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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통신 17.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한국도자기
8월 2일, 아들은 4일간의 벨기에 여행을 떠나고 홀로 서기에 나섰습니다. 구름이 끼고 간간이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역에서 아들을 배웅하고 인터넷 카페에 들러 한국소식을 살핀 후 아내와 며느리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모처럼 카페의 한글자판이 제대로 작동하여 며칠 전의 메일에 뒤늦게 답신을 보낸 것입니다.
10시 반에 이영석 교수와 만나기로 30여분 여유가 있어서 인근에 있는 피츠윌리암 박물관에 들르니 안내데스크에서 다른 때와 달리 각 전시장의 위치와 전시내용을 소개한 Floor Plan을 건네줍니다. 이를 쭉 훑어보니 몇 차례 돌아 본 전시실들이 일목요연하게 도면과 함께 적혀 있어서 훨씬 쉽게 전시내용을 알아볼 수 있더군요. 그런데 Ground Floor 29에 The Arts of Korea라고 적힌 부분이 눈에 띠어 얼른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곳을 처음 다녀온 날, 아들이 한국작품이 진열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보았느냐고 물어서 보지 못했다고 하였는데 정작 그곳을 지나가고도 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
이 교수도 박물관에 가보겠다고 하였으므로 그를 만나 다시 돌아보기로 하고 박물관 옆에 있는 한인교회 앞의 약속장소로 향하였습니다. 이 교수는 곧장 박물관으로 가보자며 한국 도자기가 전시되는 곳을 보았느냐고 묻더군요. 5년 전에 이 박물관에서 도자기 전시를 위해 한국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분류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때는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서 보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잠시 전에 이곳을 둘러볼 때에 입구에 있는 영문 설명자료에 Yun Yong I(윤용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있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지나쳤는데 이 교수는 윤용이(명지대 미술사교수, 도자기전문가)라는 분이 그때 분류작업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며 이를 위해 대영박물관의 학예연구관(한국에도 15차례나 다녀간 전문가)이 크게 힘썼다는 경위를 설명합니다. 이곳에 전시된 도자기들은 대부분G. M. Comperts(1904-1992)라는 분이 기증한 것들입니다.
어제도 이곳에 들러 미술작품을 돌아보다가 이탈리아 전시실에서 바로 그 전날 밀라노에서 보았던 작품들과 궤를 같이하는 것들을 다시 접하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 설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고시 준비하면서 어려운 경제학 서적을 몇 차례 읽어도 모르던 부분이 10여 독이 지나서야 겨우 의미를 알 수 있던 기억을 떠올리며 케임브리지에 있는 동안 이 박물관을 더 열심히 드나들까 합니다. 공자는 가죽이 닳도록 고전에 열중하였다고 전해오는데,,,
박물관을 나와 이교수의 안내로 St. John’s College의 교회와 Trinity College의 교회박물관을 돌아보았습니다. 교회박물관에는 이 대학 출신인 뉴톤과 베이컨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동상이 여러 개 세워져 있고 뉴톤 동상 뒤의 벽에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산화한 수 백 명의 이 대학 출신 장병의 명단이 새겨져 있습니다. 며칠 전에 돌아 본 St. Paul’s 교회의 벽에 이 교회 출신인100명의 1차 대전 참전희생자 명단이 새겨져 있어서 눈여겨 보았는데 1차대전의 영국 쪽 희생자가 의외로 많은 것에 놀라니 이 교수가 1차대전의 주 대치 선이 영국에 가까운 프랑스 지역에 형성되어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오전에 며느리에게 메일을 보내며 이곳에 있는 동안 영국을 제대로 알기 위하여 여러 곳을 찾아보겠다고 썼는데 멀리 가지 않고도 영국전문가(이 교수는 서양사, 특히 영국사 전공이다)에게서 제대로 영국을 배우게 됩니다. (칼리지 입구에는 제복을 입은 중,노년의 위엄 있게 보이는 신사들이 출입을 단속하고 있는데 대부분이 군에서 대위 이상의 장교로 퇴역하였고 사회적으로도 쟁쟁한 위치에 있었던 인물들이라고 이 교수가 일러준다.)
