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서울 무지개(1989)>
1. 1989년 개봉한 김호선 감독의 <서울 무지개>는 80년대 영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적인 자극과 80년대 후반 허용된 민주화의 영향을 결합시킨 특이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신인 여배우 강리나의 서구적인 외모와 매력적인 신체를 관능적인 시선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분리된다고 할 수 있다. 앞부분은 동거하는 남녀의 상반된 삶의 태도와 성공하려는 야심으로 상층인사들과 육체적 거래를 통하여 신분상승하는 여성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무명 모델이었던 여성은 성공을 위하여 모델사 대표, 영화사 대표 등과 관계를 맺으며 점차 성공을 향해 질주한다. 그 과정의 끝은 대통령의 선택으로까지 이어진다.
2. 영화 후반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영화가 된다. 대통령이 은밀하게 마련한 밀실에서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의 시도가 결국 권력자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탈출하려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가 이어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만나는 것을 금지할 뿐 아니라 언론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시키려는 시도를 넘어, 거부하는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폐인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민다. 권력자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철저하게 인간을 파괴시키는 만행을 적나라하면서도 자극적인 방식으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동거했던 남성이 정신병원에 잠입하여 여성과 함께 탈출하지만, 결국 권력자가 보낸 암살자들에 의해 비참하게 목숨을 잃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3. 지금 보아도 권력에 의해 개인의 존재가 철저하게 파괴되는 과정을 생생하면서도 거침없이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이라 암시되는 존재의 성적인 타락과 그것을 감추기 위해 벌어지는 치밀한 공작은 당시 소문으로 유포되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민주화의 영향은 권력의 추악한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받았다. 하지만 권력의 추악한 면에 대한 폭로라는 성격보다는 여성의 육체적 자극에 더 큰 비중을 두는 방식으로 인해 영화는 정치적 드라마가 아닌 선정적인 에로물처럼 느껴진다. 끊임없이 카메라 앵글은 여성의 육체를 앞뒤로 응시하면서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비록 권력의 힘 앞에서 비참하게 죽어갔다는 점에서 정치적 음모의 비정함을 폭로시키는 효과를 보여주지만, 그러한 시도는 지나친 성적인 자극에 대한 집착 때문에 축소되고 왜곡된다. 당시에도 이 영화는 권력의 어두운 면에 대한 묘사보다는 여성의 육체적 매력에 더 큰 선정적 관심을 보여주었다.
4. 그럼에도 성적인 묘사 장면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영화에 집중한다면, 권력의 만행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충격적일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특히 탈출에 성공한 남녀의 차량을 거대한 덤프트럭이 밀어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권력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저항을 보여주며 깊은 허무감까지 동반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을 탈출시킨 남성이 민중미술을 하는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이 성공을 위해 타락할 때도 별다른 노력도, 변화를 위한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남성적인 권위와 무례함으로 여성을 도덕적으로 비난했을 뿐이었다. 마지막 여성을 위한 시도조차 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혀 버리는 장면은 민주화에 대한 도덕적 혼돈과 정치적 허무감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첫댓글 - 욕망과 파멸을 이끈 원동력의 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