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47일째; 조침령~단목령~점봉산~한계령(23.1km)
2010년 10월 23일 토요일, 맑음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4시에 일어난다. 오늘은 13차 산행의 4일째이자, 이번 산행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3일간 입어 땀에 쩔은 등산복을 아껴 두었던 여벌 등산복으로 갈아 입고 배낭을 챙긴다.
거실로 나오니 아침상이 차려져 있다. 구수한 시래기 된장국이 입에 잘 맞는다. 도시락을 건네 받았더니 아주머니가 아무래도 밥이 적을 것 같다며 우리 도시락외에 별도로 조그마한 통에 밥을 더 담아 준다. 아주머니가 우리가 아침밥 먹는 것을 보고는 아무래도 밥이 부족할 것 같았나 보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이를 닦고 떠날 체비를 하는데, 마당에서는 남男주인이 자동차 시동을 걸고 있다.
5시, 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남男 주인이 운전하는 서브-자동차를 타고 개울을 건너 조침령을 오르기 시작한다. 남 주인은 빗물에 파여나가 험한 길을 요리조리 능숙하게 가더니, 잠시 차를 세워놓고 대우를 장착하여 마지막 가파른 길을 올라 조침령 정상이자, 점봉산 들머리에 도착한다. 남男 주인이 식전 담배 한 개피를 맛있게 빼어 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산행채비를 한다.
마지막 날의 안전 산행을 위하여 대원隊員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아직은 어둠에서 덜 깨어난 점봉산으로 들어선다. 라이트에 비친 완만한 등로는 나를 편안하게 인도하고 주위를 덮고 있는 어둠은 더욱 더 적막감을 느끼게 한다. 코 끝을 스치는 깨끗하고 싸늘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 주고 마음까지 정화해 주는 듯하다. 이따금 어둠속에서 아침 잠을 깬 새들이 푸드득하고 날개짓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도; 조침령~북암령~단목령~한계령]
[조침령 점봉산 들머리...]
[표지목標識木...]
표지목은 0.5km마다 나온다. 그러니까, 조침령에서 처음 만난 표지목이 32번이었으니 조침령에서 점봉산까지는 16.1km 되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새 우측에는 여명黎明이 밝아 오고, 지나온 조침령 넘어로 산마루들이 슬금슬금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기 시작한다.
[여명黎明...]
[943 전망바위에서 여명 2...]
[1,018봉에서 일출 #1...]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삼각점이 있는 1018봉에 닿았다. 어느새 등에 땀이 촉촉히 베어난다. 동해바다 쪽이 점점 붉으스레하게 물들고 있어 일출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순토시계는 오늘 일출日出이 6시 43분이라고 알려준다.
그런데 여기서 내려가면, 등로가 어떻게 이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여기가 일출을 보기에 썩 좋은 장소는 아니지만 일출을 보고 가기로 한다.
잠시 앉아서 물을 마시고 쉬고 있는데, 이윽고 동해바다 수평선에서 혀를 내밀 듯이 태양이 조금씩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1,018봉에서 일출 #2...]
[1,018봉에서 일출 #3...]
[1,018봉에서 일출 #4...]
[양수발전소揚水發電所 상부上部댐...]
일출을 감상하고 다시 대간大幹 마루를 가는 데, 좌측으로 얼음으로 덮힌 넓은 호수 같은, 희끄무래한 것이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가니 양양 양수발전소揚水發電所 상부上部 댐이다. 벌써 얼음이 언 것은 아닐 텐데, 아마 수면에서 전반사全反射 현상이 일어난 것 같다.
그런데, 굴 채취 금지라니? 담수일 텐데 굴이 서식하는가?? 양수 발전소揚水 發電所는 밤에 남는 전력을 이용하여 하부댐에서 물을 상부댐에 끌어 올렸다가 이 물을 이용하여 낮에 발전을 하는 일종의 에너지 저장소로서 발전 단가發電 單價가 화력 발전에 비해 1/3정도 싸다고 한다.
[1,138봉]
[1,136봉에서 본 설악...]
1,138봉을 지나 1,136봉에 오르자 참나무 가지사이로 마침내 설악雪嶽이 모습을 들어낸다.
아~ 설악산!
나는 참나무 잔가지 사이로 보이는 설악산 대청봉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떨리는 감동에 젖는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부터 걸어서 찾아온 설악산! 드디어 백두대간의 끝자락 설악산을 대간 마루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 지금으로서는..., 내 발길이 닿을 수 있는 '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끝자락'이다.