인근에 오래 된 교회건물들이 여러 개 있는데 그 중에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오래된 작은 교회가 있습니다. 13세기의 십자군 원정 때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 모습을 본 따 지었다는 교회 안을 한 바퀴 돌며 1세기에 로마의 영향을 받은 이래 4-5세기에 섹슨, 11세기에 노르만, 16세기에 종교개혁, 19세기의 빅토리아 시대 등의 역사흐름도 한 몫에 살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잉글랜드 북부에 있는 요크에서는 로마 시대 이후 노르만으로 연결되는데 영국의 남부는 그 중간에 섹슨이 등장하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어느덧 12시가 되어 근처의 Tery-Aki라는 일본음식점에서 점심을 들기로 하였습니다. 우동이나 라면 종류를 주문할까 궁리 중인데 우리를 알아 본 한국인 종업원이 다가와 이곳에서 라면 종류를 시킨 어떤 분이 입맛에 맞지 않다며 전혀 입에 대지 않은 사례를 소개하며 벤또 종류가 적절하지 않겠느냐고 권합니다. 그녀의 권유대로 각기 다른 벤또를 주문하여
맛있게 들었습니다.
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어떻게 이곳에서 일하느냐고 물으니 23세로 대학 3학년을 마치고 이곳에서1년 계획으로 어학 연수하는 중에 아르바이트로 일한다고 하는군요. 열심히 잘하라고 격려하며 고향의 맛을 느끼도록 알 사탕 몇 개를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일본음식점인데 주인은 중국여인이어서 의아하게 여겼더니 유럽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일본음식점을 중국인이 경영한다고 이 교수가 말합니다. (연구실에 있는 일본인들이 이곳을 이용하지 않는데 중국인이 경영하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리에도 중국인이 넘쳐나고 단체로 버스 투어 하는 무리들도 중국인이 대부분인 것과 함께 중국인들이 가는 곳마다 떼를 지어 몰려다닙니다.
아들이 박물관에 있을 때는 런던에 도착하여서, 식당에 있을 때는 유로스타를 타고 벨기에로 향하면서 두 번 전화를 걸어왔는데 집에 돌아오니 어제 한국 슈퍼에서 가져온 영국생활(7월 24일자)과 유로저널(7월 23일자)이 적적함을 막아주려는 듯 반갑게 눈에 들어옵니다.
10여 일이 지난 뉴스이지만 한국사정을 알게 하는 기사들도 꽤 많고 영국의 교민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기사들도 흥미를 느끼게 하는데 논단처럼 실은 글 중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정부를 강력히 옹호하는 기고문도 있어서 교민사회의 흐름이 어떤 것인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300만원 넘는 MB 양복에 놀랐다’, ‘권상우, 손태영 얻고 100억 날렸다’, ‘중국 미인계에 걸린 영국 총리 보좌관’ 등의 기사에서 잘 모르는 내용도 알게 되고,,,
영국 등 유럽 내 한국대사관들이 동서유럽이 하나(유럽연합의 확대로)로 합쳐지면서 한국 교민들은 물론 여행객들의 소매치기 피해가 급증함에 따라 피해 대책 및 예방을 위한 홍보에 직접 나서고 있다는 내용도 알아 둘만 합니다.(런던 경시청에 의하면 2005년에 총 27,552건의 소매치기 사건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해가 갈수록 소매치기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서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도 시내에 나갈 때는 각별히 주의하고 있다고 한다.)
유로 저널에 실린 유머를 하나 소개합니다.
‘부전자전
어느 날 20세를 갓 넘긴 아들이 부모님 앞으로 가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제 저는 제 인생을 찾아 떠나겠습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아버지가 마음을 진정시킨 뒤 물었다.
‘너의 인생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전 인생을 즐겁게 살고 싶다고요. 돈도 많이 벌고 싶고 발길 닿는 대로 여행도 떠나고 싶고 때때로 멋진 여자들도 만나고 싶어요. 절 막지 마세요.’
그러고는 현관 문 쪽으로 가려고 하자 아버지가 다급하게 아들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세요. 절 막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누가 널 막는다고 그러냐? 어서 앞장 서라. 같이 떠나자.’ ‘
오늘 읽은 잠언 2장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합니다.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20-21절)
몇 차례나 비가 내리다 그쳤다 하더니 오후 들어 맑은 날씨입니다.
우리들의 앞날도 흐렸다가 맑아지는 날들이 더 많아지기 바랍니다.
2007년 8월 2일 저녁
케임브리지에서 한국을 만나며
영국통신18. 고인돌 보다 큰 스톤헨지와 아름다운 바스(BATH)
8월 4일, 10여일 전에 예약한 5000년 전에 조성했다는 큰 돌들이 보존된 스톤헨지와 2000년 전 로마지배시대에 건설한 목욕탕이 있는 바스(BATH)를 돌아보는 순례에 나섰습니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고 간간이 비를 뿌리더니 하루 종일 이런 날씨가 계속되어서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듭니다.
