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白蓮)을 보면서
한 춘 희
십여 년 전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화백 운보의 집에 갔다가 연못 안에 피어있는 백련을 바라보면서
하얗게 바랜 한산 모시 적삼을 입고 시골길을 걸어가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초원으로 둘러싸인 푸른빛 사이로 보이는 하얀 빛깔은
고결하면서도 순결하게 느껴져 오랫동안 아름다움에 취했던 기억 때문일까. 하염없이 백련을 바라보면 볼수록 가슴으로부터 온몸까지 끌려가는 듯한
그리움이 소리 없이 일고 있다.
백련을 보는 순간 꽃에서 피어나는 찬란한 빛은 어머니의 사랑이요, 눈물이었다. 백련의 순결과
청순함의 꽃말을 떠올리니 그대로의 고운 자태가 어머니의 그리움으로 다가와 바람에 일렁이다가 꽃잎으로 피어나기도 전 내 눈은 벌써 알 수 없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눈을 감고 꽃잎에 가만히 얼굴을 대어본다. ‘한씨 가문을 잊지 말거라’ 일러주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듯하다.
내가 결혼하여 어머니의 곁을 떠날 때는 ‘자주 찾아뵈어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했건만, 그것은 생각뿐이 되고
말았다. 예전 같아서는 멀다하겠으나 지금은 차만타면 지척인데 기껏해야 한해에 두 서 너 번을 뵈었을까. 그것도 어두운 저녁에 도착하여 번번이
급한 사정이 있다며 그날로 되돌아오기가 일쑤였다. 혹여 하룻밤을 자더라도 날이 새기가 무섭게 돌아오는 게 고작이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내
형편을 충분히 이해하시는 듯, 헤아려 주셨다. 출가외인이라고 나 역시 당연하다는 듯이 돌아왔었다.
황금빛 꽃술사이로
피어나는 연꽃향기는 어머니의 포근한 향기처럼 느껴졌다. 이 아름다움은 자식들을 곱게 길러내시던 수많은 고통을 안으로 담고 계신 모정이 아니던가.
꽃잎이 지고 연밥만 덩그러니 구부정하게 남아 있음을 보면 자식들을 뿔뿔이 다 흩어보내고 빈 몸을 홀로 추스르고 계신 부모님의 모습 같다.
얼마 전, 73세를 맞는 어머니의 생신 날에 찾아뵈었다. 몇 해 전부터 무릎연골이 닳아 편찮으시더니 요즘은 부쩍 늙으셨고 심한
아픔으로 지내신다. 이젠 어머니는 몸도 마음도 쇠약하시다. 하룻밤만 더 자고 가라며 간절한 음성으로 자식들을 붙잡듯이 말씀하셨다. 전에는 한번도
이런 일이 없으셨기에 참고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릴 듯 가슴이 메여왔다. 돌이켜보니 어머니의 삶 중에
오십여 년은 집안의 대소사로 인하여 고난의 세월이었다. 그 많은 시련 속에서 참을 인자를 수도 없이 새기며 무거운 멍에를 메고 사셨다. 그런데도
자식에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맑은 눈동자와 고운 목소리 그대로 이시다.
하얀 연꽃을 바라보고 있으니 꽃잎이 파란 잎
위로 힘없이 바람에 지고 있는 모습은 시름없는 어머니의 지난날의 이야기를 듣는 듯하다. 어머니의 인생은 아직도 아픈 무릎으로 여전히 어려운
자식들을 보살피고 계신다.
부안군 일로읍의 10 여만 평의 백련지에서 눈물로 어머니를 불러본다. 만개시기가 지나서인지
듬성듬성 피어있어 더 귀하게 여겨짐은 아마도 희소성에서 오는 느낌이리라.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에는 청순 고결 그리고 소중한 생명의 신비를
안으로 감싸 안은 듯 참으로 자연과 생명과의 신비한 미의 조화를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아마도 물욕이 없다는 부처님도 연꽃을 불법으로
세우셨나보다. 고요와 맑은 성정을 지닌 듯 봉오리 진 백련은 고고한 학과도 같다. 넓은 잎 사이로 살짝 가려진 모습은 비단옷의 선녀인 듯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눈이 시린 듯한 우아함에 가느다란 신음까지 새어나왔다.
