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후의 경계선.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3-4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위에 말씀을 찬찬히 한 번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본문의 글을 보면 분명히 죽은 후에 새 생명을 얻어 살리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어느 쪽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죽음입니까? 아니면 새 생명입니까? 죽음과 생명 ,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그 둘 사이에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분명히 있는데 우리는 이를 간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순간적으로 죽어 버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죽어 버리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결국 내가 살면서 경험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죽어서 살아 온사람이 아직 없지요.
옛 사람과 새 사람 사이에 경계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죽음이나,꺾임 입니다. 절차상으로 보면 옛사람 -죽음 -새사람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 실제적으로 죽음이란 과정을 빼버리고 새 사람으로 가는 것처럼 믿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건을 통해서 죽음의 과정을 반드시 통과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런 과정을 겪는 것은 바로 인간이 타락하여 죄인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상태를 말합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것이 바로 회복이고 새 사람의 삶인 것입니다. 이과장 속에서 반드시 거쳐야 되는 것이 죽음이나 꺽임이라는 것입니다.(이 죽음을 설명하기가 어렵죠. ) 이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를 지나가지 못하면 새 생명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지식으로 안다고 하지만 이것은 실제적으로 자신이 지나가지 않고는 새 생명을 맺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 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죽음과 꺽임은 실제적인 사건 입니다. 이 속에 나만의 고통과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그 비밀스러운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찰라적으로 죽음을 경험을 할지라도 이런 두려움과 고통은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고통을 순간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자살을 선택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 여정을 보면서 그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처절 하고 두렵고 고통스러운 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야곱과 탕자도 이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도 경험 해야 되는 그 죽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찰라적으로 죽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새생명을 얻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죽음에 미치지 못하는 자는 이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 해야 되는 것은 맞지만, 이 과정을 생각할 때 어느 누구도 스스로 지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론이나 지식으로도 이 죽음에 과정을 설명해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이해가 안되는 미지의 세계일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