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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사람을 안다는 것 - HOW TO KNOW A PERSON 』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한 번쯤 들어 본 것 같은 이 서양 속담은 사람 사이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관계를 벗어난 인생은 존재할 수조차 없다. 이런 말도 있다. “사람들과 동떨어져서 사는 것은 인생에서 이탈하는 것과 같고, 이탈은 곧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과 소원해지는 것이다.”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을 때,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라고 하는 책 저자 최인아 선생이 한 말이다. 그럴 때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그녀는 이 책을 추천했다.
책의 저자 〈데이비드 부룩스〉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는 저널리스트로 사람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게 제 일인데, 자신이 투명 인간 취급을 받으며 존중받지 못한다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고 하고는 그들은 자신을 존중하기보다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또 이 책을 출판한 웅진출판사는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내 삶에서 관계로 인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심리학, 철학, 문학,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길어낸 통찰은 한 가지 주제에 깊게 몰두한 저자의 저력을 보여 준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길, 그리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길 원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완벽한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경영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 이직하는 이유에 대해 경영진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연봉을 더 많이 받으려고 이직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상사와 조직으로부터 인정받거나 소중한 존재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회사를 떠난다고 답했다. 주변 사물과 현상을 자기 입장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가진다면, 우리 사회가 한결 여유로워질 것이라고도 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바라봄으로써 상대방 누군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자기 말에 귀 기울이며 자기를 이해해 준다고 느끼게끔 하는 기술을 능숙하게 구사하도록 돕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만큼 사람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예상하고 또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직업은 세상에 늘려있다. 의사, 변호사, 선생님, 택배기사 등, 그들은 다른 사람을 깊이 알아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단지 어떤 기술을 익혀서 숙달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무대에 서는 배우가 학교에서 배운 바를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맘속 깊이 내면화하여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말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은 다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피상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바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나와는 직접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경영대학원 학생들에게 “앞으로 사회에 나가 창업을 하게 된다면 그 동기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 공통적인 대답은 “가치 있는 일에 관심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학생들이 창업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고 물은데 대해서는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들 모두 자기 이외 사람들은 얕고 저차원적인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고 본 것이다.
힘이나 지성, 재산에서는 우리 모두는 서로가 등등하지 않더라도 영혼 차원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다. 만약 나와 마주치는 사람 하나하나를 모두 소중한 영혼으로 바라본다면, 그들 모두가 소중하다. ‘당신이 나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먼저 당신을 믿을 것이다.’라고 하는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바뀔 것이다. 이렇게 태도를 바꾸어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단순히 그들을 관찰하거나 조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탄하면서, 존중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세상은 좀 더 환하게 비칠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놓인 상황이 안전하고 친숙하게 느껴져야 비로소 상대방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소소한 이야기나 우연한 동행은 커다란 의미가 있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그 의미를 크게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당신이 누군가를 아무리 잘 안다고 해도 사소한 것들을 화제로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쌓지 않고서는 크고 중요한 문제를 그 사람과 의논하고 나누기는 어렵다. 프랑스 철학자 베유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찾으려고 나서면 얻지 못하지만, 그것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면 얻는다.”라고 했다. 서로 같이 동행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의 속도를 늦추고 편안하게 해준다.
자연의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사실은 그저 가만히 누워서 그 깨달음이 온몸을 적시게 내버려 두기만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공유하는 공동의 인간성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때로 다른 사람의 여정에 편승해 동행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아름다움과 추함, 흥분, 지루함, 친구들 그리고 적들로서 각자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고 그렇게 구성된 세상 안에서 산다. 우리는 자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자기가 살아가는 인생 전체로 세상을 바라본다. 인지과학자들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이런 관점을 ‘구성주의(construct ionism)’라고 부른다. 구성주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축적된 뇌 연구로 뒷받침되는 개념으로써 사람이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저마다 현실에 대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적극적으로 구성한다. 객관적인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은 현실에 오로지 주관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곧 그와 말하고 듣는 과정에 생긴다. 평범한 대화를 잘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훌륭한 수준으로 대화를 잘하기는 쉽지가 않다. 훌륭한 대화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이야기꾼이지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훌륭한 대화자는 다양한 주제와 날카로운 통찰력을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강연자이지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훌륭한 대화자란, 쌍방향 소통을 끌어내는 데 달인이다. 훌륭한 대화자는 서로를 이해시키는 상호탐색을 유능하게 이끄는 사람이다.