저 연꽃처럼 잠시라도 고결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
간절한 소망이 스쳤다. 참다운 삶을 살리란 마음도 그때일 뿐 일상에서 무너지고 말지만 이런 상념에 젖은 채 널따란 백련지를 바라본다. 장엄하고
신성함을 어디다 비기랴! 이토록 가꾸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노력과 정성이 깃 들었을까. 오랜 세월 수많은 손과 손, 땀과 땀이 모여서 된
결과이리라. 백련지를 따라서 휘돌아 걷다가 연못 안에 꾸며놓은 감상로에서 바라본 정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우뚝 선 백련사이로
곱게 핀 수련과 노랑 어리연은 귀여운 아기처럼 사랑스럽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커다란 연잎이 뒤척이며 휘날리는 모습은 선경속의 풍경도
이러할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물씬 풍기는 신선한 연만이 지니고 있는 특유한 향기에서 일어나는 감흥에 나도 모르게 ‘연밥 따는 처녀’라는
민요가 떠올라 흥얼거렸다. “상주 함창 공갈 못에 연밥 따는 저 처녀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우리부모 섬겨주소...” 연못 어디선가 숨쉬듯
연밥 따던 처녀의 가슴속 애절한 사랑이 담긴 전설이 피어오르는 듯하다.
안내 자료를 살펴보니 백련지는 일제시대 농업용수로 쓰기
위하여 만든 것인데 처음에는 그곳 가장자리 우물 옆에 12주를 심었던 것을 매년 열성으로 가꾼 공이란다.
보슬비는 연잎위로
어김없이 내리건만 물방울로 맺혀 은구슬을 만들어 한줄기 바람에 또르르 굴러 떨구니 연꽃의 고결한 지조를 느끼게 한다. 자세히 바라보니 고유의
지킴이요, 흔들림 없는 의지로 강건하고 고고함은 내 어머니의 마음 또한 이러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다짐해본다. 풍요보다는 저 백련같이 얽매임
없는 마음을 지니고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검소하고 소박한 삶으로 살아가리라. 아! 연꽃을 바라보노라니 세상 모든 시름이 다 사라지고 지나가는
미풍조차 멈춘 듯 평온하기만 하다.
연꽃을 불가에서는 깨달은 부처로 상징하고 생명의 근원으로 한단다. 맷방석만큼 큰 연잎은
구도의 중생이 올라앉는 좌복의 방석과도 같아 내 마음을 연잎에 실어본다. 백련지의 청아하고 지순한 아름다움도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긴 세월 꾸준한
정성의 산물 인 것을. 자애로운 어머니의 가르침을 고이 간직하며 살리란 마음이 푸른 연꽃잎위로 꽃봉오리 져 가만히 피어오른다.
*
<한국수필 등단작품>
첫댓글 어머니! 불러만 봐도 눈물이 글썽이는 것은 고결한 희생의 대명사이기 때문일까. 연꽃과 어머니의 이야기가 빈 속에 독주를 마신듯 가슴으로 싸! 하게 흘러내리네요. 좋은글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한 폭의 연꽃바다가 눈에 보인 듯 선하네요. 희생위에 핀 꽃이기에 더욱더 고귀해보이지 않나 싶네요. 이 땅의 어머니의 삶처럼 말입니다. 작가님을 뵌 듯한데 다시 생각나게 하네요. 잘지내시는지?
하얀 연꽃과 어머니, 등단식때 뵈었던 어머님은 선생님이 표현 하신 그대로였습니다.고귀하면서도 근엄 하지않고 자상하시며 너무도 고운 모습이었지요.연꽃에 관련된 참고 자료 잘 기억 하겠습니다.
어느 해인가 방송에서 신문에서 부안의 연꽃 저수지를 보고 한번 다녀와야지 하는 맘을 이 글에서 달래어 봅니다...백련의 고고한 자태를 눈으로 보는 듯이 그려 봅니다...
선생님을 뵙는듯이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이제는 선생님의 모습이 백련을 닮으셨어요
읽고 또 읽어도 가슴을 울립니다. 어머니, 어머니 이렇게 불러봐도 목이 메일뿐입니다. 자주옷고름 날리며, 자식을 위해 손발이 얼어터지도록 평생을 일만 하시다가 지쳐 계셨을 어머니.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립니다. 어머니, 어머니 ................
음악을 다시 바꾸어 깔았습니다. 글도, 음악도 함께 느끼시며 어머님을 가슴깊이 그려 보십시오.
저도 벌려놓은 일 모두 마치고, 어서 어머니 산소에 성묘나 다녀 와야 겠습니다. 수필반 원생님, 푸른솔 문학회 회원님 여러분,저처럼 死後悔 마시고 부모님 생존해 계실 때 못다한 효도, 가슴에만 새기지 마시고 더 늙고, 돌아가시기전에, 어서 어서 찾아가 뵙고 고마운 마음 전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님 돌아가시니 이제사 후회하옵니다. 산소에 찾아가 엎드려 울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은 어머니 이 불효자식 또 다시 찾아왔습니다.평소에 좋아하시던 맛있는 음식 한번 제대로 사들이지 못하고, 늘 바쁘다는 핑계로 여행 한번을 시켜드리지 못한 이 불효를, 어머님은 그래도 사랑으로 감싸 주셨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늘 제게 말씀하셨지요. 남의 눈에 눈믈을 나게 하면, 네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는 법이라 하셨지요. 어머님의 그가름침, 그 말씀은 제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나마 착하게 살아가려 노력함도 어머님의 남다른 사랑임을 이제서 느끼고 있습니다.어머님을 병원에 모셔다 드리지 못함을 용서 하세요
어머니, 어머니.... 목메여 불러봅니다.
