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입구 - 풍산정류장 [안동시]

[Maximum]

 안동시 풍산읍을 아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의외로 상당히 많은 곳에 걸쳐있는 동네다.

안동의 관문인 서안동IC가 있는 동네이자 하회마을의 입구이기도 하고,

예천군과의 경계지역엔 경북도청신도시가 들어오는 노른자와도 같은 땅이다.

 소위 '뜨는 동네'라고도 할 수 있는 지역이지만 아직까지 분위기는 조용하기만 하다.

전국에서 세 번째로 넓은 안동시에서 유일한 '읍'의 지위를 차지한 만큼

있을 건 다 있지만 평범한 시골동네마냥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조용히 웅크린 마을 한복판에 역시 고요하게 자리잡은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다.

하회마을의 입구이자 도청의 관문이기도 한, '풍산정류장'이다.

 풍산읍은 인구가 8천명이 채 안 되는 조그만 동네이다.

그래도 안동에서는 시내를 제외하면 가장 규모가 큰 마을로서 유일하게 '읍'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읍의 기준 인구엔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분위기는 여느 면과 다를바 없이 조용하고 한적하다.

2차선 골목길에 낮은 건물과 전신주가 아직도 쭈욱 이어진 이 곳이 풍산읍의 중심가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읍'이라고 풍산장은 아직 살아있다.

살아있는 정도가 아니라 안동에서도 손꼽는 재래시장으로,

최근에 깔끔하게 정비해 안동시내 입구에서나 볼 법한 기와문이 시장에도 자리잡고 있다.

5일장이라도 열리는 날엔 차와 사람과 여러 가지 물건을 구경할 수 있다.

 풍산장 바로 옆, 읍내 끄트머리엔 조그만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다.

왼쪽 건물의 '터미널마트' 때문에 저기서 표를 파는게 아닌가 했는데, 일단 그건 아니었다.

버스들은 시내 시외 가릴 것 없이 도로에 정차하는게 맞다.

마트 쪽엔 알록달록한 버스 하나가 승객을 태우고 예천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반대편엔 시내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리고 그 옆에 진짜 버스정류장 건물이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공식 이름은 '풍산버스정류장'. 하지만 지도 검색을 하면 나오질 않는다.

버스정류장 표시는 있는데 검색은 안 된다.

 2층엔 15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미술학원 간판이 뜯겨진 채로 남아있고,

1층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나 싶고, 마치 공사장 컨테이너를 보는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매표소를 찾기가 무척 힘들다.

 문이 있기는 있는데 왠지 잠겨있는 듯 음침한 분위기는 뭘까?

들어갈 수 있는건지, 표는 살 수 있는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시간표와 주인장께서 손수 적으신 안내문구가 있는걸 보아 영업은 하는 것 같다.
일단 들어가 보자.

 안으로 들어가니 밖과는 전혀 딴판이다. 표를 파는 아주머니도 한 분 계신다.

'표 사러 오셨어요?' 물어보시며 친절하게 맞아주신다.

여길 들어오는 사람은 표 사는 사람밖에 없어서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일단 시치미 뚝 떼고 하회마을 가는 버스를 물어본다.

실제 우리의 목적은 진짜로 여기 이후 곧바로 하회마을 가는 것이였기 때문에 틀린걸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중요한건 버스가 아닌 자가용으로 간다는 것 (...)

아무튼 아주머니께서는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하회마을 가는걸 안내해주신다.

여기서 표를 안 사도 된다며 시간표를 직접 종이에 써가며 친절히 알려주셨다.

 화사한 갈색톤으로 꾸며놓은 맞이방 분위기도 그렇고, 친절하게 적어가면서 하회마을 가는 길을 안내해주시는 아주머니까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따스함이 온누리에 묻어있다.

버스타고 들어갈 것이 아닌데 왠지 버스를 타야할 것 같은 분위기. 괜히 죄송하고 민망해진다.

아무튼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자 쿨하게 허락하신다.

다만 자기 자신만 안 나오면 된단다. 보아하니 여기서 아예 살면서 표를 같이 파시는 분인데,

이런 곳 상당수가 허락은 해주시지만 이렇게까지 쿨하게 허락하시는 경우는 보지 못해서 나조차도 놀란다.

 덕분에 좁지만 화사한 사진들을 기념으로 남기고, 화분을 배경으로 매표소까지 찍자 피해주시는 센스까지 발휘해주신다.

왠지 많은 민폐를 끼치고 가는 것 같아 다시 한 번 죄송스럽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시간표를 찍어본다.

시내버스는 이제 거의 카드로 통일되었기 때문에 손님이 많이 줄었겠지만,

그래도 예천-점촌-상주-김천, 동서울, 충주-수원, 대전, 북대구 등등 여러 노선이 남아있어

이들 덕에 표를 계속 팔고 계신다. 수요는 적어도 하회마을 덕분에 꾸준히 찾아오는 모양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쳤지만 기억나지 않는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고,

훈훈한 분위기를 안고서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건너가서 타야한다는 마지막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건너편에 이런 골목을 발견했다.

왠지 한 번 찍어보고 싶은, 그리고 짧지만 강렬하게 뇌리를 스치는 장면이다.

 반대편 정류장에선 막걸리와 안주를 거하게 잡수며 수다를 떠는 청년들이 그려져있다.

건물도 왠지 초가집같고, 그림도 딱 초가집 주막의 모습이다.

좋은 인연을 만나고 좋은 풍경을 찾게 되어 기쁘고 예감이 좋다.

즐거운 기억을 안고 진짜 하회마을을 '만나러' 다음 여정에 오른다.

[조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