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박물관에 대하여...
1.공주 박물관 소개
:국립공주박물관은 일제시기인 1935년 공주사람들이 이 지역의 백제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공주고적보존회를 모태로 생겨났다. 이후 1940년의 공주사적현창회, 1946년 국립박물관 공주분관을 거쳐, 1975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승격되었다. 일제시기부터 1972년까지는 공주의 옛 관아건물인 선화당을 공주박물관 정원에 옮겨 박물관으로 사용하였는데, 1971년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조사된 무령왕릉 출토품을 전시하기 위하여 현재의 박물관을 신축하였고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을 전시하고 있다.
2.무령왕릉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108종 2,906점이다. 연도에는 왕과 왕비의 지석(誌石) 2매가 가지런히 놓여있었으며, 그 위에는 오수전 한 꾸러미가 얹혀 있었다. 지석 뒤에는 석수가 남쪽을 향하여 서 있었다.
묘실의 관대 위에는 왕과 왕비의 목관재가 가득 놓여 있었다. 목관의 판재들 밑에서는 왕과 왕비가 착장하였던 장신구류와 몇 점의 부장유물이 출토되었다.
중요 장신구류로는 금제관식, 금제이식, 금은제허리띠, 금동장신발, 금제팔찌 등이 있고 왕의 허리에서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봉문환두대도가 출토되었다. 그 밖에 왕과 왕비의 두침 및 족좌가 목관 안에 놓여 있었고, 그 외의 중요 부장품으로는 청동거울 3면과 동탁은잔 등이 출토되었다.
3.석장리 유적
:석장리는 공주시 장기면의 금강 북안에 있는 마을이며, 1963년 지표조사시 처음 깬석기가 채집되어 유적의 존재가 알려졌고, 1964년부터 1992년까지 12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결과 구석기시대의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몇 동의 집자리와 다량의 깬석기를 확인, 수습하였다.
유적은 해발 13m에서 17m사이의 하안단구상 지형에서 발견되었는데, 조사시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이 유적의 퇴적층은 크게 4단위로 나누어지는데 최하의 기반암은 선캄브리아기에 형성된 화강암이 변성된 편마암층이다. 그 위에 제 4기에 퇴적된 4단위의 지층이 중첩되어 있다. 이 중 3단위의 문화층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결과 이 층은 기원전 5만년~2만년경 만들어졌음이 밝혀져 중기구석기후기부터 후기구석기시대에 해당됨을 알 수 있었다. 이보다 위의 충적층으로부터 세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석장리 구석기문화의 상한연대에 관해서는 발굴조사자는 전기구석기(약 45만년 전)까지 연대를 올려보고 있으나, 국내외학계에서는 아직 이 연대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고 후기구석기부터를 안정된 것으로 보고 있다.
4.야외 전시장
:공주박물관 야외전시장은 본관 앞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공주 일원에서 출토된 많은 석조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본관에서 바라볼 때 왼편으로 공주시 반죽동에서 출토되어 보물로 지정된(돌을 깎아서 물을 담아 쓰도록 만든 큰 그릇) 2기가 있으며, 오른편으로는 공주, 홍성 등지에서 출토된 석조여래입상과 석탑들이 늘어서 있다. 전시장 중앙에는 공주 금학동사지, 서혈사지 대전 보문산 등에서 출토된 석조불좌상과 공주 일원에서 출토된 초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유물들 사이사이에는 약 70년 이상의 수륜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무령왕의 목관재로 사용되어 유명해진 금 송이 자라고 있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