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옥동네의 전설•3
일루전ILLUSION
제1부 폭동 전후(줄거리 3회)
2. 술상을 마주하다-2
곽양수와 집주인이면서 대구지방 신문사 편집국장 황현준이 현준의 안방에서 술상을 놓고 마주 앉았다.
현준이 마당에서 주은 삐라를 양수에게 보여 주었다. 등사판으로 찍은 사회주의 선동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런데 양수의 방에는 낡은 등사판이 있다. 물론 필경 도구들도 있을 것이다. 그 양수의 집에 다오루 공장 직공으로 보이는 젊은 노동자들이 자주 들락거린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황 선생님, 그 삐라 어데서 주었습니꺼?”
“아, 이거? 어데서 주웠는지 그기 중요한 거는 아니잖소? 우쨌기나 그기사 뿌린 사람이 더 잘 알 거 아니겠십니까? 주워 보라꼬 뿌렸을 거 아입니까?”
“대외적인 삐라가 아이거든요. 내용을 봤시마 아시겠지만도.”
“아하, 그랬던가요? 난 또 온 동네 선동하느라고 막 뿌린 삐라를 주웠다고 생각했는데. 하기는 내용이 좀 이상하기는 하더마. 그러나저러나 곽 형은 사회주의 운동가도 아니라면서 와 이런 삐라를 만들어 돌리고 그라지요? 공산당원이야 모스코바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졸개들이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황 선생님은 사회주의자들에 대하여 매우 적의를 품고 기신 듯합니다.”
“적의라기보다 경멸하는 기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원래 사회주의에 대해서 적의도 없었지만 경멸한 적도 없었소. 그런데 이번에 찬탁으로 돌아선 것을 보고 식민근성이라고 할까, 종놈 근성이라고 할까 당최 민족 의기나 자주 정신이란 건 어디다 팔아먹었나 싶어 한심하단 말입니다. 모스코바가 손짓하는 대로 무조건 쫓아다니는 꼭두각시가 아니냔 말이오. 곽 형도 알겠지만 이건 내 말이 아니고 우리 민족이라면 좌익 조직원만 빼고는 지금 나하고 꼭 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있잖소.”
“그건 오햅니다. 무조건 쫓는다고 할 수는 없지요. 미쳐 깨닫지 못하여 초동 활동에 잠시 실수가 있었지만 당연히 사태를 바르게 이해하고부터 행동을 바로잡는 것이지요.”
“곽형은 조직원도 아니라면서 그쪽 사람들을 아주 두둔하고 나서는군요. 사태를 바르게 인식해서 행동을 바로 잡는 거라꼬요?……그래 소비에트로부터도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할까 봐 그들보다 앞서서 허둥대는 거 아닙니까?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는 데 안 그렇소, 곽 형?”
“이북에서 되고 있는 이상 사회가 우째서 이남에서는 안 되겠심니까? 지금 황 선생님은 지한테 어깃장 놓겠닥 하시는데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깁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떼를 쓰거나 모욕을 주시면요, 황 선생님 스스로 얼굴에 더러운 거 바르게 될 깁니다.”
양수는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자기 방으로 나가버렸다.
“뭐? 북에서는 되고 있는 이상사회라? 무슨 망발! 더러운 걸 발라? 얼굴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