나는 금강산 관광이니 개성관광이니 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 우리 땅에 입장료를 내고 가야 하는 것도 마땅찮고 또, 그 돈들이 엉뚱한 데 쓰인다고 하고 부터는 아예 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언젠가 분단의 벽이 허물어지고, 또 그 때 나의 근력이 허용 한다면 몇 날 며칠이 걸리드라도 향로봉을 넘어 금강산을 지나 함경도의 철령, 평안도의 낭림산, 함흥의 황초령을 거처 백두산 장군봉까지..., 나의 조국 한반도, 백두대간白頭大幹 마루금을 다 밟아 보리라 다짐해 본다.
지도에는 1,136봉에 삼각점과 전망표시가 되어 있는데 삼각점은 그대로 있으나 어쩐 샘인지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 그 동안 참나무가 자란 탓인지 참나무 잔 가지들이 시야視野를 가리고 있다. 물을 마시고 잠시 쉬었다 북암령으로 내려간다.
[북암령...]
8시반, 북암령에 닿았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리면 에베르스트까지 다녀온 산꾼이 운영한다는 민박집, '설피민국'이 있어 쉬어가는 대간꾼이 많다고 한다. 여기서 단목령까지는 70분 거리..., 그런데 이정표 주위에 길이 어지럽게 나 있어 헷갈리게 한다. 이정표도 꽤 복잡하고 표지리본마저 보이지 않아 대간 마루금을 찾느라 조금 헤맨다. 알고 봤더니 땅에 박혀있는 이정표가 제자리에서 조금 회전하여 있어 단목령 방향 표시가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누군가 장난하느라 돌려 놓았나...?
이어서 물푸레나무 숲이 나타났는데 물푸레나무를 대간 길에 많이 보아 왔지만 여기처럼 이렇게 숲을 이루고 있고, 또 나무둥치가 이렇게 아름드리 고목인 것은 처음이다.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 숲...]
[표지목標識木...]
조침령에서 32번을 처음 만났는데..., 어느새 반환점을 지났다.
이어서 연세年歲가 70이 넘어 보이는 남男 홀산객을 만났다. 이분은 단목령 아래 설피밭에 살고 있다며 북암령까지만 간다고 한다. 단목령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았더니 이분 대답이 '뛰어 가면 10분이면 간다'며 거의 다 왔단다. 산행을 하다 산꾼에게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면 대게 쉽게 예기한다. 자신들의 걸음이 빠르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묻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함인지..., 아직 단목령까지 1km 이상 남아 있는데 10분이라...,
[남진南進하는 대간꾼...]
이어서 남진南進하는 대간꾼 3명을 만났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산꾼들을 많이 만날 듯하다. 이들은 대간 표지
리본을 달면서 가고 있는데 리본에 쓰인 글귀가 재미 있다. '날 밤새도 산에 가자' 라고 되어 있다. 이들이 자기들이 지나온 '단목령'에 공단 관리인이 있다고 알려주며 "물소리가 나면 좌측으로 우회하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단목령 왼쪽으로 물 표시가 있다.
[개울]
대원隊員이 지난 번 벌재에서 불독처럼 생긴 금지구역 지킴이 한테 걸려 자인서自認書를 써준 성가심이 생각나는지 조금 전前, 산꾼들이 일러준 대로 좌측으로 우회 하자고 한다. 나는 그러다 길을 잃을까 염려가 되었으나 물도 보충할 겸 일단 산죽을 헤치고 아래쪽 개울로 내려간다.
어렵지 않게 개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물을 보충하고 있는 데, 윗쪽 대간마루에서 인기척을 내며 한 사람이 내려다보고 있다. 보아하니 '공단 지킴이'인 듯한 데..., 물을 한잔 마시고 '또 성가시게 되었구나, 이렇게 된 이상 별도리 없다' 생각하고 소로를 따라 대간 마루로 복귀하려고 했더니 이외로 마루위에 있던 지킴이가 그리로 오르지 말고 개울을 건너 우회 길로 가라며 손짓하는 게 아닌가. 만나면 서로가 불편하니 만나지 말고 돌아 가라고 하는 듯하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단목령은 우회하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선행자들이 많이 지나다녀 우회 길이 제법 선명하게 나 있다. 개울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는데, 단체 산꾼들이 4~50여명 줄을 서서 올라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토요일..., 산행 가이드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산악회에서 온 듯하고 남녀 노소 다양한 연령층이다.
