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년월일1896-05-30~사망1977-12-26
# 대표작 <스카페이스> <아기 양육> <여비서> <붉은 강> <리오 브라보>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하워드 혹스는 영화를 그저 ‘일’로 알고 작업했으며 ‘예술’을 한다고 거들먹거리지 않았던 점에서 존 포드와 비슷한 할리우드 거장 1세대였다. 60년대 미국에서 고전미국영화 재평가 바람이 불 때 항상 맨 앞에 거론되던 감독이 바로 혹스였다. 혹스가 손대지 않은 할리우드 장르는 거의 없고 장르의 걸작도 많이 만들었다.
갱영화는 <스카페이스 Scarface>(1932), 사설탐정영화는 대시엘 해밋 원작의 <빅 슬립 The Big Sleep>(1946), 서부영화는 <붉은 강 Red River>(1948)과 <리오 브라보 Rio Bravo>(1959), 로맨틱코미디는 <아기 양육 Bring up Baby>(1938), 신문기자의 생활을 다룬 영화로는 <여비서 His Girl Friday>(1940), 자동차 레이서에 관한 영화는 <레드 라인 7000 Red Line 7000> (1965), 공군 조종사가 나오는 영화는 <공군 Air Force>(1943) 등 한도 끝도 없다.
게다가 자막에는 나오지 않지만 30, 40년대에는 할리우드의 많은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찍기 어려운 장면의 연출을 혹스에게 부탁해서 하루나 이틀 정도 그가 직접 현장에 나가 연출을 지휘했다는 얘기가 전해올 만큼 그의 연출력에 관한 소문은 ‘전설’이다.
1896년 인디애나주 태생인 혹스의 성장사는 곧 미국영화의 성장사이기도 한 것이, 혹스는 가족들과 함께 10대 때 남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간 뒤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이다. 코넬대학을 졸업하고 혹스가 무성영화 시대의 할리우드에서 얻은 직업은 제작자와 각본작가. 현장에서 잔뼈가 굵으면서 혹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스타일’의 정수라 부를 만한 자기 특유의 영상어법을 체득했다. 26년부터 시작된 혹스의 감독 경력은 70년에 끝났으며 영국 평론가 피터 울른은 혹스의 영화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혹스가 만든 모든 장르를 ‘모험드라마’와 ‘광적인 희극’ 두 장르로 좁혀 설명했다. 울른이 모험드라마로 분류한 여러 영화들에서 혹스적 인간들은 삶을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것으로 만드는 죽음에 맞서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자학하고 희롱하며 논다.
자동차 경주선수 등과 같은 직업인들에게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서부극의 주인공들에게서도 혹스는 자기식의 전문가주의에 긍지를 느끼고 어떤 위험도 마다지 않으면서 그걸 재미라고 느끼는 개인주의 영웅들을 찬미했다. 그런데 혹스는 이 일상세계가 미쳐 있는 것으로 본다. 혹스는 그런 일상의 광기를 담아내기 위해 광적인 희극영화를 찍었고 이 부류의 영화에는 코미디뿐만 아니라 <스카페이스> 같은 갱영화도 들어간다.
<스카페이스>에서 폴 무니가 연기하고 알 카포네를 모델로 한 주인공 갱은 포악하기 그지없지만 행동이 유치하고 어린애 같아서 그는 바로 그런 자신의 퇴행적인 행태 때문에 파멸당한다. 혹스적인 인간은 사실 정신적인 면에서 보자면 한없이 왜소하다. 혹스의 모험드라마에서 쓸데없이 죽음을 불사한 인생의 도박을 거는 사람들의 상태는 바로 광적인 희극에서 보이는 미치광이 같고 어린애 같은 모습과 통하며 그것이 곧 혹스가 재미와 냉소주의를 할리우드 장르의 틀에 깔아놓은 것이었다.
40년대까지 혹스는 전문가주의를 찬미하면서 남성 엘리트 집단들간의 우정과 연대를 찬미하는 기조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혹스는 더욱 비관적으로 변해갔다. 혹스가 말년에 만든 세편의 서부영화 <리오 브라보>(1959) <엘도라도 El Dorado> (1966) <리오 로보 Rio Lobo>(1970)는 얘기의 골격은 비슷하지만 후기작으로 갈수록 등장인물들 사이의 우정은 꽉 짜인 것에서 느슨한 것으로 변했다. 혹스는 자기 세대가 영화를 통해 그렇게 강조했던 영웅주의와 집단의 연대감을 스스로 부정하기 시작했다.
미국 평론가 매니 파버는 언젠가 혹스의 <빅 슬립>을 가리켜 “혹스 영화의 주인공들은 두번 다시 같은 모퉁이를 지나치지 않는 사막의 캐러밴과 같다. 항상 낯선 곳을 여행하며 이 지점에서 다음 지점으로 배회하고, 아주 잠시 머무를 뿐이고, 결코 되돌아가는 법이 없으며, 끝없는 혼란에 사로잡힌 채 항상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혹스는 존 포드처럼 영웅인 개인의 고독한 결단과 방황을 미국식 장르의 박력있고 간결한 어법으로 담아냈다. 포드는 미국역사를 가로지르면서 영웅주의를 담아냈지만 혹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재미’, 인생의 허무를 외면하기 위해 죽음을 희롱하고 우스꽝스런 인간의 내면을 들추어내는 재미로 혹스는 다종다기한 장르영화를 만들었다. 미국장르의 대가이자 어떤 식으로든 자기 얘기를 했던 작가이자 미국 영화사가 제럴드 매스트가 지적한 것처럼 무엇보다도 이야기꾼이었던 혹스의 존재는 곧 미국영화의 신화를 받쳐주는 버팀목이었다.
출처: 씨네21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