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상의 진리를 용(用)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말이다. 유무초월이란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진리의 모습이다. 곧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이 유무가 순환불궁하기 때문에 초월이라고 한다. 생사문이란 천지만물과 심신작용이 능히 나타날 수 있고, 숨을 수 있는 조화의 문이다. 이 생사문을 통해 모든 변화가 일어나게 되고 차별세계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란 유와 무가 순환불궁하는 가운데 생과 사를 만들어 내는 일원상 진리의 묘용이다.
진리의 체자리에서 보면 언어도단의 입정처이기 때문에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진리의 용자리에서 보면 천만 분별이 일어나고 멸하며, 우주 만물이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는 작용과 조화가 마치 사람들이 출입하는 문과 같기 때문에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라 하는 것이다.
언어도단의 입정처는 진리의 체로서 천지 만물이 나누어지기 이전이요, 성품의 체로서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자리이다.
유무초월의 생사문은 진리의 용으로서 천지만물이 나누어진 현실세계요 성품의 용으로서 한 생각이 일어나는 조화의 문으로서 일원상 진리의 양면성을 나타낸 것이다.
유무초월(有無超越)의 생사문(生死門)인바는 진리의 근원이란 있거나 없음을 넘어선 것뿐 아니라 모든 만물이 이로부터 낳고 이곳으로 든다는 뜻이다.
진리의 근원은 유무를 초월했다. 진리의 근원을 찾아들어가면 궁극이 비었다. 비어 없다고 하나 모든 존재는 그로부터 나온다. 이것을 있다고 할 것인지 아니면 없다고 할 것인지. 있다고 하자니 없고 없다고 하자니 있다. 이미 그 자체가 '있고 없음'을 초월했다.
작은 우주라 일컫는 사람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다. 나의 마음은 있는가. 오감을 통해서 받아들여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분명하게 있는 건 맞다. 그런데 모양과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다. 물론 잡을 수도 없다. 이런 마음을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없다고 해야 하나. 다만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을 뿐이다.
초월은 넘어섰다는 뜻인데 그 개념 속에서 시시비비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의 이전이나 밖에 있다는 의미다. '유'는 있다는 뜻이지만 없다는 것에 의한 개념이고 '무'는 없다는 뜻이지만 있다는 것에 의한 개념이다. 유무를 초월함은 이런 상대적인 개념을 넘어서 유무가 생기기 이전뿐 아니라 유무를 아우른 표현과 그 범주나 수준을 넘어선 경지다.
유무가 생기기 이전의 근원에 이른 사람은 유무에 대한 관념이나 욕심 그리고 습관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런 마음은 맑고 편안하나 일의 기틀을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한 과제는 아직 남아있다.
유무를 아우르거나 범주를 넘어선 사람은 나와 상대 그리고 그 상황을 넘어서 바라본다. '바라보는 나'가 '하는 나'를 떠나 위에서 바라보듯이 하면 그 상황에 함몰되어 본질적인 의미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진리에 따른 의미의 삶으로 흐름을 읽어내야 하는 과제 역시 남아있다.
그 수준을 넘어선 삶에는 인생에 적응하여 잘살고 못사는 것을 넘어서 가치실현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와,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 육도(六途)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생사문이란 그곳에서 나와 그곳으로 드는 문이다. 만물의 근원을 찾아들어가면 물질의 성질마저 없는 곳에 이른다. 만물은 그로부터 비롯이 되고 그곳으로 돌아간다. 사람의 마음도 가지가지다. 마음의 근원을 찾아들어가지만 흔적이 없다. 마음은 그곳에서 쉬며 에너지를 얻고 그곳에서 나온다. 일반 사람들은 숙면을 취할 때 무의식적으로 그 마음이 되다가 깨어나서는 관념과 욕심 그리고 습관의 굴레 속에서 혼돈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진리를 알고 진리의 삶을 사는 사람은 숙면은 물론이고 깨어있을 때에도 마음의 근원인 그곳에서 쓰고 그곳으로 거둔다. 즉 유무초월의 생사문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