훌륭한 대화를 잘하려면 상대방의 말을 들을 때, 100% 집중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집중하지 않을 거면 어설픈 청자로서의 대화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상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질문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방을 따라가면서 귀가 아니라 눈으로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 이것이 관심을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이고 훌륭한 대화를 이끄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는 것 외에도 ‘능동적으로 대꾸하기, 친숙한 화제를 꺼내라, 상대방을 관객이 아닌 작가로 만들어라, 대화가 끊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루핑(looping)을 하라, 조산사가 되어라, 보석 진로로 돌아가라, 드러나지 않은 차이를 찾아라, 상대의 말에 숟가락을 얹지는 마라.’등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설명도 했지만 생략한다. 루핑은 심리학 개념으로 상대가 방금 한 말을 반복함으로써 말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좋은 질문이라야 좋은 대답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질문이란 어떤 질문일까? “만일 오늘 밤에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우리가 오늘 헤어져 1년 뒤에 만난다면 무엇을 함께 축하할까? 앞으로의 5년이 인생의 특별한 시기라면, 주제는 무엇이어야 할까?”이런 질문이 있을 있을 수 있다면서 저자는 말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을 쌓으면서 살아온 나도, 누구에게든 정중하게 묻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 들려준다는 사실을 안다라고. 듣고 듣고 듣고 또 들어라! 당신이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기꺼이 자기 말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평생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세상 사람 한 명 한 명은 모두 수수께끼다. 수많은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스무고개를 풀듯이 질문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고다.
지금까지 【1부】‘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는 주제에 관한 이야기였다.(생략한 부분이 더 많지만) 【2부】는‘타인이라는 세계를’그리고 【3부】는 ‘관계 안에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되어 있다. 제대로 요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책이 방대하기도, 쉬운 듯 어렵게 느껴지는 데다 8월 한가운데 폭염으로 잠을 설치고 지내는 날들이 짜증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ㅋㅋ
흔히 지금을 ‘단절의 시대’라고 한다. 가까운 친구가 없다고 대답한 미국인 비율이 1990년과 2020년 사이에 4배 증가했고, 54%의 미국인이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했다. 젊은 성인의 61%, 젊은 엄마의 51%, 전체 미국인 36%가 자주 혹은 늘 외로움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2018년 이후에 사회적 관계가 재앙이랄 정도로 줄어드는 현상을 추적한 책들이 많이 출판됐다. ‘연결성 상실, 연결성 위기, 고립의 시대’등을 문구로 사용하거나, 제목으로 내세운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수께끼를 제시한다. 오늘날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인간관계인데도 가장 서툰 부분이 인간관계가 돼 버렸다.
간호사 한 명이 현재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간호사의 수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이해될 것이다. 환자의 폭언과 폭력을 도저히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간호사가 워낙 많기 때문이란다. 이런 현상과 관련하여 칼럼니스트인 페기 누넌은 “사람들은 이제 자기가 느끼는 고통을 자랑스러워한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사람 관계는 대화로 이루어진다. 원만한 사람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어때야 할까. ‘어려운 대화’여야 한다고 한다. 어려운 대화란, 개인적인 차이 및 권력 불평등을 초월해서 이루어지는 대화라는 것이다. 정치 성향이 다른 가족 간 대화, 권위를 주장하는 관리자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직원 간 대화, 망가진 세상을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분노하는 학생과 기성세대와의 대화, 엘리트와 그들에게서 배신감을 느끼는 자와의 대화…, 이들의 대화는 의심과 적대감, 분노로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들의 대화는 연결되기는커녕 방어적으로 시작된다.
이렇게 어려운 대화가 어려운 이유는 대화의 두 당사자가 인생을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대화 속에서도 전혀 다른 현실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세상에 다른 의견을 가질 뿐 아니라, 각자 다른 세상을 바라본다. 어려운 대화를 어렵지 않게 할 방법은 없다. 자기와 인생 경험이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흑인으로 사는 것, 여자로 사는 것, Z세대로 사는 것, 이민자로 사는 것 등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에게는 신비한 경험이 있다.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낯선 문화 앞에서는 존중하는 마음과 경외감을 품어야 한다. 타인을 바라보고 타인의 말을 듣는 능력을 높이는 기술을 연마하는 데 힘쓰면 타인의 관점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제 말을 상대가 들어주기를 바란다.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기꺼이 친절하게 배려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되고자 한다.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온갖 분열 현상이 치유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공통의 투쟁과 경험과 기쁨을 공유한 채로 살아간다. 지금 사회적 갈등과 어려운 대화 와중에도 고대 로마의 극작가 테렌티우스가 한 말은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나는 인간이고 따라서 인간적인 것은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이질적이지 않다.”