일요일에는 오전 9시가 지나 버스가 다니므로 한 시간을 걸어서 약속장소에 30분 전에 이르니 아직 아무도 나오지 않았더군요. 8시에 16명이 미니버스에 올라 케임브리지에서 남서쪽 220km 떨어진 스톤헨지로 향하였습니다. 16명의 일행가운데 중국인으로 보이는 신사와 30대로 보이는 부부 외에는 대부분이 유학생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입니다.
두 시간 반을 논스톱으로 달려 스톤헨지에 도착하여 가이드로부터 스톤헨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 말로만 듣던 스톤헨지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현장으로 향하였습니다. 40여세로 보이는 기사 겸 가이드는 1995년에 잠시 부산에서 영어강사를 했다는 인텔리인데 스톤헨지의 역사와 문화를 해박한 지식과 성실한 자세로 잘 설명해 줍니다.(5천 년의 역사를 500년 혹은 천년 단위로 몇 미터나 되는 긴 끈에 매듭을 지어 이를 풀어가면서 실감 있게 전달하는 기법이 돋보였다. 나더러 한국인이냐고 물으며 어느 지역에 사는가, 부산에 있을 때 경주는 가 보았는데 광주는 가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나의 고향인 전라북도 고창은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고인돌의 고장이어서 고인돌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몇 차례 현장을 돌아보고 국제학술행사, 고인돌 설치를 재현하는 자치단체 행사 등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스톤헨지는 내가 본 고인돌보다 규모가 크고(높이가 7m 넘는 것들이 있다.) 세워진 방향이나 구조가 심오한 원리를 담은 모습이어서 많은 전문가들이 그 내용을 탐구하고 파헤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이 믿음직스럽게 여겨집니다.
비가 멎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삥 둘러 줄로 막아놓은 둘레를 네 바퀴나 돌면서 볼 때마다 각도와 관점에 따라 새롭게 느껴지는 스톤헨지의 모습을 여러 장면 카메라에 담고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발길을 돌렸습니다.
수많은 순례자 중에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꽤 많은데 한국인은 눈에 띠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일행 중에도 중국 신사 외에 일본 청년, 중국 청소년들이 섞여 있었다.)
최초의 스톤헨지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 먼저인 5000년 전에 세워지고 그 500년에 이후에 나무구조를 갖추어 조성한 2차, 그 이후 천여 년에 걸쳐 세밀하게 재구성한 스톤헨지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그 돌들이 큰 것은 인근 30km 지점의 Marlborough Down에서 옮겨 왔고 청색의 작은 돌들은 서쪽으로385km 떨어진 Preseli Mountains in Wales에서 옮겨 왔다고 분석합니다. 피라미드 건축에 사용된 돌이나 고인돌도 어떻게 운반했는지 궁금한데 그보다 큰 스톤헨지의 운반방법에 대하여도 나름대로의 해석을 덧붙입니다.
스톤헨지는 약간 떨어진 곳에 왕이나 지배계층으로 보이는 자들의 무덤이 왕릉처럼 크게 흩어져 있는 외에는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이나 휴게시설도 없이 넓은 들판에 황량하게 방치되어 약간 허술하게 관리해 온 듯한데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관광객의 접근을 막은 것도 최근의 일이라고 하는군요. 사람은 출입이 통제되는데 비둘기 등 새 떼들이 무리를 지어 돌 위로 날아듭니다.
12시 15분에 스톤헨지를 떠나 바스로 향하였습니다. 스톤헨지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바스는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소개한 여행사의 팜플렛 설명이 사실로 여겨질 만큼 충실한 역사적 유물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잘 활용한 작으면서도 멋진 도시입니다.
오후 1시를 조금 지나 바스에 도착하여 먼저 두 시간 반 동안 식사와 로만 바스를 돌아보고 다음 두 시간은 가이드와 함께 걸으며 바스의 역사와 문화를 익히기로 하였습니다.
