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말을 쏘았다
원제 : They Shoot Horses, Don't They?
1969년 미국영화
감독 : 시드니 폴락
원작 : 호레이스 맥코이
제작 : 어윈 윙클러
출연 : 제인 폰다, 마이클 사라진, 긱 영
수잔나 요크, 레드 버튼스, 보니 베델리아
브루스 던, 마이클 콘래드, 알 루이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긱 영)
"이유가 그것뿐인가?"
"말도 그렇게 쏘잖아요(The Shoot Horses, Don't They?)"
이 영화의 제목은 영화가 거의 끝날때 쯤 등장하는 대사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단순히 문장의 뜻으로 풀어보면 우리가 서부극등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말이 다리를 다쳤거나 병에 걸려서 죽어갈 때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총으로 쏩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어린 로버트가 그렇게 말을 쏘는 것을 보는 장면으로 오프닝이 장식됩니다.
1969년, 아메리칸 뉴시네마라고 불리우는 전향적이고 삐딱한 뉴웨이브 영화들이 등장하던 시절, '그들은 말을 쏘았다' 역시 그런 기류를 타고 등장한 독특한 소재의 작품입니다. 일명 '댄스 마라톤 대회'가 소재입니다.
'댄스 마라톤 대회'라는 것은 1930년대 경제 대공황 시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대회입니다. 남녀가 한 커플이 되어 2시간 마다 10분씩 쉬며 계속 춤을 추는 대회입니다. 1시간 50분 춤추고 10분쉬고, 이렇게 쉬지 않고 24시간 열리는 춤 서바이벌이고, 양쪽 무릎이 땅에 닿으면 탈락입니다. 잘 수도 쉴 수도 없고 오로지 10분 휴식 시간동안 세면, 빨래, 식사, 쪽잠 등을 해치우고 시작 벨이 울리면 다시 춤을 춰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몇 시간이 아닌 며칠이 걸릴지 몇 주가 걸릴지도 모르는 대회입니다. 오로지 단 한 커플에게 막대한 우승상금이 돌아갑니다.
말을 쏘는 남자의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
댄스 마라톤의 시작은 쌩쌩한 상태로 하지만....
왜 이런 대회가 열렸을까요? 영화에서도 묘사되지만 먹고 살기 무척 어렵고 막막한 사람들이 많았던, 1930년대 미국을 강타한 경제 대공황, 오갈데 없는 막막한 사람들은 우승상금에 대한 욕심과 댄스에 참가하는 기간동안에는 공간과 음식이 제공된다는 것도 참가에 대한 이유가 됩니다. 실제 이 댄스 마라톤 대회에 144개 팀이 참석하여 무려 1473시간이나 춤을 춰서 우승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473시간이면 무려 61일 입니다. 심지어는 1935년 어느 대회에서는 무려 2328 시간의 기록이 나왔다고 합니다. (97일, 3개월이 넘네요)
이 30년대 벌어진 댄스 마라톤 대회 경기를 소재로 한 영화 '그들을 말을 쏘았다'는 국내에 개봉되지 않은 60년대 영화로, 제인 폰다, 수잔나 요크, 브루스 던, 긱 영 등의 배우들이 공연하고 있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콘돌' '투시'의 감독 시드니 폴락의 초기 작품입니다.
댄스 마라톤 대회가 벌어지고 많은 남녀들이 참가 신청을 합니다. 그들은 경연을 통해서 우승을 꼭 자치하겠다는 야망을 갖고 호기있게 도전합니다. 참가자들에게는 경연이었지만 주최자인 록키(긱 영)에게는 '쇼'였습니다. 그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쇼로 관객들을 재미있게 해주려는 목적을 갖고 있고 참가자들은 록키를 위해서 쇼를 벌이는 소모품에 불과했습니다. 다양한 참가자들이 등장하는데 영화에서 비중있게 다루는 인물들은 주인공인 글로리아(제인 폰다)와 떠돌이 청년 로버트(마이클 사라진) 커플, 여배우 지망생 앨리스(수잔나 요크), 전직 선원이었던 나이든 남자(레드 버튼스), 임신한 아내 루비(보니 베델리아)와 함께 참여한 제임스(브루스 던) 등 입니다.
춤 추기도 힘든 상황에서 쇼의 극적 재미를 위해서
삽입하는 10분 경보 대회
혼신의 열연으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획득한 긱 영
2시간 마다 주어지는 겨우 10분 휴식시간을 통해서
짧은 휴식을 취하는 지친 참가자들
글로리아는 아는 남자와 함께 참가신청을 하지만 그가 문제가 발생하여 혼자가 되버립니다. 급기야 현장에서 파트너를 찾던 중 그곳을 기웃거리던 연하의 청년 로버트와 짝이 됩니다. 댄스 대회는 시작되고 많은 사람들은 2시간마다 10분씩 주어지는 휴식시간에 피로를 회복하면서 끝이 없는 서바이벌 댄스 대회에 몸을 던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과연 이게 사람이 할짓이냐 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데, 그런 황당한 대회에 죽기 살기로 참여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대의 방황과 혼돈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겨우 2시간에 10분 씩이지만) 그런 것 만으로도 당장 기거할 공간이 주어진고, 잘하면 큰 상금까지 타게 되니 온갖 남녀들은 끝없는 댄스를 춥니다. 글로리아는 임신한 루비에게 아이를 낳아서 키울 능력이 없으면 차라리 지워 버리라고 악담을 퍼븟고, 그런 글로리아에게 루비의 남편은 화를 내고....몸과 마음이 피폐한 버려진 영혼들의 마지막 발악같은 대회입니다.
