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가족처럼… ‘1인6역’ 심장판막 수술 명의[핫 닥터]
연세대 세브란스심장혈관병원 이삭 교수
이성주 기자수정 2021년 7월 4일 01:50조회수: 108
휴대전화 벨이 새벽 단잠을 깨웠다. 응급실이었다. 40대 중반 남성이 대동맥 혈관이 찢어져 입원했다는 다급한 목소리.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도 문제이지만, 대동맥이 터지며 급사로 이어질 수 있는 응급상황이었다.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이삭 교수는 전공의에게 수술 준비를 지시하고, 서대문구 연희동 집에서 뛰쳐나와 택시를 탔다. 수술실 앞에서는 고교생 딸이 흐느끼며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나중에 수술실 앞에서 만난 딸은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둘이서 살고 있다고 했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지금 환자는 50대가 됐으며, 딸은 주치의에게 삶의 전환점마다 인사를 온다.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할 때에도 찾아왔고, 회사에 취업해서 첫 월급으로 이 교수에게 머플러를 선물했다. 결혼할 때에도 새신랑과 함께 인사를 왔다.
“환자나 그 자녀가 결혼하거나 아기를 안고 찾아올 때의 기쁨을 상상해보세요. 흉부외과 의사는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온 환자를 두 발로 걸어 나가게 해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도 살리는 보람으로 삽니다. 그렇게 살려서 오랫동안 마음을 나눈 환자나 보호자는 그야말로 가족처럼 여길 수밖에 없지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이삭 교수(48)는 환자를 기적처럼 살려서 퇴원시키는 흉부외과의 매력에 빠져서 고생을 사서 해왔고, 지금은 심장 판막 수술의 최고수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의사다.
이 교수는 어쩌면 흉부외과 의사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갈 뻔 했다. 어릴 적에는 사회부 기자로 이름을 떨쳤던 아버지 이대우 전 전주MBC 사장의 영향을 받아 방송인을 꿈꿨지만, 국어 성적이 신통치 않아서 이과로 방향전환을 했다가 ‘전문직의 매력’에 이끌려 의대에 입학됐다.
그는 인턴 때 기적처럼 환자를 사지에서 구하던 흉부외과 교수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심장을 빼앗겨버렸다. 당시 흉부외과는 힘들고,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해서 남자들도 기피하는 전공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혼자 지원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교수는 ‘1인 전공의’로서 하루 3, 4개 수술을 보조하고 중환자실과 병실 환자를 관리해야 했다.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뛰어다녀야 했던 데다가, 여자 전공의실은 너무 먼 곳에 있었고 수술실 부근의 전공의실은 남자 선배 차지여서 두 다리를 펴고 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잠시만 짬이 나도 고주박잠, 말뚝잠, 멍석잠을 자며 수면을 보충해야 했고, 서서 자는 ‘묘기’도 익혔다. 중환자실 옆 회의실에 의자를 붙여놓고 쪽잠을 자는 것이 ‘최고의 단잠’일 정도였다. 거의 매일 당직을 서야 했으므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말에 병원 밖에 나가면 몰아서 꿀잠을 자는 것이 자신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당연히, 계절이 어떻게 지나는지,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이 교수는 그런 고생 끝에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맡아 수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게 된 것을 큰 행복으로 여기고 있다.
“전공의를 마칠 때 흉부외과의 여러 전공 중에서 어른 심장병을 담당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폐 전공을 생각했는데 폐는 잘라내면 기능이 나빠져서 숨이 차서 재입원해야 하지만, 심장은 숨이 차거나 가슴을 부여잡고 입원해서 가슴을 펴고 나갈 수가 있지요. 소아심장도 의미는 있지만, 제가 아기를 좋아하는데, 때로 예쁜 아기에게 결과가 안 좋으면 부모에게 설명하면서 울컥울컥해져서…. 좋지 않았던 아기와 부모가 지금도 눈에 밟히곤 해요.”
이 교수는 전임의 3년 동안 심장과 동맥 등의 모든 수술을 담당하다가 전임강사를 시작하면서 당대의 심장판막 수술 명의 장병철 교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판막수술에 집중했다. 심장동맥수술은 의대 3년 선배이지만 군의관을 다녀와 전임의 동기가 된 윤영남 교수가 담당했고, 대동맥과 관련한 응급수술은 둘이서 돌아가면서 했다.
