’를 뜻하고, 하와이 사람들은 코레아를 알리이(alii, 족장)의 전령으로 여깁니다. 이 지역 사람들에게 코레아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존재입니다. 반면 누군가에게 코레아는 즉각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입니다. 떠나기를 반복한다는 상징적 의미에 한국이라는 지식이 덧대어지면, 코레아라는 새는 중층적인 형상을 가진 존재로 해석됩니다.
이 작품의 한 켠에는 ‘한국인(Kōlea)’과 ‘검은가슴물떼새(Kōlea)’라는 두 단어와 함께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드류 카후아이나 브로데릭은 한국인은 검은가슴물떼새에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해한다.”]
[Room 2 <무제>와 워크숍
다음의 방에서는 〈표해록〉의 세 번째 신작 비디오 〈무제〉(가제, 2024)를 중심으로 전시기간 동안 변화하는 양상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전시합니다. 〈무제〉는 〈머리는 머리의 부분〉에 등장하는 인물들로 구성된 비디오, 〈By Mary Jo Freshley 프레실리에 의(依)해〉의 내레이션으로 구성된 비디오, 하와이에 위치한 레아히(Lē‘ahi, 다이아몬드 헤드)를 비추는 비디오 〈he inoa pō (quickly before, slowly after)〉등 작가가 제작한 작품과 함께 김천흥의 발 움직임과 도너스와 컵의 위상학적 관계를 보여주는 비디오로 구성된 다채널 비디오 작품입니다. 각각의 비디오는 민족/역사/문화의 유일성, 기록의 소유와 유통, 다른 체계의 역사가 투영되는 장소로서의 하와이, 다른 외양의 사물들 사이의 공통성, 이러한 일련의 사유를 형상화하는 방법으로서의 장단과 리듬을 다룹니다. 파편화된 영상의 이미지, 내레이션, 사운드는 마치 하이쿠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이쿠는 짧은 시형을 이용해 특정 순간들을 교차시킴으로써 서사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발생시키는 문학의 한 형식입니다. 순서나 인과관계 없이 하나의 묶음으로 제시된 이 영상 역시도 어떤 관계 속에서 발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저 여러 상황의 나열일 뿐일 수도 있고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파편화된 요소들을 병치함으로써 어떤 사건을 환기하거나 서사를 발생시킵니다. 작가는 이러한 새로운 사유와 앎의 생성이 가능한 상태로서 이 전시장을 편집실이자 스튜디오로 제안하며, 작업의 과정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공개합니다. 작가의 사유와 시선이 작품으로 발현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한 개인이 앎을 형성해가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그 수행의 과정을 통해 변화하는 전시의 양상을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 제안하는 작가의 시도는 몸과 정보의 관계를 전시라는 매체의 문법 속에서 다루는 일입니다. 작가는 “전시는 일방적인 발표의 장이 아니라, 상대의 눈을 보며 대화를 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완결되지 않은 채 공개된 작품 〈무제〉는 작가와 전시장에 방문하는 관객과의 유무형의 대화 속에서 전시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완성될 예정입니다.
이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나무 이미지, 특정한 건축의 양식을 담은 구조와 이미지, 천과 옷, 장단과 춤 등 다채로운 이미지와 소리, 글과 말, 움직임과 빛이 공간을 채웁니다. 혼재하는 다양한 기록 사진과 작가가 제작한 이미지, 층과 층을 관통하는 조명과 전시장을 대각으로 뻗어있는 길은 작가의 작품이 시간과 경계를 가로질러 실재와 상상 사이에서 형상화된 앎임을 은유합니다. 작가는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게 격자 형태로 가지런히 심겨져 있는 농장의 나무 이미지와 아녜스 바르다의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1988)의 한 장면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장면 역시 하천을 중심에 두고 나무들이 격자 형태로 가지런히 조성된 숲을 비추는데, 이를 가로로 가로지르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불현듯 세로로 뛰어드는 한 인물과 마주칩니다. 이 장면이 보여주는 것은 연속하는 장면의 프레임과 이를 찢고 나오는 움직임입니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가 봅니다. 이 전시장에서 관객은 완성된 장면의 감상자에서, 한 개인(작가)의 사유가 앎(작품)으로 형성되는 과정의 목격자인 동시에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개입하는 생산자가 됩니다. 작가는 전시장의 요소들 사이에서 사선으로 뛰어나오는 움직임을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요?]
