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비기너스>는 75살에 커밍아웃한 아버지와 마흔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사랑에는 서툰 아들이 삶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인연을 만드는데 아들은 오히려 사랑 앞에서 망설인다.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때 무언가를 시작할 참된 용기가 솟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몇번의 이별 끝에 오히려 혼자 있기를 즐기는 일러스트레이터 올리버(이완 맥그리거)는 차분하고 사색적인 인물이다. 엄마와 사별한 지 4년 만에 아버지 할(크리스토퍼 플러머)이 적극적 게이로 살겠다고 선언해도 크게 놀라지 않으며 아버지의 선택을 조용히 지지한다. 스스로는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올리버를 안쓰럽게 여긴 동료들은 그를 가장 무도회에 억지로 데려간다. 그날 올리버는 프랑스 출신의 배우 애나(멜라니 로랑)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프로이트로 분장하고 파티에 참석한 애나는 올리버의 경계심을 허물어버리고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올리버와 할은 여러모로 대조적인 사랑을 한다. 첫눈에 반했지만 동거를 시작하면서부터 올리버는 갈등에 휩싸인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가 두려운 그는 결국 애나를 떠나게 만든다. 신문에 낸 구애 광고를 통해 이상형을 만난 할은 자신의 연인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까지 포용하는 사랑을 한다. 표면적으로 영화에는 이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양상이 교차되지만 사실은 또 하나의 사랑도 이야기되고 있다. 바로 올리버의 엄마와 아버지의 사랑이다. 게이란 것을 알고도 결혼한 엄마와 그런 아내를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억압한 아버지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서로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을 지켰다. 정신분석학적인 심층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둘의 사랑은 올리버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그려진다.
실제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마이크 밀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인 <비기너스>는 잔잔한 유머와 재기발랄한 이미지를 곳곳에 포진시켜 신선함을 준다. 올리버가 촌철살인 코멘트를 덧붙여 그려내는 그림들, 역사적 순간들을 포착한 스틸 사진들, 콘크리트 담벼락에 몰래 하는 그래피티의 문구들이 그렇다. 여기에 할의 오랜 친구였던 강아지 아더도 영화에 재미를 선사하는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다. 150개의 단어를 이해하는 아더는 중요한 순간 올리버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데 둘은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물론, 아더의 말은 자막으로 번역되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매력적인 중년의 트랩 대령 역으로 등장했던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노년의 게이로 열연하고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멜라니 로랑이 애나 역을 맡았다. 곁가지의 섬세함에 비하면 중심 스토리인 올리버의 사랑 이야기는 오히려 피상적인 느낌이라 아쉽다. 글 이현경(영화평론가) 2011-11-09
리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시작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일러스트 작가 ‘올리버’(이완 맥그리거)는 자신의 작품과는 다른 평범하고 소소한 삶을 지향하며 살지만 어느 날 45년간의 결혼 생활을 끝낸 아버지 ‘할’(크리스토퍼 플러머)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남은 인생을 솔직하게 살겠다며 75살의 나이에 커밍 아웃을 선언한다. 그 날 이후 어느 때보다 에너지 넘치는 게이 라이프를 즐기는 ‘할’을 보며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서운해지는 ‘올리버’.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그가 키우는 개 ‘아더’뿐이다.
‘올리버’는 파티에서 우연히 프랑스 출신 여배우 ‘애나’(멜라니 로랑)를 만나게 되는데... 집보다 호텔을 편안하게 여기고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애나’에게 자연스럽게 끌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올리버’. 하지만, 이미 혼자만의 삶에 익숙해진 ‘올리버’는 자유분방한 그녀와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구속 받는 건 싫고, 그렇다고 그녀를 떠나기도 싫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올리버’에게 닥친 인생 2막!
여전히 모든 것에 서툴지만 사랑, 인생 모두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