어머님의 가슴에다 몇번이나 마음에서 울어나는 카네숀을 달아 주었던가. 어머님에 대한 감사의 눈물을 몇번을 흘렸던가. 어버이 날이라서 어쩔 수없어 마지못해 선물을 사들고 어둔 골목길을 가던게 몇번이나 되었던가. 이제는 돌아가시고 나니 꼬부라진 할머니만 봐도 어머님이 생각이나 발길이 떨어지지않는다.
얼마있으면 어버이 날이 돌아오건만, 꽃가게를 지날라치면 카네숀이 다른 어느꽃보다도 눈에 들어 와도 가슴만 아려옵니다. 떨리는 손으로 카네숀 한송이를 들고 어머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슴에다 달아줍니다.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에 그만 눈물이 납니다. 꽃 한송이에도 감격하시던 어머니. 가난에 서럽던 수많은 세월을
오직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그사랑의 고마움을 이제서 깨우칩니다. 꽃 그늘보다도 더 향기롭던 어머님의 품안을 어디가서 안겨보나요. 이 측은한 마음은 가눌길이없어 사월의 봄바람에 실려 어머니 곁으로 가고 싶지만, 그럴수가 없습니다. 늦게서 철이든 이 불효한 자식을 용서 하옵소서. 어머니 .
어머니, 내일은 음력 4월 초팔일이네요. 아무리 바쁘고, 가난해도 이때가 되면 현암사를 찾아가 이 부족한 자식을 위해 등을 달아주시고, 무릎이 닳토록 절을 하시던 어머니. 이 불효자식은 어머님의 만수무강을 비는 등을 한번 달아 드리지도 못하였습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싶습니다.
어머니, 어제는 청주예술의 전당에서 청소년 孝 한마음 축제를 열었습니다. 효를 주제로한 중고등학생, 시.수필 작품낭송대회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그리는 잔잔하게 읽는 학생들의 목소리와 작품내용에 빠져 심사를 하다가 목이메인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정말 그 학생들도 남의 작품이지만 마음으로 읽으면,
목이메여 읽지를 못했을 겁니다. 아직은 어리고,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절절하게 사무치는 그리움이 가슴으로 다가오지는 못하였을겁니다. 늙어 갈수록 어머님이 보고싶어지는 이유는 어인 일인지 모르겠습니다.종일집에서 있다보니 늙어가는 서러움도 느끼게됩니다.어머니도종일 홀로계셨으니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어머니, 아무리 자식이 부모님께 잘한다 해도 어디 부모의 사랑하는 마음을 따를 수 있나요. 저도 자식을 길러보니 그 마음을 이제는 조금은 알것 같습니다.
어머니, 어제는 아는 스님이 단양에는 밤에우는 새가 있느데 묘한 소리를 낸다고 해서, 글감을 얻으려고 달려갔었습니다. 깊은 산중이었습니다. 이제 절을 지으려고 막 터를 닦아놓은 초막집이었습니다. 주지스님은 이 절터를 찾으려고 20년을 헤맸다고 하였어요. 뒤의 산 봉우리는 매봉이 있고, 와불상이 있고,
그 옆으로는 남와상, 앞에는 여와상의 산봉우리가 에워싸고 있었어요. 해거름에 도착해서 쑥을 뜯고, 땅두릅도 뜯고, 저는 오리나무잎이 너무도 많아 뜯어서 나물로 먹어 보려고 훓었어요. 쑥버무리를 먹으면서 어머님이 뜯어다 버부려 주시던 생각을 하면서 먹었습니다. 저녁상에는 오리나무잎 나물을 처음으로
먹어 보았습니다. 꼭 뽕잎을 삶아서 무쳐 먹는 듯했어요. 어머님이무쳐서 주셨더라면 참기름을 많이 넣고 깨도 많이 넣었으면맛이 더있었을텐데 하였습니다. 산속밤은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밤하늘에는 초승달만 높이 떠 있었습니다. 서쪽새도 구슬프게 울고요. 어두운 마당가에서 스님과 대화를 하면서
저도 속세를 떠나 이렇게 살고도 싶었습니다.