[김성환,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2007)은 1935년과 1937년 사이에 일제강점기 경성(일본식 발음 ‘게이조’)을 여행한 스웨덴 민속지학자 스텐 베리만의 기행문과 2007년의 서울을 여행하는 김성환 작가의 친구이자 작가 미카 반 데 보르트의 시선을 중첩하여 보여줍니다. 미카가 경험한 도시는 한국전쟁 이후 재건된 서울이지만, 베리만이 묘사한 근대 도시 게이조와 묘하게 겹칩니다. 이 작업이 보여주는 것은 시차(parallax)입니다. 글이 기록하고 기억하는 대상은 2007년의 서울에 더는 없거나 그때와는 다른 무언가로 변했습니다. 게이조의 ‘조선 호텔’은 ‘웨스틴 조선 서울’ 호텔로 이름과 일부 건축이 바뀌었고,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5년 철거가 시작되어 남아 있지 않기에 영상에는 담기지 않았으며, 미카 역시 2011년 운명을 달리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갈등, 즉 기록으로는 남았으나 이후 사라지거나 변형되어 기록이 지시하는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은 비단 영상 안에서만의 일이 아닙니다. 영상에 담긴 숭례문은 작품 완성 이듬해인 2008년에 전소되었고, 지금 이 작업을 보는 현재 우리에게 남은 복원된 숭례문은 영상 속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시차는 필연적이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사라진 것을 되돌아보고 그 흔적을 되살립니다. 혹은 반대로 사라진 것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다채로운 기록과 이미지, 영화의 장면들, 연표 등을 더하여 〈게이조의 여름 나날―1937년의 기록〉을 설치 작품으로 제안합니다. 과거에 완결된 작품을 지금으로 가져와 활성화합니다. 역사 속에서 변화를 거듭할 수 밖에 없었던 광화문의 기록, 2008년에 불탄 남대문의 이미지, 불과 관련된 작가의 영상 작품과 불타는 장면을 담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구로사와 아키라의 〈란〉을 가져왔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라진 것 혹은 변화하는 것에 관한 기록입니다. 특히 두 편의 영화 〈희생〉과 〈란〉은 감독에 의해 소멸(불타는 세트장)하는 동시에 생성(영화)되는 영화의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제작은 역사의 한 부분이 됩니다. 전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확장된 설치로서 이 작품은 유동적인 현실에 대해 영화와 같은 매체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읽힙니다. 작가에게 ‘작품’은 대상에 관한 고정된 사유의 결과가 아닌, 변화하는 대상에 다가서는 시선이자 사유의 방법으로서 자리합니다.]
[액츌리나, 〈액츌리나의 막걸리 만들기〉[1부: 준비 & 2부: 저어주기, 시음하기, 병에 담기]
〈액츌리나의 막걸리 만들기〉(2020)는 한국의 전통술인 막걸리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영상입니다. 가상의 유튜버 액츌리나는 미국 보스턴 출신으로 일본, 한국, 네덜란드에 살았던 경험이 있으며, 김성환 작가의 작품 〈머리는 머리의 부분〉(2021)에 등장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누룩’이나 ‘고두밥’같은 고유한 한국말에 익숙하고 한복을 입기도 하지만, 그의 외양은 한국의 전통 음식을 다룰 법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으며 요리하는 몸짓 역시 어딘가 독특합니다. 액츌리나의 콘텐츠는 유명한 한국 음식 유튜버 망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망치아줌마’로 불리는 에밀리 킴은 한국에서 출생해 1990년대에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로, 다양한 한국 음식을 만들고 영어로 소개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는 김치에서 메주까지 다양한 한국 음식을 능숙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의 외양이나 그가 요리하는 주방의 모습은 미묘하게 한국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이러한 연관성 속에서 생각해보면, 액츌리나는 무언가를 따라 하고 반복하는 일, 전승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모사는 따라 하는 대상과 표면적으로 엇비슷해 보일지라도 늘 어딘가 변형되게 마련입니다. 또한, 세월에 걸쳐 반복된 모사는 그 원형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게 합니다. 원형이라는 것이 애당초 존재하기는 할까요? ‘유튜브’는 이 주제를 숙고하게 하는 하나의 매체이자 형식입니다.]
[김성환, <머리는 머리의 부분>
〈머리는 머리의 부분〉(2021)은 영상, 책, 설치로 구성된 작가의 다중 연구 연작 〈표해록〉(2017)의 첫 번째 영상입니다. 하와이를 배경으로 20세기 초 구 조선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자의 행로를 따라 교차하는 많은 이들의 서사를 여러 방향으로 직조합니다. 작품은 1895년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는 자를 수 없다’며 단발령을 거부한 조선 후기 사대부 최익현의 말이 지닌 다문화성에서 출발하여, 사진 신부의 구전 역사와 미국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으려는 1970년대 하와이 활동가들의 서사 등 다양한 요소들을 직조하며 이야기를 확장합니다.