2000년 전 로마지배 시대에 왕이나 귀족들이 사용한 목욕탕의 구조가 그대로 보존된 로만 바스(ROMAN BATH)는 19세기에 박물관 형태로 재건하였다는데 입장료가 11파운드나 되어 꽤 비싼 편인데도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찾아 듭니다.. 터키의 에페소에 있는 유적지(신약성경 에베소서의 무대가 된 곳으로 사도 요한과 성모 마리아가 말년을 지낸 곳으로 알려졌다.)에서 로마의 목욕탕을 살펴 본 바 있어서 로마시대의 목욕문화를 알고 있었지만 영국에 한 곳 밖에 없는 명소라고 널리 자랑하는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한 시간 동안 로만 바스의 이모저모를 돌아보고 남은 시간에 주변에 있는 공원, 크리켓 경기장, 미술관 등에 들렀습니다.
잘 가꾸어진 공원에서는 중,노년으로 구성된 악대가 중앙의 무대에서 익힌 솜씨를 자랑하고 크리켓 경기장에는 남녀가 섞인 중년들이 야구처럼 던지는 볼을 방망이로 때리는 경기가 한참 진행되고 있더군요.(크리켓은 영국의 국기(씨름이 한국의 대표적 경기인 것처럼 영국의 대표적 경기로 아직도 식민지배에 있던 나라들에 인기가 있다고 함)
경기장에서 만난 노년의 부부가 말을 건네며 크리켓을 하느냐고 물어서 아니라고 답하니 할머니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코리아라고 대답하니 남인가, 북인가 묻고 남쪽이라고 하니 한국소녀가 브리티시 오픈 골프에서 이겼다고 반가운 소식을 전해줍니다.(뉴스에 접하기가 쉽지 않아 브리티시 오픈이 열리고 있는지, 한국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지 몰라서 어리둥절하였는데 케임브리지에 돌아와 인터넷 카페에 들려 한국 뉴스를 살피니 신지애 선수가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하였다는 승전보가 실려있다. 히말라야 K2 등반에 나섰던 한국인 3명이 실종되었으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함께,,,)
제법 큰 강이 흐르는 강변을 따라 올라가니 큰 길 모퉁이에 ‘빅토리아 아트 갤러리’라는 미술관이 눈에 띠어 들어갔습니다. 1층과 2층으로 된 아담한 미술관을 살피고 나오니 이 미술관의 건립연대가 적혀 있는 돌 판이 보이더군요. 1897년,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Diamond Jubilee Year)이라고,,,
오늘 일요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여 아쉬웠는데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옆에 큰 교회가 있어서 집회 일정을 살펴보니 오후 3시 30분에 EVENSONG이 있다고 적혀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추어 교회로 갔습니다. 일요일이어서인지 지난 번에 들렀던 일리(Ely)의 이븐 송 때보다 훨씬 많은 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복을 입은 합창단이 사제의 인솔로 입장하여 기도와 노래로 예배를 시작하였지만 아쉽게도 3시 45분에 일행이 집합하기로 되어 있어서 10여분간 지켜보다가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가이드의 인도로 약 2시간 동안 바스 시내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장소들을 더듬으며 진행된 Walking Tour는 오랜 역사를 지닌 작은 도시를 통하여 영국과 이 도시를 새로 알게 되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목욕탕의 어원이 된 바스(BATH)의 유래를 알기 위하여 광장 중앙에 있는 돼지 모형 앞에 섰습니다.(시내 곳곳에 여러 문양과 설명을 붙인 돼지모형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리어왕의 아버지 Bladud가 왕자였을 때 그만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왕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왕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농부의 밑에 들어가 돼지를 쳤다. 돼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도토리였는데 엄청난 먹보인 돼지들이 연못에 가득 떠 있는 도토리를 발견하고는 앞다투어 연못 속으로 들어갔다. 왕자는 못에 빠진 돼지들을 건져 올렸는데 못이 이상하리만큼 따뜻하였다. 그런데 못에서 밖으로 나온 왕자는 깜짝 놀랐다. 문둥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깨끗이 없어진 것이다. 왕에게 달려가 자신의 병이 낳은 것을 고하여 다시 왕궁으로 돌아와 후에 왕이 되었다. 왕자는 그 연못을 온천으로 만든 후 자기 이름을 따 Bladud라 하였는데 어느 때 인가부터 Bath로 불리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어서 강변으로 옮겨서 산업혁명 이전에 이 강줄기를 따라 전국의 여러 곳으로 배를 타고 오간 역사를 설명하고 이웃해 있는 공설운동장에서 럭비경기에 열중하는 선수들을 가리키며 럭비가 축구에 이어 겨울철에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라고 이야기합니다.
