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면 참 간악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요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요 놈이 얼마나 견디는 지 두고 보
자"하는 심뽀로 사람을 테스트한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견디고 올바르게 사는 놈은 천국에서 보장해준다구
요? 짧은 제 생각에는 참 웃기는 이야기로 밖에 안 들립니다.
밧줄로 다리를 묶어 놓고서는 함께 뛰게 하고는 '너는 왜 그렇게 못뛰
냐?' '니가 의지 부족이거나 덜 떨어진 놈이어서 그렇다' 며 구박을 주
고 '그래도 올바르게 살아라'라고 강요한다면 너무나 불공평한 일이 아
니겠습니까?
오늘 매일신문 24면에 실린 기사의 일부입니다.
◇어느 농사꾼의 눈물
안동의 청각 장애인 농사꾼 조웅제(59.길안면)씨는 요즘 실의에 표정조
차 잃었다. 300여평의 비탈밭과 평생 홀몸을 의탁해 온 7평짜리 조립
식 오두막 등 보잘것 없는 전재산마저 전부 농협 빚에 넘어가 갑자기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됐기 때문.
이미 경매가 끝난 오두막에서 우선은 지내고 있지만 집안엔 쌀 한톨도
없었다. 보일러 기름이 떨어져 방구들이 얼음장 같고 방 안엔 코가 시
릴 정도로 냉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요즘은 농한기라 이렇다할 일감조차 구할 길이 없는 상황.
요즘 조씨는 낮엔 볕을 찾아 마당에서 온종일 하염없이 그저 새끼만 꼰
다. 딱히 쓸 데가 있어서가 아니라 마냥 웅크리고 있자니 자꾸만 절망
감에 빠져들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곁에 남은 것이라곤 기르던 강아지 한마리 뿐. 그의 유일한
식구이다.
"IMF 난리가 터지기 전 빚보증을 선 게 화근이 됐어요" 이웃 마숙재
(75) 할아버지는 "조씨가 말을 못하는데다 글도 몰라 더 안타깝다"고
했다. 마을 부녀회 황영화(49)씨는 "평생 혼자 살면서도 외로워 않고
항상 새벽같이 일어나 모습을 드러낼 만큼 부지런하던 사람이 요즘은
더부룩한 모습 그대로 삶에 의욕을 잃은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했
다.
7남매의 장남인 조씨에게 그동안 가장 큰 낙은 고추.참깨.콩.팥을 심
어 봉지봉지 담아 뒀다가 동생들에게 전해 주는 것. 마을 일도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한오섭(54) 이장 등 이웃들은 "생활이 넉넉잖아 형제가 뿔뿔이 흩어져
사는 걸 조씨는 항상 마음 아파하며 돈을 벌어 농지를 장만하고 모두
한데 모여사는 것을 꿈으로 삼았었다"고 전했다.
돌아서는 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기자가 호주머니 돈을 털었으
나 조씨는 한사코 손사래 치더니 새끼 꼬던 손을 풀고는 소리없이 눈물
만 흘렸다. 안동.권동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