불신은 불신을 낳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기가 의지할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느낀다. 불신하는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가정하고 또 자기가 느끼는 위험을 음모론으로 설명하려 한다. 우리 사회는 미모나 재력, 학식을 지닌 사람들을 엄청나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외 수많은(대다수) 사람들은 눈에 띄지도 않고, 인정받지도 못하며 소외당한다. 개인 차원의 삶에서 나타나는 위기는 궁극적으로 정치에서 나타난다. 미국의 기업연구소에 따르면 외로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일곱 배나 정치에 적극적이다. 정치는 이해하기 쉬운 도덕적 환경을 제공한다.
거절당한 사람은 증오로 돌아온다.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쌓이고, 학교에서, 직장에서, 타인과 맞닥뜨리며 굴욕을 당하고 또 쌓인다. 스트레스를 받은 청년이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들은 속에서부터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내 잘못인가, 세상 잘못인가? 내가 패배자인가, 그들이 패배자인가?’바로 이 지점에서 피해의식이 악행으로 전환된다. 총기난사범이 되는 사람은 자기가 수퍼맨이며, 세상은 개미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들이 쥔 총에는 심리적인 효과가 있다. 평생 무력감을 느끼며 살아온 자기에게 강력한 힘이 있다는 느낌을 마치 마약처럼 안기는 것이다. 총은 수풀에 응크린 뱀처럼 외로운 이들에게 속삭인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엔젤레스 캠퍼스(UCLA)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목표를 조사해왔다. 1966년에는 입학생 90%가 의미 있는 인생철학을 개발하려는 동기가 강했다. 그러나 2000년에는 42%만 그렇게 답했고,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는 ‘부자 되기’라는 항목이 대신했다. 2015년 학생 82%가 학교는 금전적 성공을 돕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2018년 퓨 리서치 센터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인생에서 유의미한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7%만이 타인을 돕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배움이 자기 인생에서 추구하는 의미의 원천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11%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은 비단 미국뿐 아니다. 우리 모두다 몇 세대에 걸쳐 타인의 깊이와 존엄함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기본적인 도덕적 기술이 사라지면서 단절과 고립이 나타났고, 잔인함이 허용되는 문화가 팽배해졌다. 이는 문명의 거대한 실패다.
스스로 자초한 것인지? 인간관계에 따른 갈등의 소산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우울증은 참으로 위험한 질병이다. 내 친구도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저자도 우울증이 끔찍한 질병임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며 그것을 소개했다.
피터와 나는 열한 살 때부터 함께 어울렸다. 우리는 50년 세월을 함께 지냈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피터는 결국 우울증에 지고 말았고, 2022년 4월 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격은 쾌활하고 결혼 생활은 행복했으며 직업에 보람을 느꼈고, 오웬과 제임스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의 고통은 내가 알던 것보다 무겁게 짊어지고 있었고, 결국 그 트라우마가 그를 지배했다. 피터는 아내와 아이들이 자기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친구들이 자기를 아낀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혹독한 집착에 갇힌 듯했다. 그건 우울증의 일부였고, 우울증 환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피터가 죽은 뒤로 나는 누군가의 곁에 있어 주는 행위가 발휘하는 힘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시도가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을 그에게 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여러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자기가 나아지고 완쾌할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시들어만 갔다.
그가 죽기 며칠 전에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의 아내 제니퍼와 나는 피터와 대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피터는 “가장 오래된 친구인 너와 대화를 잘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돼? 너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라고 말했다. 그날 피터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지리라 상상하지 못한다는 걸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피터는 가족들이 더는 자기 때문에 힘들지 않게 하려면 자살하는 길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심은 게 분명하다. 피터에게는 우울증이라는 악마가 힘이 셌고, 우리보다도 힘이 셌다고밖에 볼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서로에게 공감이 필요하다. 공감은 운동 재능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듯이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하지만 그것은 훈련을 통해서도 능력을 키울 수 있다. 훈련은 접촉과 관찰, 감정포착과 고통 나눔, 문학작품 등을 통해서 연습할 수 있으며,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는 것에서 느끼는 것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 그 반대로 그냥 보고 느끼는 것에서 일상을 바꾼다. 똑같은 장면이라도 잔뜩 겁을 집어먹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장면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불안은 주의력을 특정한 영역으로 좁히고 시야의 폭도 줄인다. 그러나 행복한 감정은 시야를 훨씬 넓힌다.