어머니, 저는 전생에 스님이었나봅니다. 왜 그리도 스님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이 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출가를 했다고 하더군요. 스님이 되기까지 한많은 고행이 있었겠지만, 이 스님은 어쩌면 천방지축 어린애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가식없이 소박한 마음 그대로입니다. 아마 이곳에 머물기 위해 수없는
방황도 많이 하였겠지요. 스님은 참으로 편안해 보였습니다. 또 행복해 보였습니다. 속세를 버린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속세에와서 사는것도 아니고, 중간에 머물러 사는 분 같더군요. 사방의 어둠속에서 하늘의 별들만이 깜박이고 멀리 바라다보이는 전경에는 전기불빛만이 어둠을 사루었습니다. 저 불빛은
단양매포지역의 세멘트공장의 불빛을 바라보니, 공연히 저를 속세에서 밀어낸듯이 그냥 슬픔같은 것들이 밀려왔습니다. 이것도 어머님에 대한 그림움이 스며나기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 밤이라서 그런지 밤바람이 아직도 차네요. 어둠짙은 산 능선에서 울어대는 서쪽새 울음이 점점 가슴을 에이는듯하네요. 이맘때면 아버지는 논 쟁기질하시고 피한한몸을 이끌고 돌아오시면 더운물을 데워서 발을 담그게 하시던 어머니의 지혜도 생각나네요. 부엌에 더운물을 떠서 목욕을 하는 스님을 보니
지난날 널다란 함지박에다 목욕을 할때면 뜨겁다고 엄살을 부리면 찬물을 한바가지 들어다 붓고는 남은 찬물을 등에다 뿌려 놀라는 꼴에 기뻐하시며 웃으시던 어린시절 생각도 나네요.
새벽녘에 떠날것을 염려하여 일찍 잠자리를 폈습니다. 촛불을 켜놓고 잠을 청하려다 그 불마저 꺼 버렸습니다. 방바다닥은 뜨겁고 잠은 오지 않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섯쪽새만이 애절하게 울고 있습니다. 제가 듣고 싶은 새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보리피리소리 같은 외줄기로 길게 숨막히듯
그렇게 울었습니다. 또 저 새 이름은 무엇인지, 울다울다가 지쳐버린듯한 가냘픈 저 울음은 또 어떤 슬픔을 담아둔 것일까요. 어머니, 저가 월악산에 있을적 젊었을때에 첫사랑의 여인이 떠나간 이후 저새의 울음처럼 그렇게 울었어요. 저 새도 그런 사연을 담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삶은 제 처지를
생각하며 남의 처지도 그럴것으로 추측하는것은 잘못인줄 알지만 그보다 더 애절한게 또 있을까요. 혹시 새끼를 잃고 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공자의 제자 인 자로 ?는 새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그 마음을 안다고 하던데요. 이 밤은 공연한 인생의 슬픔도 아닌 알수없는 나그네 같은마음에 그저 눈물만 날것같습니다.
아내도, 스님도 깊은 잠에 빠져 있지만 저는 영 잠이 오질 않네요. 어느덧 지현스님과 만난지도 3년의 세월이 흘러서인지 이제는 흉험울없는 친구같아요. 스님은 제게 글 소재를 하나라도 주고 싶어 조금만 재미있는 이야기만 있으면 전화질을 해 댑니다. 처음에는 경망스러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렇게
대하는게 아주 편해졌어요.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짓도 하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이해 하고 만나게 되니 스님도 저도 아내도 모두 만나면 즐겁답니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 겠습니다.
부질없는 인생길임을 알면서도 왜 이리도 고달픔을 이끌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나그네 같은 마음을 잡아매 두지 못하고 이렇게 헤메입니다. 제가 스님을 좋아 하는 이유도 아마 이런 마음에서 인가봅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다니는 스님을 부러워 함도, 그들로하여 기쁨을 누리고저 함에서인가 봅니다.
여자의 일생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머니도 아내도 너무 불쌍 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가족을 위해 남편을 위해 자식을 위해 희생으로 일평생을 살아 가야 하는 숭고함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가난해도, 괴로워도, 슬퍼도 모진 고통도 오직 가족을 위해 인내하는 모성애의 강인함에 다시금
존경하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가슴깊이 사랑의 씨앗을 뿌려 놓습니다.
어저께는 어버이 날이라도 꽃달아주는 자식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직 취직도 못했으니 자식들 역시 부모 얼굴을 보기가 민망했을 겁니다. 지식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 하는걸로 그냥 넘겼습니다. 대신 장모님을 찾아뵐려 했는데, 막내딸을 만나러 호주로 떠나셨더군요. 성묘를 갈려다 미루고 연구소출장만 다녀 왔답니다
백련을 보는 순간 꽃에서 피어나는 찬란한 빛은 어머니의 사랑이요, 눈물이었다. 백련의 순결과 청순함의 꽃말을 떠올리니 그대로의 고운 자태가 어머니의 그리움으로 다가와 바람에 일렁이다가 꽃잎으로 피어나기도 전 내 눈은 벌써 알 수 없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눈을 감고 꽃잎에 가만히 얼굴을 대어본다. ‘한씨 가문을 잊지 말거라’ 일러주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