하와이는 한민족을 비롯해 태평양을 횡단한 많은 초기 이민자들에게 미국 본토로 향하는 경유지이자 정착지였고, 하와이 선주민들에게는 미국에 빼앗긴 땅이었습니다. 작가에게 하와이는 민족과 국경의 범주를 넘어 여전히 표류하는 이들의 삶이 혼재하는 특정한 지리적 공간이자,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여전히 작용하는 힘의 역학을 살펴볼 수 있는 통시적이며 공시적인 장소입니다. 하와이는 그 자체로 여전히도 유동하는 삶의 기록이자 목격의 장소로서 국경, 인종, 세대를 넘어 거대한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예시가 됩니다.
작가는 영어와 한국어는 물론, 북경어와 하와이어를 활용해 묶이지 않았던 언중들의 삶을 엮습니다. 이는 동시했으나 서로 도외시했던 소수자들의 역사를 교차시키며 새로운 서사(역사 연구)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또한, 아이폰에 장착된 라이브 포토 기능을 활용해 장면으로 기록되는 역사의 의미와 그 형성 과정을 재검토합니다. 라이브 포토는 장면의 전후 움직임을 포괄하여 저장하는 기능으로, 작가는 한 장면이 아닌 장면의 앞뒤에 놓였을 상황을 가져와 적극적으로 영상에 포함시킵니다. 이는 기록된 장면, 혹은 순간, 사건은 그 밖의 정황과 선후 인과관계를 포함한 것임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은 언중의 교차와 사건의 전후를 주시하는 작가의 태도는, “유동적일 수 밖에 없음에도 석화되기를 반복하는 경계의 개념과, 그 오해된 개념 안에 안주하려는 지식을 재평가”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합니다. 〈머리는 머리의 부분〉은 주어진 경계에 대한 의심이며, 경계를 벗어나 다양하고 너른 관점에서 대상(역사)을 보는 연습과도 같습니다.
해당 영상 작품은 Room 2에서 2025년 2월 5일부터 3월 9일까지 매주 수요일, 일요일 오후 2시에 연속 2회 상영됩니다.]
[김성환, <By Mary Jo Freshley 프레실리에 의(依)해>
〈By Mary Jo Freshley 프레실리에 의(依)해〉는 〈표해록〉(2017~) 연작의 두 번째 영상 작품입니다. 한국 근대무용가 배구자, 그의 춤을 이어 받아 1950년대 초 하와이로 이주한 그의 친동생(혹은 사촌) 배한라, 배한라의 제자이자 한라함 한국무용연구소의 원장인 메리 조 프레실리, 이들의 몸을 따라 전승된 춤을 통해 보급된 전통에 대해 질문합니다. 하와이에 있는 한라함 한국무용연구소를 배경으로 한국의 문화가 하와이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계승, 변형되고 있는지 살핍니다.
몸에는 삶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 몸으로 만들어내는 언어로서 춤은 몸에 새겨진 역사를 표현합니다. 배구자에서 배한라로, 배한라에서 메리 조 프레실리로 이어지는 춤은 기술의 계승을 넘어 수십 년간 몸을 따라 이어진 삶과 역사의 전승처럼 보입니다. 영상은 메리 조 프레실리에게서 춤을 배우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미국인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작가가 배우는 이 춤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요? 이 작품은 메리 조 프레실리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의 전통이 미국인의 몸을 거쳐 어떻게 재해석되고 하와이의 문화적 맥락 안에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핍니다. 한라함 한국무용연구소에는 한인을 비롯하여 인종과 상관없이 타문화권의 많은 학생들이 메리 조 프레실리에게 춤을 배웁니다. 전통은 무엇이고 누가 만드는 것인가? 전통이라 칭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이 다름 안에서도 유지되는 것은 무엇인가? 등 전통이라는 이름의 문화가 지닌 권위와 그 소유권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한인 초기 이민과 관련된 자료들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물지게를 진 조선인,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이민자, 배한라와 관련된 문서 등 다수의 자료를 하와이에 소재한 비숍박물관 아카이브나 하와이대학교 마노아 캠퍼스 내 한국학센터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초기 한인 이민자의 역사가 한국의 역사인 동시에 하와이 혹은 미국 역사의 일부라는 점과 그 역사를 누가 기록했고 소유하며 관리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해당 영상 작품은 Room 2에서 2025년 2월 5일부터 3월 9일까지 매주 수요일, 일요일 오후 3시에 연속 2회 상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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