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볏가리 바위 앞 강가에서 자매 40년 전 어린 시절 손녀 자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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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연휴에 생질녀가 온 가족을 데리고 대이작도에 1박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 내외와 제 친정 오빠 에게 저녁을 사주겠다며 찾아왔다.
외삼촌을 잊지 않고 일부러 들러 그것도 시집간 두 딸네 가족 한 부대가 함께 인사를 하고 가겠다니, 이 얼마나 고맙고 감동적인 일인가.
친정 오빠, 두 딸 내외, 외손자 하나까지 모두 일곱,우리 내외, 총 아홉 명이 우리 동네 유명한 추어탕집에 모이기로 했고.
잠시 기다리니 벤츠 한 대가 들어오고, 이어 제네시스가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참 잘들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식탁에 앉아 손주들에게 외삼촌과 진외종조, 진외가 쪽 친족의 호칭과 촌수까지 설명해 주니, 어느새 내가 작은 가족 선생님이 된 듯했다.
손서들의 부모님 안부도 묻고,
“자네들 장모님이 참 열심으로 살아온 것이 이렇게 이어져 잘 살고 있으니 모두가 참 복이 많다.
그리고 한서방, 박서방은 장가 참 잘 갔다. 얼마나 예쁘고 열심히 사는 각시들을 만났냐!” 하며 웃었다.
생질여의 큰딸네는 자매를 두었고, 아들은 은행원이고, 여식은 호텔에서 요리 일을 한다.
둘째 딸의 여식은 엄마를 닮아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열심히 수련 중이고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은 키가 벌써 170cm나 되어 보이며 의젓하고 씩씩했다. 영어가 재미있다며 공부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대견했다.
손녀들은 비싼 추어탕 정식이며 돈가스, 소주와 막걸리까지 알아서 척척 주문했다. 사위들은 내 곁으로 와 술잔을 권하코 채워주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따뜻하고 행복한 외손들과 만남이다.
생질이 남편 살아생전 포천군 운천면에 살 때, 내 아이들도 대려가 한탄강에서 온 가족이 고기도 잡고 물놀이도 하고 군부대 앞 볏가바위 강가 모래성에서 어른 아이 함께 모래 비탈타기도 하며 자주 만났다.
그 때 손녀 둘은 초등학교 저 학년쯤의 어린아이들이었다.
이제는 중년의 숙녀가 되고, 나와 카톡도 주고받고, 가끔은 소주 한잔하라며 안주를 주문 배달해 주기도 하고, 남해의 전복까지 택배로 보내주는 정다운 이들이기도 하다.
나는 "작은할아버지라 부려달라."고 해서 내 대명사는 '작은 할아버지'다. 사실 이는 내 위에 형님께서 계신다는 걸 알려 주는 뜻이 들어 있다.
안타깝게도 생질서가 28년 전에 먼저 떠난 일이 늘 마음에 걸린다. 이제 생질녀도 일흔하나. 입가에 주름이 보이는 모습을 보니, 아홉 살 위인 외삼촌인 나와 어느새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이날은 참 좋았다.
자식들이 서로 사랑하며 제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그 자식들이 다시 다음 세대를 잘 키워가고 있고.
거기에 늙은 이 영감이를 "외삼촌" "작은할아버지" 하며 잊지 않고 찾아 섬기는 마음에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살다 보니 나에게도 이런 큰 복이 있다.
어제 저녁은 음식보다도 가족의 정과 사랑을 배불리 먹은, 꿈같이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