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의 시간이 자신을 부르면 어김없이 산을 오르는 것, 일상이 된 지도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습니다. 산을 찾게 된 동기는 단지 몰입할 수 있고 어떤 원인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산이 준 교훈 때문입니다. 사유는 바로 등산이라는 관련성으로 찾기 시작한 것이 사춘기를 막 벗어난 청년기로 접어들 때부터 이어졌으니 평생 동안 익혀 온 행동이나 진배없습니다. 思惟는 인간의 지적작용으로서 생각하며 궁리하는 일로 생각의 대상 개념이나 구성 등을 분별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단 하루를 살아도 보고, 듣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적어두고 하는 일이 바위틈에서 샘솟는 것처럼 끝일지 모르고 솟아오릅니다. 사유는 처음 겪는 중요한 일이 발생되었을 때나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존틀에 대한 위기의식이 몰려왔을 때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아무튼 생각을 정리해야지만 안도의 마음으로 평상심을 붙잡을 수 있다며 궁리를 잡아나갈 때 어김없이 떠오르는 형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금동미륵반가사유상(金銅彌勒半跏思惟像)입니다. 이 불상은 원형 대좌에 앉아 왼발은 내리고 오른발은 왼쪽 무릎 위에 얹어 반가좌(半跏坐)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은 들어 턱을 괴어 사유(思惟)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상은 통일신라시대 유물입니다. 서양 사유상으로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떠 오릅니다. 사유라 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정좌하고 앉아 깊은 생각에 몰입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金銅彌勒半跏思惟像)의 자세는 반가부좌(半跏趺坐)입니다.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리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허벅지에 올려 반가부좌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른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살짝 받치듯 하고 있는 자세는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모습은 불가에서 명상할 때 사용하는 자세라 합니다. 이 자세는 안정적으로 균형을 유지해 주고 몸의 긴장을 풀어주며 에너지를 온몸 고르게 흐르게 하여 긴 시간 명상도 무난히 이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명상과 사색을 상징하는 불교의 반가부좌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명상 속으로 침잠되어 가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오랜 시간 사유를 통해 부처의 경지인 고요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미소로 다가와 보는 사람내면에 평화의 기쁨이 가득 쌓이게 해주는 참 아름다운 미소입니다.
부처의 미소를 떠 올리며 도착한 산기슭, 불현듯 공복이 느껴져 등을 산에 기대고 잠시 되돌아 서서 주변을 살폈습니다. 한 조각의 빵을 선택할까? 하다 근처에 자주 가던 식당이 기억나 발길을 옮겼습니다. 늘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주인여사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해왔습니다. 준비된 백반은 전부 소진되어 지금 당장 준비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낙지볶음백반뿐이라며 말을 전하고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응답을 하고 자리에 앉아 주문 음식을 기다렸습니다. 물과 함께 도착한 밑반찬 다섯 가지김치와 콩나물 무침만 빼고 나머지 찬들은 전부 봄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초장과 다시마줄기, 무생채, 냉이무침~~ 기다리며 우선 다시마 줄기를 초장에 찍어 먹자 초장과 어우러진 바다향이 봄기운으로 바뀌더니 신춘의 향취가 전해 오는 것 같아 겨울 옷이 무거운 생각이 뒤따라 왔습니다. 어서어서 겨울을 몰아내자 하는 마음으로 무생채를 씹은 후 넘기자 타고 넘어가는 식도에 춘천(春川)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사이 도착한 낙지볶음, 참 양념 맛이 장말 근사하고 맛깔스러운 집이 바로 이 식당입니다. 그래 이 집은 때가 되면 늘 만석입니다. 그래 이 집 밥을 먹으러 오려면 정시를 기준으로 한시 간 전후로 정하고 오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점심을 챙긴 후 다시 걸음은 산 걸음으로 변경한 후 잣나무 숲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 올랐습니다. 