좋은 사람이란 정확히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하면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좋은 인격을 닦을 수 있을까? 수백 년간 우리는 페리클레스나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고대의 영웅과 조지 워싱턴, 샤를 드골, 조지 마샬과 같은 현대 영웅처럼 전사나 정치가가 훌륭한 인격을 가진 자라고 여겼다. 이런 전통적 모델은 인간 본성을 따른 것이다. 인간에게는 원시적이고 강력한 힘이 있지만, 동시에 열정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이성도 함께 지닌다. 본질적 도덕은 ‘자제’다. 자제는 열정의 노예가 아니라 열정의 주인이 되도록 의지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성격을 개선하는 것은 체육관에서 신체를 단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훈련과 습관을 통해서 정직, 용기, 결단, 겸손 등과 같은 보편적인 미덕을 강화해야 한다. 꾸준히 훈련하고 좋은 습관을 쌓는다면 성격 형성을 스스로도 얼마든지 개조할 수 있다.
【3부】관계 안에서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사람들
우리는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여러 가지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 셈이다. 랍비인 에이브러햄 쿡은 “신은 모든 재능을 한곳에 몰아주지 않음으로써 자기가 다스리는 세상에 친절을 베푼다.”고 하였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지닌 성격은 곧 그 사람이 가진 성향의 특징을 보여준다. 성격이란, 어떤 상황을 바라보고 해석하고는 반응하는 습관이다. 성격은 천부적으로 타고나는데, 성격 덕분에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자기 나름의 가치 있는 방법으로 봉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성격에 대한 공동담론은 엉망진창인 경우를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지질학자가 화성암과 퇴적암, 변성암을 구별할 줄 알아서 어떤 바위의 튀어나온 부분이 무엇인지 알 고 있고, 소믈리에는 미네랄, 바디감, 강한 뒷맛 같은 특징을 분별하기에 처음 맛보는 와인을 평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격을 구성하는 특성을 이해한다면 한 사람을 온전히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감별할 수 있는 소믈리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변할 수 있다. 『폭풍의 언덕』의 작가 샬럿 브론테와 『제인에어』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같은 부모를 둔 자매다. 두 사람은 영국 요크셔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고, 거의 동일한 교육을 받았고 나중에 소설가가 되었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다. 에밀리는 장엄함과 상상력을 펼치면서 누릴 수 있는 생활을 원했고, 샬럿은 정의와 사랑을 함께 추구할 친구를 원했다.
이들 자매는 각각 훌륭한 소설을 썼지만, 각기 다른 기질을 반영했다. 『폭풍의 언덕』은 상대적으로 내면적이고 사생활 영역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로 등장인물들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대신에 샬럿의 소설 『제인에어』는 외향적이고 종교와 정치라는 공적인 세상에서 전개된다. 에밀리처럼 사는 것이 옳은가, 샬럿처럼 사는 것이 좋은가, 어느 쪽이든 본인의 기질을 활용해 지각력을 발휘하기만 하면 좋을지 모른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이 한 가족으로 사는 것이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청소년들은 대인관계 의식에 깊이 빠져서 ‘나는 곧 나의 우정이다’라고 믿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곧 나의 우정이 아니다’라고 깨닫는다. 이는 우정이 갑자기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한때 궁극적이던 것이 상대적인 것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나는 우정을 소중히 여기지만, 나의 존재는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에 따라서 좌우되지 않는다’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성장이란, 하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다음 다른 사고방식으로 녹아드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고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자기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어떨 땐 그것을 위해 필사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문화와 예절을 만들었다. 이것을 바로 잡는 방법은 단순하고 쉬우며 재미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하기만 하면 된다.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때 사람 관계는 달라진다.