스승인 장 교수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한다고 해서 별명이 ‘세븐일레븐’이었다. 먼저 퇴근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스승은 의료 IT의 각종 연구와 사업으로도 바빴고, 제자에게 하나하나 가르쳐주기 보다는 혼자서 터득하도록 화두를 던져주는 스타일이었다.
이 교수의 업무, 연구 시간은 길 수 밖에 없어서 일과 환자들을 연인 삼아 지내야만 했다. 30대까지 누군가 데이트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40세 때 어렵게 만난 은행원과 주말 연애를 하다가 결혼했고, 43세 때 딸을 낳았다. 3개월 출산휴가를 마치자마자 또다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교수가 되면 모두 떠나는 해외연수도 못 갔다. 대신 그의 명성을 듣고 몽골, 베트남 등 해외에서 연수 온 의사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교수의 수술 실력과 속도는 흉부외과 의사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있다. 심장 수술은 체외순환심폐기를 돌리면서 심장을 멈춘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수술시간이 적을수록 환자 합병증이 적다. 인터넷에서 S대학병원 의학정보를 검색하면 판막 수술은 평균 4시간이 걸린다고 돼 있는데, 이 교수의 수술 시간은 판막 종류별로 1시간 반~2시간 반에 불과하다.
이 교수는 조직판막을 좀 더 오래 쓰게 하거나 금속판막 넣은 환자에게 항응고제를 덜 먹게 하는 연구에 관심이 많다. 특히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이 염증을 줄여서 조직판막의 퇴행성을 늦춰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미국흉부외과학회가 발간하는 《The Journal of Thoracic and Cardiovascular Surgery·JTCVS》에 발표했고 이 연구로 대한흉부외과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1인 전공의’에서 진료·연구·교육·행정·엄마·주부 6역
이 교수는 정교수가 돼서도 여전히 바쁘다. 현재 매주 5~10명을 수술하고 매일 두 번 입원환자 회진을 돈다. 지난해 9월 여의사로서는 처음으로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과장에 임명됐고 병원 교육수련부 차장으로서 인턴, 전공의 모집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또 대한흉부외과학회 부편집인 겸 간행위원, 학술위원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대한흉부외과여의사회 차기 회장을 떠맡아 더 바쁠 듯하다.
이전에는 오전 6시 전에 남가좌동의 집에서 출발, 6시 반에 병원에 도착해 환자의 차트를 보면서 업무를 시작했고 오후 9시 이후에 귀가했지만, 코로나19 탓에 오프라인 회의가 온라인 회의로 대체되면서 오후 7시 무렵 귀가해서 일곱살배기 딸과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집에 오면 엄마이자 주부로 변신해야 하지만, 밤늦게까지 전공의의 보고를 받을 수밖에 없다. 흉부외과 의사는 24시간 대기가 숙명이므로….
이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나서는 것과 거리가 멀었고, 싹싹한 성격도 아니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환자에게 사근사근 대하지는 못하지만, 10년 동안 호흡을 맞춘 이청 전문 간호사가 환자나 보호자와 살갑게 대화하고 환자의 직업, 가정 사정, 고민 등을 알려주기 때문에 환자에 대해서 속속들이 파악하고, 치료계획을 세우는 데 반영한다. 예를 들면 가임기 여성이 인공판막수술을 받고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면 아기가 기형이 될 수 있으므로 결혼을 앞 둔 여성에게 수술 일정을 조정하는 식이다. 가끔씩은 어렵게 환자를 살리고도 걱정해야 할 때가 있다.
“재작년 간이식을 앞둔 40대 초반 환자에게 심내막염이 와서 염증을 제거하고 판막을 교체하며 어렵게 살렸어요. 환자가 간이식을 받고 겨우겨우 퇴원했는데 요즘 외래 검사만 받고 진료실에 안 와요. 다시 술, 담배를 입에 대서 누나 같은 의사에게 잔소리 들을까봐 그러는 듯해요.”
최근에는 96세 할머니가 진료실에 오지 않아서 가슴이 덜컹했다. 13년 전 할머니가 83세 때 대동맥이 파열돼 수술로 살렸던 환자다. ‘혹시…’하며 걱정하며 간호사에게 전화하게끔 했더니, 할머니가 받았다. “거둥이 불편해서 못 갔어!” “할머니, 걱정했어요. 못 오시면 미리 연락주세요.” 간호사가 이렇게 전했다는 말을 듣고 이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령의 환자가 늘면서 이처럼 걱정하는 일이 늘 것 같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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