나는 이들에게 언제 어디서 출발했는지 물었더니 새벽 4시에 한계령에서 출발했단다. 그런데 이들 중에도 '날 밤새도 산에가자' 표지 리본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걸 보니 앞에서 만났던 세사람은 이들의 선발대였던 모양이다.
[대간마루에 복귀...]
단목령~설피밭 갈림길을 지나, 다시 산죽을 헤치고 대간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대간마루에서 몇 걸음 나아가니 위치 표지목이 나타났는데, 단목령을 0.2km 지나 있다. 그러니까 단목령을 기준으로 대간 거리 0.5km를 우회한 샘이다.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면 공단에서'공연히 대간 길을 가로막아 대간꾼들의 마음에 부담을 줄 뿐 아니라 그로 인하여 또 다른 산길만 더 만들고 있다' 는 생각이 든다.
[나무계단...]
855.5봉을 오르는 가파른 나무 계단을 땀을 흠뻑 쏟으며 오르자 구릉 지대가 이어진다. 모두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인 920봉, 972봉, 952봉을 차례로 만난다. 모두 고도차가 100여미터..., 오르내림을 거듭한 끝에 12시가 지나서야 '오색 삼거리'에 도착 한다.
[오색五色삼거리...]
여기서 우측으로 1시간 20분 정도 내려가면 남설악南雪嶽 입구인 오색五色이 나온다. 오색은 이곳에서 나는 약수에서 다섯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 한다. 나는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애들이 어릴 때 한 번 오색에서 2시간 정도 등산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대청봉쪽으로 조금 오르다 '끝청 갈림길'쯤에서 되돌아온 것 같다.
여기서부터 점봉산까지가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이 드는 구간이다. 고저차高低差 500여 미터를 가파르게 치고 올라야 한다. 이미 지쳐 있는 데다 또 다시 된비알을 만났으니 이번 산행 중 가장 힘든 고비를 맞고 있다.
[점심]
홍포수 막터를 얼마 앞두고 또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났다. 대원隊員의 배낭도 가볍게 해 줄겸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아뿔싸! 비상식량으로 갖고 다니던 소보래 빵이 없다. 민박집에서 지난 밤에 잠들기 전에 커튼 뒤에 외부로 통하는 창틀에 두었는데 아침에 챙기는 것을 까먹고 말았다. 커텐이 드리워져 있어 보지 못한 탓이다. 대관령에서부터 갖고 다니며 아껴 두었던 빵인데..., 너무나 아쉽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간식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도 아침에 아주머니가 밥을 조그마한 통에 더 싸주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비상식량으로 갖고 가다가 나중에 먹기로 한다.
[홍포수 막터]
점심을 먹고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이름에 무슨 사연이 있음직한 홍포수 막터에 닿았다. 어느새 점봉산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이정표에는 정상까지 1.0km를 남겨두고 있다. 우측으로는 한참 전부터 설악의 서북능선이 백두대간과 나란히 달리고 있다.
그런데 대청봉 정상에는 아래쪽으로 길게 상체기가 나 있는데 아마 산사태 흔적인 듯하다. 중청봉 정상에 시설물이 보이는데 중청 대피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왼쪽 가까이에 있는 샘에서 물을 보충 하기로 한다. 물병 2개를 들고 완만한 길을 따라가서 물을 떠왔더니 대원이 용하게도 느타리 버섯을 제법 많이 뜯어놓았다. 느타리 버섯이 확실하나 버섯은 아무래도 위험하니 가져가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봐야겠다.
[샘터]
[점봉산 오름길 주목]
점봉산 오름길에 주목이 한 그루 외롭게 서 있다. 그리고 정상이 가까워지자 가벼운 너덜길이 나타난다.
[점봉산 아래에...]
잡목이 사라지고 하늘이 열린다. 아~ 점봉산 정상이다...!
[설악산 서북능선雪嶽山 西北陵線...]
드디어 점봉산點鳳山 정상에 섰다. 정상에는 큼직한 공터에 모데미 풀로 알려진 풀이 자라고 있는데 지금은 다 말라서 산꾼들에게 편안한 자리를 마련해 준다.
