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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3. 4. 큐티
창세기 32:1 ~ 12
형 에서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야곱
관찰 :
1)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는 야곱
- 1절.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 라반으로부터의 죽음의 위기를 피한 야곱은 가나안으로 가면서 형 에서로부터의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을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신다고 언약하셨고, 실제로 천사들을 통해서도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란으로 가면서 벧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고, 그 후에 자신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천사들이 자신의 길을 예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이 경험은 벧엘에서의 사건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마하나임”이 해석될 수 있습니다.
- 2절.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 야곱은 자신이 만나는 하나님의 천사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인식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불렀습니다. “마하나임”은 “두 진영”, “두 군대”라는 의미입니다. 즉,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의 천사들을 보았고, 그리고 다시 이곳에서 천사들을 보게 되면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에 대한 은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마하나임”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일로 인해서 영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장차 다가오는 에서로부터의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을 것을 기대하게 하셨습니다.
2) 형 에서에게 사자를 보내는 야곱
- 3절.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 야곱은 20년의 시간이 흘렀기에 형 에서가 마음이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약삭빠른 야곱은 형 에서에게 사람들을 먼저 보내 에서의 자신을 향한 마음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 4절.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 야곱은 사자들에게 자신의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외삼촌 라반과 지금껏 함께 했다는 것을 알리게 합니다. 20년간 야곱은 형 에서와 왕래하지 않았고, 소식을 전하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5절.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하라 하였더니” => 야곱은 형 에서에게 자신이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에서의 용서를 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전달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과 동갑나기 쌍둥이 형을 “주”라고 고백하며 극존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자신이 형을 무시하고 우습게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입니다. 장자권을 빼앗았던 야곱이 형 에서에 대해서 이렇게 깎듯이 대함으로 형 에서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한 것입니다.
- 6절.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 에서는 야곱의 사정을 들었고, 자신에 대해서 극존칭의 용어를 사용하며 용서를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이 상황은 에서가 여전히 야곱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고, 에서가 야곱을 죽이기 위해서 무려 400명 이라는 군사들을 데리고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3)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께 간구하는 야곱
- 7절.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 야곱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다른 상황으로 인해서 당황하고 두렵게 되었습니다. 원래도 에서는 용맹한 사냥꾼이고 싸움을 잘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고, 그들이 무려 400명이나 되었습니다. 야곱의 형편으로는 에서의 무리들과 대응해서 싸울 수 있지 못했습니다. 야곱 자신 혼자라면 잽싸게 도망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족들과 소유물을 피신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야곱은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 8절.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 야곱은 두 떼로 자신의 소유를 나누고 한 떼를 에서가 치면, 나머지 한 떼는 그 사이에 멀리 도망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반이라도 건져야 하겠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야곱의 두려움이 사라지거나 그 위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9절.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 야곱은 절박한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떼를 쓰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셨다는 것을 근거로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 10절.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 야곱은 자신이 빈 손으로 요단을 건너 하란으로 갔는데, 하나님의 은총과 진실하심으로 두 떼의 큰 가축 무리를 소유한 부를 누리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대해서도 자신의 꾀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자신의 잔머리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 11절.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 야곱의 장점은 야곱이 하나님을 향해서 절박한 심정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야곱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형 에서의 손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에둘러 다르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두렵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에서가 자신과 가족들을 건드릴 것이 두렵다고 있는 그대로 자신의 심정을 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서 없었던 내용입니다. 야곱은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의 중심을 온전히 토로하는 높은 차원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아브라함이 열국을 위하여 중보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는 믿음의 모범을 보였다면, 야곱은 자신의 중심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는 믿음의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야곱은 진짜 죽을 것 같았고,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 12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근거로 반드시 은혜를 베풀겠다고 하지 않으셨냐고, 자신의 자손으로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시겠다고 하지 않으셨냐고 아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한 야곱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를 만난 야곱입니다. 그런 야곱이 하나님을 우습게 알았을 리가 없습니다. 야곱은 정말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리마인드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시면서 야곱이 아브라함보다 이삭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야곱은 하란에서 벗어날 때 라반이 죽이고자 하는 위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야곱의 억울함도 어느 정도 토로가 되고 그 억울함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은 자신이 억울하게 했던 에서로부터의 죽음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좀 쉽게 이 문제를 접근했었습니다. 20년이나 지났고, 형 에서가 대범한 사람이고, 자신도 기업을 이루었고, 가족도 많아졌고, 형 에서를 “주”라고 하면서 장자권이 형에게 있다고 인정해 주면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보낸 사자들을 통해서 듣게 된 것이 무려 4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자신을 만나러 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400명이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거의 군대 수준입니다. 동생을 20년 만에 만나는 것에 있어서 환영하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20년 전의 원한을 잊지 못하고 이를 갈다가 자신을 죽이려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아버지 에서가 살아있었지만, 형 에서는 자신이 아버지 이삭을 만나기 전에 죽이고자 400명의 군사 수준의 부하들을 데리고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에서가 야곱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20년 동안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하나님이 야곱을 보호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시고자 천사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야곱은 그들을 벧엘과 연관하여 하나님이 두 진영에서 자신에게 천사들을 보여주셨다는 의미로 마하나임이라 그 땅의 임을 붙였습니다. 지금은 마하나임이 어느 곳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서 야곱의 영적 감각이 새로워졌고, 야곱이 자신의 잔머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고 매달리는 기도를 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3) 야곱은 자신의 소유를 두 떼로 나누어 하나를 에서에게 빼앗기더라도 한 떼는 보존하고자 하는 잔머리를 굴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400명의 날랜 용사들로부터 피할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형 에서에게 다양한 뇌물을 주는 것도 고려했지만 야곱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함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간절함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서 찾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하란에서 라반의 위기를 극복하고 큰 부와 많은 자녀를 얻게 되고 무사히 돌아오게 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야곱이 단순히 잔머리만 잘 굴리는 얍삽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야곱은 진정으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중심을 토로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나는 죽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에 자신과 언약하셨던 것을 모두 들먹이며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적용 :
1) 야곱은 다시 위기를 맞았습니다. 라반의 위기에 연이은 죽음의 위기였습니다. 이 위기는 라반으로 인한 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기였습니다. 이 위기의 이유 역시 자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었기에 말발로 피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에서가 거느린 400명의 군사들의 습격. 이것은 도적떼나 마적떼보다 더 무서운 자들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야곱은 자신의 잔머리를 굴리다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늘어놓으며 하나님이 보호하시기로 하지 않았냐고 강짜를 놓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오는 야곱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드디어 아브라함과 이삭보다 더 깊은 친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발생하게 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나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 간절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임을 다시 깨닫습니다. 야곱이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 나아갔듯이 나도 주님을 향해서 살려달라고 간구합니다.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2) 야곱은 잔꾀가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살만했으면 야곱이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꾀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을 극한의 상황으로 모셨고, 그 때 야곱은 백기를 들고 투항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 백기투항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