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문 Ⅱ-46]별미(別味)-만세탕과 능이쇠고기무국
올 겨울, 나의 음식인생(飮食人生)에 메뉴 두 가지가 획기적으로 첨부됐다. 처음으로 먹어본 ‘만세탕’과 ‘능이쇠고기무국’이 그것이다. 훌륭하다, 좋다는 뜻이긴 하지만, 만세탕은 즐기고 싶지는 않다. 다만, 능이쇠고기무국만큼은 기회만 되면 비용이 좀 들더라고 자주 먹고 싶다. 고향 후배라고 유난히 나를 아끼는 성님의 깊은 배려로, 이 두 가지 보양식을 맛보게 된 사연을 말한다.
# 버섯 하면 ‘1능이 2송이 3표고’라는 모두 들어보았을 터. 수 백 종의 버섯 중 능이가 으뜸이라는 말이다. 촌놈이지만, 산에서 능이를 본 적도 없고, 시커먼 버섯(100% 중국산이란다)을 넣어 끓인 닭백숙을 먹을 때 맛을 봤지만, 향을 느끼지 못했고 질깃질깃한 게 늘 별로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두 차례 우리집에서 쉐프가 끓여준 능이쇠고기무국은 별미 중의 별미로 몇 번이고 탄복을 했다.‘향(香)버섯’이라는 별명답게 능이 특유의 짙고 알싸한 흙내음이 쇠고기(양지)의 진한 육향과 함께 이토록 깊은 풍미(風味)를 만들어내다니? 내가 뭐라고 맛을 보여주겠다며 마른 능이 1kg을 15만원에 사오신 성님이 오죽하면 ‘눈물나게’ 고마웠겠는가. 한때는 한양에서 ‘세미 식도락가’(semi 食道樂家)를 자처하며, 지하철신문에 음식칼럼도 십수 차례 썼는데, 나의 이름이 무색했다. 제대로 삭힌 흑산도 홍어찜이 최애(最愛)음식이었다. ‘요요, 요 깊은 맛’을 나이 칠십에 맛보다니, 인생을 헛산 것같았기 때문이다.
일반 쇠고기무국도 물론 맑고 시원하지만, 능이를 넣고 팔팔 끓인 이 무국은 색이 검으스름해지며 국물맛이 훨씬 묵직하고 감칠맛이 폭발했다. 대파를 숭숭 썰어 육수를 낸 후 걷어내고, 청량고추를 나수(제법) 썰어넣은 후, 양지(반드시 양지라야 한단다)를 후라이팬에 조금 덖은 후 넣고 끓인 이 국이, 올 겨울 내 속을 따뜻하게 덥혀줬다. 마냥 행복했다. 역시 음식은 혼자 먹으면 젬병, 한 솥 가득히 끓인 국은 열 명이 먹어도 충분하다길레, 동네이장을 비롯한 인근 꾀복쟁이 친구들과 전주에 사는 교수친구도 부르니, 맛과 멋이 두 배, 아니 세 배도 더 됐다.
세상에 도다리, 쏘가리, 뱀, 개구리도 양식이 가능한 세상에, 아직까지 능이버섯은 인공재배가 안된다는 귀하신 깊은 산속 식보(食寶)이자 최고의 식보(食補)라 할 것이다. 다음날 아침, 그 국을 한번 더 들어야한다며 홀아비집을 찾아온 성님의 “두 번째 데워 먹을 때 향이 더 깊게 배어나와 더 맛있기 때문에 아내의 힐난을 무릅쓰고 왔다”는 말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국거리의 정석(定石)’이라고 불리는 양지는 소의 앞가슴부터 복부 아래쪽 부위의 살로, 운동량이 많아 육질이 치밀하고 단단하기 때문에 오래 끓일수록 고소하고 진한 육수가 우러나오며, 맑으면서도 묵직한 감칠맛을 내기에 완전 맞춤이라고 한다. 이것도 성님의 ‘꿀팁’으로, 능이만 있다면 몇 팩이라도 살 용의가 있다. 아무튼, 우리가 ‘심쉐프’라 부르는 친구와 ‘딸기왕 성님’이 무한 고마웠다.