설악산 서북능선이 한눈에 들어 온다. '점봉산을 오르지 않고는 설악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
다. 안산~귀때기청~끝청~중청~대청으로 이어지는 장엄한 서북능선과 대청을 지나 흐르는 화채능선...,
화채능선의 끝자락에는 동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 점봉산은 조망이 정말 좋은 산이다. 오늘은 시계視界까지
좋아 일망무제一望無際..., 사방四方 어디를 보아도 끝간 데 없이 보인다.
서북능선에서 잠시 눈길을 좌측으로 비껴보니, 가리봉[1,518.5m]이 아름다운 산세山勢를 뽐내고 있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오늘 지나온 대간大幹 마루금이 동해 바다를 옆에 두고 살아 움직일 듯이 용트림하고 있다. 그 우측으로는 또 하나의 산마루가 작은 점봉산[1,297m]을 지나 곰배령~가칠봉으로 흐르는데 여기서 곰배령까지는 한걸음에 닿을 것만 같다. 어디를 보아도 모든 산들이 푸른 녹음을 떨어내고 겨울을 나기 위하여 솜 이불을 덮고 있는 듯하다.
[지나온 대간大幹마루금과 동해東海 바다...]
[작은 점봉산과 곰배령...]
[점봉산點鳳山, 1,424.2m...]
[커피 한잔을 들고...]
지나온 대간 마루금을 바라보며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 커피를 한잔한다. 점봉산 정상에서 사방으로 바라보는 조망이 너무 좋아 이번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것 같다.
조망에 취해 있다보니 어느새 30여 분이 훌쩍 지나갔다. 아쉽지만 귀때기청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한계령으
로 향한다. 지도에는 여기서 한계령까지 3시간 30분이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왼쪽의 가리봉능선과 서북능선의 귀때기청~대승령~안산방향...]
[한계령으로 뻗은 대간마루와 귀때기청봉, 1,577.6m...]
바로 앞에 보이는 암봉이 망 대암산, 그 넘어 두봉우리가 각각, 1,157.6봉과 1,155.9봉이다. 그리고 한계령
건너편 삿갓을 씌워놓은 듯한 귀때기청이 정면에서 손짓하고 있다. 한계령으로 내리기 직전 1,155.9봉에서
오른쪽으로 칠형제봉능선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한계령으로 흘러 내리고 있다.
점봉산을 내리는 길은 철쭉나무가 사람의 키 높이 이상으로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무심코 내려가는데, 철쭉 때문에 보이지 않던 산꾼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이들은 단목령까지 간다고 한다.
[망대암산, 1,236m]
[1,157.6봉과 칠형제 능선]
[망대암산에서 본 대청봉...]
동해 바다에서 시작된 44번 국도가 단풍이 절정인 오색을 지나 한계령으로 굽이치며 오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 한계령으로 내리는 길이 사나운 암릉에다 등로마저 희미하여 어려움이 시작된다.
[오색과 동해방향...]
[한계령으로]
[뒤에는 점봉산點鳳山이 물러나고...]
비상식으로 남겨 두었던 여분의 밥을 먹고 잠시 숨을 돌린다. 앞에는 산죽 길 넘어에 1,157봉이 다가온다. 산죽 길을 가다 30여명의 산꾼들을 만났다. 이들은 우리들이 환경 지킴이일까 무척 경계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저러나 여자들도 많이 섞여 있는데 이들이 점봉산을 넘어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1,157.6봉에서 본 서북능선...]
1,157.6봉에 올랐다. 이곳도 전망이 좋다. 대청봉과 서북능선이 가까이에 다가왔고 눈 앞에는 칠형제봉 능선이 자리하고 있다.
[암릉 옆으로...]
[한계령寒溪嶺에...]
암벽 옆으로 내려가다 보니 계곡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어쩌다 표지 리본이 눈에 띄긴 하지만 주 등로에서 벗어난 곁가지 등로登路 인 것 같으나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계곡을 따라갈 수밖에 도리가 없다. 출입 통제 구간이다 보니 곁 가지 등로가 어지럽게 나 있다.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계곡을 따라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근래에 비가 오지 않은 탓으로 건천乾川이라 어쩌다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기는 하나 흐르는 물은 없다. 그러나 큰 바위나 뜻밖에 낭떨어지를 만나면 이를 피해 길도 없는데 우회해야 한다. 날이 어두워져 라이트를 켜고 몇 차례나 넘어져가며 천신만고 끝에 계곡을 타고 내려가다 머리를 들어보니, 눈 앞에 도로가 하나 보이기 시작하고..., 차들이 가끔 지나가고 있다.다. 도로와 차들을 보이자 비로소 안도安堵하게 된다. 이제 저기까지만 가면 된다...!