한참을 걸어 낡은 건물에 이르니 ‘The Oldest House SALLY LUIN’S in Bath 1482’라고 벽에 글씨가 새겨진 오래 된 집이 있습니다. 이를 보노라니 첫날 노팅험에서 본 오래 된 음식점이 떠오릅니다. 곳곳에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을 보며 우리에게는 그만한 역사의 느티나무들이 마을의 역사를 일깨워 주는 것을 생각합니다.
가이드는 영국이 통일왕국이 된 것은 10세기 경인데 그때 바스가 중심지역이었다고 설명하는군요. 3시 반의 코랄 이븐 송에 참석하러 들렀던 교회는 BATH ABBEY 교회인데 17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의 유리창문들이 다른 교회와 달리 크고 밝은 것으로 건축학상 큰 의미를 지닌 것이라는 것도 전문가이드에서 들을 수 있는 새로운 내용입니다.
시내의 어떤 건물에 다섯 개의 유리 창문을 달도록 설계되었는데 그 중 하나를 벽으로 막아 놓은 모습이 보입니다. 세금 중에 창문의 숫자를 세어 과세하는 방법이 있어서 과중한 세금을 피하러 일부러 창문을 폐쇄한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현장을 확인한 셈입니다.(가혹한 세금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것보다 두렵다는 공자의 말이 생각난다.)
그곳에서 가까운 큰 건물의 벽 가득히 라틴어로 쓴 긴 문장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1215년에 제정된 마그나 칼타의 내용이라며 왜 이곳에 그 것이 적혀 있는지는 자신도 모르는 일이라고 가이드가 말합니다. 마그나 칼타의 주된 내용가운데 하나는 왕도 귀족원의 동의 없이는 마음대로 과세하지 못한다는 것이어서 창문의 폐쇄와 마그나 칼타를 새긴 글이 인접해 있는 것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거리를 따라 걸으며 영국을 대표하는 여류작가 Jane Austin이 한 때 이곳에 살았다는 것을 기념하여 만든 제인 오스틴 센터, 아프리카 선교에 앞장 선 리빙스톤(2년 전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강이 있는 잠비아에서 그의 동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이곳 바스 출신인 것까지 어찌 알겠는가?)을 비롯한 영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화가, 인도 정복에 앞장선 유명한 정치인 등 세 사람의 명사를 배출한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을 닮은 The Sircus라는 원형거리, 초승달을 닮았다하여 주택들에 초승달로 이름 붙인 Royal Crecent 등을 돌아보니 어느덧 바스에서 출발하기로 한 오후 5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스톤헨지와 바스는 런던의 서남 쪽에 위치하여 일주일 전에 돌아 본 동남쪽의 켄터베리와 도버 해협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데 약간 높은 언덕에 있는 바스 주변은 풍요로운 잉글랜드 지방의 또 다른 풍치로 눈에 들어와 오가는 길이 즐거웠습니다.
아침에 케임브리지를 떠날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스톤헨지로 가는 길이라고 하였더니 영국에 있으면서 가보고 싶은 곳을 많이 못 가서 아쉬웠는데 두루 살피게 되어 잘되었다며 부러워하더군요. 아내가 못 본 몫까지 열심히 살피고 케임브리지에 돌아오니 저녁 9시가 넘었습니다. 한 시간에 한 차례 있는 버스시간까지 50여 분이 여유가 있어 인터넷 카페에서 뉴스 등을 살피고 집에 돌아오니 10시가 훌쩍 지났습니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행여나 감기라도 들면 큰 일, 더운 물에 몸을 녹이고 밤 11시 지나 잠자리에 들어 숙면을 취하였습니다. 잘 자고 일어나니 7시, 아침을 차려먹고 9시부터 컴퓨터에 앉아 자료를 확인하고 문장을 다듬어가며 서툰 솜씨로 입력하노라니 오후 1시가 훌쩍 넘어갑니다.
아침에 성경읽기와 찬송을 부른 후 가족과 친지들을 일일이 거명하며 평안과 발전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 면에서 침체된 한국사회에 신지애라는 젊은 처녀가 영국하늘에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며 우승의 깃대를 올려 마음이 기쁘고 사기가 오릅니다. 10년 전 IMF 위기로 사기가 떨어졌던 한국인들에게 큰 용기를 북돋운 박세리처럼,,,
사랑하는 이들이여,
먼 곳에서 기도로 응원하니 힘 내시고 밝은 앞날을 향하여 씩씩하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2008년 8월 4일 오후
더위가 가신 케임브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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