# 말로만 들었던 ‘만세탕’(겨울 식용개구리를 끓인 탕)을 처음 맛보았다. 말은 수십 번 들었어도 만세 부르듯 쭉 뻗어 죽은 개구리를 고대로 냄비에 넣고 끓인 거라는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징그럽고 잔인한 일인가. 아마도 탕으로 먹으라했으면 백만 금을 줬어도 먹지 않았을 것이나, 성님은 입 짧은 아우를 위하여 치킨집에서 튀겼다. 무조건 배가 빵빵한 놈이 알이 들어있는 암놈이라며 먹기를 ‘강요’한다. 거듭 사양을 하다, 하도 겨울 보양식으론 이를 따라갈 게 없다며, 이게 얼마나 비싼 것인지 아냐? 너 아니면 이것을 어디에서 구해 왔겠냐는 바람에 눈 딱 감고 먹었는데, 괜찮았다. 고소하고 씹는 맛도 났다. 내일 새벽엔 ‘빤스텐트’를 영락없이 보게 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정말 그럴까? 답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해주는 성님이 또 고마웠기에 여러 마리를 먹었다. 처음엔 양쪽 다리를 찢어먹다가(다리만큼은 어릴 적 할머니가 무지하게 삻아줘 먹은 기억이 뚜렷하다. 나를 유난히 예뻐하신 할머니 생각에 울컥하기까지 했다), 통째로 오징어튀김 먹듯 입에 넣으니 좋았다.
계곡 등 1급수에만 사는 개구리는 잡지 못하게 돼있는데, 요즘에는 양식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보양식으로 뱀까지 양식하는 세상이다. 자연산은 지금도 모르게 잡는데(걸리면 과태료가 수백만원이다) 1마리에 5000원을 불러도 없어서 못구한다는 판이다. 개구리 1마리에 만원이라니? 한우(韓牛)는 저리 가라다. 호사가들은 오늘도 만세탕이 있는 자리에 끼지 못해서 난리란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는 겨울을 나기 위해 영양분을 충분히 비축한 상태이고 봄 산란기를 앞두고 암컷의 몸에 알이 꽉 차 있기에 보양식으로 최고라는 것. 먹을 때 이 알의 고소한 맛과 톡톡 터지는 식감까지 맛봤으니, 나는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추어탕으로 유명한 남원의 어느 식당에 ‘만세탕은 시가’라고 써있었다. ‘몬도가네’라는 말을 들은들 무슨 상관이랴. 몬도가네는 이탈리아어로 ‘개같은(Cane) 세상(Mondo)’이라는데, 1962년 제작된 영화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엽기적이고 비상식적인 식습관이나 행태, 예를 들면, 동물을 산 채로 먹거나 잔인하게 죽이는 등의 원시부족의 풍습을 일컫는다. 우리의 보신탕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혐오식품이라며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는 물론 보신탕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을 그렇게 탓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성님이 강추하고 준비해서 먹여주신 두 음식에 덧붙여, 꼭 부기(付記)해야 하는 음식이 추어탕이다. 최근 자주 어울리는 고향 후배님이 큰 냄비에 자연산 미꾸라지를 실가리를 넣어 푹푹 끓였다며 가져왔다. 네 끼니를 해결했다. 와우-, 이렇게 황감할 데가? 지연(저수지나 방죽의 사투리)을 품어 잡았다는 진짜 우리 미꾸라지로 끓인 추어탕은 쉽게 맛보기가 어렵다. 대부분 중국에서 치어를 수입해 풀어 키운 것들이다. 등허리가 누런 색깔의 미꾸라지를 오일장에서 발견하면 반가운 이유이다. 소싯적에는 나락을 베고 또랑을 훑으면 대바구니에 한가득씩 잡혔다. 지금은 눈을 씻고 봐도 1마리도 없다. 어머니는 큰 다라이에 미꾸라지를 넣고 굵은 소금을 뿌려 버끔(거품의 사투리)을 빼고 학독(확)에 들들들 갈아 추어탕을 끓여주셨다. 마른 무청은 필수. 어쩌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음식으로 맨먼저 생각나는 게 ‘단풍깻임김치’와 ‘추어탕’이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대수리(다슬기의 사투리)에 아욱을 넣어 끓인 대수리국은 또 얼마나 맛이 있었던가. 아욱이 없으면 솔(부추의 사투리)을 넣기도 했다. 음식과 어머니를 생각하는 지금도 나는 울며 자판을 두들긴다. 왜 어머니는 부르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 걸까? 어머니는 음식이고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 어머니. 그냥 한번 불러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