도로를 보고도 한참이나 고생한 끝에 가까스로 도로 아래에 다달았다. 도로道路 사면斜面 축대를 기어 올라 가이드 레일을 타고 넘어 도로에 들어선다. 도로 양쪽은 산으로 막혀 있는데 우리가 내려온 계곡을 제외하고 는양쪽 모두 철조망이 높게 처져 있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나는 이 도로가 한계리에서 한계령으로 오르는..., 전에도 몇 번 다닌 적이 있는 44번 도로임에 틀림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한계령이다. 그래서 얼마나 가야 할지 모르지만, 도로 한쪽으로 붙어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올라간다.
도로를 따라 걷는 동안, 여전히 철조망이 높게 처져 있어 우리가 내려온 계곡으로가 아니면 탈출이 거의 불가능할 것만 같다. 이렇게 대간 길을 막아 버리니 대간꾼들이 가능한 길을 찾아 여기저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백두대간 종주도 이제 점점 어려워진다. 전문 가이드를 따라 가야만 할 것 같다. 우리가 오늘 내려온 칠형제 암릉에서 계곡을 따라 내려온 길도 산꾼들의 희미한 흔적에 의지하여 힘들게 내려왔다.
그런데..., 도로를 따라 15분 정도 오르는데, 앞쪽에 기대했던 한계령 휴게소 대신에 느닷없이 왠 도로와 만나는 게 아닌가...! 나는 적지않게 당황했다. 정신을 가다듬어 눈 앞에 나타난 삼거리 도로 표지판을 보았더니, 새로 만난 도로의 좌측으로 한계령을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계곡을 내려와 만나 지금까지 걸어온 도로는 필례약수를 거처 레프팅으로 유명한 내린천으로 가는 무명 산길이고 지금 만난 도로가 44번 국도로 오색에서 한계령을 넘어 한계삼거리로 가는 도로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내려온 계곡은 내린천의 지류인 셈이다.
내가 여러번 한계령을 넘나들 때도 이 44번 도로를 이용하였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지 도로에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또 도로 한 차선은 승용차들이 한줄을 차지하여 주차하고 있다. 여기에 차를 세워놓고 야간산행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한계령으로 가려고 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돌자 말자 바로 눈 앞에 손에 잡힐듯이 한계령 휴게소가 있는게 아닌가!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던 다리가 휴게소를 보는 순간 다시 가벼워진다. 휴게소까지 꼬리를 물고 있는 자동차 물결을 헤치고 한계령에 오른다. 정상가까이 와서야 차가 정체되는 원인을 알았다.
한계령 정상에서 경찰이 음주 운전 체크를 하고 있다. 한계령 정상에서 음주 체크..., 좌측은 설악산과 철조망이 막고 있고, 우측은 낭떨어지...,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곳이다.
6시 45분, 마침내 13차 순례의 최종 기착지 한계령 마루에 섰다. 이번에는 대관령에서 시작하여 설악의 문턱 한계령까지..., 먼 길을 왔다. 한계령 정상에서는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 때문에 주위 산세山勢가 실루엣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휴게소 주차장은 물론 도로 변에 차들이 넘처나고 휴게소에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나는 오늘 우리가 내려온 길 이외에 점봉산에서 한계령으로 내려오는 다른 날머리가 어디 있나 확인하려 했지만 자동차와 사람들로 너무 붐벼 쉽지 않다.
--오늘 총 산행시간; 13시간 30분, 총 산행거리; 23.5km(백두대간; 23.1km)
시장기도 있었으나 우선, 서울가는 버스시간을 알아보는 게 먼저다. 휴게소 안에 버스표 파는 데를 갔더니 동서울로 가는 막차는 이미 떠났고 상봉 터미널로 가는 막차가 7시에 있단다. 상봉 터미널이란 말이 생소하여 대원을 쳐다봤더니 일단 상봉동까지 가잔다. 거기서 지하철을 타면 된단다. 차비는 19,200원, 카드는 안된다. 시계를 보니 5분밖에 남지 않아 화장실만 얼른 다녀와서 오색에서 오는 버스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렇게 도로가 막혀 있었는데 신통하게도 버스가 거의 정시定時에 도착 한다. 버스 승객은 거의 등산객들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