춤 대회지만 디스코나 격렬한 춤이 아닌 그냥 남녀가 서서 몸만 움직이면 춤으로 인정이 되는데(그러니까 몇날 며칠을 계속 추겠죠) 어떻게 보면 서있기 대회인 셈입니다. 피곤해서 잠이 와서 땅에 주저앉게 되면, 즉 무릎 양쪽이 닿으면 탈락인데, 주최즉에서 여러 사람들이 다니며 탈락자를 가려냅니다. 의사와 간호사도 여럿 대기할 정도로 준비를 하고, 남녀의 공간이 분리되어 침대와 세면공간이 주어지는 휴식공간에서 주어진 10분을 보내는 것입니다.
점점 지쳐가는 커플
로버트를 유혹하는 앨리스
젊은 날의 보니 베델리아가 임신한 참가자로 출연한다
이게 실제 있었던 대회를 소재로 한 영화이고, 영화에서는 이 동물쇼 같은 춤 대회를 뼈있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삶에 비전이나 목적을 상실한 젊은이들의 모습, 즉 막막한 상태의 사람들, 그나마 머무를 공간과 먹을 것이 주어지는 것이 감지덕지한 사람들, 그들을 이용하여 온갖 쇼를 연출하고 관객을 동원하여 돈을 벌려는 주최자 록키의 쇼맨십, 그리고 남들의 고통을 구경하며 즐기는 관객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귀함이 아니라 먹이를 던져주면 시키는 대로 쇼를 하는 동물과도 같은 진귀한 현상입니다. 남녀가 함께 커플이 되므로 파트너가 쓰러지려고 하면 상대방이 부축하고 깨우고, 격려하고 그래서 살아남기도 합니다.
소셜테이너 배우로 유명한 제인 폰다가 여주인공 글로리아를 연기하고 당시 29세의 젊은 배우 마이클 사라진이 젊고 훤칠한 상대역인 로버트를 연기하는데 마이클 사라진은 거의 국내에 소개 영화가 없는 편인데 에로 영화로 홍보되었던 '시덕션'이라는 작품 정도가 기억됩니다. 두 배우 보다는 댄스 파티의 주최자이자 사회를 진행하면서 쇼의 묘미를 부추키는 록키 역의 긱 영의 연기가 돋보입니다. 50-60년대 여러 영화에서 조연 배우로 활동한 긱 영은 이 영화에서 사실상 주연의 비중으로 야비한 쇼 진행자 역할로 개성있는 연기를 보입니다. 그 외에 '제인 에어' '사계절의 사나이'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의 수잔나 요크가 관능적인 참가자 앨리스를 연기하고, 다이하드'에서 브루스 윌리스의 부인으로 출연하여 알려진 보니 베델리아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임신한 참가자로 출연합니다. 그 남편 역은 서부극의 악역으로 익숙한 브루스 던 입니다.
필사의 사투
충격을 받은 앨리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얻은 것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9개부문 후보에 오르며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의 작품과 경합을 벌였는데 세 편 모두 삐딱한 아메리칸 뉴시네마 부류의 영화입니다. 당시 30대의 젊은 감독 시드니 폴락 감독의 도약의 발판이 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9개 부문 후보 중 수상은 긱 영의 남우조연상 하나에 그쳤는데 조연상이긴 하지만 거의 주연급입니다.
국내에 미개봉된 60년대 숨겨진 수작 중 한 편이고 개봉도 안되었지만 방영, 출시도 되지 않아서 거의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입니다. 과거 로드쇼 라는 영화잡지를 통해서 아메리칸 뉴시네마 영화특집에서 소개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셜 테이너 이미지 때문에 많은 영화가 개봉이 안된 제인 폰다의 볼만한 작품중 한 편이기도 합니다. 30년대 한 때 호황했던 댄스 마라톤 대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자세히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현재도 댄스 마라톤 대회는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열리고 있는데 영화처럼 지옥의 서바이벌이 아닌 축제 형식으로 시간도 제한을 두어 열린다고 합니다. 일종의 자선 축제 같은 성격이지요. 이 댄스 마라톤은 2차 대전의 발발과 함께 경제 대공황이 종료되면서 시들해졌다고 합니다.
ps2 : 영화의 거의 전부가 댄스 마라톤이 열리는 실내 경기장이 배경입니다.
ps3 : 겨우 두 시간마다 10분씩 휴식이 주어지는데 그렇다면 먹고, 빨래하고, 씻고, 용변을 볼 시간조차 부족해 보이는데 언제 쉬고, 쪽잠이라도 잘까요? 20분은 휴식해야 할 것 같은데. 그걸 두 달, 세 달씩 견뎌냈다니 정말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의 인내가 얼마나 한계를 넘는지 알 수 있네요.
[출처] 그들은 말을 쏘았다(They Shoot Horses, Don't They? 69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