‘우리는 언제나 사람에게서 답을 찾는다.’그러기 위해 역사를, 과학을, 문화를 공부하는지 모른다. 문화란 무엇인가? ‘어떤 집단에서 존재하는 그들만의 현실을 구성하기 위해서 그들이 동원하는 공동의 상징적 풍경이다.’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본다. 예를 들어 뉴욕주재 외교관들은 뉴욕 거리에 불법 주차하여 딱지를 받더라도 과태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외교관 면책특권)그런데 부패지수가 낮은 영국, 스웨덴, 캐나다, 호주 그밖의 몇몇 나라 외교관들은 최근 5년간 불법주차로 딱지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부패와 규칙 위반에 관대한 국가의 외교관들은 자신들의 특권을 최대한 활용한다. 쿠웨이트, 알바니아, 차드, 불가리아 등의 외교관은 한 명당 100장이 넘는 주차위반 딱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주차위반 상황을 다르게 본다. 그들이 덜 정직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들의 논리는 규칙을 어기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그들 조상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본 것에서 유래한다.
현명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는 지식이 아닌 지혜는 어디서 오는가? 불교 신자들은 무조건적으로 긍정적 존중을 일컫는 유용한 문구를 사용한다. ‘자비’라는 것이 것인데, 이것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다치게 하겠다고 위협하는 일 없이 그의 이야기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공감 방식이다. 자비의 마음은 상대방의 아픔을 위로하기도 하고 덮어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치료사는 환자보다 몇 걸음 앞서간다. 치료사가 환자보다 똑똑하거나 현명해서 그런 게 아니다. 치료사는 환자의 인생 바깥에 서 있다는 유리한 점 때문이다.’
당신은 진정한 친구가 있는가? 진정한 친구는 상대방 친구를 기쁘게 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독려할 뿐 아니라 거울을 비추어서 다른 방식으로는 볼 수 없던 자기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게 한다. 사람들은 그 거울 속에 비친 자기를 바라볼 때 발전하고 충만해질 기회를 얻는다. “친구가 별로 없는 사람은 성장 가능한 수준의 절반밖에 성장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의 본성에는 바깥으로 한 번도 표현되지 않은 채 갇혀 있는 것들이 있다. 스스로 그것을 해방할 수 없다. 깨닫거나 발전할 수도 없다. 오로지 친구들만이 그를 자극해서 갇힌 것들을 드러나게 한다.”급진작가 렌돌프 본이 한 말이다.
이제 저자의 독백을 들으면서 뒷이야기를 마무리할까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지금 이 단락들을 쓰기 전날인 어제, 나는 긴 대화를 두 차례나 나누었다. 하나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남편과 전국을 여행하면서 인생의 과제를 찾으려 한다는 여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부 관계자로 그들이 나를 찾은 건 나에게 대화와 조언을 구하려 한다는 자체로 나의 발전의 신호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 데이비드 브룩스라는 늙은이를 찾아와서 자기의 취약한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나란히 걸어주기를 기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전 같으면 “어떤 방식으로 영혼을 탐색하실 건가요? 예전에도 그런 영혼 탐색을 한 적이 있나요? 그렇게 해서 당신이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하고 물었겠지만, 나는 그런 것을 묻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아는 똑똑한 것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떠벌려서 나 자신을 인상적인 사람, 적어도 호감 가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쓴다. 그리고 여전히 말이 너무 많다. 누가 나에게 자기 인생에서 일어난 비슷한 일이 너무 많이, 자주 생긴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나의 오만한 버릇을 고치기는 어렵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지식이다. 알루미네이트*라는 존재는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이다. 그는 인간의 취약성에 따뜻하게 공감한다. 그는 인간이 어리석을 수 있는 모든 방식을 알기에 인간의 어리석음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또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받아들이며, 의견 차이를 호기심과 존중으로 반긴다. ‘내면만 바라보는 사람은 혼돈을 발견할 테고, 비판적인 눈으로 외면만 바라보는 사람은 결점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연민과 이해의 눈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바른길로 나아가려고 분투하는 복잡한 영혼을 발견할 것이다.’일상의 모든 만남, 어떤 사람을 소중한 동료로, 이웃으로, 연인으로, 배우자로, 친구로 만드는 것은, 누군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고, 자기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능력이다.”- 2024.8.19 오전
*군중 속에는 디미니셔(Diminisher)와 알루미네이터(Illuminator)가 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디미니셔는 사람을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느끼게 하고 타인을 친구가 아니라 이용할 대상으로 여긴다. 반면에 일루미네이터는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 관심을 두고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언제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을 더 크고, 더 깊고, 더 존중받는 존재라고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