스치는 산객들이 신고 있는 아이젠 소리가 귀에 거슬렸습니다. 오솔길 사이에 놓여 있는 돌을 밟고 넘어갈 때 금속음이 너무 날카롭게 울려 싫었기 때문입니다. 잣나무 숲 중앙에 서서 잠시 너른 바위 위에 방석을 깔고 앉았습니다. 미풍조차도 사라진 잣나무 숲, 어느새 솔잎도 녹빛이 우러나며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입춘과 더불어 봄의 시계는 이미 작동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숲은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사유하며 보내다 일어서서 셀카를 작동하여 사진 한 장을 만든 후 방풍재킷을 벗어 백팩에 넣고 트레킹화 중간 끈을 조여 다시 묶고 잣나무 숲을 벗어나 언덕 위로 올라섰습니다. 오를수록 적설이 길을 막고 간혹 빙판 길이 보행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여러 차례 내린 눈으로 오를수록 적설은 깊이를 더했습니다. 요즈음 들어 너무 스틱에게 의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틱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준비를 하지 않았으며 아이젠 또한 준비를 하지 않은 산행이라~~~ 내심 걱정이 마음 곳곳에 물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적설기 산행이라 스틱과 스페츠, 그리고 아이젠은 필수 동계장비인데 준비를 소흘이 한 것은 만용기준으로 볼 때 적합한 짓이 안지요. 잠시 낙엽송 군락지에 접어들어 임시방편으로 사용할 스틱대용 나무토막을 찾기 시작하여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토막이지만 만군(萬軍)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더욱더 조심하기로 하고 등반방식을 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수직등반에서 수평방식으로 조정하고 횡단하는 시작깃점과 종단깃점을 정하기 위하여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오늘 찾은 산, 전반의 코스를 기억해 내며 스크린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목측으로 살핀 후 지형물을 이용하여 횡단루트를 완성한 후 현재의 시간을 확인하고 예상 소요시간을 산출해 보았습니다.
입춘 후 등산사고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도심에서 느끼는 봄기운을 고스란히 산으로 가져와 산행을 하기 때문입니다. 2월 3월 중에는 아직도 낮의 길이가 짧고 밤의 길이 길어 해가 넘어가면 다시 산 길은 결빙되어 하산 시간을 놓치면 보행이 취약하게 되어 장시간 야간에 노출되므로 체력이 저하되면 뒤따라 발생할 수 있는 저체온증에 빠질 수 있어 경계해야 합니다. 이 점을 생각하여 힁단소요시간을 계산해 적정한 계획인가를 살피려 한 것입니다. 조금 무리하다는 판단에서 0.8km 줄여 코스를 다시 선택하여 신춘 산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횡단으로 이어진 신춘산행, 동에서 서쪽으로 이어지게 잡은 코스, 목적과 함께 심신단련에도 만족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여름산행이라면 분명 남에서 북쪽으로 길을 열었을 것입니다. 겨울산행 코스 이동방향은 늘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을 열어나갑니다. 그 이유는 북사면은 적설이 깊고 바람도 모질어 보행에 제한이 따르고 해가 거의 없어 춥습니다. 반면에 서향은 해의 길이가 길고 오랜 시간 햇빛을 받을 수 있어
최적의 보행컨디션을 가질 수 있고 안정적인 자연환경 속에 산행을 즐기게 되어 좋은 방향 선택입니다. 겨울철 산행 시 호흡은 폐쇄적이라면 반면 신춘산행에 호흡은 너르고 길게 잡습니다. 그만큼 겨울공기보다 봄의 공기가 부드럽다는 뜻이지요. 거의 산행 마무리할 즈음 잠시 바위 사이에 방석을 내려 깔고 다시 앉았습니다. 그리고 보행과 관련된 기록과 신체적 변화 추이를 살핀 후 걸음수를 확인하니 16,000 보를 확인되었습니다. 산행의 최종 종착지인 귀가까지 합산해 보면 대략 18,000보가 결실로 다가왔습니다. 귀가하여 반려견까지 산책을 시키면 오늘 최종걸음 수는 2만 3 천보가 될 것 같습니다. 걷는다는 것 직립이 원인이지만 그 안에는 걷지 않는 자는 앞으로 도저히 나갈 수 없다는 기본적인 행위 철학이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때로는 흐르는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어 걷기도 하고 풀꽃의 감흥으로 순수의 서정에 물들기도 합니다. 자~~ 연 (自然)은 모든 것을 스스로 이뤄 나가듯이 그런 뜻을 흠모하여 평생을 찾았지만 흉내만 내고 살았다는 자괴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내 안에 내가 아닌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 같습니다. 내가 작아야 해결될 일인데 ~~~ 기울어 가는 해를 보며 저에 생각은 내일로 다시 이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손전화기 안에 심어 놓은 음악을 찾아 이어폰을 이용하여 청취하며 귀가 길에 올라섰습니다.古稀들면서 부터 자주 떠올리며 흥얼거리는 노래입니다.